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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 제1권
大乘理趣六波羅蜜多經卷第一
계빈국(罽賓國) 반야(般若) 한역
罽賓國三藏般若奉 詔譯
☞ 법신. 보신. 화신과 삼보에 대하여 말씀 하심
1. 귀의삼보품(歸依三寶品); 歸依三寶品第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한때 박가범(薄伽梵:세존)께서 왕사성(王舍城) 가란다가(迦蘭多迦)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셨다.一時薄伽梵在王舍大城迦蘭多迦竹林精舍,時
이때 많은 보살마하살이 물러나지 않는 위계(位階)인 10지(地)에 머물러 10바라밀다가 이미 원만하였다.與衆多菩薩摩訶薩⎯⎯住不退轉位階十地,十波羅蜜多悉已圓滿;
또 많은 큰 필추(비구)가 있었으니 다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번뇌가 없고 이미 이로움을 얻어 마음이 잘 해탈하였고 지혜도 잘 해탈하였다.復有衆多諸大苾芻⎯⎯皆阿羅漢,諸漏已盡無復煩惱,逮得已利,心善解脫、慧善解脫;
또한 아승기야(阿僧企耶; 1056)의 모든 유정(有情)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復有阿僧企耶諸有情等⎯⎯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그때 자씨보살마하살이 이 모임 가운데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여기에 모인 대중 속의 모든 유정들은 빈궁하고 외로워 믿고 의지할 곳이 없이 생사에 유전하면서 애욕의 강물에 빠져 있다. 피안(彼岸)에 이르고자 하여 법을 듣기 위한 까닭에 세존을 뵙고 일체지(一切智)를 구하기를 원하나 능력이 없다.’爾時,慈氏菩薩摩訶薩於此會中而作是念:“此會衆中諸有情類,貧窮孤露無所依怙,流轉生死沈溺愛河;欲達彼岸爲聞法故,願見世尊求一切智,無有力能。”
그때 자씨보살(미륵보살)은 매우 깊은 뜻을 여쭙고자 하였다.
‘일체 유정이 어떻게 보리심을 일으켜야 부처를 구(求)하며, 결정코 3무수겁(無數劫) 동안 피로와 싫증을 내지 않을까? 지금 부처님 세존의 뜻은 알기 어렵고 광대하여 매우 깊으나, 문구(文句)가 교묘하여 원만함을 구족하였으니, 유정의 인과(因果)의 차별에 따라 수기를 주어[記別] 속히 위없는 보리를 구하게 하리라.’爾時,慈氏菩薩爲欲諮問甚深義趣;一切有情云何發菩提心求佛決定,三無數劫無有疲倦?今佛世尊意趣難解廣大甚深,文句巧妙具足圓滿,記別有情因果差別,希求速疾無上菩提。
이에 미륵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정리하고 6근(根)을 잘 조복하여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모두 적정하였다. 그 6근은 백 가지 복에서 생기는 미묘한 상(相)인 80종호(種好)로 장엄되어 3무수겁 동안 원만하였고 마하반야바라밀다 등 백천만의 태양 광명의 상이 그 몸을 장엄하니, 일체 유정이 우러러 쳐다봄에 싫어함이 없었으며, 비할 바 없는 부처님의 과(果)인 깨달음에 가까웠다. 이와 같은 몸으로써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오체(五體)를 땅에 엎드려 부처님 발에 예배했다.於是彌勒菩薩摩訶薩發如是心,卽從座起,整理衣服,善調六根,身口意業皆悉寂靜⎯⎯然其六根百福所生,妙相莊嚴八十種好,三無數劫之所圓滿,摩訶般若波羅蜜多等百千萬日光明相莊嚴其身,一切有情瞻仰無厭,近無等等佛果菩提⎯⎯以如是身往詣佛所,五體投地禮佛雙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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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자씨보살마하살(미륵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불보ㆍ법보ㆍ승보라고 이름하며, 어떻게 귀의합니까?”爾時,慈氏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云何名爲佛法僧寶?云何歸依?”
