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뜰에쉼팡>
전라도 기운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맛있고 푸짐하면서, 조리법과 양념에서도 전라도 깊은 맛이 난다. 식재료는 대부분 제주산으로 보인다. 보리쌀밥에, 고등어에 흑돼지에, 두부에, 그래서 푸질 수 있는 거 같다. 푸진 인심 위에 토속 깊은 맛이 다 느껴진다. 여행객이 아닌 마을 사람이 된 기분이다.
1.식당얼개
상호 :낭뜰에쉼팡
주소 : 제서도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343 (와흘리)
전화 : 064-784-9292
주요음식 : 한식
2.먹은날 : 2021.10.9.저녁
먹은음식 : 낭뜰정식 15,000원
3. 맛보기
모든 음식이 맛있다. 된장국만 빼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집밥이다. 특별히 토속음식을 찾으라면 흑돼지고기 정도이다. 일상적인 음식을 좋은 분위기 속에서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맛집이지만, 맛의 수위가 높다.
토종흑돼지. 고기도 쫄깃거리고 양념국물도 맛있다. 신선하고 탱글거리는 맛이 역시 다르다는 느낌이다. 독일 족발 슈바인학센을 팔면서 제주산 흑돼지로 사용하는 곳이 서울에 있다. 쫄깃거리며 잡내없이 상쾌한 맛이 중독성이 느껴질 정도다. 제주산 흑돼지의 진수를 보여준다.
아마 고등어는 제주산이 아닌 듯하지만, 맛만은 기름 자르르하게 잘 구워내 일품이다.
가지 반찬이 많이 올라오는 것도 제주음식의 공통점이다.
여기서도 무청나물을 맛본다.
두부가 투박한 맛을 내며 토속의 느낌을 준다. 콩이 많이 생산되는 제주, 쥐눈이콩은 특히 많이 생산되어 두부의 재료로 많이 쓴다. 된장을 양념으로 많이 쓰는 것도 콩 생산이 많기 때문, 두부의 투박한 맛이 푸진 콩생산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것같다. 비지에 브로컬리를 무쳤다.
치자맛이 나는 파전이다.
된장찌개. 제주 특유의 가벼운 맛이 난다.
보리밥. 제주도는 보리가 많이 난다. 쌀농사는 화산석 지반이어서 물이 고이지 않아 어려우나, 보리 농사는 비교적 용이하여 자급이 가능하다. 제주사람의 어릴 적 기억은 보리밥과 함께한다. 그중 가파도 청보리는 최고라고 자랑한다. 흑보리는 제주 특산품이라 한다.
쌀알이 드문드문한 보리밥이다. 거의 꽁보리밥 수준이다. 그러나 거칠지 않다. 탱글거리며 굴러다니는 느낌은 있으나 차진 보리밥의 식감이 아주 좋다. 보리밥만으로도 입맛이 돈다.
낭은 나무, 쉼팡은 휘는 곳이라는 말이란다.
4. 먹은 후
1) 제주 된장찌개 맛이 육지와 다른 이유
제주도는 콩이 주요 농산물인데, 이상하게 된장국이 맛있는 집은 찾기가 힘들다. 다 맛있다가도 된장국에서는 에라가 난 거같은 느낌이다. 먹어본 된장국 중에선 한라식물원 옆 <연지> 식당의 된장국이 제일 맛있었다. 그런데 이곳도 맛이 가볍다는 인상을 준다. 어디서나 육지 된장맛과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혹시 제주도가 메주발효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제주는 툭 트인 것이 발효식품의 고장 순창과는 완전 대조적인 환경이다. 산이 둘러치고 물이 맑고 흔한 곳이 순창이다. 섬진강의 지류인 경천, 사천, 양지천 등이 흐르는 순창은 물로 둘러쌓인 형국이다. 제주는 한라산이 중심에 솟아 있는 화산지대로 분지형 지형이 드물고 강이 흐르지 않는다. 육지 전체와도 전혀 다른 환경이다. 된장을 발효시키는 미생물 서식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가능한 가설이 아닌가 한다.
