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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스크랩 리영희 프리즘; 고병권 외 9인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7 11.01.20 13:4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리영희 선생님을 알게된 것은 내가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장교 한 분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집 서재에 꽂혀있던 '역정'이라는 책, 그 분은 내게 체 게바라 평전과 함께 그 책을 건네며 한 번 읽어보라 하셨다.  그 후로 내 머리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느낌과 동시에 급속도로 일어나는 화학반응마냥, 순식간에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2002년의 겨울, 혹한기 훈련기간의 D형 텐트 안에서 렌턴불에 비추며 읽어내려갔던 '전환시대의 논리'는 70-80년대의 선배들이 말하는 '머릿속의 지진'이나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사고체계가 거세게 변화하는 기분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책이었다.  

 

  '사상의 은사'라는 단어는 이제 선생님에게는 너무 진부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나도 그런 단어를 쓰지 않으려 한다.  사실 선생님은 어떤 사상이나 주의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진실만을 파헤치려 노력하였고 그렇게 파헤친 진실을 바탕으로 글과 말을 전한 것 뿐이었다.  진실 자체가 사상이 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진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 진실을 은폐하려하거나 추구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반작용에 따른 현상일 뿐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일 자체가 사상적으로 이해되는 사회, 그것은 권력에 의해 진실은 은폐되고 대중은 조작된 여론에 의해 선동당한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동안 우경화되고 진실은 차단당한 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 환경속에서 리영희를 찾는다는 것은 사상적 범죄이자 그를 사상적 우두머리로 만드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삶의 대부분의 기간을 온갖 고초속에서 살아야만 했었고, 학생운동을 하다 붙잡힌 이들이 그의 책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법정에 서야만 했었다.

 

  냉전의 논리는 힘을 잃어가고 자본은 뒤를 이어 세상의 권좌에 앉았다.  과거의 시대를 관통한 거목은 얼마전 영면하셨다.  마치 하나의 흐름이 마무리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만도 한데 나는 아직 리영희 선생님의 존재감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다른 선생님이었고, 인간다운 사람이었던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아쉬움을 넘어 꼭 지탱해주었으면 하는 탄탄한 기둥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리영희 선생님이 수많은 저서에서 이야기한 진실과 진실에 기초한 그의 이야기들은 아직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꼭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 자본은 자본 자체로 군림하지 않고 냉전시대에 형성된 왜곡된 사회구조가 근간을 이루며 자본이 더욱 탄탄히 군림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과 글은 지금도 여전히 새롭고 충격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선생님의 타계소식에 마음이 무덤덤하기만 했었다.  이후 사두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선생님의 팔순을 기념하여 출간된 이 책을 부랴부랴 꺼내들고 읽었고, 독후감을 쓰려 인터넷에서 그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고 서재에 꽂혀있는 그의 책들을 둘러보는데 문득 더 이상 기사를 볼 수 없었고 책을 펼쳐볼 수가 없었다.  어느덧 불안해진 눈시울이 어느 순간 쏟아져 내릴 듯 해서였다.  뒤늦게 써내려가는 이 글 역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헤집는데 도저히 차분해질 수 없었다.  처음 만난 선생님의 책이 나의 뒤통수를 칠 때처럼 선생님의 타계 역시 나에게는 외상없이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 사건이었을까?  늦게나마 선생님의 평온한 영면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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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1.20 14:24

    첫댓글 민욱아빠덕분에 사고 싶은 책들이 또 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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