부처님께서 자씨(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불보(佛寶)란 곧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 몸이요, 다른 하나는 부처님의 덕이니라. 부처님의 몸이란, 여래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니라.佛告慈氏言:“佛寶者則有二種:一者佛身,二者佛德。言佛身者,所謂如來、應、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
이미 과거 무량무변 아승기겁에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6도만행(六度 萬行;바라밀)을 원만히 닦고,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받고, 모든 번뇌의 도적을 끊고, 일체지를 얻어 등정각을 이루었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미묘한 공덕을 구족하였으므로 부처라 하느니라. 已於過去無量無邊阿僧祇劫,不惜身命勤修六度萬行圓滿,菩提樹下坐金剛座,降伏魔軍斷諸結賊,獲一切智成等正覺,具足如是諸妙功德,號之爲佛。
부처님의 덕이라는 것은, 곧 부처님 몸 가운데서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과 대자대비와 대희대사(大喜大捨)와 3해탈문(解脫門)과 세 가지 드러내 보여 인도함[三示導]과 6신통과 마음을 따르는 삼매[隨心三摩地]와 네 가지 지혜[智]와 두 가지 지혜[智]와 아는 경계[知境]에서 떠나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끊고, 言佛德者,卽佛身中具足十力、四無所畏、十八不共法、大慈大悲大喜大捨、三解脫門、三示導、六神通、隨心三摩地、四智、二智,離於知境,斷煩惱障及所知障,離諸習氣,
모든 습기(習氣)를 여의며 공용(功用)이 없는 도(道)로써 여여한 변화[如如化]를 일으키며, 멀리 또는 가까이에서 노닐거나 멈춤에 자재롭고 장애가 없으며, 한 알의 겨자씨에 능히 한량없는 묘고산(妙高山)을 들여놓으니, 이와 같은 무량무변한 공덕을 모든 부처님 여래는 다 구족하시느니라. 無功用道起如如化,若遠若近遊止自在無有障礙,於一芥子能納無量諸妙高山。如是功德無量無邊,諸佛如來悉皆具足。
또 1겁에서 무량겁에 이르도록 수명이 자재하여 능히 줄어듦이 없으며 신족통[神境通]으로 왕래하여 변화를 나타내시는 것이 장애가 없고 마음대로 자재롭다. 又從一劫至無量劫,壽命自在無能損減。於神境通往來變現,無有障礙隨意自在。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다니시는 성읍이나 부락에 먼저 미묘한 금색광명을 놓아 그곳에 비추면 그곳에 있는 중생으로서 이 빛을 받는 자는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이 다 없어져 나으며, 마음의 울화가 없어지고 몸이 맑고 시원해진다. 등이 굽은 자는 펴지고 절름발이는 걷게 되며, 눈이 어두운 이는 보게 되고 귀먹은 이는 듣게 되고 벙어리는 말할 수 있게 되며, 諸佛世尊之所經行城邑聚落,先放微妙金色光明照曜其處,其中衆生遇斯光者,身病心病皆得除愈。心火滅已身得淸涼。僂者能申、跛者能行、盲者得視、聾者能聽、瘂者能言
마음이 어지러운 이는 곧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며 귀신병ㆍ미친병ㆍ도깨비병 등 온갖 병이 다 없어지고 치유된다. 벌거벗은 자는 옷을 얻고 교만한 마음이 있는 자는 겸손해지게 되며, 근심하고 고뇌하는 자는 마음이 안온해지고 길을 잃은 자는 바른 길을 얻게 된다.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음식을 얻고 죄수로 묶인 자는 풀려나고 겁에 질린 자는 두려움이 없어진다.其心亂者便復本心,鬼魅癲狂魍魎所持悉皆除愈。裸者得衣,憍慢心者而得謙下,憂惱者心安隱,失道者得正路,飢渴者得飮食,囚繫者得解脫,恐怖者得無畏。
