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은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홉스 또한 17세기 당시 유럽 사회의 무질서를 종식시키고 계속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인간은 어떠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가.’에서 출발하여 ‘국가 권력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 문제로 나아가고 있다. 즉, 근대 자연법 사상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홉스는 인간 본성과 자연 상태에 대한 이론적 구성을 통해 국가 권력을 정당화하면서 근대적 권리와 의무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인민과 군주의 정당한 통제 관계를 제시하며 세계를 전망하고 있다.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쌓은 그는 국가를 거대한 괴물인 ‘리바이어던(Leviathan)’으로 상정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서로 잡아먹으려는 이리에 비유하면서 그 탐욕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로서 통치자와 피치자(被治者) 간의 ‘계약’을 제시한다. 탐욕스러운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공포를 규제할 수 있는 대상이 곧 국가인 ‘리바이어던’인 것이다.
2. 홉스의 인간 본성관은 어떠한가?
홉스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정념(情念)은 ‘욕구’와 ‘혐오’로 이루어지고 여기에서 인간 행동의 기본적 원리가 나온다. 홉스는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심리와 행동을 분석해 냄으로써 인간 행위의 법칙을 밝히고 안정된 사회가 가능한 조건들을 체계화하고자 하였다. 그는 ‘욕구’와‘혐오’라는 단순한 심리적 장치로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즉, 모든 인산 행위의 생물학적 원리는 ‘자기를 보존하고자 하는 힘’이며 자기 보존은 생물적 존재의 지속을 의미했다.
이러한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힘을 무제한으로 추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공권력이 없는 평등한 상황에서 상호 불신과 공포(두려움)는 힘에 의한 자기 보존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두려움)’는 자연 상태에서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감정인데, 이러한 공포 때문에 겸허하게 자신의 한계 내에서 안락을 즐기려는 사람들조차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증대시키게 된다.
홉스는 이처럼 인간 존재를 기계적으로 끊임없이 운동하는 자연물의 중의 하나로 보기 때문에 자기 보존은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힘의 추구’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자연물이 운동하거나 힘을 추구하는 것은 목표점이 없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욕구에서 욕구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지극히 이기적이고 비사회적이며 자기 보존의 욕구에만 충실할 뿐, 타인과는 본능적으로 ‘경쟁’과 ‘투쟁’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 분쟁을 유발하는 원인은 ‘경쟁’, ‘불신’ 그리고 ‘영광(지배)’ 등으로 이러한 것들만 존재하는 자연 상태는 결국 전쟁 상태가 되고 그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이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때 인간은 적나라한 폭력을 경험하면서 평화를 지향하게 되고 이성에 의해 타인과 ‘동의(同意)’를 하게 된다. 이성에 의한다는 것은 바로 자연법의 발견이고 이 자연법은 인간들이 전쟁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보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원리가 된다.
3. 홉스의 자연법 사상과 사회 계약
자연 상태를 종시시키고 시민 사회의 평화로운 상태로 넘어오게 만든 것이 바로 자연법이다. 홉스에게 자연법이란 이성에 의하여 발견된 계율, 또는 일반 법칙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권을 침해하거나 자연권에 제한을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욕구, 힘의 확장의 욕구를 최대한 달성하고자 하는 법칙이다. 즉 홉스에게 이성 능력이란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의 도구적 합리성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자연법에 따르면, 결국 자연 상태에서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서로를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이것은 자기 보존을 위한 무한한 힘의 추구라는 권리를 포기하고 상호 양도하는 ‘사회 계약’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개인들의 집합에 불과한 시민 사회에서 계약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점을 증명할 수 없어서 국가라는, 강제력을 독점하는 ‘거대한 괴물(리바이어던)’을 상정하게 된 것이다.
리바이어던의 본질적인 특징은 국내외의 평화를 지키고 회복하는 데에 필수적인 독점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홉스는 이러한 독점권이 신민들에게 분할되거나 양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절대 국가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도덕적인 우월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고, 목적은 인간의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의 보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권자는 자연법에 의해 ‘신민의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고 신민 또한 폭력의 공포로 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국가 권력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국가’는 질서의 유지자로서 ‘계약’에 의해 창조되고, 인민은 그 국가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점이 홉스의 사회 계약 원리이다.
