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울음소리』
[프롤로그] 작가 이태준(1학년 2반)
[프롤로그] 모형 나비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탄 배가 있다.
그가 탄 배는 잘 보존되어 후손에게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영웅의 배라 할지라도 무섭게 다가오는 시간의 흐름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토론하였다.
어느 수염이 가슴까지 닿는 노인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의 영웅 테세우스의 배요! 어찌 그 유물을 건드릴 수 있냔 말이오!”
하지만 건장한 청년이 이야기하였다.
“아니요! 우리의 배는 이미 부서지기 직전이오! 아무리 과거의 유물이라고 해도 지금 다 부서질 것 같은 걸 그대로 놔 둘 수는 없소!”
결국 떠오르던 해인 청년의 발언이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다 부서져 가던 배는 새로운 나무판자로 갈아 끼워졌고 어느새 완전히 새로운 나무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생각한다.
과연 모든 나무판자가 바뀐 테세우스의 배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위대한 영웅의 배인가? 아니면 단순한 모조품인가? 이걸 고민하는 지금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있기에 언젠가는 테세우스의 배가 될지어다!
……………………………………………………………………………………………………………
시간 위를 걷는다. 어릴 적 그 조그마한 보폭으로 힘차게 걸었던 자신이 생각난다. 푸른 시골 마을에 몇 없던 또래들…. 그래도 그때가 행복했다. 시간의 파도에 눈 감고 있던 무지한 어린 시절이 왜 사무치게 그리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조그마한 자신의 모습이 부서져 간다. 그 때의 추억은 덧없기에 나는 눈을 뜰 수밖에 없다.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모습이다.
……………………………………………………………………………………………………………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제1화] 작가 송윤성(2학년 4반)
[제1화] 병원에서
나의 몸, 저 거울에 비쳐 보이는 것이 진짜 나의 몸인가, 거울 속 소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소녀와 눈싸움을 해봐도, 거울이 뚫어질 정도로 째려본다 해도 거울 속 소녀가 지금 나의 모습이란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왜 거울 속 소녀가 진짜 나의 모습이란 걸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가? 깨어난 직후부터 내 몸을 감아 올라온 이상한 위화감은 내가 나로 하여금 나의 정체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그저 온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고 결론내리기엔 내 직감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시간을 거슬러, 천천히 기억을 되살려 보자.
나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성함은? 역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현재 나이는?
…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 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었나? 답답함에 머리를 싸매고 있던 도중, 어떤 풍경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약간은 스산한 공기, 가로등의 은은한 빛만이 거리를 밝히고 있을 시각, 약간은 기억이 되돌아오는 것 같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은 검은색 슬랙스를 입고, 흰색 셔츠를 입고 있는 키가 큰 남성이었다. 그래, 분명 그 사람 이름이..
- 환자분?
성이 분명 이 씨였던 것 같긴 한데…….
- 서윤 님?
아닌가? 박 씨였나? 박 씨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사람 이름이
- 한서윤 님?
- 아, 네!
너무 집중을 했던 바람에, 간호사님이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었나 보다. 이름이 거의 기억날 뻔 했는데
- 환자분, 정신은 좀 드세요?
정신이라, 거울을 봤을 때 놀랐던 마음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가 된 것 마냥 수만 가지 경우의 수가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다.
- 곧 의사선생님 회진 시간이니까, 가만히 대기해주세요. 몸도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니까.
간호사님이 나갔다. 겨를이 없어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곧 들어오실 의사선생님께 물어보면 되겠지. 의사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시간이 좀 있는 것 같으니까, 병실을 둘러나 보자. 4인실인데 병실엔 나와 주무시고 계신 할머니 한분밖에 없다. 간이 냉장고에는 온갖 건강음료수들이 가득하고, 침대 옆 작은 수납공간엔 편지들이 수북하다. 아마, 나일지도 모르는 이 소녀는 아마 친구들에게 굉장한 사랑을 받고 있나 보다.
서윤이에 대해 알게 될수록, 난 내 자신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난 서윤이가 맞고, 지금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기억상실증 때문인 걸까, 아니면 자고 일어났더니 누군가와 몸이 바뀌어있었다는 어떤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와 같은 스토리인걸까, 뭐가 진실이던 간에,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사실 이 모든건 꿈이 아닐까? 꿈에서 깨면 현실로 돌아오지 않을까? 뺨이라도 때려보자.
짝 소리가 나도록 몇 번이나 때려봤지만, 아프기만 했다. 이건 현실이다.
- 어때요 서윤 학생, 몸은 좀 괜찮아요?
남이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수도 있는 짓을 하던 도중, 의사선생님께서 찾아오셨다. 혹시 보셨을까? 보셨다면 며칠 더 입원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 3일 동안이나 누워있던 것 치고는 몸상태가 꽤 괜찮아요.
3일 동안이나? 대체 뭘 하고있었길래
- 독서실에서 쓰러져있는걸 알바생이 발견해서 신고했어요. 공부를 하는 건 좋은데, 좀 쉬엄쉬엄 하세요.
- 아, 네. 저, 그러면 퇴원은 혹시 언제 가능할까요?
병원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진전되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해서도, 이 소녀의 일상생활을 위해서도.
- 퇴원은, 음, 전 며칠 더 있다 가는걸 추천하는데, 원한다면 지금 퇴원해도 좋아요. 아 참, 그리고 부모님께 연락 꼭 드리세요. 먼 길 올라오신 것 같던데, 바쁘신지 깨어나는 것은 못보고 먼저 가셨어요.
부모님이라, 이 아이의 부모님, 그분들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 드려야 할까, 다 사실대로 말하면 곧이곧대로 믿어주실까? 허무맹랑한 소리로 취급하고 무시해버리진 않으실까.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의사 선생님이 나가기 전, 서윤이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는 이 소녀가 쓰려져 있었다는 도서실의 위치에 대해 물었다. 약간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시긴 하지만, 별 신경은 쓰지 않는다.
일단 전화는 드려야겠지, 그래야 나도 정보를 좀 얻고, 부모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면을 키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십 건의 부재중 전화이다. 일상생활로 접어들게 되면, 아마 꽤 피곤해질 것만 같다. 서윤이의 인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잠금을 풀려고 했는데, 패턴이 기억나질 않는다. 일단 임시방편으로 편지를 남겨둔 뒤 병실을 나왔다.
낮선 거리, 낮선 도시. 익숙한 것 하나 없는 도시의 풍경에 한숨부터 나온다. 화창한 햇살 아래 사람들은 추억을 써내려가지만, 난 내 역사의 머리말조차도 찾아낼 수 없다. 약간은 울적한 마음을 품고, 서윤이가 쓰려져 있었다는 독서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제2화] 작가 김승빈(3학년 문학예술반)
[제2화] 과도기적 과도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어떤 소녀로 몸이 바뀌고 기억을 잃었단 게 결국 '나'의 운명이라면 더 이상 운명따위는 믿지 않도록 하겠다. 길을 물어물어 독서실을 찾을 수 있었다.
"학생! 몸은 좀 괜찮아요? 쓰러져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네?"
아 맞다. 나 한서윤이지.
"네 괜찮아요.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퇴원한 건가? 당분간 좀 쉬어요. 아직 힘들텐데."
