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본 우리가 살고 있는 별, 곧 지구다. 저 안에서 우리는 벌레, 새, 산짐승, 물고기---들과 함께 살고 있다. 지구가 초록색인 것은 저기에 나무와 물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저렇게 둥글다지만 맨눈으로는 평평하게 보일 뿐이어서 옛날에는 그걸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지구는 이렇게 육안에는 안 보이거나 달리 보이는 것들이, 그래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세상에 해충이 있다는 생각이다.
논을 예로 들어 보자. 먼저 논둑, 논둑에 서면 벼와 벼에 붙어사는 여러 종류의 벌레들이 눈에 띈다. 그중에는 4밀리 크기의, 매미처럼 생긴 벼멸구라는 벌레도 있다. 이 작은 벌레는 벼에 붙여서 벼의 즙을 빨아먹고 사는데, 벼멸구에 즙을 빨린 벼는 그 부위가 누렇게, 혹은 검게 변하고 심하면 죽기도 한다.
이렇게 논둑에 서서 작은 창으로 보면 벼멸구는 벼를 해치는 해로운 벌레다. 하지만 조금만 물러서서 보면 이로운 벌레로 알려진 잠자리, 거미, 소금쟁이 따위가 나타나 벼멸구를 잡아먹는 것이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벼멸구를 보고 “너는 해충이야.”라고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번에는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데까지 멀찌감치 물러나서 보자. 이 창에서는, 벼멸구를 죽이겠다고 친 농약이 벼멸구만이 아니라 논 전체로, 나아가서는 바람과 물을 타고 마을 전체로 퍼져 가는 게 보인다. 그것들은 논을 빠져나가 하천을 더럽히고, 일부는 마을을 떠돌다가 사람의 코로도 들어간다.
마을이 다 보이는 이 자리에서 마음의 눈으로 논을 보면, 놀랍게도 벼멸구가 벼의 밥인 거름으로 바뀌는 모습도 보인다. 무슨 말인가? 벼멸구는 벼를 먹기만 하는 게 아니다. 먹은 만큼 돌려준다. 벼멸구도 똥과 오줌을 쌀 게 아닌가? 또 죽으면 어디로 가겠는가?
물론 벼멸구 한 마리는 크기가 작아 그 양이 얼마 안 될 테지만 수만, 수십, 수백 만 마리일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벼멸구를 먹고 사는 곤충들의 똥오줌과 주검은 또어디로 가겠는가? 눈으로 보기 어려울 뿐 이 자연 비료 공장은 크고, 생산물 또한 양질이다.
논에서 사는 생물의 종류는 벼멸구를 포함하여 수천 종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 모든 것이 큰 원을 그리며 이렇게 논에서 나고 논으로 돌아간다. 예를 들면 벼를 먹는 벼멸구는 거미나 잠자리가 먹고, 거미나 잠자리는 개구리가 먹고, 개구리는 뱀이 먹고, 뱀은 새가 먹고, 새는 숨을 가꾸고(새는 나무 열매를 먹고 싸며 씨앗을 퍼드린다.). 숲은 논에 물을 보내 주고, 논은 벼를 기르고, 그 벼를 벼멸구가 먹는다. 이렇게 우리들의 논밭, 그리고 마을 속에는 먹이사슬이라는 이름의 둥근 원이 숨어 있고, 그 원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 한 병해충의 대발생이라는 불행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
그 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나는 한발 더 나아가 땅을 갈지 않고 논밭 농사를 짓는다. 트랙터나 경운기로 땅을 갈면 땅을 거처로 삼고 사는 수많은 생물이 큰 해를 입기 때문이다. 땅을 간다는 것은, 지진이나 해일처럼, 땅속 생물을 모조리 죽이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그렇게 하면 원의 일부가 아주 크게 망가진다.
그러므로 땅을 갈지 않고, 그 어떤 벌레를 해충이라 여기며 농약을 치지 않으면, 그 결과로 원이 건강하게 되살아나면 논밭은 거기 사는 모든 생물의 천국이 된다. 그 평화로운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이들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서는 해충이라 이름 붙여진 벌레까지 모두 큰 조화 속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으니 안 그렇겠는가?
자,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우주 전체가 한눈에 보일 만큼 창을 있는 대로 키워 보자. 눈을 감고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놀랍게도 나무와 물이 있는, 그래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별이 이 넓은 우주에 우리가 사는 이 지구 단 하나뿐이라 한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웃음이 있고 노래가 있는 별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곧 우주에 천국이 있다면 지구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므로 나는 때로 논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이 지상의 모든 이들이 지구가 우리의 어머니임을 알게 하소서.
새, 짐승, 물고기, 벌레는 물론 벼멸구 또한 우리와 한 형제임을 알게 하소서.
아울러 이 지구가 우주 안에 단 하나밖에 없는 천국임을 알게 하소서.
(2011년 6월 30일에 ‘창비’에서 나온 ‘선생님 시 읽어주세요’라는 책에 실린 개구리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