4. ‘리바이어던’의 사회 계약적 의의
봉건적 질서가 해체되고 모든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독립한 자율적 실체가 되었을 때, 개인들이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답이 바로 근대의 『사회 계약론』이라고 할 수 있다.
홉스의 사회 계약론은 물리적 힘이 자연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지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의 권리의 동등성은 물리적 동등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홉스의 사회 계약론은 존재론적 개인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들은 사회를 단순히 개인의 집합으로 간주할 뿐 아니라 사회의 성격 또한 개인의 성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 자유주의가 존재론적 · 도덕적 개인주의를 자신의 뿌리로 삼고 있다는 것은 곧 사회나 어떤 사회적 집단보다도 개인에게 더 높은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며 개인의 권리와 요구가 우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홉스에게 사회 계약이란 자기 보존이라는 최고선(最高善)의 관점에서 목적 · 수단 관계를 효율적으로 계산한 도구적 합리성의 결과이며 결국은 ‘국가(리바이어던)’라는 지배 장치에 의존하는 시민 사회의 모습을 만들게 된 것이다. 홉스의 사회 계약에 등장하는 국가가 근대 국가의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권리 이론에서는 근대적 권리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권리를 외부적 힘에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양도라는 ‘계약’에 의해 국가와 인민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홉스(Thomas Hobbes ; `1588~1679)』는 1588년 4월 5일 영국의 가난한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기 문법 학교에 다니면서 르네상스적 교육을 통해 라틴어와 희랍어를 능숙하게 익히게 된다. 16세기와 17세기 유럽에서의 이러한 재능은 하층 계급 소년에게 사회적 출세의 구단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귀족 가문의 입주 교사로 채용되었는데 이것은 가족의 유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과 많은 제도들로부터 그를 격리시켜, 급진적이고 독특한 지식을 형성하게 하였다.
홉스는 1640년 말에 ‘철학의 여러 요소’를 기점으로 ‘자연법과 정치법의 여러 요소’, ‘법의 여러 요소’ 등을 통해 ‘자연법’의 원리를 핵심으로 ‘법’의 요소들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홉스가 ‘리바이어던(Leviathan)’을 저술한 것은 지병으로 기력이 쇠진해졌을 때였는데, 1651년 출간되면서 영국 내의 ‘왕정주의’라는 대의명분을 배신하는 글이라고 비난받게 된다. 특히 정통 신학에 대한 배반이라고 여겨지는 무신론적 언급은 대단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 이후에도 홉스는 ‘영국 보통법에 관한 철학자와 학생의 대화’, ‘이단(異端)과 그 처벌에 관한 역사적 담론’, ‘거대한 야수’, ‘교회사’를 통해 영국의 보통법에 관한 훌륭한 논의를 제시하였다. 그는 1679년 병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인간의 자기 보존 속성과 주권자의 권위 그리고 이단(異端)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를 정리하였다.
멩이 생각 :
홉스의 인간관은 성악설에 기초한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욕망기계의 모습은 법가의 강력한 국가와 법의 요청에 같은 맥락의 전제가 된다. 한참 식민쟁탈전과 상업자본주의적 약육강식이 팽배한 유럽의 정치 상황에서 나온 정치론답다. 그런 그가 국가의 필요성을 가정된 사회계약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구약성경의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서 따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국가는 선의의 기능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한 개인에 대한 폭력 행사를 함으로써 괴물로 군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가 의도하지 않는 통찰일까? 아니면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은 하되 위험도 경계하는 의미에서 리바이어던이라는 말을 쓴 것일까? 불가피하게 괴물을 필요악이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내가 읽는 것은 보수주의 철학자의 나약함이다. 양심과 도덕적 요청에 의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벌어진 현상을 전체로 해석하고 인간과 사회를 규정한 것이다. 다양한 경우와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그는 유럽형 국가를 합리화하고 이상화하였던 것이다. 그가 인디언이나 기타 부족의 국가 아닌 도덕에 의해 조정되는 사회를 충분히 접했다면 결코 국가를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국가는 개인을 억압하는 현실적 잠재적 괴물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