"그러도록 할게요.“
이런 친절은 오랜만이다. 꽤나 괜찮은 낯설음이다. 자리를 찾고 앉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써내려 가는 듯한 연필 소리.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 소리. 넋 놓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배경이다. 병원에서 깨어나 거울을 보았을 때 이미 내가 아니었고 지금 난 어딘지도 모를 독서실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모든 걸 부정하고 다시 잠에 들고 싶다. 잊어버린 시절을 찾기에는 잃어버린 조각들이 너무나도 많은 지금이다. 천천히 다시 모으는 수밖에. 사물함을 열자 지갑과 몇 권의 책이 보였다. 지갑에 먼저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서윤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XX고등학교, 한서윤, 9월 21일 출생. 맞다. 재빨리 날짜를 확인했다. 잠금 화면이 풀리지 않아도 보이는 날짜. 오늘은 5월 31일이다. 가정의 달 마지막. 한 가정의 딸이 돼버린 나였다. 서윤이가 신경 쓰인다. 시커먼 남자로 변해 어딘지도 모를 낯선 곳에서 겁에 질려 있을 아이가 이제서야 걱정이 된다.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몇 사람의 기침소리와 함께. 내가 있는 곳은 독서실. 노랫소리는 가방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빨리 독서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으려 했지만 이내 끊어지고 말았다. 이게 무슨 장난인가! 다시 세상을 원망하려 할 때, 벨소리가 울렸다. '한울'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친구인가?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는 섣불리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다이얼을 당겼다.
"한서윤! 너 어디야? 퇴원했다 전화도 없고 집에도 없고 어떻게 된 거냐고."
걱정 반 짜증 반이 섞인 목소리였다. 퇴원했다 전화도 하고 싶었고 제발 집에 가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절실히.
"어어……. 미안해. 나 독서실 좀 들렸어."
"너도 참 극성이다. 퇴원하자마자 독서실이라니. 역시 한서윤. 지금 카페로 갈 테니까 다 설명할 준비해."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긴 무슨. 알겠다는 대답은 왜 한 건데? 미치겠다. 한울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면 다 털어 놓을까?
거리로 나와 어딘지도 모를 카페로 향했다. 내 처지를 모르고 쌩쌩 지나가는 차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기분. 서윤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사실 나를 골탕 먹이려는 귀신 괴물. 뭐 그런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말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 나와 서윤이에게는. 건너편에서 아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더 선명히 들려온다.
"한서윤!"
"어, 한울아."
차마 한울이라는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한울이와 두려움이 내게 뛰어온다.
"서윤 너 아직도 얼굴 되게 안 좋아 보인다? 다시 병원으로 가자 이리 와."
어떻게 나온 병원인데 다시 갈 수는 없지.
"됐거든 빨리 카페나 가자."
카페에 도착해 한울이는 고민 없이 녹차 라떼와 스무디를 주문했다.
서윤이와 한울이가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니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괜히 한번 더 물었다.
"너 왜 말도 없이 주문하는 거야."
"녹차 아니면 입에도 안 대면서. 새삼스럽게 왜 이런데?"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한적한 카페에서는 요즘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조명은 고즈넉하게 나와 한울이를 비췄다. 음료가 나온 후 한울이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 갔다. 학교에서 있던 자잘한 일, 요즘 관심 있다는 이성, 어제 방영한 드라마까지. 물론 나는 전부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이런저런 대답과 제스처로 한울이의 의심을 사지는 않았다.
다만 몇 가지는 알았다. 서윤이와 한울이는 제일 가까운 친구. 한울이는 정말 괜찮은 아이. 서윤이 너는 소소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라는 걸. 이유 모를 안도감과 나른함이 돌았다.
핸드폰 패턴!
"한울. 너 내 핸드폰 패턴 아냐? 모르지?"
한울이는 재빨리 핸드폰을 낚아채 나를 괴롭혔던 잠금 화면을 단 번에 풀어버렸다.
그러고서는 너무나도 초연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한서윤 오늘 좀 이상한데? 왜 이러는 거야. 아아 안 되겠어. 얼른 집에 가자 너 좀 쉬어야겠어."
한울이만 아는 서윤이 집으로 향하며 나는 서윤이의 가방에 든 열쇠가 제발 집 열쇠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직까지도 낯설지만 전보다는 많은 것들이 보이는 동네. 옆에 있는 한울이 덕분일까. 평소처럼 하늘을 밝은 달을 내놓았고 나와 서윤이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내게 부는 바람이 너에게도 스쳐갈지.
너도 저 달을 보고 있을지. 아직 많이 어린 서윤이가 걱정된다.
서윤이의 집까지 금방 올 수 있었다.
"우리집 몇 호인지는 모르지?"
"303호. 멍청아. 얼른 들어가서 자라."
냉철한 한울이었다.
남은 건 이 정체 모를 열쇠가 저 문을 열 수 있는 지였다. 설마 이게 집 열쇠가 아니면 뭐겠어. 열쇠를 들이 밀었다! 이내 문은 열리고 전등 스위치를 찾아 더듬더듬 손을 움직였다. 불이 탁 켜지고. 서윤이의 집은 이렇구나. 일반적인 가정집이었다.
그런데 서윤이의 부모님은? 간호사의 말대로라면 급하게 일이 있어 깨어나는 것도 보지 못하신 채 떠났다고 하였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낯선 이의 부모를 걱정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관 바로 옆 작은 방. 아마 서윤이의 방 같았다.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여자방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책상과 여기저기 꽂혀있는 책들. 서윤이는 책을 좋아한다고 단정 지을 수 있었다. 바로 옆에 보이는 침대에 몸을 던졌다.
서윤이. 나와 몸이 바뀐 게 맞겠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연락이 닿으면 얼마나 좋을까. 단 하나. 일상다운 일상을 선물해준 너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기적일지 모르지만 낯선 내일이 마냥 두렵기만 하지는 않다. 모든 노력을 하기에는 지금 밤하늘이 너무 넓고 깊어서 오늘만큼은 요행을 바라본다. 네가 부디 무사하기를. 내일도 별 탈 없이 지나가기를.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제3화] 작가 장현석(2학년 3반)
[제3화] 실타래
곰, 곰, 곰 나는 곰이라네.
스쳐 지나간 바람에 깜빡이는 불안함.
눈에 보는 풍경과, 귀가 듣는 노래가 떨려와도 걸어가는 나는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걸어 나가는 나는
곰, 곰, 곰 나는 곰이라네
풍경을 스치고 노래를 뛰어넘어 항상 가는 공원에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에게 다가가면
오늘도 나는 곰이라네.
-----------------------------------------------------------------------------
“안녕 곰아”
오늘도 내가 간 곳에는 하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늙어버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놀이터가 있는 곳과 그녀가 앉은 벤치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는데도, 다른 공간 두 개가 이어 붙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쪽은 시끄럽고, 한쪽은 그저 평온했습니다.
“이리 온……”
손짓에 따라 사뿐사뿐. 항상 하던 대로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땅바닥에 앉혔습니다.
“대화해보고 싶던 아이가 퇴원을 했어…”
꼬리를 살랑이며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나에게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후,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어린아이가 들어 왔길래 간호사한테 왜냐고 물었지, 공부하다 쓰러진 것 때문에 입원을 했다 더라고. 한숨 푹 자면 금방 일어날 줄 알았는데…3일을 내리 자더래?”
아무래도 그녀가 하는 이야기는,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소리 같았습니다.
“참 좋은 아이였는지, 그 아이의 친구들이 그렇게나 많이……”
야옹
“으응? 왜 그러니? 곰아?”
내가 보던 풍경 안에 검은색이 담겼습니다. 길쭉한 검은색 막대기 두 개를 따라 눈을 위로 향해보니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인 것 같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애고… 잘생긴 총각이네, 안녕하세요?”
검은색인 그는 자세를 낮추고 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신기한 것을 보는 눈이 저를 향해 있었습니다.
“고양이 색이 굉장히 특이하네요? 굉장히 짙은 갈색이네요. 할머니께서 기르시는 고양이에요?”
“아뇨… 그냥 길고양이입니다. 보시다시피 하루의 대부분을 병원에 누워있는 신세인데, 가끔 나오면 이 아이가 있어요. 그치요, 곰아?”
곰이라는 단어를 듣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피하기 위해, 허리를 쭉 펴고 그대로 박차듯 폴짝 뛰었습니다.
야옹
“이런,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아니에요, 아니에요. 항상 저렇게 갑작스레 가 버리니까. 괜찮아요, 괜찮아. 대신 좀 앉아주겠어요? 이름이 뭐예요?"
