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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東亞聯合新聞社 韓國支社 新春文藝 當選作
童話(동화) 當選作
<땅쁨이를 부탁해>
김 주 현
“맘대로 해. 난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테니까.”
콧바람을 씽씽 불며 처음으로 쌍심지까지 켜고 말했지만, 이미 전세는 기울어진 상태다.
“맘대로 하렴. 난 절대로 거기 가서 살아야겠으니까.”
자칭 타칭 슈퍼 울트라 엘리트맘인 우리 엄마가 처음 나에게 ‘귀농’을 말했을 때, 나는 왜 철없이도 맑은 공기, 지저귀는 새, 높은 산만을 떠올렸던 것일까.
“거기 살면 공부 안해도 되겠네?”
입가에 베시시 웃음까지 띄고 고개를 끄덕였던 그날의 나와 그런 나를 유심히도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 지금 나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가 있다면 고민하지 않고 외치리.
“시계바늘 타고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돌부처 같은 우리 엄마는 입을 열어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너의 그 맑은 웃음을 본 그때, 네 웃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귀농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지.”
굳은 결심으로 말하는 엄마를 보니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난 쇼파에 가서 널부러졌다.
“아아, 정말 나 이사가기 싫어. 엄마. 나 친구들이랑 헤어지기 싫다고! 게다가 시골이라니, 으아!”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라 이삿짐센터입니다! 지금부터 짐정리할테니 얼른 나가계세요.”
목청 큰 자가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진리였던걸까. 나는 찍 소리 한 번 못하고 비맞은 생쥐마냥 잔뜩 풀이 죽어 밖에 나가 쪼그리고 앉았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기저귀 차던 시절부터 친구였던 나의 베프 유정이, 꼬마때부터 골목골목 순회하고 다녀 동네 반장님보다 지리에 빠삭한 민수, 커다랗고 널찍한 운동장 속 조그만 나의 아지트, 초등학교 시절 내내 모아두었던 아지트 안의 보물들.
아, 이 모든 것들을 두고 내가 떠나는 날이 이리도 빨리 올 줄이야.
“자, 이제 출발하시죠.”
역시 목청 큰 사람이 이긴다는 건 변치 않는 진리임이 분명하다. 얄밉게도 엄마는 덩치 아저씨의 뒤에 쏙 숨어 이삿짐 센터 차로 올라탔다.
“지희야, 얼른 타렴. 아저씨들 기다리시잖니.”
결국 나는 떠나지 않으려는 나의 다리를 간신히 달래며 겨우 이삿짐 센터 아저씨의 차에 올라탔다. 입이 삐죽 튀어나온 나를 흘깃 쳐다보던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싱긋 웃으며 이삿짐 센터 아저씨에게 말했다.
“감사해요. 저희가 차를 두고 갈 거라서요.”
엄마의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구? 엄마? 차를 왜 두고 가?”
“응. 거기 가면 할머니 차 있으니까. 차가 두 대일 필요는 없잖아? 차 팔았어. 옆집 은주 이모가 차 산 분께 전달해 주기로 했어.”
우르르 쾅쾅.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칠 때보다 더 큰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내 귓가를 때린다.
‘할머니 차? 외갓집 차는 쌀 싣는 트럭인데... 뭐야, 그럼 나 학교 갈 때 할머니 트럭 타고 가야 하는 거야? 아아, 망했다. 정말 망했어.’
안지희 얼굴에 비가 내린다. 그것도 장마 홍수때처럼 빗물이 주륵주륵 내린다.
“지희야, 괜찮아. 가서 친구들 또 사귀면 되지. 거기 친구들 되게 착하대.”
엄마의 어떤 말도 내 마음을 달래기는 역부족이다.
‘흥, 절대로 엄마랑 말 안할거야!’
나는 한껏 삐친 상태임을 표시내기 위해 최대한 엄마로부터 몸을 돌린 자세를 유지하고자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어색함 속에 허리가 아프고 목이 뻐근했지만, 이제 와 달래지도 않는 엄마를 향해 먼저 몸을 돌릴 수도 없었다.
‘어휴, 불편해. 내가 왜 이렇게 불편해야 하는 거야. 진짜 울 엄마는 완전 자기 맘대로야. 이제 시골에 가서 뭐하고 산담...’
커다란 알사탕을 문 듯 내 볼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부어오른 내 볼 안에서 미처 내뱉지 못한 이야기꾸러미들이 뭉쳐졌다 지워졌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꾸러미 속에서 작은 무언가가 빠져나오지 못해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작은 무언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틈새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이내 그 모습을 드러낼 무렵이었다.
