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라는 용어는 라틴어 손님(Hospes)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발생된 부상자들을 위하여 수녀들이 병간호와 치료하면서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도우면서 시작되었다는 설과 중세시대 순례자와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자선시설에서 시작되었다 설도 있습니다. 이를 뒤받침하듯 알프스 서부산맥인 페나인알프스(Pennine Alps) 에는 그 지역을 통과하는 여행자들에게 휴식처로 제공되는 아주 오래된 성 베르나르 호스피스가 현존하고 있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운동은 런던에 있는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의 창립자의 한 사람인 시슬리 손더스(Cicely Saunders)는 기존 현대의학 치료 방법이 임종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손더스는 1965년에 자신의 호스피스 이론을 체계화시킨 후 이를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향에 힘입어 미국의 플로렌스 왈드(Florence Wald)는 1971년 미국 호스피스 협회를 설립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영국을 중심으로 말기환자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의학적 개념인 완화의학(palliative medicine)이 제시되면서 호스피스활동을 이론적으로 발전시켜 나갔으며 이후 완화의학은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역 및 존재론적 영역 등등을 포괄적으로 죽음을 맞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의학이 제자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호스피스와 완화의학이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며 1998년 7월 4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도 설립됩니다. 학회에서는 한국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학문적 발전에 힘써왔으며 말기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 편안한 삶을 살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호스피스 제도를 보건정책 및 의료법에 반영시키고, 국제 호스피스 완화의료 학회 또는 국제 협회와 교류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주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중입니다.
국내에서는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하여 2017년 8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법률 제14013호)이 시행되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의 대상이 되는 환자들의 권익을 포함하여 의료인들의 법적으로 지위를 보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내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활동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통증 및 신체적 돌봄 : 통증, 호흡곤란, 구토, 복수, 부종, 불면 등 고통스러운 신체 증상의 조절,
2. 심리적 돌봄 : 환자와 가족의 불안, 우울, 슬픔 등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
3. 사회적 돌봄 : 경제적, 사회적인 어려움을 파악하여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지원,
4. 영적 돌봄 : 삶의 의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에 의한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노력,
5. 임종 돌봄 : 임종 시기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시키고 가족이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지,
6. 사별가족 돌봄 : 사별 후 가족이 겪을 수 있는 불안, 우울 등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
호스피스·완화의료 종류
입원형 호스피스 - 보건복지부 지정 호스피스전문기관 병동에 입원한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가정형 호스피스 - 가정에서 지내기를 원하는 말기환자와 가족에게 보건복지부 지정 전문기관의 호스피스 팀이 가정으로 방문하여 제공하는 서비스
자문형 호스피스 - 일반 병동과 외래에서 진료를 받는 말기환자와 가족에게 호스피스 팀이 담당 의사와 함께 제공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
개인적으로 친형제처럼 지내온 7년 선배가 계십니다. 주말만 찾아오면 내가 회장직을 수행하던 태니스클럽에서 운동을 함께 하고 아니면 산을 찾아 등반을 함께하다. 암벽등반을 하고 싶다 하여 암벽등반 강습을 해가며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을 오르고 도봉산으로 자리를 옮겨 선인봉, 만장봉, 오봉, 주봉을 오른 후 설악산 용아장성 릿지 등반과 천화대 릿지등반을 완성한 후 저를 중심으로 결성된 악우팀으로 분류된 선배셨습니다. 나이차는 꼭 7년 선배셨지요. 이런저런 인연으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도 하였고 서로 은퇴 후에도 변함없이 서로가 식사를 챙기기도 하고 조촐한 술자리도 마련하여 정을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독자로 성장한 귀한 자식이다 보니 조금은 이기적인 부분도 있는 선배지만 검소함이 몸에 밴 선배였습니다. 이기적인 부분 때문에 조금은 외롭게 지내야 하는 일상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성격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는 고백을 들은 후 저라도 의식적으로 가까이하려는 의도를 품고 대해드린 선배입니다. 저는 그 선배에게 바라는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하다 보니 자유로운 관계가 성립되어 불편함 없이 친형제처럼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오랜 세월 우정이 쌓이다 보니 저를 통해 알게 모르게 자신의 단점을 많이 수정할 수 있었다는 고백도 들은 적이 있는 선배입니다. 저라고 흠결이 없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응대해 주는 선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서로 한참을 바라보고 웃으며 술잔을 기울인 적도 많았습니다. 건강에도 문제가 없어 주말을 이용하여 자전거로 양평 지나 해장국거리까지 진출한 후 점심을 챙긴 후 다시 되돌아 올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참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지내던 선배님이셨습니다. 올해 들어 여행 중에 여러 차례 전화를 주셔서 왜 전화를 많이 하시느냐 물으니 만나서 이야기할 일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오셨습니다. 여행을 마친 후 귀가하여 전화를 통화한 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안 딱한 일들이 많이 생겨 심적으로 미음고생과 함께 여러 가지 혼란에 쌓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선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선배 모르게 가족들을 만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배를 신뢰하지만 그래도 양쪽 이야기를 듣는 일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어느 날 기억력과 행동력이 저하되는 것을 호소하는 선배를 가족들은 병원진료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 보호자 성격으로 아들이 동석하고 의사와 상의 끝에 병원에 입원시켜 드렸으나 ( 입원하면서 자세한 병명을 부친에게 안 알려준 모양입니다, 나하고 대화 중에도 아들은 끝내 병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입원 후 3일 만에 퇴원시키라는 부친의 성화에 부근에 살고 있는 딸과 사위가 달려 가 할 수 없이 퇴원한 후 집으로 다시 돌아 간 부친은 아내를 입회시킨 후 집으로 매일 자식들을 불러들여 아비를 강제로 입원시켰다고 호통치며 몹시 꾸짖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날부터 캠핑카를 사서 전국 여행할 것이라는 이야기와 고향 집 터에 아름다운 농막 같은 작은 하우스를 짓고 내려 가 살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나를 만난 후 선배는 캠핑카 수입업체를 소개해 주고 제품을 보러 가 자하여 국산과 외제을 전부 보고 왔으며 고향 집 터 작은 농막 같은 아름다운 집을 나서서 해달라는 당부를 수차례 하였습니다.