또 구릉이나 구덩이나 산이나 물, 언덕은 마치 손바닥으로 친 것처럼 평평해지며, 저택의 문이 낮고 작은 것은 자연히 높고 커지며 좁은 길은 모두 다 넉넉하게 넓어지며, 저잣거리도 자연히 활짝 열리고 더럽고 부정한 것은 즉시 향기롭고 맑아지며 가시나 독가시나 기와나 조약돌ㆍ모래ㆍ돌 등이 다 나타나지 않게 된다. 陵坑坎山㵎堆阜,皆悉平正猶如抵掌,門第卑小自然高大,衢路隘狹竝皆寬廣,市肆廛里自然開豁,穢惡不淨應時香潔,荊棘毒刺瓦礫沙石悉皆不現。
햇빛이 내리쬐는 극심한 더위에도 고통을 받지 않으며 향기로운 바람이 불고 화창하며 온갖 먼지가 날리지 않는다. 백학과 공작ㆍ앵무ㆍ사리(舍利:황새)ㆍ가릉빈가(迦陵頻伽)ㆍ구지라(拘枳羅)ㆍ구나라(拘那羅)ㆍ명명(命命) 등의 새는 그 소리가 아름답고 미묘하여 평화롭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코끼리ㆍ말ㆍ소ㆍ양ㆍ물소[水牛]ㆍ검정소[犁牛]ㆍ들소[犎牛]ㆍ죽우(竹牛) 등이 각각 자기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미묘하다. 丘日光晃曜而無炎毒,香風和暢無諸塵坌,白鶴、孔雀、鸚鵡、舍利、迦陵頻伽、拘枳羅、拘那羅、命命等鳥,其聲羙妙出和雅音。象、馬、牛、羊、水牛、犛牛、犎牛、竹牛,各出本音其聲微妙。
그리고 공후(箜篌)ㆍ피리ㆍ비파ㆍ북ㆍ부는 악기 등 이와 같은 악기가 치지 않아도 저절로 울린다. 그 밖의 갖가지 교묘하고 희유하고 기이하며 모든 신통스러운 일이 다 변화하여 나타난다. 이와 같은 온갖 희유한 일이 날마다 각각 달리 나타나되, 수승한 것이 더하여지니 이 모두가 여래의 위신력이다. 箜、篌、簫、笛、琴、瑟、鼓、吹,如是樂器不鼓自鳴。及餘種種巧妙希奇,諸神通事悉皆變現。如是種種諸希有事,日日各異,轉加殊勝,皆是如來威神之力。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세존과 부처님의 공덕이 같다거나 다르다고 의심하면 마땅히 부처님과 공덕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말해야 한다. 비유하면 등불의 기름과 심지는 불빛과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니, 기름과 심지를 떠나서 달리 불빛이 없는 것과 같다. 만약 등불의 빛이 기름과 심지를 떠나 있다고 말하면 빛이 비치는 곳은 모두 다 타버릴 것이다. 若有衆生疑佛世尊及佛功德有一異者,當作是說:‘佛與功德不一不異。’譬如燃燈,膏炷與明不一不異,離於膏炷無別燈明。若言燈明離膏炷者,明所及處悉應焚爇。
부처님 몸과 공덕도 이와 같으니, 이 미묘한 몸은 바로 부처님 공덕이요, 번뇌가 없는 법신이라 나와 남이 수용하여 평등하게 의지한다. 그러나 부처님 몸 또한 이 몸이 아니요 이 몸을 떠나 밖에 달리 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佛身功德亦復如是。此微妙身是佛功德無漏法身,自他受用平等所依。然此佛身亦非是體,離是體外無別法身。
이 몸이란 것은 밖의 물건과 같아 4대(大)의 모양이 있다. 그러므로 모양도 아니요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만약 모양이 아니라면 큰 허공과 같으며, 큰 허공과 같다면 성품이 곧 이에 항상하여 방편의 허물이 없다. 若是體者,同於外物有四大相。故知非相亦非無相。若非相者同大虛空,同太虛者性卽是常無方便過。