“아, 네. 저는 박…”
그와 그녀는 나이 차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내가 있을 필요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평소대로 호흡하는 이 동네를 걸어갑니다. 산책도, 모험도 아닙니다. 이 동네를 걸어 다니는 것에 이유는 없습니다. 풍경을 보고, 노래를 듣고, ‘야옹’하고.
누군가 나를 향해 돌을 던지면 비스듬히 피해 걸어가고, 사람들이 많으면 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 추울 때 보다 춥지 않고, 더울 때 보다 덥지 않은 요즘입니다. 계속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시간을 얼마나 걸었을까, 사람이 보였습니다. 길거리에 사람은 얼마든지 널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금방 나오는 듯한 몸동작. 어떻게든 대충 차려입은 것만 같은 옷에 두리번거리는 머리. 아니 그보다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그녀였습니다.
야옹
그녀가 이쪽을 보았습니다.
야옹
그건 당신의 눈동자가 아니잖아
“고양이……”
그녀가 말을 했습니다. 그것 역시 그녀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눈앞에 사람은 분명 나를 보고 있고,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나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보는 게 아니고, 나를 향해 말한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느낄 수 있습니다.
“서윤아!”
또 다른 그녀가 멀리서 달려왔습니다.
“우와, 고양이.”
방금 막 온 그녀가 나를 보았습니다. 나를 향해 말했습니다. 나는 느낄 수 있습니다.
“안녕, 어… 한울?”
“얘 또 왜 이래, 아직 정신없니? 그냥 집에 있는 게 낫지 않겠어?”
그녀들이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립되지 않는 대화가 데굴데굴 굴러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말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야옹
“으아, 고양이. 아무튼 빨리 가자”
“고양이 무서워해?”
그녀들은 걸어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던 나의 걸음에 호기심이 깃들었습니다.
그녀가 궁금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털이 곤두세워지는 느낌이 드는 그녀였지만, 궁금했습니다.
야옹
당신은 누구인가요?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제4화] 작가 한산하(1학년 1반)
[제4화] 아무개 박 씨 이야기
소녀가 눈을 떴다. 초점이 아직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내가 뭐라고 말을 걸려고 했지만,
"학생, 깨어났네요?“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마침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가 나를 향하던 소녀의 정신을 금방 빼앗었다. 나는 결국 소녀에게 말을 걸지 못하였다. 나는 그냥 잠시 밖에서 간호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병원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누운 사람. 누운 사람을 지키는 사람. 누운 사람을 일으켜서 보내려는 사람. 영영 누워버린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느릿하게 운신하는 환자들과 바쁘게 지나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복도 한 켠 의자에 기댄 나를 스쳐 지나쳤다. 그들이 흘린 알콜 냄새와 마취액의 잔향이 코에 스미며 몽롱해졌다.
"구백팔십육번 손님!"
접수대에서 누군가를 부른다. 인간의 몸에 깃드는 것은 역시 부담이 된다. 피로가 갑자기 안구로 몰렸다. 잠시만 눈을 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딩동!"
종소리에 눈이 떠진다. '001'이라는 숫자가 접수대 한쪽의 번호판에 박혀 있다. 아침이었다. 긴 잠이었다. 의자에 반쯤 누운 자세로 나는 용케 다음날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아차!'하고 다시 병실로 들어가 보았지만 그녀의 공간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퇴원을 이미 한 것 같았다. 건물을 나왔다. 병원을 나와 걷다가 고양이를 곰이라 부르며 대화를 나누는 묘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말을 나눠보니 할머니도 소녀에게 말을 걸어 보려고 했지만 너무 일찍 퇴원해 버렸다고 했다. 할머니 옆에 있던 고양이는 날 보더니 도망을 갔다. 역시 영물이라 그런지 내 정체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소녀의 집으로 향한다. 소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소녀가 날 기억 하고 알아볼까. 날 보고 놀라지는 않을까? 날 기억하기는 할까?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걷는다. 그리고 어느덧 소녀의 집 근처까지 이르렀다. 그 때였다. 저기 멀리서 소녀가 친구로 보이는 듯한 여학생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 지 당황하다가 결국 소녀에게 말을 걸지 못하고 그냥 어색하게 지나치고 말았다. 그런데 뒤에 있던 고양이가 나를 보고 사납게 '야옹'하고 소리를 내고서는 소녀를 뒤따라갔다. 순간 나는 걷다가 뒤를 돌아 소녀를 보았고 그 순간 소녀도 나를 기억하는지 뒤를 돌아봐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소녀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소녀가 내 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박…”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박…”
소녀는 내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지만 나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명훈이요. 박명훈”
나는 그냥 내 이름을 대신 말해 주었다. 소녀는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소녀가 나를 기억해 내려는 찰나에 소녀 옆의 친구가 소녀의 정신을 뺏어갔다.
“야, 뭐 해. 빨리 들어가자.”
“어? 어.”
“너는 나랑 지금 할 게 너무 많아."
소녀와 그의 친구는 소녀의 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소녀의 집을 떠났다.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제5화] 작가 송윤성(2학년 4반)
[제5화] 신
너는 나를 보지 못한다.
나는 여명과 함께 떠날 줄 알고, 노을과 함께 돌아올 줄 안다.
난 누구도 될 수 있고, 동시에 누구도 될 수 없다.
*
그날 새벽 너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일렬로 줄을 선 가로등의 빛이 어둑한 거리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른 봄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네 귓불을 스쳐 지나갔다. 뒤에서 누군가가 너를 불렀다. 하지만 너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달도 잠시 자리를 비운 그날 새벽, 유난히도 고요했던 거리엔 네 이름만이 맴돌았다.
“저기요!”
뒤에서 누군가가 너를 불렀다.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다. 하지만, 이어폰 볼륨을 더 크게 키우면서까지 너는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방에서 몰아쳐 오는 너의 이름이 음악 소리를 방해했다. 소리를 더 키워보아도 너의 이름은 너의 입으로, 너의 콧구멍으로, 심지어 너의 모공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네 안에 쌓였다.
쌓여가는 이름의 무게에 지친 너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서야 넌 뒤를 돌아봤다.
그 때 난 네 귓불을 스치던 바람이었고, 한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이었다.
여자가 너에게 다가왔다. 유독 어두운 그녀의 그림자가 점점 너를 감싸 안았다, 넌 두려움 때문인지, 다른 불길한 예감 때문인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사람은 가쁜 호흡을 삼키며 네게 말을 건넸다.
“도망치지 마, 어차피 너는 도망 못가.”
그녀의 얼굴은 차오르는 숨에 누구보다 붉게 상기되어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한기가 돌았다.
“넌 이해 못 할 거 알아, 지금 상황. 웬 모르는 여자가 널 쫓고 있고,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아마 무섭고 당황도 했을 거야. 그래도 네가 날 알아보게 된다면, 조금의 죄책감이라도 있다면, 충분히 날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왜냐면 그때 난 더 무서웠었거든.”
넌 앞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선명했던 그녀의 모습이 순간 크게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난 아직도 그날을 기억해. 하굣길, 난 개들한테 불려갔었고, 너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어. 네가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그리고 나선 나에게 뻗어진 수많은 추잡한 손길들, 넌 모두 봤음에도 못 본 척했었잖아.”
부합되는 사람은, 네 기억 속에는 한명 밖에 없었다. 하지만 넌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 사람은 이미 죽었기에.
“얼굴이 많이 달라졌지? 사실 이건 내 몸이 아니야, 잠깐 빌려온 것뿐. 진짜 내 몸은 네가 아는 것처럼 이미 재가 되어버렸겠지.”
너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그럼, 몸 잠깐만 빌릴게. 네 친구한테 전할 말이 있어. 별로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딱 일주일만, 일주일만 빌려 갈게.”
