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마지막 일정을 향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비엔나에서 체코의 프라하로 달렸다. 5시간 정도 걸리는 길이란다. 북유럽의 짧은 해는 금방 어둠을 몰고 올 것이다. 프라하의 야경 투어가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다. 20년 전에 보았던 카를 다리가 떠올랐다. 그 당시는 체코에서 공산체제가 붕괴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해가 진 뒤의 카를 다리 위에는 젊음이 가득했다.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기카 선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비엔나에서 프라하로 가는 도중의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여기 사진들은 프라하의 야경들이다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일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젊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민주화라는 거센 물결이 지난 후라 그 충격이 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대통령 궁은 또 어떻고. 그리고 올라가 본 성벽 다락방 또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카프카’를 만났었다. 다시 그곳을 볼 수 있으려나? 여러 기대를 하며 버스에 올랐다. 이제부터 5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염려해야 하리라. 그러나 그런 염려와 달리 버스에 오르자 얼마 안 있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여행으로 인해 조금씩 피곤이 몰려드는 모양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타임머신이 따로 없었다. 차창 밖은 조금씩 하루에 지친 해가 지평선 끝에서 가물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더 지겹게 달리던 버스는 국경 부근의 휴게소에 멈추었다. 휴게소를 들어서자 저절로 맥주 코너로 발길이 갔다. 체코의 맥주가 유명하다니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저절로 그리 되는 모양이었다. 물 한 병, 맥주 두 캔의 값이 5유로로도 남는다. 마치 횡재라도 한 듯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한 시간 반 정도면 체코에 도착을 한단다.
마침내 프라하. 마치 아주 익숙한 곳이라도 온 양 즐거웠다.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는 짧은 가을 해가 하루의 임무를 막 마쳐가는 중이었다. 버스는 카를 다리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 블타바 강 건너에 정차를 했다. 구 시가지가 강 건너에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가이드를 따라 구시가지까지 걸어서 이동을 했다. 구시가지의 골목을 돌아 처음 당도한 곳은 ‘얀 후스 군상’이 서 있는 구시가지 광장이었다. 다소 어둑해진 광장은 늦가을 날씨 탓인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광장을 빙 둘러선 오랜 건물들은 제각각 조명을 받아 황홀하게 빛났다. 어떤 건물은 황금빛을 띠고 있었고, 또 어떤 건물을 하얗게 빛났다. 내일 이곳을 다시 올 것이므로 나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구시청사 앞에서 천문시계를 올려다보았다. 공사를 하는지 한쪽으로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그 앞으로 예전의 그 맥주집이 아직도 성업 중이었다. 물론 주인이 바뀌었는지 모를 일이다. 다시 그 옆으로 감탄을 하며 보았던 크리스털 가게도 그대로 있었다. 여전히 가게 안 진열대에는 수없이 많은 유리잔이며 세공품들이 가득했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황홀경에 빠질 지경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좁은 골목길을 따라 카를 다리 쪽으로 갔다. 예전에는 그 소로에 맥주집이 늘어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말끔히 정돈이 되어 있었다. 카를 다리는 사진을 찍기에는 어두움이 컸다. 하는 수 없이 다리를 얼마만큼 걷다가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다리 위에는 예나지금이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처음 이곳에서 본 밤풍경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그 기억은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생생할 정도이다. 늘 폐쇄적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살던 때를 막 벗어난 시기라 여전히 폐쇄성은 내 몸 전체에 습관처럼 남아있던 때였다. 다음은 20년 전 처음 프라하에 왔을 때의 감상을 쓴 글이다.
자유가 넘치는 나라 체코-
자동차로 다음 경유국인 체코로 향할 때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호기심으로 가득하였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자본주의의 물결이 밀어 닥치는 나라라는 점에서 오스트리아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으며 그러한 호기심은 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한 때 유럽을 지배했던 실력자들이 호기를 뽐내던 곳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 쯤 이미 그것은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상당한 정도 오스트리아에 비하여 빈곤을 느끼기는 하였지만 그곳에서 본 자유스러움은 정말 그 이상이 없을 듯하였다.
<카를>다리를 거닐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보았다. 강변이나 다리 난간 그리고 거리의 건물들에서 보여지는 대단한 조각들보다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넘쳐 나는 자유, 바로 그것이었다. 타율에 길들여진 우리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야한 모습의 여자에 눈길이 자주 감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우리의 눈은 이미 우리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것 같았다.
forever praha!
결국 나는 <카를> 다리 누각에 놓인 방명록에 내 은밀한 치부를 드러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나는 상당 정도 스스로가 왜소해져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다. 광장을 둘러싼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프라하의 장엄한 역사를 읽게 해 준다면 사람들의 거침없는 행동들은 나의 닫힌 의식을 여지없이 뒤흔들고 있었다.
프라하의 밤은 뜨거웠다. 대낮부터 부둥키고 입맞춤하던 연인들은 아직도 달콤한 향내를 지울 수 없어 연신 부둥키고 사랑을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한 쪽에서는 은밀한 밤의 이야기들이 쉴 사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도시의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장막을 드리우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광란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그 밤의 향연이라니. 그리고 그 에로티시즘이라니.
나는 그 곳에서 보헤미안의 정열을 보았다. 그들의 행위 속에서 과거 냉전 시대의 잔상을 읽어 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과거 사회주의 시절이 도대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다만 미리 본 오스트리아에 비하여 농촌의 풍경이 다소 삭막해 보인다는 점을 빼고는 우리들이 슬며시 엿본 체코는 분명 과거와 상당히 단절되어 있었다. 갈등은 그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의식 속에 있었다. 의식의 혼돈이 마비로까지 발전할 즈음 나는 역사 속에 갇힌 미아처럼 고도 프라하를 밤이 늦도록 헤매고 다녔다. 서로 다른 양식의 수다한 건축물들이 빼곡한 그곳은 미로처럼 보였고 미로 속을 흐느적이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내 의식의 저편에서 나를 처연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허망하게 만들었는가? 자꾸만 자율과 타율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으로 그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그 밤늦은 시간에 나보다 7시간을 일찍 살고 있는 나의 아내와 통화를 하였다. 자꾸만 프라하의 연인들이 생각났지만 우리는 서로의 안부만을 겨우 확인하고 말았다. 얼마나 좋은가. 아이들은 이미 꿈속을 헤매는데.
광장에는 아직도 젊음이 가득한데 몸은 비엔나에서부터 달려온 터라 점점 나른해졌다. 너른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른한 몸을 쉬러 호텔로 향했다. 광장의 휘황한 불빛은 여전히 오가는 이들을 무심히 내려다보며 비추고 있었다. 내일 이 광장에서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 궁금해 하면서 다시 버스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