8월 2일 오후 5시 30분과 6시 30분, 2회에 거쳐 반디앤루니스 르네상스광장에서 장선희 선생이 오카리나와 팬플륫 연주를 했다.
오후 3시 30분경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종로에 있는 반디앤루니스에서 공연을 하는데 시낭송 몇편 할 수 없겠냐는 내용이었다.
사실 공연을 하는 이들 중에서는 자신의 공연엔 타인을 잘 세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공연을 망치거나, 혹은 시선을 분산시켜 집중도를 떨어트린다는 이유지만 그런 부담감 없이 누군가 함께 공연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희생이나 상대에 대한 신뢰감도 중요한 일일게다.
전화를 받고 약속된 장소로 나가는 중에 몇 통의 전화가 걸려와 받다보니 지체되어 먼저 출발을 하였단다. 양재역에서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마을버스는 금방 오지 않았다. 아마 조금전 보았던 버스를 타고 출발 한 듯 하다.
양재역에 도착하여 대화방향으로 가는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악기가 담긴 가방을 맨 장선희 선생이 웃으며 맞아 준다.
행사장에 도착한 시간은 공연시작 5분 전이다. 미리 도착한 레일아트의 고광희 간사가 엠프와 마이크를 설치하고 있었다. 장선희 선생도 부지런히 MR과 마이크를 테스트 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공연 시작은 포에버를 연주 하는 것으로 열었다. 몇 사람 없던 광장엔 하나 둘 지나가던 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자리를 잡고 앉는 모습들이 보였다.
정태춘 · 박은옥의 ‘떠나가는 배’가 반디앤루니스의 르네상스광장을 채우고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연주를 하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편안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심취한 이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연주를 하는 장 선생의 모습을 몇 장 담았는데 그 중 무작위로 선택한 사진이다.
‘떠나가는 배’가 연주되는 시간의 르네상스광장에 자리한 청중들의 모습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분들 사이로 남성분들도 제법 많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이렇게 여성분들이 많이 자리를 한 공간에서는 남자들이 함께 자리를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는데 그만큼 서로 세상을 보는 시각들이 달라진 듯 하다.
조금 자리를 이동하여 세번째 곡을 연주하는 장선희 선생과 측면에서 바라다 보이는 르네상스광장 풍경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연주도 듣고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자 임시 무대로 세워진 공간 앞에 앉은 이들은 편안하게 몸을 쉬며 음악연주를 듣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일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객석으로 마련 된 곳으로 제법 많은 아이들이 찾아 왔다. 장선희 선생이 네번째 곡을 연주 하기 전 팬플륫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모습으로 ‘후라이팬을 닮은 악기라서 팬플륫이 아니고, 판이 불었던 피리라서 팬플륫이라고 합니다.’고 하자 청중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팬플륫(Panflute)은 고대 희랍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을 한 목신(牧神) 판(Pan)이 연주를 한 ‘Syrinx’라는 악기가 발전하여 현재의 팬플륫이 되었다 한다. 이 악기를 이야기 하자면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를 빠트릴 수 없을 게다. 그 ‘목신의 오후’는 바로 이 시링크스(Syrinx)라는 악기가 나오게 된 그리스의 신화를 알아야 이해가 빠르다.
시링크스는 ‘아르카디아’ 산에 살면서 순결을 상징하는 처녀신 ‘아르테미스’를 본받아, 순결을 지키고 살던 그가, 어느 날 목신(牧神) 판이 쫓아오자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라돈강까지 달아났는데, 강물에 막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고 판에게 잡히려는 절대절명의 순간 강의 님프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 달라고 간청해 갈대로 변신하게 된다. 시링크스를 놓치고 아쉬워하던 판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에 반해 몇 개의 갈대줄기로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바로 이것이 팬파이프의 유래가 되었으며, 그래서 팬파이프(팬플륫)를 시링크스라고 한다.
이오니아의 에페소스에 따르면 판이 시링크스를 가두었다고 하는 동굴이 남아 있는데, 시링크스의 순결에서 연유하여 처녀성을 알아보는 데 쓰였다고 전한다. 즉 처녀를 동굴 안에 들어가게 하면 진짜 처녀는 무사히 살아나오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나오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전한다.
‘목신의 오후’는 프랑스 상징주의파적인 시인 ‘S. Mallarme’의 시에서 착안하여 곡을 썼는데, 클로드 드뷔시는 연주에서는 팬플륫이 아닌 플륫을 사용했다고 한다.