말을 마치고, 그녀는 너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너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너는 말을 듣지 않는 사지를 힘겹게 일으켜 그녀를 밀쳐내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가득 찬 너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갔다. 아무리 밀어 쫓아내 보려 해도, 오히려 갑갑해지는 건 너의 쪽이었다. 네 게 네 것이 아니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고, 본래 있던 너의 것과 어지럽게 섞였다. 그날의 하굣길, 너는 방관하는 쪽이었나, 당하는 쪽이었나. 모든 게 어지러워졌다. 넌 점차 의식이 깊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무거운 과거의 무게에 눌린 채로. 그날의 기억 속, 그녀가 수십 번 외쳐댔던 너의 이름,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가야만 했던 과거, 그리고 다시 반복된 현재에서 그녀는 너의 이름을 또다시 반복해 외쳤다. 그날과 오늘 그녀가 수십 번 외쳐 부른 너의 이름들의 질량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수없는 외면 끝에 결국 마주한 그녀의 이름을 마침내 확신할 수 있었다
넌 도피처를 찾는다. 네 이름의 무게를 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녀의 정신은 점차 팽창해오고, 넌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이 넌 괴로웠다.
미안, 미안해. 너무 늦어서 미안해. 용기가 없었어, 또 뒷일이 두려웠어. 그래서 널 지나칠 수밖에 없었어.
넌 열리지 않는 입으로 끝없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던 너는, 스스로 네 자신을 찢고 그곳을 탈출해 나왔다. 너의 존재는 바닥에 차갑게 나뒹굴었고, 점차 흐려져만 갔다.
*
난 너의 혼백을 주웠다. 영혼의 손상이 심했다. 반짝이던 것은 점점 빛을 잃어갔고, 얕은 숨결에도 넌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난 너를 살려야 했다. 부조리한 존재가 세상에 간섭하는 것을 그저 두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회복한다 해도, 네 기억이 온전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현현했다. 널 온전히 되돌리기 위한 열쇠가 되기 위해. 난 마지막으로 점차 꺼져가는 너의 혼 앞에서 너에게 말을 건넸다.
“박명훈, 내 이름이야. 난 항상 네 곁에 있을 테니까, 정신이 들면 날 찾아와. 우린 대화가 필요해.”
나는 손에서 몇 남지 않은 숨을 가쁘게 내쉬고 있는 듯한 너의 희미한 영혼의 심박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부조리한 영혼이 네 몸으로 옮아가며 버린 여학생의 몸에 급한 대로 너의 영혼을 집어넣었다. 너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가슴에 달린 교복 명찰을 보니 '서윤'일 것임이 분명한 여학생의 영혼은 아직 몸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자의식이 받은 충격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마 일주일이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전에 너는 네 몸을 훔쳐 간 그녀를 찾아 너의 몸을 돌려받아야 한다.
난 쓰러진 여학생의 몸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선 흔적을 쫓아 몸이 원래 있었던 어느 독서실에 조용히 눕혀 두었다.
*
난 정해진 형태가 없다.
난 거울에 비치지 않고, 태양도 감히 나를 내려다볼 수 없다.
끝까지 넌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난 항상 네 곁에 있다.
난 어디에나 있다.
나는,
*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제6화] 작가 장현석(2학년 3반)
[제6화] 사람이 없는 카페, 시간이 없는 새벽
사람이 없는 카페입니다. 한적하고 조용한 오전, 나른하고 고요한 오후. 아니, 지금이 오전과 오후인가요? 이 카페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야옹
왼쪽의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냅니다. 매력적인 갈색에 윤기가 흐릅니다.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도도하게 앉아 ’야옹‘ 합니다. 왜 야옹일까요, 왜 야옹 한 걸까요.
야아옹
고양이가 울음소리를 냅니다. 적의가 담겨 있습니다. 아무래도 절 향한 울음소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고양이의 시선은 이쪽을 바라봅니다. 그 시선을 받을 사람은 속에 들어갔습니다.
야옹
아, 적의가 아니라고 하나 봅니다. 불신, 경계, 호기심이라 하네요. …거의 적의에 가깝지 않나요?
“둘이 닮았구나”
눈앞의 검은 아저씨가 말을 합니다. 꽤나 잘생겼어요. 여자에게 인기 많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는 낮게 깔리며 포근하고, 얼굴은 부담 없는 얼굴입니다.
“저랑 고양이요?”
그에게 답하며 오른쪽을 봅니다. 큰 유리창이 있습니다. 유리창 너머 새벽이 보입니다. 네, 새벽이. 어라, 저 방금까지 오전과 오후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요? 그럼 오전인 건가?
“아니면 ‘저희들’이요?”
“너랑 고양이. 일단 말해두는데, 이곳에서 다른 개념에 신경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가 여기서 인식해야 할 것은, 네 눈앞의 나. 옆의 고양이, 그리고 너희들. 셋이야”
“정확히는 넷이네요”
아무래도 시간 같은 걸 신경 쓰지 말라 하는 것 같습니다. 굳이 신경 써야 될 것을 정해준 건 나름의 배려일까요.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듯, 모르는 듯, 그래도 이러한 배려심은 해가 될 거 없으니 얌전히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야옹
“아, 미안하구나”
뭐가 말인가요? 하고 물어보기 전에 탁자 위에 잔 네 개가 놓여 있습니다. 검은 남자의 잔에는 커피, 고양이 앞에는 우유, 제 앞에는 콜라와 딸기 우유로 두 잔. 저는 딸기우유를 좋아합니다. 저는 딸기우유를 마시며 말했습니다.
“고양이한테 그냥 우유 주면 안 되는데요”
“내가 주는 건 괜찮단다”
뭐, 그가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봅니다. 고양이도 찻잔에 담긴 우유를 잘 마시고 있습니다. 찻잔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고양이, 특별하네요. 이 삼자대면의…
야옹
아니…사자대면…아무튼, 이 사람 없는 카페에 고양이 하나, 아무튼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하는 검은 사람 하나. 그리고 한 몸에 두 영혼이 있는 사람 하나.
네, 사람 없는 카페 맞네요. 나는 사람이지만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양이가 다시 웁니다. 야옹.
----------------------------------------------------------------------------------------------------------------
곰, 곰, 곰. 나는 곰입니다. 내 정면으로부터 양쪽에,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와, 그녀…그? 아무튼 둘이 있습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고, 두 사람도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서”
야옹
그녀의 입에서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말이 나옵니다. 나는 그 즉시 울음소리를 냅니다. 가능한 불쾌하게, 듣는 ’그‘또한 불쾌하게. 아무래도, 잘 통했나 봅니다.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내가 무슨 말만 하려 하면 그렇게 우는 거 그만하면 안 되겠니?”
그녀가 나를 향해 말합니다. 제발 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왼쪽의 검은 사람이 웃고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아까 전까진 진짜 그녀가 그렇게나 웃었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끝내는 ’ㅋ‘로만 웃을 정도로, 그녀는 방금까지 계속해 웃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 웃다가. 계속 웃다가.
“이해했어요.”
이해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다 듣고서, 그녀는 담담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검은 사람 또한 놀란 기색이었습니다. 눈은 동그래지고, 입은 살짝 열렸으며, 손가락은 탁자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친구들이 그렇게나 많이…….’
하얀 그녀가 말했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확실히, 인기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기 있을 것 같던 그녀는 지금 내 눈앞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습니다. 인기 있을 그녀가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당신은 누구죠?”
“글쎄, 너는 네가 정확히 누군지 아니?”
잠시, 라고 하기도 짧은 순간 동안 대화가 이루어진 후, 또다시 그녀의 입이 막혔습니다. 좋아요, 그대로 막혀있으면 좋겠어요.
“본론만 말할게요. 저는 어쩌면 좋죠.”
“본래, 서윤이가 이렇게 빨리 깨어나면 안 됐어.”
검은 그가 말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너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서윤이로 서윤이의 세상을 휘젓고 다녔지. 너무나 강한 바람을 만나 갈피를 못 찾는 배처럼. 이번 경우에는 한울이가 그 바람이 되겠구나.”
그녀가 딸기 우유를 마시다 ‘한울이’라고 말하고는 또다시 배를 잡고 웃어댔습니다.
