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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서예협회(한국서예협회 부산광역시지회) 원문보기 글쓴이: 필묵가락(수산 이종균)
서예는 숨을 쉬는가? 이 종 균 (현대서예분과위원장)
서예는 안방문화의 굴레 속에서 시간적, 공간적, 개념적으로 확장되면서 소통의 영역과 소비자, 소장자의 시야도 꽤 변하고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 속에서 서예가 다른 정신문화의 영역과 구별되는 특성은 서예가 서예일 수 있어야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창조와 모방이라고 한다. 옛 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새로운 것이 꽃 피고, 뿌리로서 소중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王羲之도 왕희지 한 사람으로 족하고 秋史도 추사 한사람으로 족하다. 옛 것을 잇는다고 하다면 할 말도 없으나, 허구한 날 남의 것을 베끼고 흉내만 내어 과연 이루면 얼마나 이루겠다는 말인가?
추사김정희 作 왕희지의 집자성교서
“서예는 왜 하는가?” 라는 원초적인 물음을 접하게 되면 “묵향이 좋고, 붓과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된 그 경지가 좋아서...” 라고 들 하지만 그것은 초심자에게나 어울릴 이야기고, 조금 더 나아가서는 “자기개발과 정신수양(精神修養), 정서함양(情緖涵養)”을 위해서 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좀 더 고매한 경지와 고요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고, 서예에 이루어낸, 진정한 藝術의 魂에서 나는 향기를 이웃들에게 까지도 기쁨을 전해줘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시대, 디지털 시대인 현대사회에서 예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서예에서도 힘든 과도기(배우려고 하는 학생이 없고, 저 출산으로)를 격고 있는 그 원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공모전의 굴레
서예는 유독 공모전(公募展)의 틀에 묶여 그 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모전 요강에는 문화예술의 계승발전과 참신한 신인 발굴 등으로 나열하고 있으나, 그 속을 들어다 보면, 소위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작품 몇 십여 점을 모아 출품시키면서 심사, 운영위원이 되고, 그들이 공동 모의하여 상건에 올려놓고 나누어 가지는 현상이다. “상금사냥” 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즉, 상금만 노리고 출품한 것이니 그 외의 출품자들은 안중에도 없다. 어쩌다 選안에 든 참신한 신인의 작품을 우리는 볼 수 있듯이 상건에 있는 작품보다 좋은 작품이 많으나 줄이 없고 錢과 빽이 없어서 수작이 못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 뿐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초대작가가 되다보니 초대전 등에 작품을 내기위해서는 여전히 선생의 체본에 의존하는 실증이다. 이리하여 이곳, 저곳 수많은 초대작가가 배출되어도 창작발표는 없고 경력 란에 00공모전 00상 등으로 나열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폐단을 막을 길은 공모전 수상작가에게 다음해 대전 때에 입상작 함께 전시(개인전)를 하게 한다든지, 해외 문화체험 및 해외교류전등에 초대작가와 함께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하여 더 넓은 안목을 키우고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이다. 예를 들면, 문학의 한 장르에서 詩로써 등단하면 몇 년 동안 몇 편의 시를 발표하고 워크숍에 참여하는 등 활동이 없으면 박탈하는데, 서예는 초대작가가 되어도 창작발표(개인전)한번 없다는 것은 서예 발전과 미래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2.지금 21세기 디지털 시대다.
21세기 지금은 우리는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오늘날 많은 서예가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하면 구속된 유형의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이미 박물서예는 규정된 틀을 따라잡기에만 급급하다보니 정작 해체적 가능성을 상실해왔었다. 과거에만 얽매인 답습의 결과로 나타난 고립감은 당연히 서예가들이 벗어나야만 하는 당면 과제다. 그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탈출구는 展(공모전)에서 부터 복제를 복습하기보다는 창작의 예술로 이끌어 갈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Love(사랑이여) 즐거움(樂) 글씨그래픽(언론매체) 퍼포먼스 일부
일상생활이 주택에서 아파트 문화로 바뀌고, 공간 창출의 여백이 변했는데도 서예를 굴레 속에 묶어 놓고 놓아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지 않는가? 이젠 현실에 맞는 생활의 서예로서 친근감으로 누구나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고 창작적인 연구가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 역시 키노아이에서 키노브러시시대로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의 움직임은 물론 음악과 함께 형상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입체적으로 생동감을 나타내고, 디지탈 그림(액자)에서는 그림의 계절에 따라서 새, 나비 날아들기도 하고 꽃이 피고, 지기도 한다. 그 바탕에는 백남준이라는 디지털 아트작가가 있었기에 미술의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고 발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또한 붓글씨, 사군자를 플래시로 광고하는 것을 인터넷이나 다른 영상매체(TV, 광고. 언론매체)등에서 많이 보기도 하고 접하고 있다. 이는 서예적인 손 글씨에 Calligraphy body(서체폰드), Comm ercial art(상업예술)등이 가미되어 가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일반적인 작품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의뢰할 때는 원하는 구도에 맞게 구성, 주위환경, 친근감 등이 나타나고 표현의 함축성이 있어야 하고 또한, 의뢰자와 몇 번의 수정과 미팅을 거쳐야 완성의 결과물이 탄생되어 그 쓰임에 효과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꾸준한 노력과 개발과 쉼 없이 연구하여야 만이 그 결과의 성과물들을 우리 곁에서 볼 수가 있고 접할 수가 있을 것이다.
3. 이젠 연예인처럼 팬이 필요하다.