자기 성품이 청정하여 물들거나 집착함도 없으며, 매우 깊고 한량이 없으며, 변하거나 바뀌는 것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미묘하고 고요하다. 한이 없이 진실하고 항상한 공덕을 갖추어서 모든 희론이 끊어졌으니, 오직 부처님만이 증득하여 아실 바요 다른 이는 미칠 바가 아니며, 또한 비유로써 비교하며 헤아릴 것도 아니니라.自性淸淨無染無著,甚深無量無有變易,難解難知微妙寂靜,具無邊際眞常功德絕諸戲論。唯佛證知非餘所及,亦非譬喩之所挍量。
자씨(미륵)야,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몸이란, 慈氏!當知如此身者,
곧 이 과거ㆍ미래ㆍ현재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모든 부처님 세존의 법신의 모양이다. 卽是過去未來現在 殑伽沙等諸佛世尊 法身之相。
부처님의 보신(報身:과보신)이란 모든 여래가 3무수겁 동안 닦아 모은 한량없는 복과 지혜의 양식[資糧]으로서 일어난 한없는 진실한 공덕은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하고 모든 근(根)의 상호(相好)의 지혜 광명이 두루 법계에 퍼지니, 다 출세간의 무루 선근에서 생긴 까닭이다. 佛報身者,謂諸如來三無數劫修集無量福慧資糧所起無邊眞實功德,常住不變諸根相好,智慧光明周遍法界,皆從出世無漏善根之所生故,
불가사의하여 세간의 지혜를 뛰어넘어 근기가 무르익은 유정을 위하여 이런 모양을 나타내니, 다함이 없는 법을 펼쳐서 널리 끝없이 이익하게 하느니라. 자씨야, 마땅히 알라. 이것은 곧 여래의 원만한 보신이니라.不可思議超過世智,純熟有情爲現茲相,演無盡法廣利無邊。慈氏!當知此卽如來報身圓滿。
화신(化身:응신)이란 저 유정을 위하여 그를 따라서 응하여 변화한 것이니, 한량없는 아승기의 모든 변화한 부처님의 몸[化佛身]을 나타내신다. 言化身者,爲彼有情隨所應化,故現無量阿僧企耶諸化佛身。
그 변화한 몸은 혹 지옥에서 그 몸을 나타내어 유정을 제도하여 온갖 고통을 여의게 하며, 정법으로써 인도하여 수승한 마음을 내게 하고, 사람이나 하늘에 다시 태어나서 수승한 쾌락을 받게 하며, 부처님 법 가운데서 믿음의 즐거움을 깊이 일으켜 부처님 법의 일부분을 얻고 성인의 도과를 얻게 한다. 其所化身,或於地獄以現其身,度彼有情令離衆苦,導以正法令發勝心,便生人天受勝快樂,於佛法中深生信樂,得佛法分獲聖道果。
혹은 아귀의 갈래에 태어나 그 유정을 교화하여 목마름과 굶주림과 온갖 핍박을 여의게 하여 정법으로써 교화하여 수승한 마음을 내게 하여 사람이나 하늘에 다시 태어나서 모든 쾌락을 받고 깊이 불법에 들어가서 성인의 도과(道果)를 얻게 하느니라.或生鬼趣化彼有情,令離飢渴種種逼迫,化以正法使發勝心,便生人天受諸快樂,深入佛法得聖道果。
혹은 축생으로 변화하여 그 무리에 있으니, 가루라의 몸이 되기도 하고 용의 몸이 되기도 하고, 혹은 사자ㆍ코끼리ㆍ말ㆍ곰ㆍ호랑이ㆍ표범ㆍ승냥이ㆍ이리ㆍ들개[野干]ㆍ여우[狐]ㆍ토끼ㆍ독사ㆍ뱀ㆍ살모사ㆍ전갈ㆍ물고기ㆍ자라ㆍ큰 자라ㆍ악어ㆍ백학ㆍ공작ㆍ봉황ㆍ원앙ㆍ앵무ㆍ사리(舍利) 등 여러 가지의 몸이 되어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서로 해치는 마음을 떠나 자비한 마음으로 서로 대하게 하며, 或化傍生在於彼趣,或作迦嚕囉身,或作龍身,或作師子、象、馬、熊、羆、虎、豹、豺狼、野干、狐、兔、蚖蛇、蝮蝎、魚、鼈、黿、鼉、白鶴、孔雀、鳳凰、鴛鴦、鸚鵡、舍利種種之身,令諸有情離相殘害慈心相向,
능히 갖가지 모든 두려운 일을 여의게 하고 정법을 보여 불ㆍ법ㆍ승을 깊이 믿어 즐거이 귀의하게 한다.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서 모든 쾌락을 얻고 불법의 일부분을 얻어 성인의 도과를 얻게 한다.能離種種諸怖畏事,示以正法令深信樂歸佛法僧,得生人天獲諸快樂,得佛法分證聖道果。