“서윤이의 의식에 너무나 가까운 장소를 다녔어. 어떻게 보면 한울이는 갈피를 못 잡고 둥둥 떠다니는 너를 평소에 지나던 항로로 이끈 거지. 그건 너의 이득이었을까, 서윤이의 이득이었을까.”
그녀는 콜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말이 어렵네요.”
“너는 나를 마주친 후, 집에 들어갔고. 너는 다시 쓰러졌지. 그 이유는?”
“제가 깨어나서요!”
활기차게 대답 후, 조금 남은 딸기 우유를 모두 마셔버립니다. 두 잔 중 하나가 완전히 비워졌습니다.
“그래, 서윤. 넌 네가 익숙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조금씩 의식이 깨어났고. 아마 그 과정에서 너 또한 사고가 서윤이다워졌을 거야. 그렇지?”
“서윤이다워졌다 함은요?”
콜라를 마시며 그녀가 말했습니다.
“여성복 코너에서 발길이 멈춰 옷을 입어 몰려 했다든지.”
“죄송합니다.”
그녀가 콜라가 든 잔을 내려놨습니다. 그러고는 또 ‘푸하하’하고 웃었습니다. 나는 그저, 꼬리를 살랑이며. 눈앞의 사람이 발광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내 눈에는 그렇게밖에 안 보였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딸기 우유가 들었던 잔을 들었다 ‘앗’ 하는 순간 딸기 우유가 채워졌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하고 자연스럽게 딸기 우유를 마십니다.
“솔직히, 처음엔 서윤이 너를 조금 뭉그러뜨리려 했어.”
“네?”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저 또한 따라 갸웃해봅니다.
“네 영혼을 조금은 죽여 놓으려 했다고.”
분위기가 변합니다. 우리 넷밖에 없던 이 공간에. 시간조차 없는 이 공간에. 공기 알갱이 하나하나가 일그러지듯이 온몸을 타고 기어오릅니다. 내 털은 그 알갱이들을 꿰어 죽이기 위해서인지, 모든 힘을 다해 뻣뻣하게 세워졌습니다. 입을 벌리고, 털 못지않게 날카롭게 된 발톱을 내보이며 일명 ‘하악질’을 하려던 순간. 그녀의 눈을 봅니다. 뻣뻣하다기 보다, 올곧습니다. 미세한 공기 알갱이를 꿰뚫기 위해 뻣뻣이 세워진 내 털 보다, 더욱 날카롭지만 그 끝만은 뭉툭합니다. 그녀는 아무런 흔들림 없이, 그저 검은 사람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다시 변합니다. 공기의 알갱이들은 다시 제 상태를 찾고, 기어오르는 것을 멈춥니다. 유유히 떠다니며, 제 할 일을 합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냥, 관뒀어.”
“변덕으로?”
그녀가 묻습니다.
“변덕으로.”
검은 사람이 답합니다.
“우와!”
짧은 감탄 후, 그녀는 딸기 우유를 마십니다.
“그래도 그냥 그대로 두면, 굉장히 큰 혼란이 일어날 것 같았어. 아무래도, 그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라서 말이야. 특히나 너 같은 애하고 몸의 주도권을 두고 싸우는 건 성립조차 안 돼. 그래서 너희를 이곳에 부른 거야”
“고양이는 왜 데려왔어요?”
“옆에 있길래. 그리고 데려오며 말을 걸어 보았는데 도통 소통이 되지 않아서 사고 수준도 조금 높여 놓았어. 가만히 그러고 있으면 심심할까 봐서 말야."
그녀가 ‘아하하’웃습니다. 저 검은 사람은 나보다 변덕스럽나 봅니다. 지금 당장 뛰어올라 할퀴고 싶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는 재밌다며 자기 몸을 그에게 더 빌려줬을지도 모르겠네”
검은 사람이 아쉬워하며 커피를 마십니다. 그녀는 ‘글쎄요.’라고 말하며 딸기 우유가 담긴 찻잔을 만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눈은 일직선으로 검은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동거는 꽤나 드문 상황이라 호기심이 정말 커. 지금 네 의식 상태는 어떻지? 한 육체에 두 혼이 있는 건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상황이야.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라는 얘기지. 하지만 지금 너희들은 한 육체에 오롯이 존재해. 어떻게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거니?”
그녀가 여전히 찻잔을 만지며 말합니다.
“한 쪽의 의식이 깨어 있을 때, 나머지 한쪽은 억지로 졸고 있어요”
“졸고 있다고?”
“네, 예를 들어, 제가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그’ 또한 인식 가능해요. 대화도 들을 수 있고요. 다만,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는 없을 거예요. 졸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나도 졸 것 같습니다.
“너와 내가 말하는 상황도 알고, 인식도 하지만. 그에 대한 사고는 안 돌아간다 이 말이니?”
“네.”
“…너에 대해 알기 위해서, 자고 있는 너를 항상 봐왔던 한 여자와 공원에서 대화를 했었는데”
그녀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친구들이 많더구나.”
“칭찬 감사해요.”
검은 사람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나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굉장히 재미있나 봅니다. 나는 모르겠지만.
“그래, 좋아. 그래.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을 오래 두고 볼 수는 없어. 어서 빨리, 다들 제자리로 갔으면 하거든.”
그가 유리창을 똑똑. 두드립니다.
그리고 새벽을 보며, 그에게 고합니다.
“이제 잠잘 시간은 끝이야. 일어나, 태윤아”
그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은 유리창 밖의 새벽을 보는 듯합니다. 나도 바깥을 바라봅니다. 그 너머를, 새벽 너머를 바라봅니다. 그러자 한 사람의 형상이 보입니다. 새벽 사이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새벽을 걷어내며 그녀의 눈동자 속으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유리창 너머, 이쪽을 바라보며 계속해 걸어옵니다.
야옹
아, 두 번째입니다.
유리창 너머, 새벽 너머로 보이는 한 남자.
흘낏 옆을 돌아본 그녀 안의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유리창 너머 안쪽을, 내 옆의 그녀를 바라보는 당신은
야옹
당신은 누구인가요
----------------------------------------------------------------------------------------------------------------
떨리는 다리, 가빠지는 호흡. 흔들리는 눈동자. 탁자 위, 찻잔에 담긴 콜라가 흔들리는 착각. 마치, 위태로운 배를 집어삼키기 위해 포효하는 파도처럼 콜라가 흘러넘치는 착각.
나는 일어납니다. 의자가 위로 뒤로 넘어가 우당탕 쓰러집니다. 힘 조절을 잘못했나 봅니다. 유리창 너머 새벽이 날 익사시키려 합니다. 새벽이 다가와 나는 잠길 겁니다. 어라, 누가? 내가? 지금 생각하는 건 누구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간 서윤이를 삼킬 거야, 진정해.”
검은 남자가 말합니다.
“너한테 삼켜질만한 애도 아니긴 하지만”
아니, 아니. 아, 아?
유리창 너머로, 새벽이 다가왔습니다. 새벽이 다가왔습니다. 저번에도 그랬습니다. 저번에도, 새벽은 날 집어삼켰습니다.
“대답해. 이태윤, 유리창 너머, 네 눈앞에 있는 건 누구지?”
누구일까요. 누구일까요. 누구일까요. 재밌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재밌습니다. 하지만 무섭습니다. 누구의 이성인지 감정인지 헷갈리지만, 지금 나는 재밌고. 무섭습니다. 그래도 압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압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안녕?”
새벽이 말을 걸어옵니다. 저도, 대답해야 합니다. 검은 남자의 말 먼저 대답해야 할까요. 새벽의 말에 먼저 대답해야 할까요.
“대답해, 이태윤. 네 눈앞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좋아요, 검은 남자의 말 먼저 대답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나는 새벽을 눈앞에 두고 말합니다.
“나…….”
야옹, 고양이가 웁니다.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제7화] 작가 한산하(1학년 1반)
[제7화] 양수민
터벅 터벅.
태윤은 교실 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문을 확 열고 들어간다.
