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4 주일설교
전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
(행 8:1-13)
침체 이유는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나는 비염 때문에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몇 번 갔는데 효과가 좋아서 언제까지 다니면 되느냐고 했더니 120일 동안 다녀야 한다고 했다. 병원이 상당히 먼데 왜 120일이나 와야 하느냐고 했더니 120일이 지나면 몸속의 적혈구다 다 바뀐다고 했다. 사람의 몸속에는 피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 피가 120일이 지나면 죽어서 소화 효소로 바뀌어 배설된다. 그러나 우리 몸에서 피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서 피가 부족하지 않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침체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진단을 하고 있지만 나는 교회 침체의 주된 이유는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서 피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처럼 교회도 전도하면 침체되지 않는다.
어떤 분은 교회 침체의 원인을 기독교의 윤리적 타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가 윤리적으로 타락하는 것도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분열 되는 것, 이단이 득세하는 것 등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오늘날 아토피와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아토피는 회충이 없어지면서 생겼다. 항체가 싸워야 할 적이 사라지자 자기 몸을 공격해서 생긴병이다. 몸 뿐 아니라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외부의 적과 싸우지 않으면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게 된다.
교회가 사탄과 싸우며 불신자를 전도하지 않으면 변질되고 분열한다. 그러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사탄과 싸우면 타락의 문제도 이단과 분열의 문제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성도들은 누구나 전도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전도하지 않는 이유는 오해 때문이다. 지금은 전도할 상황이 아니다, 전도할 마땅한 대상이 없다, 아직 전도할 자격이 부족하다고 오해한다.
초대교회도 그랬다. 순수하고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는 전도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해결도 우리의 해결이 될 수 있다.
1. 지금은 전도할 상황이 아니라는 오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자 예루살렘에는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성도들은 날마다 모여 말씀을 배우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전도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한번 설교하자 3000명이 회개하고 또 못 걷는 사람을 고쳐주고 나서 5000명이 예수 믿게 되었으니 전도할 필요가 없었다.
사도행전 1:8에서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은 자발적으로 증인이 되라는 명령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복음을 전하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 후 예루살렘교회에 박해가 시작되었다. 성도들이 마구 잡혀갔다. 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달아났다. 그리고 흩어진 그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 전도하러 가지 않던 성도들은 박해를 당해서 흩어져서 전도했다. 사도행전 8:1은 1:8의 성취이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다. 주일이면 시장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들은 평양 밖으로 전도하러 가지 않았다. 그러다 6.25 전쟁이 일어나서 평양의 성도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왔고 흩어진 곳에서 열심히 전도했다.
우리가 계속해서 전도하러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강제로 전도하러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떠밀려서 전도하러 가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전도하는 것이 훨씬 아름답고 복되다. 지금 내가 전도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고 전도하는 성도가 되어라.
2. 내 상황이 좋아야 전도할 수 있다는 오해
많은 성도들은 내 상황이 좋아야 전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이 어렵거나 몸이 아프거나 남보다 낮은 위치에서 전도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한다. 종업원보다는 사장이, 학생보다는 선생이, 환자보다는 의사가 전도해야 효력이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더 나은 자리에 있어야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요즘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전도하면 오히려 갑질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한 번 갑질 논란에 휩싸이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셰익스피어가 21세기에 산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윗사람이니라.”
예루살렘에 박해가 있어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도망을 간 사람들은 무섭고 창피해서 숨죽이고 지낸 것이 아니라 거기서 전도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도하면 너처럼 될까봐 안 믿겠다고 할 것 같지만 사마리아의 많은 '무리가' 그 복음을 믿었다(6절).
사람이 살다보면 원치 않는 어려운 상황이 될 때도 있다. 사업하다가 어려워서 감옥에 가면 다른 죄수와 간수에게 전도하면 된다. 어쩌다 아파서 입원하면 다른 환자와 의사/간호사에게 전도하면 된다. 예수 잘 믿으면 복 받아서 건강해야지 왜 입원했느냐고 할 것 같지만 복음은 상황을 뛰어넘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 않았을 때 전도하면 더 좋다.
이스라엘의 한 소녀가 아람군대에 잡혀가서 나아만 장군의 하녀가 되었다. 그 소녀는 장군이 나병에 걸린 것을 보고 엘리사를 소개해서 나아만 장군은 고침 받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가 부끄러운 상황이 되어도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을 때도 한 쪽 강도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내가 부끄러운 상황에서 전도하면 아무도 안 믿을 것 같지만 그러나 택함 받은 사람은 구원받는다.
사막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다.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숙녀가 곱게 빚은 유리 주전자에 물을 담아 깨끗한 유리잔에 부어서 준다면 그는 기뻐하며 물을 마시고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찌그러진 깡통에 물을 담아서 건네줘도 그는 기뻐하며 마시고 살아날 것이다. 만일 내가 남루한 상태라고 물을 주지 않는다면 지독하고 나쁜 사람이다. 죽어가는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이지 전해주는 사람의 상태가 아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어도 복음을 전하면 복음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힘이 있다.