혹은 다른 국토에서 유정으로 교화하여 해와 달의 빛이 능히 비치지 못하는 곳인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부처님 법이 없는 곳에 정법을 세워서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불ㆍ법ㆍ승에 귀의하여 머리를 삭발하고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받아 비구[苾芻]ㆍ비구니[苾芻尼]나 혹은 우바새[鄔波索迦]ㆍ우바이[鄔波斯迦]가 되게 하여, 승방을 세워 정법을 잘 지키고 한량없고 수없는 유정을 편안하게 하며, 사람과 하늘을 열반의 피안에 안치하여 과(果)를 증득하게 한다. 或化有情於餘國土,或日月光所不能照如是種種無佛法處建立正法,令諸有情歸佛法僧,剃除鬚髮受佛禁戒,而作苾芻及苾芻尼,或作鄔波索迦、鄔波斯迦,建立僧坊護持正法,安立無量無數有情,置於人天涅槃彼岸而得果證。
혹은 하늘의 세계에 태어나 그곳의 유정을 교화하여 5욕(欲)을 여의어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게 하고 정법으로 인도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고, 불ㆍ법ㆍ승에 귀의하여 깊이 정법에 들어가 열반 해탈의 과를 증득하여 머물게 한다. 或生天趣化彼有情,令離五欲心無染著,導以正法發菩提心,歸佛法僧深入正法,置於涅槃解脫果證。
혹은 사람의 세계에 태어나니 왕국의 석(釋)씨 집안에 태어나서 교묘한 방편으로 모든 유정을 교화하여 삼계의 번뇌와 근심과 걱정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끊어 없앤다. 일부러 현재의 생을 받아 성을 넘고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서 길상초(吉祥草)를 받고 도량의 금강좌에 앉아서 마군을 항복하고 등정각을 이룬다. 或生人趣,現處王宮生釋種家,以巧方便化諸有情,斷除三界煩惱憂患生老病死,故現受生、踰城出家、菩提樹下取吉祥草、坐於道場處金剛座、降伏魔軍成等正覺、
그리고 유정을 교화하기 위하여 정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어 큰 광명을 놓아 두루 일체에 펴서 세간을 비추며,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모두 원만하게 하며 혹은 고요함[寂靜]을 나타내어 대열반에 드시니, 이것을 곧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爲化有情轉正法輪,放大光明周遍一切照曜世間,自利利他悉皆圓滿,或現寂靜入大涅槃,是卽名爲佛化身也。
이와 같이 가지가지 선교방편이 무량무변하니, 이것은 다 여래의 자재로운 신통력이며, 이것이 곧 3신(身)의 체(體)로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라.” 如是種種善巧方便無量無邊,皆是如來自在神力。此卽三身,體無異相。”
이때 박가범께서 자씨(미륵)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爾時薄伽梵告慈氏菩薩摩訶薩言:“善男子!於意云何?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부처님께 귀의하는 자는 모든 부처님의 청정법신에 귀의해야 하며, 만약 부처님의 법신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나와 저 일체 유정이 이와 같은 공덕의 법신을 얻게 하여지이다’라는 큰 서원을 세워야 한다. 若有善男子、善女人歸依佛者,當歸依諸佛淸淨法身。若欲求於佛法身者,當作如是發大誓願:‘願我及彼一切有情,當得如是功德法身。
