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 명백한 운전자 과실 주장
한 동안 잠잠했던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급발진 원인이 여전히 풀리지 않으면서 급발진 피해자들은 아무런 대책조차 찾을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경기도 양평에 사는 이시자 씨(62)는 최근 구입한 지 1년이 지난 르노삼성자동차 SM5를 타다 급발진 사고를 경험했다. 오르막에서 오른쪽으로 회전을 시도하던 중 갑자기 굉음과 함께 차가 앞으로 돌진, 6m 전방의 나무에 부딪쳤다는 것. 이 사고로 에어백이 터지며 이 씨는 가슴을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게다가 사고가 난 지점에서 불과 15m 떨어진 곳이 계곡이어서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급발진 현장의 사고차
-제조사, 현장 보고 운전자 과실 결론 내
이 씨는 사고 후 제조사에 원인 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조사는 사고 직후 현장 조사에서 주저 없이 ‘운전자 과실 100%’라는 결론을 냈다. 이 씨에 따르면 르노삼성은 차가 급발진 했다면 노면에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흔적이 없다는 이유로 운전자 과실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이 씨의 주장은 다르다. 급발진과 동시에 불과 6m 떨어진 나무와 부딪쳐 에어백이 터졌는데, 6m 거리에서 에어백이 터질 만큼 가속이 될 수 있느냐는 것. 게다가 제조사가 조사를 나오기 전 현장에 비가 내렸고, 그 영향으로 흙길 위의 타이어 흔적은 사라져버렸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나무를 들이받은 후에도 계속 바퀴가 헛돌며 땅을 파고 들어간 흔적을 들어 급발진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럼에도 제조사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외면한 채 타이어 흔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자 과실로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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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멈춘 상태에서도 계속 회전했다는 타이어 좌우 표면.
운전자, 정지상태에서도 바퀴 계속 회전 주장
사고 후 이 씨는 나름대로 여러 경로를 통해 급발진 사고에 관한 소식들을 수집했다. 그 결과 현재 국내에서 급발진으로 보상을 받거나 법률적 구제를 받은 사례는 단 한건도 없음을 알게 됐다. 그러나 자동차회사의 경우 소비자가 ‘급발진’이라고 하면 원인 규명을 위한 노력은 뒤로 한 채 무조건 운전자 탓으로 돌린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소비자가 어떻게 급발진 원인을 파악할 수 있겠냐”며 “자동차제조사가 단 한 건의 급발진이라도 원인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차를 위와 옆에서 바라본 모습. 앞 부분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이 씨가 제조사에 분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씨는 르노삼성측에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인정할테니 성실하게 원인규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제조사는 사고차를 견인, 조사보다는 수리를 통해 서둘러 일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는 게 이 씨측 주장이다. 결국 이 씨는 차를 건네주지 않았고, 현장은 지금도 보존되고 있는 상태다.
이 씨는 “책임 있는 조사결과를 통해 운전자 과실이라고 하면 인정하겠다”며 “그러나 조사 전부터 운전자 과실로 결론을 지어버리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원인이 없는 현상이라고 언제까지 급발진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사고현장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피해자
사실 급발진 문제는 비단 이 씨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때 대법관은 물론 유명 배우도 급발진 피해를 경험했고, 이에 따라 정부가 직접 앞장 서 원인 규명을 위해 노력했지만 다양한 시험에서 급발진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 전자파에 의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강력한 전자파를 보내기도 했지만 실험은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고차의 페달과 사고 후 실내.
그럼에도 급발진 현상은 여전히 언론을 통해 종종 보도되고 있다. 심지어 아파트지하 주차장 CCTV에 급발진하는 차의 브레이크 램프가 선명히 보이지만 종횡무진 주차장을 휘저으며 다른 차와 부딪치는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원인은 모르지만 분명 운전자 과실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은 셈이다.
이에 대해 한 자동차전문가는 “급발진은 어떻게든 원인을 규명해 내야 할 과제"라며 "자동차회사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피해자 이 씨 또한 “당장 원인을 찾지 못한다고 자동차회사가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이는 제2의, 제3의 피해자가 분명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사고 또한 앞으로의 예방 차원에서 제조사의 책임 있는 원인 규명 노력이 촉구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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