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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가지 맙시다 (눅14:16-24)
제가 직장에 다닐 때 모시던 부장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마음이 참 좋아 다른 사람과 원수맺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말이야, 예수 믿고는 싶은데 영 믿기지 않아.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 가슴으로는 믿기지 않으니 큰 고민이야. 나만 빼고 형제들은 아주 열심히 믿거든.' 그 당시 저는 직장에서 틈틈이 전도하고 신우회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그가 그런 고민을 그냥 제게 털어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는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말이야, 아주 희안한 체험을 했어. 정말 천국은 있는 거야.'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모친상을 당했습니다. 장남이라서 그런지 그는 어머니를 몹시 사랑했습니다. 살아 생전에 어머니의 원대로 기도원에 차로 모셔드리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정작 믿음이 없었지만 어머니가 원하니 기도원에도 따라가고 그랬던 것입니다. 모친상을 치르고 집에 돌아와 앉았으나 도대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지난 날을 되돌아 보니 어머니 얼굴만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장지에서 막 돌아온 터라 몹시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자정을 막 지나는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 목소리였습니다. 살아 생전의 그 목소리였으나 감정이 깔리지 않은, 아주 잔잔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세 번 들려왔는데 첫 번째 목소리는 이랬습니다. '오늘 내가 천국에 왔는데 천국 입구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반겨 맞아 주었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려 보았는데 꿈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두 번째 목소리는 이랬습니다. '내가 천국 올 때에 내 옆에 두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온 몸에 무서운 전율을 느끼면서 듣고 있었습니다. 조금 후 어머니의 세 번째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옆에 있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독일의 유명한 경제학자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자고 있던 아내를 흔들어 깨워 천국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찾아보고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잘못 들은 것일 수도 있고 환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조간신문을 샅샅이 훑어 보았지만 독일의 유명한 경제학자가 죽었다는 기사는 없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신문을 한번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신문에도 그런 기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무렵에 미국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날 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1면 톱기사로 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저녁 무렵인데 미국에서는 아침이 시작됩니다. 10시간 정도의 시차 때문에 그렇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세계최고의 금융경제전문지입니다. 이 신문의 첫 페이지에 대문짝만 하게 났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날 신문 톱기사는 일본 왕의 미국방문 기사가 차지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일 재무장관이 암살당했다는 기사가 1면 톱을 장식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 당시 독일 재무장관이 자기 집에서 나오다가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독일이라는 선진국의 재무장관쯤 되면 유명한 경제학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실로 입증된 것입니다. 그는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라서 그동안 천국의 존재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뒤에 그는 예수를 믿게 됐고 그래서 저에게 그런 체험담을 들려준 것입니다.
저는 그 분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전도하는 일이 참으로 귀하구나. 낙심하지 말고 계속 전도해야 되겠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 용기를 주시려고 이런 간증을 듣게 하시는구나.' 사실 직장 생활하면서 전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전도하게 되면 전도하는 사람이 전도받는 사람보다 우위에 서게 됩니다. 아무래도 한 수 가르치는 입장이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도받는 사람은 영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네가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훈수하는 거냐.' 그래서 상하관계가 분명한 직장에서 전도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전도하다 보면 낙심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전도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거절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사람한테 단지 전도한다는 것 때문에 거절당해야 하는 참담한 심정,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참담한 심정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당하는 거절은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전도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로움을 구하기 위해 계속 전도하고 전도할 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피곤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반드시 거두게 될 것입니다.
거절당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이웃 사람한테 단지 전도한다는 것 때문에 거절당하면서도 땀으로, 눈물로 계속 전도의 씨앗을 뿌리는 전도인, 그는 정녕 기쁨으로 그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피곤하지 말고 부지런히 전도의 씨앗을 심어야 할 것입니다.
부지런히 복음의 물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어느 새 자라나게 하실 것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으니'(고전3:6). 우리가 부지런히 전도의 씨앗을 심고 복음의 물을 주면 하나님은 반드시 자라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열 번 거절당해도 단 한번 영혼구원의 열매를 거두면 그렇게 기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전도가 주는 큰 매력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전도해서 영혼구원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내 한몸 먹고 살기도 바쁜데 왜 귀찮게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까.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우리 인생은 길어야 80살입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이 짧은 인생살이를 아웅다웅하면서 살다가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몸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갑니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우리의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죽으면 흙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그래서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한 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왔고 모두가 흙으로 다시 돌아가도다.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전3:20-21).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으면 다 한 가지로 그 몸이 흙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영은 되돌아가는 곳이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의 영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서게 돼 있습니다.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사람은 누구나 죽게 돼 있고 죽고 난 뒤에는 그 영이 하나님에게로 되돌아가 심판을 받게 돼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영생의 심판을 받고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영벌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하나님)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천국)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의 구원주로 믿은 사람들은 죽은 뒤 천국에 가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제 마음대로 산 사람들은 죽은 뒤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토록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지옥) 불에 들어가라'(마25:41). 예수 믿는 사람들은 천국 가서 영생을 누리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 가서 영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천국이 있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 믿다가 죽은 사람은 천사들이 와서 그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갑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눅16:22).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을 믿다가 죽었는데 천사들이 와서 그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냥 혼자서 간 것이 아니라 천사들의 안내를 받아서 천국 가게 된 것입니다. 천국은 있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며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계21:2, 10-11, 18-19).