“오매, 우리 강아지 아이가, 지희야, 내 새끼 지희야”
솜사탕같이 달큰하고 꿈결같이 포근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함박웃음을 짓고 계신 외할머니가 눈 앞에 보였다.
“어어, 할머니.”
장시간 한 자세로 있어 쥐가 난 다리를 주무르며 정신없이 차에서 내리자, 달큰한 밥냄새와 선선한 가을바람이 물씬 느껴졌다. 여느때 같았으면 할머니한테 안겨 한껏 어리광도 부리고 신난다며 방방 뛰어다녔을 법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이고, 야들아 오느라 고생했대이, 너거 밥도 안즉 안 묵었재?”
할머니는 애초부터 대답은 들을 생각 없었다는 듯, 잰 걸음으로 부엌을 향하셨다. 그나마 어색한 상황을 무마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진 할머니도 부엌으로 가시고, 이삿짐 센터 아저씨도 짐을 나르시느라 정신없는 이 상황에서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조용히 나 혼자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리. 나는 눈을 최대한 빨리 돌려 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다.
“으윽”
눈은 빨랐지만, 다리는 그렇지 못했고, 머리는 움직였지만 몸은 다리에 난 쥐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래, 인정하긴 싫지만 똥고집에 쓸데없는 허세를 부린 결과다.
최대한 입술을 앙다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했지만, 다리를 움직일 수는 없어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지희야, 엄마 정말 잘해볼거야. 지희 너, 엄마 응원해 줄 수 있지?”
엄마의 진지한 말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다리만큼 어정쩡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배고파요 할머니.”
마침내 쥐가 풀리고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무래도 이 곳에서 할머니는 내 유일한 안식처가 될 듯 하다.
“오야, 우리 새끼. 할미가 요 앞에 있는 거 마이 따가 상 차맀으이 마이 무라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한번도 제대로 알아들은 적은 없지만, 오늘도 할머니의 따뜻한 목소리와 미소는 내 안에 꽁꽁 뭉쳐져 있던 반감과 서운함을 녹이고 있다.
“엄마, 면장님께 인사드리고 올게요.”
씩씩하다못해 우렁차기까지 한 엄마의 목소리에 할머니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엄마를 잡아 앉혔다.
“저거 아배 닮아 성격급한 거 봐라이. 뭐시 그리 급하노. 인자 여기서 살낀데. 얼른 밥부터 묵고, 오늘은 지희하고 이야기도 하고 좀 쉬라이. 내일이면 또 지희 전학 신청도 해야 할끼고 할 일도 많을낀데 오늘 하루만이라도 좀 쉬야지.”
여기서 할머니의 말씀을 거역할 자는 없다. 아무리 초강력 울트라 캡쑝 천하무적인 우리 엄마라 할지라도.
엄만 할머니의 말씀에 순한 양이 되어 내 옆에 앉았다.
“그런데 엄마, 지난번 제가 알려드린 블로그 들어가 보셨어요?”
엄마는 어느새 자기 앞으로 몰려 있는 반찬을 하나 둘 집어 먹으며, 할머니를 보고 물었다.
“아이고, 야야. 그기 말이 쉽지. 여기 있는 사람들 인터넷 고거 잘 하는 사람 몇 없다이.”
엄마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요, 할머니? 무슨 블로그?”
나는 슬며시 할머니를 보고 물었다. 엄마와의 어색함을 자연스런 대화를 통해 무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영리한 선택이다.
“아이고, 너거 어매가 블로그라카는 거를 하나 맹든단다. 그래가 거게 우리 동네 일도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우리 동네에 초대도 하고 하믄서, 여기서 나는 거를 갖다가 판다카는데 그기 쉬운 일이 아일낀데 그거를 지가 해 본다고 저라칸다. 내사 마 우리 동네 살리고 농업 살리는 일이라 카이 꿈이 이루어지는 것 마냥 심장이 뛰기도 하다마는 내 자슥이 그 좋은 직장을 내팽겨치뿔고 요 시골로 와가 책임을 지고 한다카이 맘이 싸하기도 하고 그르타. 지희 니는 몰랐는가배?”
안지희 머릿속에 또 한 번 천둥번개가 칠 것 같다.
엄마는 왜 저런 구상을 항상 머릿속으로만 하고, 나한테는 말해주지 않을까?
