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암동 옛 728번지 일대에 있던 일본군 관사다.여기서 직선거리로 약1Km정도에 국방대학원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의 국방대학원 자리는 일제시대 일본군 사단 규모 병력이 주둔하던 병참기지로 알려져 있다.해방전 일본군 경성사단이
이 건물을 사용했고 1930년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던 시절, 경의선 수색역이 지나가는
이곳에 군을 주둔시켰기 때문이다. 해방 후 우리 군에서 인수해 장교 양성소로 사용하다가 오늘날에 이르렀다.
2005년 서울시 SH공사가 마포구 상암2지구 택지개발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발견하였다.
일본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보존 가치을 인정받아 상태가 양호한 2개 동을 옮겨,
복원한 것이다. 대위급 숙소와 소위·중위급 장교숙소로 이용되었던 건물은 전시관으로 조성하였다.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각종 도구와 살림살이를 그대로 복원하였다.마당에는 우물과 두레박, 정원 등을 당시
모습대로 복원하였으며 두 개의 건물 사이에는 방공호도 복원했다.
문화재청 조사에 의하면 일본군 관사 단지는 총22개동 6개 유형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일본군 관사 복원을 맡았던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는 “일본군 관사가 서울에 단지 형태로 남아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할 것"이라며"근대 건축사적 가치가 높아 따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군 관사는 현재 용산 미군 기지와
부산 가덕도, 경남 진해에 몇 채가 남아있다. 이들 사라질 관사 마을과 관사길은 앞으로는 역사적인 흔적으로 명맥을 이을 듯 하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일본군 경성사단이 중국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세운 일본군 장교용 관사이다. 근대 주거 및 군인 관사에 대한
연구대상으로서 가치와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적, 교육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1930년대, 상암동 일대에는 경의선을 통해 전쟁 물자를 수송하던 일본군 대규모 병참기지가 있었다. 1930년대 건립되어 1945년
광복 이후 국방부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가 1960년대 민간에 매각되었다. 1970년대에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1990년대 초까지 쓰레기 매립지 인근에 있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관사 마을은 한때 잘 나가는 부촌으로 꼽혔다. 해방 뒤 소유권을 넘겨받은 국방부는 1965년부터 건물을 민간인들에게 팔았다.
당시에는 번듯한 단독 주택이 드문 시절이라 재력 있는 사람들이 집을 사들였다. 북미식 목조 건물을 흉내내 지은 개량식
일본 주택이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군 출신인 강영훈 전 국무총리도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철거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건물터가 꽤 넓어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전했다.
옛 일본군 관사는 널빤지로 벽채를 만들고 흙과 잡목에 기와를 올리는 한옥방식과는 다르게, 널빤지 위에 기와를
올린 일본식 지붕형태를 띄고 있다. 정면의 현관과 중앙 거실을 중심으로 3개의 방이 배치되어 있는 것과 규모로 보아,
오늘날 소위에서 대위에 해당하는 위관급 장교관사로 추정된다고 한다.두 관사건물 사이에 위치한 방공호는 관사건물과
달리 실제 이전한 것이 아니라 재현해 놓은 것으로 당시 전쟁 상황의 긴장을 느끼게 해준다.
현재 일본군 관사 사이로 일본인학교 건물이 보인다.일본인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일본인 학생들이 교실
창밖 너머로 보이는 이 목조건물의 일본군 관사를 보고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 의문이다.
영화 <암살>은 친일파의 암살을 시도하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 <암살>에 이곳 일본군 관사가 등장한다.
영화 <암살>에서 여성 총잡이로 활약한 안윤옥이다.그의 롤모델로는 여성독립운동가 남자현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신흥무관학교,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실존했던 기관이 등장한다.
그는 1872년 경상북도 영양에서 출생했다. 지난 1895년 남편 김영가 의병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여 유복자를 길렀다.
이후 1919년 3·1운동 때 중국 둥베이(동북) 지방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하는 한편, 12곳에 교회를 건립하고 10개의
여성교육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과 여성계몽에 힘썼다.1925년 박청산과 국내로 잠입, 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1932년 국제연맹 리턴조사단이 하얼빈에 도착하자 무명지를 끊어 ‘조선독립원’이란 혈서를 써서 끊어진 손가락과
동봉하여 전달,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1933년 만주 괴뢰정부 건국일(3월 1일)에 이규동 등과 함께 일본장교 부토 노부요시를 살해하려고 폭탄과 무기를 휴대하고
가다가 체포되었다. 옥중에서도 단식으로 항쟁하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향후 하얼빈에서 객사하였다.
이같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남자현의 활약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영화 <암살>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실존했던 인물들이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암살단을 꾸리는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은 실존했던 대표적인 독립투사들이다.
김원봉은 1919년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조직하고 6년 동안 단장을 맡았다. 김구는 1931년 일제의 요인들을
암살하기 위한 독립운동 조직인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김구와 김원봉은 사상적인 노선이 달랐다.
두 사람은 공동으로 동포에게 보내는 공개통신문을 발표하는 등 연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영화에서 김구와 김원봉이 함께 지휘하는 암살작전의 타깃은 친일파 사업가 강인국과 조선군 사령관 가와구치다.
두 친일파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최동훈 감독은 “특정인을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니고, 당시 친일을 하던 인물들의
특성이 고루 녹아 있는 인물로 그리려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