가족을 만나 후 형님께서 초대하여 저녁시간에 선배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형수님은 근처에 살고 있는 딸내 집에 가셨다 하여 형님과 단둘이 저녁상을 앞에 두고 2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선배는 몹시 들떠 있었습니다. 내가 도와주면 무슨 일이든 다 정리가 되었다는 과거일도 끄집어내며 유쾌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얼굴에는 병색이 깃든 것처럼 보였고 몸도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관찰하며 나의 단호한 입장을 전달하였습니다. " 내가 보아서는 형님 건강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도와드리는 약속은 불변이지만 우선 건강을 회복하시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건강회복에 전력을 다하셔서 꼭 회복하신 후 약속을 지키기겠습니다." 선배는 순간적으로 실망하는 모습이 역 역하였습니다." 형님 오늘 곰곰이 생각하시고 어느 결정을 하시던 내일까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자리에 일어서서 집을 나왔습니다. 선배는 배웅을 해주며 말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의 이야기대로 시급한 것은 건강이니 우선 최선을 다해 건강회복을 시킬 테니 그 이후 약속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전화 후 보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용태가 궁금하여 카톡을 이용하여 안부를 전했습니다. " 형님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형님! 몸은 많이 건강을 되찾으셨는지요? 욕심부리지 마시고 천천히 근력을 찾으시도록 노력하셔서 늘 건강한 일상을 보내실 수 있도록 기원합니다. 복 더위 잘 이겨내시는 노익장의 진수를 후배에게 보여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형님 늘 파이팅이십니다~~~~ " 다른 때 같으면 즉답이 왔는데 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후 " 형님이 많이 편찮으십니다" 형수가 적어 보낸 글이 떴습니다. 즉시 반가운 마음에 답신을 해드렸습니다. " 어느 병원에 입원하셨는지요? 병원과 병실 호수를 알려 주시면 면회 다녀오겠습니다. 형수님 심려가 많으시겠습니다" 사흘이 지난 후 답이 왔습니다. " 전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해요. 믿고 의지 하든 분이라 알려드렸지만~~~ 보훈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모셨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형님 거들어 주셔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참고로 뇌종양 판정을 받아 부위가 수술도 어려운 곳이라 예후도 상당히 안 좋습니다."
보내주신 글을 읽으며 순간 아득해지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빨리 진행되다니 노년의 삶은 도저히 가늠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허망한 생각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습니다. 사람을 못 알아본다면 악성 종양이 커져 인지능력을 관장하는 신경을 눌러 장애를 일으킨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형수도 대장암으로 수술하고 지금 5년째 투병 중인데~~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삶이란 살아 있어야 인생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뭘지 않아 정지된다 하니 선배와 40여 년 그려 온 생의 이야기들이 저절로 주마등처럼 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름날 용아장성 암벽등반을 하며 별이 쏟아지는 시간 즈음 도착한 봉정암 산사 뜨락, 구석진 곳에 허락을 받고 막영구를 설치하고 잠을 청한 후 새벽에 일어나 절에서 제공해 주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막영구를 전부 철거하여 짐을 꾸려 소청, 중청, 대청, 밟고 오색으로 하산하며 멋진 설악산행이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 좋아하시던 선배님의 얼굴이 정말 근사했었는데.... 또한 복 날즈음 민어탕을 끓여 놓고 나를 그렇게 찾으셨는데 지방출장이라 합석을 못했더니 다시 또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기억도 엊그제 같은데, 어찌 이런 일이 ~~
답신을 드렸습니다. " 많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심려가 상당히 깊으시겠습니다. 무슨 말을 드려야 위로가 되실 수 있을까 하다가도 자꾸 말문이 가로막아 지금의 위중함에 대해 극복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로서 대신하겠습니다. 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관 상의 드린 후 문병을 다녀 올 계획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은 하루에 한 번 2명으로 제한하여 면회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문병 계획이 없는 날 선택하여 함께 산을 자주 찾던 두 사람만 다녀 올 계획입니다. 형수님도 각별히 건강 잘 챙기시기를 빕니다."
삶이란 살아 보니 하루 소풍 나절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사는 일 참 복잡합니다. 늙으면 소중한 것들도 아무 소용없게 되는 것이 진실인가 봅니다. 삶의 끝이라 하는 죽음, 저는 아무래도 앞으로 이렇게 표현할 것 같습니다.
죽음은 완성된 진실이다. 그 결말은 누구라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님 하루하루 꿈을 꾸시는 행복 속에 통증없는 삶이 이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형님의 시간이 멈춰 서는 날, 정말 슬픈 눈물을 많이 흘릴 것 같습니다. 운명에게 내려놓는 빗물 같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 또한 인간의 힘으로는 당해낼 재주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의 탁자에서 꺼낸 기도로서 갈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으로 안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 드리 나이다. 그대로 이루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