우리가 되돌아갈 천국은 온통 맑고 빛나는 보석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죽으면 천국 가서 영원히 살든지 아니면 지옥 가서 영원히 벌받게 돼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옥 가기 싫어서 예수 믿은 것 같습니다. 천국이 아무리 좋다 해도 내가 가기 싫다면 그뿐입니다. 정승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천국이 아무리 좋다 해도 안 가겠다면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천국 가지 않으면 반드시 지옥 가게 돼 있습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천국 아니면 지옥, 이것이 우리의 선택인 것입니다. 정말 지옥이 있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솔직히 지옥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지옥에 가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지옥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막9:48-49).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지옥은 실로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불로 소금치듯 하는 곳입니다.
지옥은 사람의 영혼이 영원히 죽지 않는 곳입니다. 구더기도 영원히 죽지 않는 곳입니다. 불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 지옥에 간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지옥 불로 소금치듯이 불타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옥은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절대로 가서는 안될 곳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곳이냐 하면 내 몸뚱아리의 일부를 잘랐으면 잘랐지 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곳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47). 지옥은 정말 무서운 곳입니다. 우리가 가서는 절대로 안될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지옥입니다. 절대로 지옥가지 맙시다.
꿈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한번은 제가 꿈을 꾸었는데 아주 심상치 않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저는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고 있었습니다. 대낮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사람들 사이로 다니고 있었습니다. 시커먼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냥 '두 사람이 지나가는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그냥 쓱쓱 지나가는 것입니다. 수상스키를 타고 지나가듯이 쓱쓱 지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낮이 지나가고 저는 집으로 돌아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방안에 저 말고도 서너 사람들이 더 있었습니다. 저는 문쪽에서 자고 다른 사람들은 안쪽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 한참 자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딸랑딸랑,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 듣기 싫은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저 쪽에서 두 사람이 오고 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그 두 사람이 대낮에 본 그 음침한 두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그 두 사람이 오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두 사람 다 손에 종을 하나씩 들고 흔들면서 제가 자고 있는 곳을 향해서 오고 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저를 잡으러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몸은 발쪽에서부터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목쪽으로 마비돼 올라왔습니다. '아, 이렇게 마비돼서 죽는구나.' 그 두 사람은 제가 자고 있던 문 앞쪽에서 떡 하니 멈추어 섰습니다. 종소리도 멎었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비명을 냅다 질렀습니다. 실제로 비명을 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벌떡 일어나 보니 온 몸에 땀이 흥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저승사자 2인조가 저를 잡으러 왔던 것입니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다 됐다'고 딸랑딸랑 종을 치면서 저를 잡으러 왔던 것입니다. 그때가 제 나이 만 33세이던 가을이었습니다. 저는 그 꿈을 꾸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말로 저승사자들이 사람잡으러 다니는가 보다. 예수 믿다가 죽은 사람은 천사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천국 가게 되고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은 저승사자들에게 붙잡혀서 지옥 가게 되나 보다.' 물론 그 꿈을 꿀 당시에 저는 예수님을 잘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꿈을 꾼 것은 '죽음에 대해서, 죽음의 사자에 대해서, 지옥에 대해서 더 잘 깨달아라'는 주님의 뜻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 꿈이 꼭 성경적이라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그 꿈을 꾸고 나서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고 또 지옥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죽음의 사자들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다닐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죽음의 천사들이 등장합니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삼하24:16). 여기서 죽음의 천사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9:3-6). 여기서 우리는 죽음의 천사들이 도시를 두루두루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천사들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천국 가고 어떤 사람이 지옥 갑니까. 한 마디로 딱 잘라서 말하자면 겸손한 사람은 천국 가고 교만한 사람은 지옥 갑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겸손한 사람은 자기 모습을 잘 압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모습을 잘 알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은혜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요,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물입니다. 그저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겸손한 사람은 자기 허리를 굽히고 감사한 마음으로 은혜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스스로 의로와 지려고 노력하면 하지 그저 공짜 선물은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잘 받을 줄 아는 사람은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받고 감사할 수 있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사코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의롭고자 노력하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잘 줄 줄도 알아야 하지만 잘 받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은혜로 사는 것이 인생이지, 의로움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줄 줄도 알아야 하고 동시에 잘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받는 것만 밝히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주는 것만 밝히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우리는 적절하게 줄 줄 알고 또 적절하게 받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것이지 않습니까. 해바라기는 마음껏 햇빛을 받아야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뭘 주면 감사하게 받을 줄 아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요, 우리는 그 은혜를 겸손하게 받아 누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은혜 중의 은혜, 선물 중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은혜는 그저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선물로 보내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여기서 '은사'라는 말은 선물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 곧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선물은 토달지 말고 그저 감사하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어요. 그냥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옥 불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그런데 겸손한 사람은 이 선물을 받을 것이요, 교만한 사람은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스스로 잘 난척하는 사람, 스스로 의로운척하는 사람, 스스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지옥 불에 가서 영원히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 불에 떨어집니까. 