여러분은 지금 돈이 많거나 적어도, 나이가 늙었거나 어릴지라도, 직급이 높거나 낮아도, 교수이거나 학생이거나 혹은 재수생이거나, 의사이거나 몸이 아픈 환자이거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라.
3. 나와 친한 관계만 전도할 수 있다는 오해
당시 사마리아 인과 유대인은 수 백 년 동안 원수관계로 지내고 있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생각해보자. 예수님이 누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냐고 물을 때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하기 싫어서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했다. 성도들이 사마리아로 달아난 것은 설마 사마리아까지 잡으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골이 깊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을까? 사마리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전하는 예수를 믿고 싶을까? 사람이란 친한 사람이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법이다. 그런데 복음에는 인간적인 차원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 사마리아 사람 중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이 있어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어떤 분은 관계전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상대방을 감동하게 한 후에 전도해야 된다고 한다. 우리는 할 수 있으면 불신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전도하자. 그러나 좋은 관계가 아니어도 전도는 해야 한다.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되면 그 영혼을 얻게 되고 그 후에는 친척보다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친한 사람만 전도하려고 생각하니까 전도할 대상이 안 보인다. 그러나 친한 친구라고 전도가 쉬운 것도 아니다. 어떤 친구는 같이 밥도 먹고 다른 부탁은 들어주는데 예수 믿자는 말은 듣지 않는다. 물론 그런 친구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며 전도해야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처럼 골이 깊은 사람에게도 전도하면 구원받을 사람이 있음을 믿어라.
어떤 분은 우리가 모범적으로 살면 굳이 전도가 필요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아무도 완벽하게 살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완벽하게 사신 예수님도 힘써 복음을 전하셨음을 기억하자. 우리가 아무리 모범적으로 살아도 전도는 반드시 해야 한다.
4. 전도가 될만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오해
사마리아 사람들은 질 떨어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시몬의 마술에 놀라고 열광하는 것을 보라.(9-11절).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니 그 시몬조차도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12-13절)
어떤 사람은 우리가 보기에 절대로 예수님을 안 믿을 것 같다. 저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전도하면 회개한다.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싫어서 도망가다가 물고기 배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요나가 억지로 니느웨에 가서 한 말이란 당랑 네 단어뿐이다. 사십일이/ 지나면/ 이 성이/ 무너지리라. 그런데 니느웨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TV에서 ‘코리아 헌터’라는 다큐를 좋아한다. 헌터들은 멧돼지도 사냥하고 장수말벌도 잡는다. 높은 산에 다니며 버섯도 따고 산삼도 캔다. 버섯 중에는 바위에 달려 있는 석이버섯이 있다. 석이버섯은 위험한 밧줄에 매달려 손으로 채취해야 한다. 그렇게 어렵게 따온 석이버섯은 비싸고 좋은 약재이다. 전도도 어렵게 했을 때 귀한 헌신자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 사도 바울같은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 있다. 종자연의 엘리트 스님이었던 이정훈 교수, 대광고등학교 문제도 사랑의교회 문제도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해 자기가 기획해서 이겼노라고 실토했다. 그랬던 사람이 CTS 방송을 보다가 회개하여 종자연의 계략을 폭로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정훈 같은 사람에게도 우리는 전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런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복음의 힘이다.
결론/ 전도하자
올해가 이제 석 달 남았다. 올해 안에 적어도 한명은 열매를 맺도록 소원하며 기도하자.
어제가 추분이었다. 본격적인 가을이다. 이 가을에 오곡과 백과가 영글고 있다.
가을에 곡식과 과일을 거두어 겨우내 먹고 내년 봄까지 살아야 한다.
만일 논의 벼가 전부 쭉정이 뿐이고 과수원의 나무에 과일이 없다면 우리를 배신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도의 열매가 한 명도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를 배신한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자. 같이 예수님 믿어 천국에 가자고 권하자.
상대방이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복음을 전하자. 열매가 생기든지 안 생기든지 전도하자.
지난 한 주간, 지난 한달, 지난 일 년 한 번도 전도하지 않고 살지 않았는가?
한 번도 전도하지 않으면서 요즘은 전도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헌터들이 산에 갈 때마다 산삼을 캐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산에 가야 산삼을 캘 수 있다.
교회 전도팀에도 동참하고 친구와 이웃에게, 안 믿을 것 같은 사람에게도 전도하자.
설교 끝나고 나서 제발 ‘목사님은 올해 몇 명이나 전도 열매 맺었느냐’고 묻지 말라.
열매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집에는 아들이 성적표 받아왔을 때 한 번도 야단친 적이 없다.
다만 시험 기간에 최선을 다해 공부 하도록 격려할 뿐이다.
올해 성탄절에 하나님이 이렇게 물으실 것이다. “너는 최선을 다해 전도했니?”
그렇지만 우리가 적어도 한명의 열매를 맺도록 소원하며 전도하자.
이제 함께 기도하자.
한 번도 전도하지 않고 사는 자신을 회개하자.
전도에 대해 여러 가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을 회개하자.
하나님의 간절한 심정을 이해하도록 기도하자.
최선을 다해 전도할 수 있는 열정을 달라고 기도하자.
적어도 올해 한명의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