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향기를 리듬으로 여는 운명과 자유의 교향악 연주자 철학자 수필가 이당(怡堂) 안병욱 교수
최원현(수필문학가)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가지고 한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이 세상에 목숨을 둘 가진 사람은 없고 두 번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너는 너의 길을 갑니다. 내가 남의 인생을 살아줄 수 없고 남이 나의 인생을 살아줄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1회전으로 끝나는 엄숙한 시합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특히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일까.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 기슭에 자리한 워커힐 아파트 32동, 안병욱 교수의 서벽암(棲碧庵)을 찾았다. 3면이 책장으로 둘러진 거실에는 저서를 비롯한 각종 책들이 빼곡이 꽂혀 있었는데 따스한 햇볕이 드리워진 커텐을 뚫고 실내 깊숙이 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철학자로써, 교수로써, 수필가로써 수많은 저서와 강연을 통해 쉼 없이 새로운 메시지를 선포하는 영원한 젊은이 안병욱 교수, 그는 인생을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이 땅의 맑은 영혼을 가진 이들에게 빛과 힘이 되어주기를 염원했다. 그리고 후회 없이 살라고 말씀하신다.
안병욱 교수에게선 늘 황토 흙 냄새와 솔 내가 난다. 그가 사랑하는 나라,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그가 사는 이유인 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의 사랑은 간절하다. 학교 교단에서, 흥사단 강연장에서, 그리고 내기만 하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책에서 그는 독특한 그의 영혼의 향기를 맡게 한다.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교수는 1920년 6월 26일 평남 용강(龍岡)에서 동경 명치대 유학생이었던 안성원(安性源)의 장남으로 태어나 평양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용강은 김일엽, 정일영, 박흥식 등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중학시절인 16살 때 춘원의 <무정>과 <흙>을 읽고는 충격적 감동을 받고 인생에 대해 생각 하다가 춘원에게 편지를 냈더니 훌륭한 스승에게 배워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격려의 편지를 보내왔는데 그 때 꼭 춘원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다니면서 춘원댁을 방문했어요. 나는 춘원에게서 민족주의와 이상주의와 낭만을 배웠습니다. 인생은 만남인데 좋은 책과의 만남, 좋은 스승과의 만남, 좋은 친구와의 만남, 이 세 만남을 통해 인생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 세 가지를 다 잘 만났습니다. 곧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다섯 사람과의 만남이 있으니 춘원(이광수)과 장준하, 함석헌, 그리고 가을날의 호수처럼 조용하던 윤동주와 일본인 아이지 교수와의 만남입니다. 이들과 오늘이 있기까지의 나와의 만남은 깊은 정신적 만남입니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이러한 만남을 통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장준하와 만나 <사상계>를 통해 자유 언론사상을, 흥사단을 통해 도산사상을 신앙처럼 갖게 된다.
“흥사단(興士團)은 1913년 샌프란시코에서 도산이 ’인물을 일으키는 단체‘란 뜻으로 인재양성 단체 곧 젊은 한국 아카데미(young korea academi)로 시작했었는데 내가 <사상계>(思想界)에 민족에 관한 글을 쓰게되어 도산(島山 安昌浩)에 관해 쓴 것이 계기가 되어 1953년 흥사단에 입단하게 되었어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두 가지의 뜻깊은 일을 했는데 하나는 장준하 선생을 도와 <사상계>를 통해 자유 언론 투쟁을 한 것이요, 또 하나는 흥사단에서 도산 사상을 전국에 펼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상계>는 장준하씨를 만나 김성한(소설가), 김준엽(전 고려대 총장)과 함께 했는데 내가 주간 및 편집인을 하면서 함석헌 선생과 유달영 선생을 필진으로 참여시켜 함석헌은 ‘한국기독교 무엇을 하고있나’를 유달영은 ‘인생노트’를 연재하여 일약 사상계의 주가를 올려놓았었지요.“
안병욱 교수는 처음에는 도산이 누구인지도 몰랐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산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산은 뛰어난 선각자로 5가지에서 위대한 사람이라고 보는데 첫째 독립운동 정치가요, 둘째 오산학교 등 세 개의 학교를 세운 학교 설립가요, 셋째 뛰어난 웅변가요, 넷째 훌륭한 문필가요, 다섯째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도산은 흥사단을 비롯 청년학우회, 공립협회 등 무려 15개의 단체를 조직한 조직의 천재였어요. 그의 사상은 중추적 지도층을 이루는 창조적 소수 곧 역사의 창조 소수를 키워내려 했던 것이지요. 안중근이 세운 진남포 삼흥학교의 흥국(興國), 흥민(興民), 흥사(興士)의 정신과도 같은 것이지요.”