왜 이와 같은 원을 말하게 하는가? 부처님의 응신(應身)은 찰나 동안에 변천하고 화신불(化身佛)은 속히 열반에 들며, 공덕법신(功德法身)은 고요하게 항상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청정법신에 귀의하는 것이니, 법신에 귀의한다는 것은 곧 과거ㆍ현재ㆍ미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다. ’云何乃令發如是願?爲佛應身剎那遷變,化身佛者疾入涅槃,功德法身湛然常住,以是歸依淸淨法身。歸法身者,卽是歸依過去未來現在諸佛。
만약 내가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든다면 곧 함께 지옥의 모든 고통을 받을 것이요, 만약 유정과 같이 해탈하면 비록 지옥에 처하여도 열반과 다름이 없느니라. 若我捨於衆生取涅槃者,卽同受於地獄諸苦。若與有情同解脫者,雖處地獄無異涅槃。
이 인연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 법신에 귀의하여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니 구경에는 여여(如如)하여 체(體)가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느니라. 以是因緣令諸衆生,歸佛法身證涅槃樂,究竟如如體無增減。
이와 같이 법신은 바로 참된 안락이니, 이런 까닭으로 다만 부처님 법신에 귀의하게 하는 것이다. 如是法身是眞安樂,是故但令歸佛法身。
또한 자씨(미륵)여,
무엇을 청정법보(淸淨法寶)라고 이름하는가?復次,慈氏!云何名爲淸淨法寶?
법보라고 말하는 것에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言法寶者亦有三種。云何爲三?
첫 번째 법보는 열반ㆍ감로ㆍ해탈이니,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을 체의 성품으로 삼아서 능히 온갖 생ㆍ노ㆍ병ㆍ사ㆍ근심ㆍ슬픔ㆍ고뇌를 다한다. 第一法寶所謂涅槃甘露解脫,常樂我淨而爲體性,能盡一切生老病死憂悲苦惱。
무엇이 태어남의 고통인가?
부모가 혼인하여 한 몸이 되었을 때 부정한 종자가 모태 가운데에 자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업력의 바람을 가지고 아홉 달을 지나는데, 머물러 있는 곳은 캄캄하게 어두워서 빛이라고는 전혀 없다. 오장육부에서 살면서 커가되, 더럽고 부정한 8만 가지 벌레와 섞여서 내쉬고 들이쉬는 숨은 어머니를 따라 행하고 입은 능히 말을 못하고 눈은 볼 수 없으며, 굶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더운 가지가지 모든 고통이 몸과 마음을 절실하게 핍박한다. 云何生苦?謂依父母牉合之時,不淨種子處母胎中,業力風持時經九月,住居黑闇無有光明,生熟藏間污穢不淨,八萬戶虫之所和雜,出息入息隨母而行,口不能言、眼不得視,飢渴寒熱種種諸苦逼切身心。
이와 같은 모든 괴로움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 모든 중생을 자재할 수 없게 만드는 까닭에 태어남의 고통이라고 이름한다. 비록 이런 고통을 받을지라도 한 가지 덕이 있는데, 어떠한 원수들도 그를 보지 못하고 또한 능히 시비(是非)와 잘못이나 죄악을 말하지 않으니, 비할 데 없는 열반의 안락한 법 가운데서는 이와 같은 고통이 없느니라. 如是諸苦無量無邊,令諸衆生不得自在,故名生苦。雖受此苦而有一德,一切怨家所不能見,亦不能說是非過惡。無比涅槃安樂法中無如是苦。
무엇이 늙음의 고통인가?