발효 환경 적합도보다 더 직접적인 답이 있다. 제주는 소금이 귀하다는 거다. 된장은 메주를 소금물에 띄워 간장을 만들고, 간장을 빼낸 후 메주를 으깨어 만드는 것이다. 간장을 빼내지 않은 메주된장은 토장이라 하여 양반가에서나 먹었다. 요즘은 일부러 토장을 만들어 먹고, 일부 대기업에서는 시판도 한다.
제주에서도 막장이라 하여 간장 빼지 않은 된장을 만들어 먹었다. 간장보다 된장의 용도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된장은 간장을 뺀 메주로 만들므로 짜고 진한 맛이 나는 것이 보통이다. 간장을 만들어야 하므로 메주를 띄울 때는 많은 양의 소금을 넣어야 한다. 제주는 그렇게 넣을 소금이 없었다.
제주도는 한라산에 내린 많은 비가 흘러드는 연해가 소금 농도가 낮고, 갯벌도 없어 소금을 만들기 어려우며, 따로 암염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해남 등 전남 남해안 지역에서 사와야 했는데, 척박한 제주땅에서 소금 수입이 용이할 리 없었다. 소금은 그야말로 금이었다. 음식 간맞출 소금도 귀한데, 된장에 다량의 소금을 넣을 수 없었다. 된장에 소금을 최소한만 쓴 것이 내림이 되어 심심한 된장에 길들여지게 되었다. 제주도 된장이 심심한 이유다.
심심한 것은 된장만이 아니다. 기본 밥상에 많이 오르는 찬이 갈치속젓인데, 이것도 육지와 다르다. 약간 달근한 맛이 나며 육지보다 염도가 떨어진다. 낮은 염도와 지형과의 관련 속에서 발효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제주도는 콩이 많이 난다. 주산물인 콩은 아무래도 된장을 만들어야 많이 소비할 수 있다. 짜지 않은 된장을 만들면 더 많이 먹게 되고, 다른 용도도 최대한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된장을 넣었다. 된장을 많이 넣으면 단백질 공급원이 되기도 했지만, 해물을 많이 쓰는 조리에서는 비린내도 잡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나물무침과 찌개는 물론 물회에도 쓰고, 냉국에도 쓴다. 이때는 물론 생된장을 먹는다. 생된장을 이렇게 많이 다양하게 먹는 곳은 육지에서는 찾기 힘들다. 생된장의 섭취가 제주도의 장수를 가져온 원인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된장을 이용하는 음식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제주이다. 실제 된장 섭취량 통계를 봐도 제주가 육지보다 2배 내지 3배 정도로 많다.(제주도, 제주향토음식, 2012년, 54면 참조)
된장을 이처럼 광범위하게 쓰는 또 다른 이유는 고추장이 귀하기 때문이다. 제주는 고추가 귀하고 고춧가루가 귀하고 고추장이 귀하다. 육지에서라면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요리에 다른 재료를 넣는다. 제주의 유명한 은갈치국은 고춧가루없이 호박을 넣는다. 육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다.
고추 재배는 최근에는 많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 전년에 비해 29% 늘어났고, 2019년에는 전년 대비 31.4% 증가했다. 고추 재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로 늘어왔으면 이제 제주도내 소비량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 고추장 조달은 되겠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된장이 들어간 물회가 갱거찝질할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예상과 달리 개운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제주물회에는 육지된장이 아니라 제주된장이 더 어울리는 것같다. 그런데 찌개는 제맛이 안 난다. 해산물을 사용한 물회까지는 육지 입맛을 잡을 수 있는데, 된장찌개에서는 그게 안 된다. 한국 된장찌개가 아닌 일본 미소시루에 가까운 맛으로 느껴진다. 된장이 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전 미소시루는 아니기 때문에 맛이 매우 애매하다.
제주도는 육지에 비해 일본과의 교류가 현저하게 많다. 많은 사람들이 취업을 위해 일본으로 갔고, 성공한 재일교포가 많아 제주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변시지 작품을 전시하는 기당미술관을 세워 기부한 기당 강구범도 재일교포사업가다.