사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그런 상세한 부분까지 설명을 해 준다고 해도 귀에 담을 사람 몇 없다. 하지만 조금 재미나게 이야기를 해 줌으로써 스스로 그런 악기와 음악을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주자는 소임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장선희 선생은 아이들을 위하여 동요를 한 곡(아기염소)을 선곡해서 들려 주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눈망울을 반짝이며 연주를 하는 장선희 선생을 쳐다보고 있다.
악기를 바꿔 오카리나(마름 오카리나의 흑단 오카리나)로 몇 곡을 들려주자 많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마름 오카리나의 흑단 오카리나는 정말 음색이나 음역에서 명품으로 손꼽히는 악기다. 또한 디자인도 현재 제작되어진 오카리나 중에서는 아주 특별하다.
1부 연주가 끝나기 전 마지막 곡을 연주하는 장선희 선생의 모습이다. 곡목은 ‘한계령’으로 바로 직전에 ‘마이 웨이’연주에 맞추어 내가 자작시 ‘한계령에서’를 낭송한 것에 대한 답이다.
한계령에서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 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메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1부 공연이 끝나고 6시 30분까지는 20여 분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았다.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한 광장을 가로질러 지하철 입구로 나왔다. 날씨는 며칠 째 쏟아지던 비가 그리울 정도로 무덥다. 천천히 담배를 피우고 공연장으로 돌아오니 장선희 선생은 조금전 공연을 할 때 청중들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고 자신도 팬플륫과 오카리나를 배우려 한다는 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동안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2부 공연을 시작했다.
2부 공연 시작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분을 위해 오카리나로도 연주를 했다. 사실 팬플륫으로 몇 곡 연주를 하고 오카리나를 연주 할 생각이었을 텐데, 광명시에 산다는 분을 위해 오프닝 연주 직후 오카리나를 꺼내 연주하는 모습을 누가 알아주겠느냐지만, 아마 그 분도 그런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인 듯 거의 공연을 끝낼 때까지 자리에 앉아 계셨다.
1부 공연에서 연주를 했던 곡을 한다고 해서 누가 무어랄 사람 없을테고, 또한 청중들은 이미 모두 다른 이들로 바뀌었지만 1부에 연주 했던 곡은 단 한 곡도 다시 연주하지 않는 성의를 보여줬다.
직장에서 나온 듯 조금전 1부 공연과는 청중들의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다. 우선 직장인으로 보이는 연령층의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서점에 들렸던 이들이나 이곳 르네상스 광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 이들도 제법 많으리라.
르네상스 광장은 거의 매일 이런 공연이 마련되어 있는 듯 싶었다.
장선희 선생도 이미 몇 번 이곳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나야 장선희 선생이 별도로 함께 가서 시낭송을 하면 좋은 공간일 듯 싶다며 불러주신 거지만 장선희 선생은 ‘레일아트’라는 지하철 예술단체에서 몇년째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장선희 선생이 연주를 하는 동안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대합실에 해당되는 지하1층으로 올라갔다. 아래서 보는 거와는 달리 이곳도 많은 이들이 서서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계단에 아무런 깔 것 하나 없이 그대로 앉아 공연을 보는 이들이나, 선채로 공연을 보는 이들을 보니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시낭송을 할 준비를 하라는 뜻으로 연주를 하기 전 내 소개를 먼저 하고 연주를 시작하는 장선희 선생을 보고 윗층에서 내려오는 중간에 촬영한 사진이다. 바삐 가야 한다던 광명시에 사신다는 분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도 장선희 선생의 연주에 깊이 빠져든 모양이다.
결
눈 아프도록 바라보다 흐르는 물에도 결이 있음을 알았어.
네 마음속 수많은 결이 늘 이렇게 혼돈으로 몰아가듯 가슴 시리도록 바람 앞에 서 보던 날 바람에도 결이 있음을 사무치게 느꼈어
따뜻한 네 눈빛 사이 싸늘함을 간직한 결 켜켜 층 이루어 늘 서늘한 한기 느끼게 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 물과 물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그 사이마다 슬픔을 이야기 하는 오롯이 아린 결이 있음을 보고야 슬픔의 무게 어깨를 아프게 누르고 네 흐느껴 찰랑거리는 뒷모습 플라타너스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걸 길이 다른 길과 교차하는 지점 수많은 길들이 길들을 만나는 지점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보고만 있어야 했어.