안병욱 교수는 요즘도 집필과 강연을 쉬지 않으신다. 젊게 사시는 분이지만 그래도 연세가 있으셔서 건강이 염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건강 유지를 하시느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매일 산보와 체조를 합니다. 산보는 아차산길을 돌아오고, 체조는 집에서 합니다. 건강비결이라고 하면 예로부터 오과(五過)를 피하라고 했어요. 곧 과음(過飮), 과식(過食), 과로(過勞), 과색(過色), 과욕(過慾)을 피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지나치지 말라는 것으로 인생의 근본은 원칙과 정도와 순리대로 분수에 맞게 살 때 건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신다.
이당(怡堂) 선생의 저서는 50권에 육박한다. 1957년부터 숭전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58년에 <현대사상>, 59년에 <키르케고르>를 내셨고, 그 후로 매년 1권에서 2권의 책을 내셔서 지금까지 46권을 내셨는데 곧 1권이 더 나올 것이라고 하신다. 그 많은 책 중에서 그래도 더 애착을 가지시는 책은 어떤 책일까?
“지금까지 46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애착을 느끼는 것은 처음으로 책으로 냈던 <현대사상>(1958.영신문화사)이 있고, <도산사상>(1970.대성문화사)과 <휴머니즘>(1969.민중서관) 그리고 최근에 자유문학사에서 내서 10만부가 넘게 팔린 <인생론>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이 <인생론>은 내가 ‘민족 앞에 보내는 유언서’로 쓴 글입니다.”
1981년에 낸 30번째의 저서인 <운명과 자유의 교향악> 후기에서 이당은 ‘인생은 운명과 자유의 조우(遭遇)다. 산다는 것은 운명과 자유가 서로 만나서 다양한 드라마를 전개하는 것이다. 인간은 너와 나와의 만남의 존재인 동시에 운명과 자유의 만남의 존재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당은 운명과 자유를 순리로 보았고, 진실과 양심도 인간에게 있어선 물 흘러가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 보았다.
안병욱 교수의 좌우명은 ‘입지덕행’(立志德行)이라 했다.
“옳은 뜻을 세우고 착하게 살자’는 뜻인데 목표가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입니다. 저마다 자기의 천분(天分)과 적성에 맞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려고 분투 노력할 때 인생의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뜻을 세우고 덕을 쌓아야 합니다. 덕은 인간이 갖는 최고의 재산이요 최대의 힘입니다.”
조용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말씀 속에서 어느덧 나 또한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며 살아갈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여쭤 보았다.
“지금 82세이니 90세까지 산다는 목표를 세우고 책을 몇 권 더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서예전람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창조적 자기표현입니다. 화가는 그림으로, 가수는 노래로, 기업가는 사업으로, 배우는 표정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표현이 자아실현, 자아 완성을 이루고 동시에 사회에도 공헌하는 것입니다.”
저녁 10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면 일어나 글을 쓰신다는 안병욱 교수, 글은 그렇게 가장 맑은 정신인 때인 아침에 써야 좋은 글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T.V를 자주 보시느냐고 했더니 ‘왕건’을 재미있게 보고 있고, ‘아줌마’라는 드라마와 뉴스를 보신다고 했다.
“바르게 산다는 것은 진실하게 사는 것이요,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보람있게 사는 것이요,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올바른 목표와 확고한 신념과 부단한 노력 이 세 가지의 원리를 가지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면 누구나 승리하는 인생, 성공하는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은 3남1녀를 모두 출가시키시고 지금은 두 분이서만 살고 계시지만 집안 가득히 넘쳐나는 훈훈함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는가를 넉히 알게 하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어 드리마고 같이 앉으시라고 했더니 사양하시는 사모님의 모습이 오히려 더 정겨워 보인다. 서예가로써도 이름이 나신 이당체의 작품들이 벽에 걸려있어 분위기를 경건하게까지 해 주는데 김성한 선생이 짓고 교수님께서 글씨를 쓰셨다는 장준하 선생의 묘비명을 읽어 주시는데 이런 글을 명문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 가득 감동으로 몰려들었다.
시간은 흘러 드리워진 커텐 너머로는 저녁 어스름이 다가오는데 일어서 나와야 할 내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건 아무래도 더 말씀을 듣고싶은 내 과한 욕심 때문인 것 같다. ‘明心和氣’(명심화기)라는 글을 쓰셔서 건네주시는 에세이집 <후회 없이 살아라>를 받아드니 선생님이 지으신 ‘나의 인생시’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이 유독 큰 글자로 다가온다.
‘나는 인생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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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합니다.‘
과연 요즘을 사는 우리는 얼마나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있을까.
(한국문인4.5)/隔月刊 <새천년 한국문인> 2001년 4.5월호 한국문인 인터뷰
안병욱(安秉煜)
호는 이당(怡堂). 1920년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사 주간 및 편집인. 숭전대 철학과 교수 지냄. 현재 숭실대 명예교수. <현대사상>, <키르케고르>, <도산사상>, <파스칼 사상> 등과 <사색노트>, <행복의 미학>, <인생은 예술처럼>, <안병욱 인생론> 등의 사상집 및 수필집 46권이 있음.
주소 : 서울 광진구 광장동 145-8 워커힐@ 32동 203호 (445-2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