Pan(팬)은 경기, 연예, 인기인 따위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며 열렬한 애호가 이다. 이 시 대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찾아오는 이는 없다. 속담에 의하면, 가을 감나무 밑에 갓을 대고 있으면 홍시가 갓 속으로 떨어질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홍시가 내 입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열심히 움직이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매체를 활용 하여라. 서예에는 연예인처럼 팬이 왜 없는지? 왜! 팬이 필요 할까? 잔치를 벌였는데 그 잔치를 함께 할 사람 없이 혼자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작품전을 열었어도 감상자와 구매자가 없으면 그 전시는 의미가 없다. 주위에 지인이나 가족뿐이고 작품을 관람할 자나 구매자가 없으니 낭패가 아닐 수가 없다. 내 돈으로 전시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아무리 좋은 전시(展示)라도 알찬 준비가 없기 때문이고 전시의 주제, 평론, 팜프렛(리플)등의 구성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전시를 평범한 ooo전, ooo작품전 등이 아닌, 보다 먹의 향기(필묵)가 묻어나는 강한 메시지로 한다는 던지, 팜프렛도 전문적인 디자인으로 꾸미는 것은 물론, 작가의 변과 평론 등이 들어가 있다면, 다음 전시(갤러리, 화랑)에 선정이 되기 쉬울 것이고, 초대전이나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 가격에 기준이 되어 지는데 도움 될 것이다. 간혹, 전시 제안을 받고 캘러리, 화랑측에서 6:4등으로 하자는 식으로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규약에 의거하여 평점으로 작품가을 결정되는 것이다. 작가가 모든 경비로 전시하고 판매하는 상황과 맞물려 일어나는 현상으로 외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좋은(資産) 서예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문제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작품에 내 색깔과 철학을 분명히 갖고 작품을 하여라. 내 작품이 얼마니 하기 전에 내 색깔과 철학이 있어야 하고 재료학과 작품가치성, 보존 등에 철저히 하여야 한다. 얼마 안가서 작품의 보존 상태, 색, 화선지 등이 변하고 하면 작가는 신뢰를 잃는 것이다. 그 가치보다 더 낫은 작품으로 하여야 구매자(소장자)가 또 갖고 싶은 맘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 끼리끼리 놀지 말고,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사귀라. 끼리끼리 논하기만 하면 꼬시래기(생선의 일종) 제살 뜯기에 불과 하니, 타 분야에 좋은 것을 있으면 얻어서 내 작품에 접목하고 연구하고 논하는 것이 좋다. 언론매체 문화부 담당자(기자)에게는 홍보효과를 활용하고, 갤러리 화랑의 큐레이터. 기획자와 관장들을 잘 사귀두면 전시가 하고자 할 때나 할 때에는 구매자(소장자)와 작가의 중개역할 및 대변을 하여 주니 최대한 활용하면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셋째, 팬, 후원회를 구성하라. 새로 개업한 음식점 한번 가보고 맛없으면 두 번 다시 안 가듯이 변함없는 작품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을 만들어라. 내 작품을 구매자(소장자)에게 관심을 갖고 활동사항(전시리플)등을 꾸준히 보내고 일부이지라도 작가와 만남의 장을 만들고, 展示(개인전) 때에는 전시장을 지키면서 작품설명과 감상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기본적인 팬 서비스라고 생각하라. 이런 것들이 다 나의 자산이 된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하는 작가에게는 켈렉션들이 구매, 중개를 하고 있으니 부지런히 활동하고 움직이면서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 등을 최대한 활용하라 몇 명의 작가들은 후원회가 구성이 되어 작가에게 창작지원과 함께 작품도 구매 한다는 것이다.
4. 작가들이여 깨어나라!
붓을 잡았다고 다 書藝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서예다운 서예를 행동해야 서예가 되는 것이니 장롱 속에 가둬둔 證書의 초대작가가 되지 말고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가 작가다움으로 진정한 書藝家일 것이다. 우린 진정한 서예를 안 가르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물고기를 잡는 법만 가르치고 낚는 법은 가르치고 않고 있다. 서체의 쓰기만하고 그 필의(筆意)의 의미와 시대의 역사, 그리고 사상, 개성을 저버리고 오직 공모전의 選(선)에 묻혀가고 또한, 창작할 수 있는 構圖(구도) 등을 감추어 버린다. 유식한 것처럼 꾸미지 말고, 중요한 것만 쓰면 될 것을 많은 글을 이해도 못 하면서, 오자(誤字)가 있는지도 모른 체 언제까지 남의 것만 훔치고 인용 하여 창작한 것처럼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시인도 아닌데 좀 못 지은 것이면 어떠한가? 묵향이 묻혀있는 내 작품인 것을 누가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일기처럼(한글) 간단한 내용이라도 내 것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명필(名筆)은 안 될지라도 서예가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진정한 서예가 되는 것이고 후대(後代)에 남을 작품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채근담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일시적인 쓸쓸함이 있을 뿐이나, 권세에 아부한 사람은 영원히 처량하다. 세상의 도리를 통달한 사람은 우주를 초월한 불변의 진리를 보고 죽은 뒤의 명예를 생각하니, 차라리 한때의 적막함을 택할지언정 영원토록 처량함을 택하지 않으리라.” 이 시대와 더불어 살아가고, 함께하는 한바탕 함박웃음으로 신나고, 멋지게 먹향기(筆墨)가 가득한 그 날을 위해 묵향에 묻혀 힘차게 달려 가보자.
~ " 한국서예 2010 제22호" 한국서예협회 분과별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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