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교회 이야기 6.
그렇게 새로 이전한 곳에서 나름 열심히 하다보니 2013년 여름쯤 되니 주일학생들이 15명 정도 되었습니다.
방학 때는 아이들 자전거 고쳐주고, 바람 넣어주고, 저녁에는 라면 삶아서 먹이는 일이 저의 주된 업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의 부모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당시 오송지역은 세종시가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대거 세종시로 이사를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해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2014년이 되자 아이들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왠지 모를 허탈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전도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기도하던 중에 어떤 목사님이 건빵전도가 인기 좋다고 하시면서 건빵을 한 봉지 주시길래 살펴봤더니 보리건빵인데 수입 밀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밀로 전도용 건빵을 만들어서 전도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는 목회하기 전에 우리밀살리기 운동본부 대전충남사업단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래서 대전 우리밀 사장님을 오시라고 해서 설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 약 6만개 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70에서 80프로가 미자립교회이고, 전도를 하는 교회이니 분명히 대박날거다. 그러니 나를 믿고 한 번 만들어보자.
하지만 우리밀 사장님은 말처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우리밀은 비싸고, 사람들에게 많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금 동원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시한 조건은 한 사람이 요기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이어야 한다. 그러면 약 30그램은 되야 하고, 가격은 비싸면 안되니까 2백원이 넘어가면 안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물론 2백원도 비싼금액이지만 우리밀의 가격이 수입밀에 비해 약 4배정도 비싸기 때문에 제가 생각한 최저 가격이었습니다.
포장지 제조 공장에서 건빵 포장지를 만들려면 동판을 제작하고, 최소 몇만 장에서 수십 만장을 생산하는 조건이 있었고(당시 건빵포장지 제작비용만 약 6백만 원이 들었음), 건빵도 만들려면 소량은 안되고, 최소 600에서 800박스(1박스에 100개)가 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밀 사장님이 결단을 하셔서 약 4개월에 걸친 제품개발을 통해 우리밀 전도 건빵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밀 건빵을 가지고 전도하러 가보니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주는 교회도 있네, 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교회에서 나왔다고 하면 무시하고 지나가다가도 우리밀 건빵이라고 하면 다시 돌아와서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전도하다 보면 잡상인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건빵을 주려고 하면 부모가 소리를 지르며 받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건빵전도는 계속해서 진행이 되었고, 의외로 건빵이 대박이 난 곳이 있는데 바로 학교 급식입니다.
당시 대전 우리밀은 학교급식사업도 하고 있었는데, 6.25를 맞이해서 대전 시내 학교에서 건빵 6만개를 주문한 것입니다.
그 소문이 나자 전도용 건빵이 강원도, 부산 등지에 학교 급식용으로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밀 사장님이 얼마나 좋았는지 저에게 고맙다고 교회에 미니 자판기를 선물해 주어서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더 많은 판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서점인 청주예수마을에 가서 전도용 우리밀 건빵을 보여주니 너무나 좋아하길래 그러면 내가 대전 우리밀과 총판계약을 하게 해주면 해볼라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그래서 대전 우리밀과 청주 예수마을 간의 총판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물론 저는 그 둘 사이에서 단돈 십 원도 받은 것이 없음을 정확하게 말씀드립니다.
그렇게 전도하면서 의외의 열매도 있었는데 어느날 애기 엄마가 내살 짜리 아들은 손을 잡고, 8개월 된 아들을 유모차에 태워서 주일 예배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분은 우리교회 집사님이 되어서 아주 충성 된 일꾼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자발적으로 오시는 분도 있지만, 교회가 빌라 1층 상가에 월세로 있고, 교인들이 없기 때문에 왔다가 그냥 가는 사람도 있고, 조금 다니다가 말없이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날은 전도하는데 어느 분이 그 교회가 장로교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예장이냐고 하길래 기장이라고 하니까 장로교는 예장만 있는거 아니냐고 합니다.
그래서 예장과 기장이 나뉘게 된 이야기를 해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이 교인이 백 명이 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했더니, 그러면 힘들어서 못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참 허탈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서글픔에 한동안 마음이 아팠습니다.
7번째 이야기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