죄지은 사람이 지옥 불에 떨어집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거짓말만 해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런데 이 세상에서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모든 인간은 죄를 지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그래서 지옥 불에 던져져야 할 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짓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머리 치켜들고 '나, 잘 났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직접 베풀어주신 구원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예수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죄를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자기 아들 예수님에게 떠넘기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구원받게 되고 천국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만들어 놓으신 구원의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권하면 죄가 많아서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가 좀 정리되고 나면 믿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제 잘 난척하는 사람입니다. 언제 죄가 정리되겠습니까. 나이 들수록 죄만 더 짓지 어찌 지은 죄를 다 정리할 수 있습니까. 교회는 목욕탕과도 같습니다. 때 없는 사람이 가는 곳이 목욕탕이 아닙니다. 때 많은 사람이 가는 곳이 목욕탕입니다. 저는 16세 때 처음으로 대중 목욕탕에 가 보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시골에서 신정 전 날에 가마솥에다 물을 끓여놓고 때 불리다가 나오는 목욕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촌놈이 어쩌다가 부산에서 1년 정도 살게 됐습니다. 대중 목욕탕에 한번 가기는 가야 되겠는데 몸에 때는 많고, 은근히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아무도 보지 않는 한밤중에 세숫대야에 물을 떠놓고 몸을 벅벅 문질렀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때를 벗긴 뒤에 대중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때가 많다지만 목욕탕에 가기 전에 때를 벗기고 갈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지금 추억해 보면 참으로 웃기는 일입니다. 대중 목욕탕에 가기 전에 때를 벗기고 가다니요. 교회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좀 벗기고 난 뒤에 교회 다니겠다는 사람은 영영 교회 나올 수 없습니다. 죄 때문에 양심에 좀 걸리더라도 과감하게 교회 나오는 사람, 이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부르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려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눅5:31-32).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에도 보면 오히려 문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립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립니다. 가난한 사람과 불구자와 소경과 절름발이.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밭을 산 사람과 소를 산 사람과 장가간 사람. 한 마디로 스스로 잘 난척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냥 받아들입니다. 주저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의 초대에 응합니다. 아무 저항 없이 하나님의 교회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로 나아와 복음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밭을 산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가졌기 때문에 교만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밭을 샀다 해도 잔치에 초대받았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일입니다. 마음먹기 나름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저 공짜인 초대선물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만해서 그런 것입니다. 소를 산 사람도 교만한 사람입니다. 가졌기 때문에 교만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소를 샀다 해도 잔치에 초대받았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일입니다. 교만해서 잔치에 가지 않은 것입니다. 장가든 사람도 교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했기 때문에 교만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장가 갔다 해도 잔치에 초대받았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일입니다. 교만해서 잔치에 가지 않은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잔치초대에 응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불구자와 소경과 절름발이는 기꺼이 잔치초대에 응합니다. 이들은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처지가 어떤 지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실제 생활이 가난한 자들이요, 또한 영혼이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육체적인 불구자들이요, 또한 영적인 불구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죄인인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습니다.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초대를 받아들입니다. 그저 감사하면서 초대에 응합니다. 거절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사람은 일단 겸손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다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겸손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초대에 응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올 수 없습니다. 복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가난함을 느끼는 사람,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 그래서 은혜의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을 그냥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너희에게 준 적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만이 너희를 구원하는 구원자 그리스도이다'(행4:12).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다'(요일5:12).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영접하는 자, 곧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2).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행16:31). 성경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구원주 그리스도로 마음에 믿으면 의롭게 되고 입술로 그렇다고 시인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10:10).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10:13).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고후6:2).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솟아나는 영생의 샘물이 되리라'(요4:14).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천국에 올 사람이 없느니라'(요14: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6:37).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에게는 영생이 없습니다. 이미 영생의 확신을 가진 분은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요. 더 잘 믿는 사람이 되십시요. 아직 영생의 확신이 없는 분은 이 시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의 구원주로 영접하십시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만져지지 않고 마음에 느껴지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영접할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롭게 되고 입술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구원주 그리스도로 마음에 믿으면 의롭게 되고 입술로 그렇다고 시인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10:10).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저를 따라 기도하시겠습니다. '예수님, 이 시간 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습니다. 이 시간 저는 예수님을 제 개인의 구원주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이 시간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저의 모든 죄악이 청산되었슴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 시간 제 마음 문을 엽니다. 제 마음 속에 들어오시어 저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저의 왕이 되어 주십시요. 저의 생애를 다스려 주십시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