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현실적으로 같은 노동시간에 대해 평등하게 같은 경제적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장밋빛(?) 주장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불가능하거나 현실의 복잡한 변증법적 변화과정을 거쳐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낼 지도 모르는, 지금은 상상하기 거의 불가능한 먼 미래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고작(?) 최저임금을 한 개인이나 가족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로 책정하고 인상하거나 영세 자영업자들이 가맹점 본부로부터 광고 및 판촉 비용을 떠맡지 않고 필요한 물품을 가맹본부로부터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장에서보다 비싸게 구매하지 않는 모습이 공정한 경제적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경제적으로 „공정한“ 거래를 하더라도 타인과 내가 맺는
사회적 관계도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문을 꼼꼼히 읽는 분들은 아마도 다들 아시겠지만 작년인가 어느
고급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경비원 할아버지가 어느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곰팡이가 핀 빵을 받았습니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선 곰팡이가 핀 빵을 먹으면 탈이 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텐데 그 주민은 경비 할아버지에게 막말을 하면서 그 곰팡이 핀 빵을
먹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곰팡이가 핀 빵을 먹으라고 던져 준 행위는 정말로 그 빵을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경비 할아버지로 하여금 모욕감과 굴욕감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쯤은 초등학생이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조현아가 일으킨 땅콩회항 사건도 이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갑을 관계, 즉 사회경제적인 우월한 신분(?)을 악용해서 자기 스트레스를 엄한 사람에게 풀거나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그것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따져보지 않고 제 맘대로 한다는
면에서 말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말도 안 되는 이러한 현상들 말고도 우린 일상에서 흔하게 공정하지 못한 사회적 관계 맺음의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즉 자기성찰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잘못이라고 깨닫지 못한 채 무비판적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홍세화 선생님께서
파리에 계실 때 쓰신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일화 속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홍 선생님이 고등학교나 대학생이실 때 경험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당시 버스요금으로 버스표나 현금을 받았던 어린 버스차장에게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느 젊은이가 „야, 거스름 돈 줘“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한 것을
보셨다고 쓰셨습니다. 기껏해야 몇 살 차이 나지 않거나 심지어 자기와 동갑일지도 모르는 버스차창에게 말입니다.
저는 그 일화를 읽고 나서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만약 그 버스차창이 고된 근무를
마치고 쉬는 날에 간만에 고운 원피스를 차려 입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그 대학생을 마주쳤고 그 대학생이 그녀에게 길을 묻게 된다면 과연
그는 그녀에게 함부로 반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상상 말이지요.
제가 독일에서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이런저런 밑바닥 노동을 했을 때 단 한번도 반말을 듣거나 무시 당하는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를 고용한 고용주나 매니저들도 저를 부를 때 제 이름 앞에 씨(氏)를 뜻하는 Herr를 꼬박꼬박 붙이면서 존댓말을 썼습니다. (참고로 영어와는 달리 독일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정확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치면
하층 노동자이고 심지어 얼굴색이 노란 외국인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단기 아르바이트인데다가 임금도 너무
적어서 경제적으로 항상 몹시 불안하기는 했지만 단 한번도 그로 인해서 모멸감이나 굴욕감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전에도 그랬지만 한국에 돌아와 보니 더 심해진 한국사회의 갑을 관계를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보면서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뜬금없는 말로 비칠지 모르지만 저는 독일에 유학을 간 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념에 바탕을 두고 세워진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회경제적 평등을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마르크스의 바람과는 달리 독재라는 정치체재도 모자라서 사회경제적 신분이
구분되는 해괴한 변종이 되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해괴한 현상은 인간의 탐욕 같은 한두 가지 변수로만 설명될 수는 없겠지만
저는 어느 날 문득 자기도 알게 모르게 정신과 몸에 배인 관습, 종교 그리고 생활문화가 갑자기 모습을 바꾼
사회에 살아남아서 그 사회의 기존 모습을 질기게 유지시키는 탓은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특히 그 사회에서 오랜
생명력으로 사회구성원들의 정신과 마음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이념, 이를테면 유교 같은 종교와 가부장제 같은
생활관습이 정신과 몸에 밴 사회구성원들에게 아무리 마르크스와 레닌의 사회주의 사상과 이념을 가르치고 받아들이라고 사실상 강요해도 그들은 그저 처벌을
받지 않으면서 그 체재가 제공하는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체재를 유지 강화하는 상층부 지배계층에게 최소한의 복종만 하거나 하는 시늉만 할 것이라는
좀 우울한 짐작 말이지요. 지배계층의 감시를 피해 조심스럽게 그들의 정신과 몸에 밴 종교 이데올로기나 생활윤리인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면서 말입니다. (32편에 계속)
오늘은 아주 오래 된 70년대 반전영화 <Deer Hunter>의 주제곡인 Cavatina를 들려드립니다. 꽤 오래
전에 저는 독일인 친구와 시위나 집회의 기능과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독일인답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리 애타는 마음으로 목소리 높여 집회나 시위를 해도 지배계층이나 기득권층이
그로 인해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집회나 시위는 하나 마나 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영화 디어 헌터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주장을 듣고 나서 저는 6,70년대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젊은이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역사에 대해서 상세히 모르기 때문에 섣부르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 당시
젊은이들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큰 무리를 이루어서 시위를 한 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베트남 전쟁을 그만두게 하는데 얼마만한 영향을 끼쳤을까
짐작해 보았는데 물론 제 주관적이고 막연한 짐작일 뿐이지만 미국이 베트남으로부터 철수한 이유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벌인 반전시위나 집회가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더 이상 베트남과 전쟁을 계속해 봤자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정치경제적인 판단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했습니다. 이런 짐작을 하자 저는 마르크스 이념에 따른 급격한 사회경제적인 장밋빛 변화가 아니라 디테일 속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현실 속 작디작은
모순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무력한 개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아주 우울하고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AAiYMgFcb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