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정지명 100주년 기념-세월 속의 龍井 - 2002년 10월 20일
룡정에서 서쪽방향으로 약 3㎞쯤되는 산등성이에 올라 다시 남쪽으로 굽어들면 우뚝솟은
비암산이 있다. 이 비암산 코숭이에는 10여m되는 깎아지른듯한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억세
게 자란 소나무가 있다.
1938년전에 자란 그 소나무는 흡사 돌기둥에 청기와를 얹은 정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사람
들은 그 소나무를 일송정(一松亭)이라고 불렀다.
일찍부터 룡정사람들은 이 고색찬연한 일송정을 길상물로 삼고 우러러보았으며 녀인들은
일송정의 바위를 기자석(기자석, 즉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것)으로 삼았고 농부들은 기우
제를 지내는 명암으로 리용하였다. 뿐만아니라 1928년 연변에서 처음으로 중국 공산당 룡
정촌지부가 건립된 후 이 비암산은 혁명투사들과 항일투사들의 비밀활동장소로 되었다.
그리고 룡정의 각 학교 사생들이 진달래가 피는 봄날과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면 일송정으
로 원족을 가군 하였다. 애국적학생들은 이 일송정 아래에서 일제를 규탄하는 시랑송도 하
고 반일가도 높이 부르는 한편 일송정을 일제의 통치밑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싸우는 애국지사들의 성스러운 형상으로 찬미하였다. 일송정에 대한 인민들의 찬송이 높아
지고 룡정과 화룡의 겨레들이 그 어느때고 우러러 쳐다보고 또 일송정을 백의동포들의 령
물처럼 숭상하는 것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 일제는 간악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우선 그들은 1930년대초에 "룡정에 든 수재는 일송정 귀신탓이다."는 류언비어를 산포하는
한편 일본총령사관의 군경들은 고의적으로 비암산부근에서 사격연습을 하면서 일송정을
과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일송정은 여전히 푸르싱싱 자랐으므로 일제는 악에 바쳐 밤중에
군경들을 파견하여 나무에 구멍을 뚫은 후 후추가루를 가득 채워놓고 쇠못을 박아 죽어버
리도록 하였다. 이후로부터 우리민족이 그토록 숭상하고 찬미하였던 일송정 푸른솔은 서서
히 시들기 시작하더니 1938년에 이르러 영영 말라죽었다.
개혁개방이후 룡정시인민정부에서는 력사적인 문물을 복원해야 한다는 명지한 결책을 내리
고 "룡정지명기원지정천"을 복원한 이후 1991년에 소나무 한그루를 옯겨다 원 일송
정자리에 심었으나 살려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룡정사람들은 이에 락심하지 않고 그 이듬
해인 3월 18일에 또다시 깊이 언 땅을 파헤치고 재차 모양이 고운 소나무를 올겨다 심었더
니 푸르싱싱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뒤이어 "일송정"이란 기념비까지 세워 오늘도 해내외의
관광객들의 이목을 끄는 유람지로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