나는 우물쭈물하다 허튼 말이 튀어나올까 몰라 그냥 앞에 놓인 버섯 반찬을 집어 입 속으로 쏙 넣어버렸다.
“하이튼간에 니도 너무 맘 급하게 묵지 말고 되는대로 해라이. 에휴, 하기는 뭐 지금 상황이 되는대로 해가 될 일이 아이다마는...”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저 밥만 꼭꼭 씹어먹을 뿐이다. 그런데 조심스레 엄마를 관찰해 보니 아무래도 밥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옛날 내 어릴 적 사진에서 보았던 어린 나를 보던 엄마의 눈빛 같기도 하고, 매일 아침 직장에 나가던 엄마의 눈빛 같기도 하고, 에휴, 뭔가 내가 투정을 부릴 상황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사실 할머니네 마을 농사가 잘 안되고 있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농사는 올해도 풍년이지만, 농산물 판매가 잘 안되어 올해도 처치곤란인 농산물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풍년이 걱정이다. 우리 동네만 그런기 아이고, 우리나라가 다 그르타. 우리 쌀이 이래 남아 돌아가 똥값이 되고, 동네 사람들은 자꾸만 떠나고, 얼라 울음소리를 들은지는 먼 옛날이고. 인자 늙은이들만 남아가 동네 사람들 만날라카믄 요 앞에 노인정에 가믄 다 만난다이가.”
지난 추석 할머니께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엄마에게 말했을 때, 엄마 옆에서 얼핏 듣고 큰일이다 생각은 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유정이와 민수, 내 아지트, 그리고 보물창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만큼 할머니와 엄마는 이곳을 소중히 여겼겠지? 아니야, 할머니는 70년동안 여기 사셨고, 엄마도 20년 가까이 이 곳에 살았으니까 내 소중이들보다 훨씬 더 소중했을지 몰라. 그래, 알았어. 엄마가 뭘 소중히 여겼는지는 알겠는데, 하필 왜 우리 엄마고 하필 왜 나냐고.’
나는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아 몸을 뒤척였다. 바스락 거리는 이불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희 안자니?”
오랜만에 보고 듣는 엄마의 진지한 모습에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헛기침으로 응수했다. 늘 씩씩하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엄마가 아닌가.
“너, 엄마가 갑자기 여기 오자고 해서 당황스러웠지?”
엄마는 왜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잠자리에서 하는 걸까. 피할 수도 없고, 모른 척 할 수도 없게 말이다.
“몰라. 나 이제 어떡해.”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맡은 엄마의 책임감을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과 엄마에 대한 존경이 섞인 마음. 그러나 엄마로 인해 내가 겪어야 할 생활의 변화를 예측해야 하는 짜증스러운 마음. 그리고 약간의 불편함도 감수하기 싫은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은 눈덩이처럼 꽁꽁 뭉쳐져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지희야, 앞으로 엄마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아. 그동안 우리 둘, 잘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거야. 우리 안지희님만 옆에 있으면 되지, 뭐.”
“엄만 항상 이런 식이야. 뭘 알아야 도와주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뭘 도와줄 거라 생각해? 치, 아빠랑 이혼할 때에도 혼자 결정해놓고서는.”
아뿔싸, 마지막 말은 내뱉지 말았어야 했다. 1초, 2초, 3초.
3초가 지나기 전에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말했다.
“지희야, 엄마는 말이야. 지희 너와 유정이, 민수, 수많은 너희 또래 친구들, 그리고 너희가 낳을 또 다른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 곳에 왔어. 너희들의 맑은 눈망울을 생각하니 현실을 모른 척하는 내가 부끄럽고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구. 엄마는 농업이 우리 나라를 이끌어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 늙어가고 병들어가는 농촌을 살리고자 여기 온 거야.”
엄마의 말을 끝까지 듣기에는 너무 궁금한 것이 많다.
“그래서 엄마가 여기서 뭘 할건데? 엄마가 직접 농사 지을 수 있어?”
퉁명한 나의 말투에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엄마는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농촌이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중간자가 될거야. 물론 농사일도 도울거고 말이야. 지금 이곳 농촌에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분들이 거의 없으셔. 세계가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지금 현실이지만, 어르신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 엄마는 블로그에 우리가 농사짓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모습을 생생하게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도 할 거야.”
엄마의 희망찬 말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지만, 나는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엄마, 아무리 엄마가 그렇게 보여준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안 보면 그만이야. 누가 우리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고 귀기울여줄까?”