상군 해녀들은 대마도나 동경으로 물질을 갔다 와서 밭 뙤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구한말에는 제주 해역에 일본 잠수기 어선이 들어오며 해물을 싹쓸이해가면서 일본어민이 제주로로 이주하기도 했다.(김준(2013), 바다맛기행, 자연과생태, 28~29면) 물질을 할 터전인 바당을 잃은 해녀들은 육지로 해외로 물질원정을 갔다. 제주 해녀 중 상당수는 일본에 반강제로 끌려가 일본 산업화를 위해 감태를 따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요즘도 제주 해녀의 채취물은 상당량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해녀의 영역에서도 일본과의 교류는 매우 폭넓게 오랫동안 이루어져왔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음식문화와의 교류도 육지보다 훨씬 밀접하게 이루어져 왔다. 제주 고기국수는 일본 오키나와소바와 유사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먹는 국은 미소시루가 대부분이다. 미소시루는 연한 된장국인데 미역을 주로 건더기로 넣는다. 미역된장국은 육지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데, 제주도 밥상에는 심심찮게 오른다. 된장국은 맛도 조리방법도 일본식과 많이 닮아 있다.
자연환경 덕분에 만들어진 제주도 고유의 심심한 된장이 일본의 영향까지 더해지며 제주만의 맛으로 정착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음식은 육지와의 혼합이 느껴지는데 된장은 다르다는 것다. 된장까지 육지것을 수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인 거 같다. 제주는 콩이 많이 나는 동네이므로 된장으로 소비해야 할 필요성이 육지 된장 수입 필요성보다 더 클 듯하다.
여행객은 육지의 된장 맛을 굳이 고집할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된장문화인 제주도의 맛을 그 자체로 즐겨야 할 것이다. 제주도는 자체적 된장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된장을 통해 육지와 일본을 잇고 있기도 하다. 제주도 된장으로 인해 된장 문화가 풍성해진 셈이다. 제주도 된장은 나아가 해산물 음식 문화와 일본 음식과의 관계 속에서 전체적으로 해명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2) 제주음식에 담긴 전라도 맛
제주도 음식을 가까이 보면서 떠오른 새로운 의문은 왜 제주에서 전라도 음식 맛이 나는지다. 흡사 어떤 때는 제주도 향토음식에 전라도 손맛을 입힌 거 같은 분위기마저 느낀다. 통영에서는 말한다. 이순신이 수군절도사가 되어 부임하면서 전라도 병사들을 많이 데려와 통영에서는 전라도 음식 영향을 받아, 맛있는 음식을 하게 되었다고.
음식문화가 전해지려면 첫째 해당문화권 사람의 이주를 필요로 한다. 중세 문화 교류는 대부분 사람의 이동으로 이루어졌다. 불교도 인도의 승려가 중국으로 갔고, 한국으로까지 와서 전파했다. 인도 승려 마라난타는 중국 남조 동진을 거쳐 백제로 들어와 불교를 전파했다. 마라난타는 이후 한국에서 생을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쌍기(雙冀)는 중국 후주(後周) 사람인데,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주저앉아 벼슬을 하고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해서 도입하게 하였다. 그는 958년 첫 과거에서 친히 지공거를 맡아 온전하게 과거제도를 전수하였다. 이후 과거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폐지되기 전까지 중세와 이행기에 한문문화 전수와 동아시아문화 공유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음식문화 도입에서는 1회적인 조리방법의 전파가 아닌 입맛의 전승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사람의 이주가 더욱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제주도는 호남인 이민이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온 곳이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특히 전남 해안지방에서 대량으로 이주했다. 현재 호남인의 비율을 20~30%까지 보고 있을 정도로 제주에서의 호남인의 비율은 매우 높다. 제주에 와서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세력은 호남향우회의 도움을 반드시 요청할 정도이다. 호남인의 이주가 제주음식에 전라도의 맛을 담아낸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정도로 우선 정리하고 장을 달리 해 다시 논하기로 한다.
#제주전라도음식 #제주맛집 #제주흑돼지 #제주두부 #제주된장 #제주된장찌개 #제주소금 #제주전라도맛 #일본미소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