중생이 젊음에서 점차 늙어감에 세월이 흘러 옛것은 가고 새것이 오니, 충실하던 것은 한결같이 차차 감소해지며 근력이 쇠하여 이지러져서 가고 멈춤에 떨리고 머리는 희어지고 얼굴은 주름진다. 눈과 귀는 흐리고 어두워지며, 이는 빠져 성글어지고, 얼굴은 추하고 비루해지고, 몸은 구부러져 사람들이 불쾌하고 천하게 여기게 된다. 모든 말과 가르침은 말하자마자 곧 잊어버리고 몸은 무거워서 짐을 진 것 같으니라.云何老苦?所謂衆生從少至老時節代謝,所有充實悉皆損減⎯⎯筋力衰朽行止戰掉,髮白面皺,眼耳昏暗,牙齒疏缺,顏貌醜陋,身相傴僂人所惡賤,所有言教隨說廢忘⎯⎯而以此身爲其重擔。
비유하면 등불에 기름이 이미 다하면 오래지 않아 꺼지는 것과 같다. 늙음도 이와 같아 왕성하던 기름이 다하면 오래지 않아 죽음에 이른다. 譬如然燈,膏油旣盡不久將滅。老亦如是,壯膏旣盡不夂將死。
또 소막차(蘇莫遮:가면) 모자를 사람의 머리와 얼굴에 쓰면 모든 유정이 그것을 보고 희롱하는 것처럼 늙음의 소막차도 이와 같아 한 성읍(城邑)에서 다른 성읍에 이르름에 일체 중생이 쇠약하고 늙은 모자를 쓴 것을 보고 모두들 희롱하니, 이 인연으로 늙음은 큰 고통이 되는 것이다. 죽지 않고 약으로 능히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제외한다. 又如蘇莫遮帽覆人面首,令諸有情見卽戲弄。老蘇莫遮亦復如是,從一城邑至一城邑,一切衆生被衰老帽見皆戲弄。以是因緣老爲大苦,除非死至無藥能治。
비록 늙음의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것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의 귀신에 기도하여 항상 장수하기를 원하니, 비할 데 없는 열반의 안락한 법 가운데는 이런 늙음의 고통이 없느니라. 雖受老苦而不厭之,祈禱神祇恒願長壽。無比涅槃安樂法中,無此老苦。
무엇이 병의 고통인가?
땅과 물ㆍ불ㆍ바람이 서로 어긋나고 해치며, 온갖 고통이 그 몸에 와서 모이니, 모든 중생은 젊은이나 늙은이를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병의 고통을 지니고 있다. 안락하고 몸에 맞는 수승하고 미묘한 5욕(欲)과 금ㆍ은ㆍ보배ㆍ가족ㆍ권속을 모두 다 버리며 온갖 가르침을 남녀 친척이 따르지 아니하며 모든 원수가 짐짓 다가와서 친한 듯 아부하니, 이와 같은 병의 고통을 모두 원하거나 구하지 아니한다. 云何病苦?所謂地水火風互相違害,種種諸苦來集其身,一切衆生無問老少皆共有之。安樂適身勝妙五欲,金銀珍寶、家族眷屬,悉皆捨離。所有教詔,男女親戚皆不承順,一切怨家詐來親附。如此病苦皆不願求,
이로써 병은 큰 고통임을 알아야 한다. 안락한 열반의 비할 데 없는 법 가운데는 청정하고 고요하니, 이런 병의 고통이 없느니라. 以是當知病爲大苦。安樂涅槃無比法中,淸淨寂然無斯病苦。
또한 자씨(미륵)여, 무엇이 죽음의 고통인가?復次,慈氏!云何死苦?