“너네, 화장실로 와봐!”
태윤이 구석에 몰려있던 몇몇 친구들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갑작스런 말에 당황한 그 무리의 남자들은 화장실로 따라 간다.
“끼이익, 탁!”
그들이 모두 화장실로 들어오자마자 태윤이 문을 잠근다.
“뭐야? 왜? 뭔 일이야?”
남자애 무리들은 태윤에게 무슨 일이냐고 험하게 묻는다.
“흐읍…….”
그러나 태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바닥만 쳐다보며 심호흡을 길게 했다. 이윽고 고개 숙인 태윤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영문을 모르고 불려온 남자애들 중 하나는 화가 나서 태윤을 세면대 쪽으로 밀쳤다.
“빨리, 매점가게 빨리 말해!”
“임마, 우리가 한가한 줄 아냐?”
그래도 태윤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 애들은 피식 거리며 화장실 칸에 아무도 없는지 살피더니 저희들끼리 잡담을 나눈다.
“야야, 저번에 걔 예쁘지 않냐?”
“시발, 누구?”
“이번에 뒈진 애 있잖아?”
“시발, 날마다 뒈지는 애들 천진데 누구?”
“크윽, 왜 우리가 며칠 전에 골목에서 그랬잖아? 벌써 잊어버렸냐? 큭큭”
“아! 걔, 시발 개예뻤지!”
“야야, 여기 폰에 쟤랑 그 때 하는 영상 있어. 너희들도 한 번 봐봐. 큭큭”
“저 놈, 완전 짐승이었지. 흐흐”
뒤에 몇 몇 남자들이 핸드폰을 보고 또 태윤을 밀친 남자애를 가리키며 키득 키득 거렸다. 뒤에 있던 몇몇 남자애들이 몰려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태윤을 밀친 남자애를 손가락질하며 키득키득 거렸다. 그리고 태윤을 밀치며 앞에 서 있던 남자애는 “그 ‘짐승’이 누구냐? 흐흐”라고 하며 어깨를 으쓱이며 뒤를 돌아본다. 그 순간 태윤이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두 눈이 붉게 변한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들린 태윤의 오른손이 외투의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주변 사람이 그 게 무엇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태윤의 손은 바로 앞 남자애의 어깨에 그것을 꽂아 넣어 버렸다. 가위였다. 날카로운.
남자아이가 어깨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지만 뒤의 무리들은 핸드폰을 보느라 쳐다보지도 않는다. 크게 틀어 놓은 휴대폰의 스피커에서는 남자 아이들의 환호 소리와 여자 아이의 비명 소리가 찢어지듯 흘러나온다. 게다가 뒤에서 들리는 작게 들리는 비명 소리는 쓸 데 없이 무리를 불러내어 얻어맞은 태윤이의 비명이려니 한 것이다. 한편 비틀거리는 남자애를 소변기에 밀어 버리고 태윤은 둥그렇게 모여 정신이 팔린 무리에게 다가간다.
남자애들을 하나씩 뒤로 낚아챈 태윤은 가위로 몸의 곳곳을 마름질한다. 붉은 분수가 여기저기서 솟아오르고 고통의 비명이 흘러나온다. 맨 처음 가위에 찔린 애가 문에 다가가 열려고 했으나 손잡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애는 안간힘을 쓰다가 다리를 찔러온 가위에 주저앉고 만다.
“살려줘……. 제발, 제발 살려주라. 뭐든 잘못했어!”
남자애가 울면서 말한다.
“내가 살려 달라할 땐 안 살려 주고서. 왜 넌 그러고도 살고 싶니?”
태윤이 말했다.
‘어?’
남자애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순간 태윤의 가위는 남자애의 샅을 갈라 버린다. 화장실 안에 가득 찬 비명소리도 잠시, 한동안 화장실에는 가위 소리만 들린다. 태윤이는 빠르게 숨을 내쉰다. 조금 진정이 되자 바닥에 누운 애들을 화장실 한 칸에 우겨 넣고 대걸레로 바닥을 대충 훔쳤다. 그리고선 문을 열고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에는 한 남자 선생님이 정장을 차려 입은 한 여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
태윤이 말했다.
“어? 잠시만. 이야기 중이잖아. 근데 뭐야? 너 다쳤어? 몸에 피가 묻었잖아?”
선생님이 말했다.
“아무 것도 아녜요.”
얼굴에 묻은 피를 와이셔츠 소매로 닦으며 태윤이 말한다.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앞의 여자와 대화를 이어간다.
“아니, 네가 교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아는데 말야. 요즘 나라 경제도 그렇고 남자들도 직장 구하기가 힘든 시기란 말야……. 우리 학교에서 여선생을 뽑기가 좀 그래. 우리는 휴직 없이 성실하게 계속 일할 사람이 필요하거든.”
“저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쉬지도 않고 휴직도 안 할 자신 있습니다. 제발요, 이제 이 학교 하나밖에 안 남았단 말이에요…….”
“알지, 자네가 성실한 건. 그래도 우리 학교 사정이 지금 안 좋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여선생 3명으로 충분해. 그것도 한명은 육아휴직이니 뭐니 핑계로 집에서 놀기만 하고. 에잇, 이제 그만하고, 그냥 가!”
“아니, 진짜 너무 하네요. 당신들이 무슨…….”
여자는 화를 낸다. 그리고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교무실을 나간다.
“보아하니 남자친구도 있겠구먼. 굳이 나서겠다고 여자가 말야. 에휴! 요즘 여자애들이 왜 나대는지 몰라…….”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상황을 지켜본 태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태윤은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선생님, 최근에 우리 학교에 자살한 양수민 학생…….”
“어우, 야! 너 또 그 소리니? 아니 애새끼들은 왜 내가 그 학생을 죽였다고 하는 거야, 어?”
“선생님께 태윤이가 수민이 일로 도움 청하러 왔을 때, 선생님께서 수민이한테 해선 안 될 말씀도 하고 사람 취급도 안 하셨잖아요?”
“개소리 하지 말고 그냥 넌 공부나 열심히 해서 돈 많은 여자를 만나던지 해라. 그리고 여자애 때문에 징징 대지 말고…….”
그 때였다.
태윤은 다시 가위를 꺼내 책상을 두드리고 있던 선생님의 손등을 찍었다. 그리고 책상에 놓인 커터칼을 왼손으로 집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선생님 입에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태윤은 그말과 함께 커터칼을 그어 버렸다.
“으웁!”
“꺄아악!”
“안 돼!”
교무실의 선생님들이 다 놀라며 일어섰다. 그 남자 선생님의 볼에서는 정확하지 못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태윤은 그대로 교무실을 나왔다. 붙잡으려 하는 사람들을 칼과 가위로 위협하니 멀리서 경계할 뿐 다가오지 않았다.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태윤을 지켜보는 가운데 태윤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교문을 나섰다.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제8화] 작가 송윤성(2학년 4반)
[제8화] 거꾸로 도는 시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졸고 있었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웬 카페 안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제 눈앞에는 저의 모습이, 카페 의자에 앉은 채로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검은 색 옷을 입은 형과 이상한 고양이 한 마리, 어딘가 요상한 조합이었습니다.
“오랜만이지? 그날 이후로. 나야, 수민이.”
몸을 빼앗긴 후, 일주일만이었습니다.
“놀라지 말고 들어,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게.”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이게 내가 한 일들의 전부야.”
수민이는 커피를 홀짝이며, 제게 일주일 동안의 일을 전부 전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생각해보면 수민이는 항상 그런 존재였습니다, 학교를 함께 다녔을 때도, 남들은 생각지 못할 대범한 방식으로 일을 저지르곤, 언제나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넘겨보려 했던,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날의 수민이의 모습은 제게 굉장히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습니다. 누구보다 당찼던 친구가, 연약한 모습으로 당하고만 있었다는 사실에, 인지 부조화가 생겨서 그 모습을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땐, 사실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그날의 기억은 이미 개꿈처럼 취급되고 있었고, 자살했다는 말도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건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민이의 부재는 제게 점점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수민이와 저는 아파트 한 동을 벽으로 두고 지내던 이웃 사이었습니다. 가끔, 등굣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볼 수 있었던 수민이의 환한 손 인사가 어느 순간부터 뜸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묻혔던 진실이 떠오를 때마다 전 정신적인 고통에 몸서리쳤습니다.