진지해진 나의 말에 엄마는 반가운 듯 슬픈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다. 엄마의 동그란 눈 속에 근심스러운 내 모습이 보였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세상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을거야. 우리 농촌에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생각해내고 만들어낼거야. 농촌 파티도 열고, 농촌 체험 교실도 만들고, 도시 농부 학교도 만들고, 그렇게 농촌 체험 교육 마당을 만들어 아이들과, 그리고 부모들과 함께 이야기나누고 우리 농산물을 소개할거야. 물론 처음부터 한꺼번에 다 이루어지진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상을 향해 내딛을거야.”
역시 우리 엄마다. 자칭 타칭 울트라 캡숑 엘리트 맘 답게 똑부러지는 부분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엄마 할 일 엄청 많겠는데? 근데 말이야, 그거 엄마 혼자서 다 하기는 무리겠는데? 내가 농사짓는 이야기를 일기로 도와주면 모를까. 아니, 뭐 내가 한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차피 일기 쓰는 것, 매일 관찰해서 쓰면 되니까 뭐.”
내 말에 엄마는 “역시”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도 질세라 엄지손가락을 조심스레 치켜들었다.
“안지희, 너 엄마 도와준다며?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일어나지도 않고, 요녀석 봐라아.”
꿈인지 생신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뻐근한 목을 돌리며 눈을 감은 채 앉자, 엄마가 겨드랑이 속에 팔을 쑥 집어넣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으으, 5분만 더 자면 안될까”
엄마는 콩벌레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나를 잡아 이끌었다. 비몽사몽 터덜터덜 걸어 도착한 곳은 할머니집 앞 논밭이었다.
“자, 여기 봐. 오늘부터 지희 네 친구들이 될 녀석들이야.”
엄마의 말에 나는 눈을 비볐다. 연둣빛을 띈 작은 녀석들이 살짝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랑스럽고 튼튼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허, 고 녀석들. 되게 귀엽네.”
내 말에 엄마는 머리를 콩 부딪히며 말했다.
“흐음. 여기서 한 말씀 해 줘야지. 지희 너, 정확한 네 이름 뜻 알아? 땅 지에 기쁠 희. 땅으로부터의 기쁨이라 이 말씀. 그러니까 같이 땅으로부터 기쁨 받는 저 녀석들이랑 잘 소통해 봐, 알았지? 땅쁨이들?”
엄마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뭐라고? 땅쁨이들? 그래, 우리 땅쁨이들의 힘을 보여주지! 땅쁨아, 잘 부탁한다.”
엄마와 내가 웃고 떠드는 사이, 할머니가 아침 준비를 마치셨는지 저 멀리서 외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지희야, 애미야, 얼렁 와가 밥 묵고 핵교 가야재. 할매 트럭 준비 해 놨다이!”
나는 할머니한테 달려가며 외쳤다.
“할머니! 나 트럭 옆자리 탈래!”
약력
김주현 (金周炫)1982년 8월 16일
부산대 국문학과 석사 졸업
신문예 시 부문 등단
열린문학 동화 부문 등단
(주)이루미스쿨 동화작가
- 김포 신문 기자
당선소감
꿈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으로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 삶 속에서 가장 놀랍고 행복한 시간이 펼쳐지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어린 시절 아주 조그맣던 제 마음을 품어주던 동화. 그리고 작은 책 속 넓게 펼쳐지던 또 다른 세계들. 저는 그 순간순간들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 기억들은 아직도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저를 따스하게 품어주고 있으니까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화를 읽으며 그 안에서 키득거리던 그 때. 이야기를 덮고 또 다른 이야기를 그려보던 그 날들. 그런 날들은 점점 많아졌고 상상의 풍선은 점점 더 커져 마침내 풍선 속에 제가 들어가게 되었던 날, 그 날 저는 펜을 잡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 행복하고 따스한 이야기, 먼 훗날 성인이 되어서도 기억하며 마음을 다독거릴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풍선 속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걸어가는 길 등불을 비추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어설픈 제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문학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한국문학인협회 한국시낭송회 회장 黃甲潤 문학박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안의 상상의 풍선이 터지지 않게 늘 노심초사하신 사랑하는 네 분의 부모님(아버지, 어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께 이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옆에 남의 편이 아닌 제 편으로 있어 주는 남편과 이 세상의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제 딸 서연이와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동화를 어여삐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동아연합신문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