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불쑥 찾아오는 여우. 삶을 흔들어 놓다.
*대 서사시를 본 것 같은 그림책이다.
*토론하고 나니 배부르다.
*나는 어떤 동물에 가까울까?
*내 안에 여우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한다.
그림책은 직관의 문학이다.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 빠르다.
<여우> 그림책을 읽고 붉은 여우가 내 마음속에 훅 들어와 떠나지 않는다. 아예 자기 동굴인양 머리를 꼬리에 파묻고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여우의 눈길이 불편하다. 낯설어서 여우의 눈길을 피하고 싶다.
그림책은 글텍스트, 그림텍스트, 파라텍스트로 되어있다. 파라텍스트는 제목, 속표지, 판형, 면지, 표지, 서체등 글과 그림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을 말한다. 파라텍스트를 통해 그림책의 내용을 예측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림책 작가는 파라텍스트를 많이 쓰는데 여우 그림책 작가는 글, 그림텍스트, 파라텍스트로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제목이 “까치와 개”가 아니라 ‘여우“ 다. 왜 여우일까? 여우는 무엇일까?
*개는 어떤 인물일까?
*까치는 어떤 인물일까?
*작가는 왜 서체와 글 구성 방식으로 독자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는가?
*원서는 왼손으로 서툴게 글씨를 썼다 이유는 뭘까?
*까치는 한쪽 날개가 없고 개는 한쪽 눈이 없다. 상징성은 무엇일까?
*면지의 색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빨간색이 의미하는 것은?
*여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인물간의 관계
*인물간의 성격
*동물장면이 3번이나 그려져 있다. 그것의 의미는?
*붉은 여우와 산불과 붉은 사막은 무엇일까?
<여우> 그림책은 강렬하다.
붉은 색의 여우는 정면으로 독자를 응시한다. 그 강렬한 눈길에 눈을 피하게 된다. 여우의 눈길이 불편하게 와 닿는다. 거친 느낌의 그림은 날카로운 것으로 긁은 자국이 있어 거칠고 날카로운 질감을 준다. 붉은 색으로 표현된 면지도 강렬하다. 까치를 입에 물고 달리는 개가 보인다. 처음에 보았을 때 개가 까치를 사냥해서 가는 중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파라택스트는 그림을 통해 우리의 편견을 보여준다. 개가 까치를 사냥하고 여우는 교활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산불이 난 현장에서 날개를 다친 까치를 개가 물고 온 것이다. 날개를 다친 까치와 한쪽 눈이 없는 개는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둘 사이에 불쑥 여우가 들어오게 된다.
토론을 하는 중 개를 바라보는 입장이 많이 달랐다.
한쪽 눈을 잃었다는 것을 통해 한 면만 보는 단순한 인물일 수 있다.
개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형적인 인물일 수 있다.
개를 보니 북유럽신화의 오딘이 떠올랐다. 한 쪽 눈을 잃고 지혜를 얻은 오딘과 같다. 그래서 아픔을 통해 성장한 인물, 지혜로운 자로 보여진다.
개는 소통을 못하는 인물이다. 까치를 가스라이팅해서 자기 옆에 두고자 한다.
여우는 무엇일까?
둘 사이에 왕따를 당하는 인물이다. 질투와 시기의 화신이다.
여우는 성장통이다.
여우는 결핍, 열등감, 질투, 경계에 서 있는 자로 인간의 본성을 의미한다.
붉은 색이 의미하는 것은?
상처의 시발점이면서 임팩트 있는 변화다. 까치의 심리다.
붉은 여우, 산불, 붉은 사막은 까치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까치는 상처가 깊지만 오히려 여우로 처음 자기가 선 곳에 다시 오게 된다. 이번에는 개의 도움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걸어서 그곳을 나오게 된다. 까치의 성장과 홀로서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불쑥 여우가 찾아온다는 것은 어쩌면 홀로서기하고 성장할 수 있는 축복으로도 볼 수 있다. 단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통은 필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여우의 눈과 붉은 여우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면지, 흐름을 방해하는 글 텍스트는 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한다. 쉬이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독자는 의문을 갖게 된다. 여우, 까치, 개를 다각도로 보게 한다. 이야기는 끝났지만 의미가 확장되어 독자들 마음에 여우를 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