절정은 수민이가 저를 찾아왔었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웬 이름도 모를 이상한 여자가 절 쫓아오는데, 처음엔 그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눈을 마주쳐보니, 분명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수민이의 모습이 떠오르더라구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난 모든 것을 목격했음에도, 모른 척했다는 것을. 정신을 잃어가던 중,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끝내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네가 말했던 일주일은 모두 끝났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인 거지?”
무거워진 분위기 속, 명훈이 형이 말을 꺼냈습니다. 명훈이 형은 아미 신님인 모양입니다.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야. 당연히, 몸을 돌려줘야지.”
“그 전에, 네가 저지른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 지금 태윤이는, 학교에서 흉기 난동을 부리고 사람까지 죽여버린 범죄자 신분이야. 만약 이대로 몸을 돌려받는다면, 태윤이는 아마도….”
이마저도 업보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제가 저지른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 때문에 세상의 인과가 많이 꼬여버렸다. 네 억울함은 이해하지만, 죽어선 안 될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버렸고, 그로 인해 운명이 바뀌어버린 현생을 살게 된 사람들도 여럿 존재한다. 이제 와서 뒤틀린 것을 바로잡기엔 상당히 늦어버렸어. 난 연극에서 나오는 기계장치의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거든.”
명훈이 형이 말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저는,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 다만 그건 내 힘의 소비가 상당한 수단이고, 확실하다고도 장담은 못 해.”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어쩌겠습니까. 마지막 희망에 목숨을 걸어보는 수밖에.
“시간을 되돌리는 거야, 사건이 일어났던 전날 밤으로. 다만 너희들의 현재 기억들은 모두 사라지겠지. 그러므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거라 확신을 줄 수는 없어. 태윤이 네가 다시 맞이하게 된 상황 속에서, 그때와 같은 행동을 반복할지 아닐지는 내 힘을 작용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
그 때 그 상황 속으로 돌아간다, 어찌 보면 굉장히 끔찍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 충격적인 장면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게도, 또한 수민이에게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기도 합니다. 과거든 현재든 모두 나 자신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마치 다른 사람처럼 과거로 돌아갈 나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그런데도, 전 해야만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사죄해야 합니다. 죄를 갚아야 합니다. 나의 몸을 빌린 수민이를 맞대하는 것이 아니라, 생기가 도는 수민이의 얼굴을 보고 말에요.
저는 결심을 굳혔지만, 수민이는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정말로 힘들건 제가 아닌 학대를 다시 겪어야 할 수민이니까 말이에요. 넌지시 말을 건네 봤습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라고.
“나는, 음…. 널 믿을게. 다시 한 번 말이야.”
노력은 해보겠다만, 가능할까요?
*
“어때, 다들 결심은 섰니?”
과거로 돌아가기 전, 명훈이 형이 저희에게 물었습니다.
물론 두렵습니다. 제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혹시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진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다만 이런 걱정들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습니다.
신의 힘이 온 세상을 감싸고, 그 장엄함에 무심코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몸이 점차 가벼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무게는 점차 증발하여, 이윽고 하늘 위로 떠오르게 되기 직전, 누군가가 저를 잡아끌었습니다. 바로 서윤이였습니다.
“수고했어, 태윤아. 손 펴봐.”
서윤이는 펼쳐진 제 손에 종이쪽지를 하나 쥐여주고는, 다시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아 갔습니다.
“절대로 지금 펴보면 안 돼, 얼마 뒤, 무의식적으로 네가 그 쪽지를 펼쳐보게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때가 오면, 내 쪽지는 너에게 큰 힘이 될 거야.”
쪽지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아니 그보다, 서윤이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너무 많습니다.
과연 과거로 돌아간다면, 모든 상황을 바로잡고, 의문마저도 모두 풀어낼 수 있을까요?
이렇게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제 몸은 천천히 위로 떠올라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
태윤이의 죄를 뉘우치고 노력해보려는 모습이 너무 장하지 않나요?
너무도 대견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가지 해버렸답니다. 사실 명훈이, 신은 이마저도 모두 예상했을지도 몰라요. 제가 그 아이에게 쪽지를 전해줄 거라는 것을. 그와 대화를 나눠봐야겠어요.
“쪽지를 전해줬구나? 서윤아.”
역시 그는, 모든 걸 예측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과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할 수가 없거든요. 특수한 외부력이 작용하지 않는 이상은 말에요.
“사실 넌 수민이에게 몸을 강탈당한 게 아니었잖아. 그런 척했을 뿐이지. 너만큼 되는 존재가 과연 그랬을까? 그냥 심심했던 것이겠지.”
정확히 맞혔습니다, 수천 년을 살아가다 보면, 웬만한 사건이 아니면 놀라지도 않게 되거든요. 그만큼 사는 게 재미도 없어요.
“자 그럼, 언제까지 내가 속아주고, 장단을 맞춰줘야 할까? 아직도 내가 널 서윤이라 불러야 할까?”
이런, 시간이 됐습니다. 재한테 잡혀서 좋을 건 없으니, 빨리 장소를 벗어나야겠어요. 오랜만에 참 재밌었던 일이었네요. 찌뿌둥했던 몸에 활기를 돌게 한 일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는 어디를 가야 또 귀여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요? 기대감에 벌써부터 온몸이 떨려옵니다.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에필로그] 작가 장현석(2학년 3반)
[에필로그]
더울 때보다 덥지 않고, 추울 때 보다 춥지 않은 요즘,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 날씨를 즐기는 일이 늘었습니다.
“요즘은 어떠니?”
“아, 네 뭐. 그냥저냥…….”
그저 하릴없이 벤치에 앉아있던 제게, 새하얀 병원 옷을 입고 계시는 할머니께서 안부를 물어보십니다. 시원찮게 대답 후, 놀이터를 바라봅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바로 눈앞의 거리임에도 떠들썩한 놀이터가 이상하리 만치 멀어 보입니다.
“저번에 좀 큰일에 휘말렸다면서?”
할머니께서 걱정스레 물어보십니다. 큰일이 있기는 있었습니다만, 제게 직접적으로 불어 닥친 태풍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태풍에 손을 내밀었을 뿐입니다.
“어떻게든 해결됐어요…….”
“정말로?”
“아니요…….”
저는 태풍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곧바로 휘말려 버렸죠. 지금은 태풍의 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렴.”
저는 할머니께 태풍에 같이 뛰어들어 주세요. 하고 말씀드릴 용기는 없습니다. 할머니께 상담을 하고 싶지만, 폐가 될 수 있습니다. 휘몰아치는 태풍에 손을 내민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닙니다. 함께 뛰어들어줄 누군가가 있거나, 내 등을 걷어 차버릴 누군가가 필요하죠. 아님, 할퀴거나.
‘야옹’
왼쪽 손등에 남아 있는 자국. 무언가가 할퀸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쓰라립니다.
“슬슬 올 시간인가 보구나.”
“야옹”
어슬렁, 어슬렁. 곰이 왔습니다. 집채만 한 갈색 곰이 아니라, 조그마한 갈색 곰이 왔습니다.
“안녕?”
곰에게 인사를 건네봅니다. 곰은 절 쳐다봅니다. 조용하게 꿰뚫는 시선을 보내오더니, 제 무릎으로 뛰어올라 제 왼쪽 손등을 바라봅니다.
“어머, 어머머. 그 상처 네가 낸 거구나?”
할머니께서 웃으십니다. 네, 맞습니다. 이 아이가 그랬습니다. 정말 곰이었으면 전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신과 짝짜꿍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하, 결국 실패했구나 하면서……. 뭘 실패하죠?