시낭송을 마치고 준비했던 원고를 챙겨 가방에 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전 교보문고와 종로서적에서 책을 사며 언제쯤이나 내가 쓴 책이 저 서점의 책장에 꽂혀 독자를 기다릴 수 있을까 상상했던 일이 이젠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더 좋아진 거라고는 내겐 없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는 내가 있고, 그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내가 있을 뿐,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아니다. 귀밑머리에 이제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듯 하루가 다르게 흰머리카락이 많아진 것과, 서서히 진행되던 탈모가 중년의 모습으로 보이게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슬프지만 변한 거라면 변한 거다.
이젠 마지막곡 연주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지막곡을 연주하겠다는 안내에도 일어서는 이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낭송을 하는 중간에도 그랬고, 낭송을 하고 인사를 할 때도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한결 같았다. 지금 장선희 선생이 오늘의 마지막 곡을 연주하겠다고 안내를 하고 연주를 하고있지만 그들은 단 한 곡의 연주라도 끝까지 들으려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그런 청중들을 향하여 포커스를 맞추었다. 진지한 표정들! 그런 그들이 있기에 오늘도 이렇게 연주를 하는 이들이나 다양한 공연자들이 힘을 얻고 공연을 하는 것이리라 · · · · · ·
바람소리
흙의 촉감을 닮았어라 자연의 소리를 닮았어라
천상의 결고운 열두줄 명주실 타고 울리는 가락 푸른 들판 흰구름 떠가는 소리였던가 싶은 바람소리로 전하여 오는 자연의 숨결.
봄 내 물씬 가슴을 적시듯 산골짜기 어루만지는 물소리 들리는가
신록 푸르른 날 청아하게 창공을 가르는 빗방울 소리 아닐까
가을날 억새밭 사이 사무치게 떠 오르던, 달빛의 흐느낌이었는가
한 겨울 시린 가슴마다 푸근한 향수를 느끼게 하며 삭풍에 눈발 날리는 소리는 아닌지!
바람소리로 전하여 오는 고운 자연의 숨결 누가 이토록 결고운 음을 타는가
천상의 그대, 내게 들려주는 바람의 울림!
바람소리로 전하여 오는 고운 자연의 숨결 누가 이토록 결고운 음을 타는가
천상의 그대, 내게 들려주는 바람의 울림! 바람소리.
바 · 람 · 소 · 리. | |
첫댓글 워낙 자세한 글로 공연장 가본거나 똑 같습니다.근데 에어컨이 나오는지 이더운날들 떨렁 선풍기 한eo가 겁주네요 가운데 바위는 진짜 돌인지?
네, 진짜 돌이더군요. 에어콘 가동은 어려운 공간이지만 지하라 그리 덥지는 않습니다.
짝짝짝~~~정말 흥겨운 작은 음악회입니다~~~이젠 시 발표회도 바람소리에 빠질 수 없는 테마로군요~~
시도 운율이 있어 노래할 수 있다보니요
김선생님의 플륫 연주나, 삐노님의 팬플륫 연주라면 언제든 시낭송의 배경음악으로 최고라 생각됩니다. 물론 연주 중간에 전혀 다른 코드의 장르를 보여줌으로써 청중들의 집중도도 높일 수 있구요. 시와 음악이 만나면 어쨋거나 노래가 되는 거 아닌가 합니다.
이 내용 미디어 다음의 기사에서 카페가 쓴 기사 중 "취미생활" 부분으로 추천되어 있습니다. 이미 300명 가까운 분들이 보셨더군요. 하긴 제 블로그에도 많은 분들이 들어와 보셨고 홈페이지에도 많은 분들이 보셨습니다. 위의 [기사보기]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블러거가 만든 카페 뉴스 조회 Best 5안에 들어있네요.
현재 3위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조횟수 900명을 이르렀구요. 팬플륫 검색 1위라는 특이한 기록도 세우는군요. 오늘 바람소리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었던 일도 바로 이 내용 때문입니다. 많이본 블로거 뉴스에도 링커가 되어 있으니 여러경로로 홍보가 되고 있군요. 늦게야 거기 기사에다 배너를 달았습니다.
혜성처럽 나타난 음악계의 단무지!!! 지가 봐도 저 관중들 속에 있다온것 같습니다 그려~ 바람소리가 귓전을 파고드네요 정말 부럽습니다~ 이더운 날씨에도 다른이들의 귀를씻어 영혼을 맑게 해 줄수있는 님들이....전 황페해진 영혼을 정화의명분으로 오늘도 그져 곡차만 벗삼을 뿐 보시는 뒷전.....하늘가득 바람소리... 님들이 한없이 부럽기만합니다.
오늘도 곡차만 벗삼아??? 지금이 몇시인데 벌써 곡차랑 놀고 계실까...
곡차? 어제 못 드시더니 오늘 결국은 드시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