중생이 기운이 끊어지고 알음알이[識]가 없어져서 지각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모든 고통 가운데서 죽음의 고통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 所謂衆生氣絕識滅無所覺知,一切苦中莫過死苦。
나고 늙고 병듦의 고통은 다섯 갈래 가운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일정하지 않으나 이 죽음의 고통은 모두 다 지니고 있다. 비유하면 빈곤한 고통은 영화로움으로 능히 물리칠 수 있고, 원망과 미움의 고통은 친근하고 사랑함으로써 능히 물리칠 수 있지만, 만약 죽음의 고통이 이르면 늙은이와 젊은이,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 귀한 이와 천한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 몸을 버리고 어둡고 컴컴한 곳에 들어간다. 의복이나 눕는 도구며 일체 재물이나 보배는 쓸모가 없어지고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낸 채 가게 된다. 게다가 반려할 자 없고 돈과 재물로도 면할 수 없으며 하소연할 곳도 없다.生老病苦,五趣之中有無不定,此死苦者皆共有之。譬如貧苦能卻榮華,如怨憎苦能卻親愛,死苦若至,不揀老少愚智貴賤,一切盡卻。捨此身已入幽闇處,衣服臥具一切財寶莫能用之。裸露而行復無伴侶,貨財不免披訴無地。
아, 무상(無常)이 능히 이런 해를 끼친단 말인가. 咄哉無常能作斯害,
비루하고 추악함이 너무 커서 원수와 친한 이를 가리지 않으며, 삼계 중생은 이것을 벗어나거나 떠나지 못한다. 누구나 죽음의 침노를 받으니 무엇으로 구하랴. 설령 전륜왕이나 나라연(那羅延)의 힘이라도 다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마땅히 알라. 죽음의 고통은 한량없고 끝이 없으니, 이로써 죽음이 커다란 고통임을 관찰한다. 甚大鄙惡不揀怨親,三界衆生無能免離,皆被死伐何能救之。設轉輪王那羅延力皆被擒獲,當知死苦無量無邊。以是觀之死爲大苦。
해탈 열반의 비할 데 없는 법 가운데는 고요하고 안락하여 이러한 죽음의 고통이 없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거센 강물에 빠져서 떠돌다가 높은 산에 오르면 겁나고 두려운 것을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중생도 그러하여 항상 일체 생사의 거센 강물에 빠져 표류하다가 열반의 산에 오르면 생사의 두려움을 여의게 된다. 또한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능히 지독한 열과 먼지와 더러움과 같은 장애를 없애주어 사람들이 안락해지고 몸과 뜻이 맑고 시원해지며, 온갖 초목이 우거지고 과실이 열리는 것과 같이 解脫涅槃無比法中,寂靜安樂無茲死苦。譬如有人瀑河漂溺,登陟高山得免怖畏。衆生亦爾,常爲一切生死瀑河之所漂溺,登涅槃山離生死畏。亦如天雨能除毒熱塵穢等障,人民安樂身意淸涼,百卉滋茂成就果實。
여래의 법의 비도 다시 이와 같아 능히 일체 번뇌의 지독한 열을 없애주시니, 중생이 안락해지고 해탈하며 맑고 서늘해진다. 그리고 일체의 밝고 깨끗한 선의 종자를 번성하게 자라게 하며 과실을 맺어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如來法雨亦復如是,能除一切煩惱毒熱,衆生安樂解脫淸涼,滋長一切白淨善種,成就果實令得涅槃。
이 인연으로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무상의 몸을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을 증득하시느니라.”以是因緣,諸佛世尊捨無常身證涅槃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