‘야옹’
뭐,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이 곰은 절 하늘나라로 보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태풍으로 냅다 밀어버렸죠.
“할머니. 고양이가 한글도 쓸 줄 알아요?”
“이 병원복을 입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죠.”
“하지만 ‘곰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곰은 제 무릎 위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습니다.
“너 글씨 쓸 줄 아니?”
“야옹”
할머니께서 웃으십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고양이를 내쫓고 일어납니다.
“이제 갈 거니?”
“네, 슬슬 만날 시간이 돼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래, 잘 가렴…어머, 너도 갈려고?”
곰이 제 곁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산책에 절 곁들이려 하나 봅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연히 이 고양이는 저와 함께 해야 합니다. 그야 그 광경을 봤을 때, 절 밀어버린 게 이 고양이니까요. 고양이가 절 할퀴어 피가 흘러내릴 때, 휴지를 찾다 이 쪽지를 봤으니까요. 끝까지 책임져야지 고양아.
‘야옹’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녀에게 가야 합니다. 약속했으니까요. 다짐했으니까요. 분명히 몇 번이고, 다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가해자의 부모들이 학교로 오는 모양이야…….”
고양이에게 말을 걸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괜찮을까 싶습니다. 괜찮겠죠. 괜찮아야 합니다. 지갑을 꺼내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는 쪽지를 꺼내 펼칩니다.
‘야옹’
보는 동시에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용기가 피어오릅니다. 태풍에 목숨 한두 개는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전 고양이가 아니라 목숨이 하나지만요. 그래도 갑니다.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무서워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서 태풍에 갑니다.
----------------------------------------------------------------------------------------------------------------
“야옹”
고양이의 울음소리
“야옹”
그러나 들리는 건 사람의 목소리
“고양이를 부르고 있니?”
할머니가 한 여학생에게 묻습니다.
“아뇨, 제가 생각해도 정말 잘했다 싶어서요.”
“어머, 뭘 했는데?”
“종이에 야옹, 이라고 썼어요.”
“그거 참 대단한 일이구나.”
할머니가 진심으로 감탄합니다. 얼굴에 감동의 꽃이 피어오릅니다. 여학생은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재밌는 사람일까? 할머니는 꽃을 접어두고 놀이터를 바라봅니다. 이곳과는 단절된 듯한 지나치게 활발한 놀이터. 그 놀이터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생각에 잠긴 듯 보입니다.
“할머니!”
“응?”
“할머니, 할머니!”
“으응?”
여학생이 계속 할머니를 불러봅니다. 할머니는 응, 으응, 으응. 계속 대답해 줍니다.
사실, 여자아이는 지난 일을 꽤나 재밌어했습니다. 시간을 돌리는 건 그녀도 할 수 없거든요. 1분만 되돌린다 해도 77억 명의 1분을 되돌리는 데다 1분 동안 넓어질 대로 넓어진 우주마저 되돌려야 하니까요. 꽤나 재밌었던 추억으로 남아 있던 기억에서 가장 좋았던 일을 하나 떠올려 봅니다. 저 위에서 신이 뒷목 잡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할머니, 혹시 잠시 동안 젊은 몸으로 시간을 보낼 생각 없으세요?”
<끝>
해달별 24기/ 문학예술부 릴레이소설 작품 [외전] 작가 한산하(1학년 1반)
[외전] 마음의 소리
교실 문이 열리고 한 남학생이 들어온다. 남학생의 교복 명찰에는 송우영이라고 적혀 있다. 교실에는 학생들이 시끌벅적 떠들면서 놀고 있다. 송우영은 자기 책상 자리에 가서 가방을 두고 앉는다. 그때 송우영의 친구 찬호가 우영에게 다가와 말한다.
"괜찮아? 생각보다 일찍 왔네."
우영이는 교실을 두리번거리며 말한다.
"응."
"병원에서 뭐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약 먹고 쉬래."
"이따가 학교 끝나고……."
우영이는 찬호의 말을 끊고 말을 한다.
"오늘 한서윤 안 왔어?"
"몰라 어제부터 안 오던데?“
그때 한울이가 친구랑 같이 우영이 옆을 지나간다. 한울이는 우영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왔네?"
"응. 아 한울아 혹시 한서윤 어디 갔어?"
"응 병원에 입원했어."
"어? 입원?"
"응. 근데 그건 왜?"
"아니 그냥 뭐 내 짝인데 안 보이니깐 그냥 궁금해서…….“
송우영은 핸드폰을 꺼내 SNS에 들어가 한서윤을 검색한다. 찬호는 우영이의 핸드폰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말한다.
"한번 전화해봐 문자나. ‘아, 나 우영인데, 많이 아파?’ 이렇게 전화해 봐."
우영이는 휴대전화를 집어넣으며 말한다.
"아, 무슨 소리야. 빨리 니 자리나 가. 좀 있으면 수업 종 쳐!"
----------------------------------------------------------------------------------------------------------------
학교 수업이 다 끝나고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우영이도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우영이가 서윤에게 전화를 걸지만 서윤은 받지 않는다. 그때 한울이가 지나간다. 우영이는 한울을 부르며 말한다.
"한울아!"
"응?"
"혹시 서윤이 입원한 병원 어디인지 알아?"
한울이는 웃으며 말한다
"내가 문자로 보내 줄게 편지 써서 병원에 보내봐! 그래도 짝꿍인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우영이는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
집에서 우영이는 자기 방 책상에 앉아서 편지지에 펜을 끄적거리고 있다. 그러다 편지지를 구기고 새로운 편지지를 꺼내 다시 쓴다. 우영이는 한동안 가만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give me some sunshine……. give me some rain…….”
우영이는 펜을 책상에 두고 편지지를 들어 읽어본다.
to. 내 짝꿍 한서윤 씨.
병원에서 잘 쉬고 계시는가요? 저도 얼마 전까지 병원에 자주 갔었는데 요즘 많은 학생이 아파하는 것 같네요. 네가 없으니깐 이렇게 수학 시간이 힘들 줄 몰랐네요. 맨날 네 것을 베끼어 쓰는 게 되게 좋았었는데 아쉽네요. 그리고 너의 그 이상한 빅뱅 이론도 계속 들어보고 싶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하하.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지만 빨리 낫길 바랄게.
그리고 퇴원을 하게 된다면 영화 한 편 보러 가자. 퇴원한 기념으로 내가 보여줄게. 저번에 같이 보자고 말하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편지로 말하게 될 줄은 몰랐네. 아무튼 네가 아파서 입원했다는 게 좀 마음에 걸려서 편지 쓰게 됐어. 그동안 우리 꽤 같은 반도 여러 번 했잖아. 너도 나한테 되게 잘해줬던 것 같아서. 꼭 빨리 낫길 바라. 너무 길면 연애편지 되는 것 같아서 여기까지 쓸게. 빨리 나아아아아…….
From. 톰 크루즈 닮은 송우영.
"좀 오글거리지만 나름 괜찮네"
우영은 편지를 편지 봉투에 넣어 병원 주소를 적어 우체통에 넣는다.
다음날, 교실. 우영은 찬호와 떠들고 있다. 한울이가 우영에게 다가와 말을 한다.
"서윤이, 오늘 퇴원했대. 내가 이따가……."
한울이는 우영에게 계속 말을 했지만, 우영이는 한울의 뒷말을 듣지 않은 채 그저 서윤이 퇴원했다는 얘기에 기쁜 미소를 지으며 밝은 표정으로 창밖을 계속 바라만 본다.
|
첫댓글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혹시 수정할 곳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산하 군 글의 경우 제가 올린 퇴고본으로 일단 수정했는데요, 오늘 만약 퇴고해서 올릴 거면 답글로 달아 주세요. 퇴고 작업은 반드시 해보아야 원고지 사용법이나 글쓰기 형식과 요령을 익힐 수 있답니다.
화면에서 글이 다 안 보일 경우 첨부 파일 열어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