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스님의 제자 스님들
(용성조사와 동헌 선사, 불심 도문 큰스님,법륜 스님의 인연 이야기)
아름다운 인연의 꽃이여! 민족과 인류의 희망으로 피어나고 있나니!
■ 동헌당(東軒堂)완규(完圭,1896~1983)선사
"내 무슨 운명이 집에서는 밤새워 돈(독립자금)전하는 일을 하고, 그것이 싫어 절로 도망 와서 스님이 됐건만 밤낮으로 독립 운동하는 어른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니,참 기구하고나......지금도 만해스님과 오세창 선생, 길선주 목사, 이승훈 선생등이 용성스님을 만나기 위해 절에 와서는 '완규야'하고 찾던 목소리가 선하구나."
용성(龍城)조사의 수법제자(首法弟子)인 동헌(東軒)선사는 1983년 법랍 60세,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기까지 평생을 철저히 용성조사 생전에는 독립운동의 밑받침이 되어드리고 조사께서 입적하신 후에는 그 유지를 받들며 사셨다.
"동헌 스님은 용성스님 이야기만 꺼내면 눈물부터 흘리다가 나중에는 엉엉 우셨지요. 일제시대 독립 운동하다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럴까 싶어요."(도문 큰스님 말씀)
용성조사는 열반 직전 수법제자인 동헌선사에게 유훈 10사목(事目)이 담긴 밀봉함을 주셨는데, 그 내용은 우리나라 불교 전래지의 성역화, 경전 100만 권 번역과 배포,100만 명에게 삼귀의오계를 줄 것, 부처님 주요 성지에 한국 사찰을 걸립할 것 등의 10가지였다.
유훈사업은 동헌선사에게서 도문큰스님으로 이어졌고, 도문큰스님은 1961년부터 어언 50년이 넘게 유훈을 완성해가고 계시다.
■ 불심도문(佛心道文 1935~)큰스님
1940년 용성조사께서는 열반 전 마지막으로 조사의 죽마고우이자 독실한 불교신도이며 독립운동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임동수 거사 댁에서 '가정방문 설법'을 하셨다. 조사께서는 일찍이 임거사의 손자인 임철호 애국지사에게 '아들을 잘 낳아 잘 길러 잘 가르쳐서 부처님께 바쳐 출가 봉공케 하라'일렀는데, 바로 그 아들이 현재의 도문 큰스님이시다.
용성조사께서는 임철호 지사의 어린 아들 손을 꼭 잡고,'나 용성의 제자 동헌조사의 상좌 겸 제자가 되어 정법안장이 이어지도록 해 달라.'는 당부를 하셨다.
동헌선사는 한때 단식 중이던 도문 큰스님을 향해'그대가 산중 토굴로 들어가 버린다면 누가 있어 용성진종조사의 유훈을 실현한단 말이냐'고 크게 걱정하시면서 손을 꼭 붙잡고 흐느껴 우셨다고 하니 스승과 제자 양쪽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사랑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리고...
"야 이놈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긴 뭐가 바빠?"
이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도문 큰스님과 법륜스님.
■ 법륜스님
불심도문 큰스님은 지금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의 씨앗을 심어주신 분입니다. 용성진종조사님의 유훈 중 한국불교의 뿌리 찾기인 초전법륜성지 가꾸기 운동은 민족의 뿌리 찾기 운동인 상고사 복원운동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고, 지금 시대적 과제인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은 용성진종조사님께서 하신 당시 독립운동을 계승한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교포들에게 포교하는 것도, 용성진종조사님께서 당시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살던 만주 용정에 대각교당을 만들고 선농당을 세운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문경에 생산 공동체를 만든 것 역시 용성진종조사께서 화과원을 운영하신 것과 같은 생활불교운동입니다."([연기법의 생활]중 법륜스님 말씀)
용성진종조사의 유훈은 동헌완규 조사로 이어지고, 다시 불심도문큰스님에 이르러 체계화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법륜스님은 이 유훈을 세상에 널리 실현하고 대중화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인연은 개인의 인연을 넘어 이제 민족과 인류의 큰 희망이 되는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출처 : 월간정토 6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