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국’과 ‘탕(湯)’의 어원
밥/식(食)은 진지 곧 희생물을 위로하는 의식의 산물 그 제삿밥(메)이다. 그래서 반(飯)은 제사를 마치고 그 희생물(메)[식(食)]이 내게 바르게 나누어지도록(나타나도록)[반] 되돌린 것[反]이고, 찬(饌)은 (제사)상에 차려 놓을 수 있게[찬] 선택된(가린)[灷/選] 것으로 달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나타낸다. 또는 밥[식(食)]과 함께 짝으로 선택하여[灷/選] 차려놓은[찬] 음식이다.
국/갱(羹)은 무와 다시마 따위를 넣고 끓인, 제사에 쓰는 메(밥) 옆에 놓는 국 곧 메탕이라고 설명한다. 갱(羹)은 고(羔)와 미(美)의 회의자이다. 새끼 양/고(羔)의 금문은 양의 뿔[양(羊)]과 산(山)의 회의자인데, 소전에서 화(火)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산(山)과 화(火)의 갑골문은 서로 비슷한 자형이지만 구분이 되어 있었는데, 금문에서 함께 쓰이다가 다시 소전에서 서로 구분이 뚜렷해진 글로 볼 수 있다. 산(山)은 우뚝 솟아나온[산] 것이고, 화(火)는 화끈거리며[화]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고(羔)는 양[양(羊)]의 고갱이(초목의 줄기 속에 있는 연한 심, 사물의 알짜가 되는 속내)/고고리(<옛>꼭지)[고] 그 뿔이 솟아나오는[산(山)] 무렵의 어린 양을 나타낸 글이다. 금문시대의 모호성이 소전시대에 화(얼)가 불끈 고초아(<옛>곧추세워)[고] 일어나는 의미로 인식하며 화(火)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국/갱(羹)과 쓰였듯이 고(羔)는 또한 양고기를 불에 고아(뭉그러지도록 푹 삶아)[고] 우려내다는 뜻으로 가차나 전주되어 쓰였다고도 볼 수 있다.
양(羊)은 ‘상서롭다’는 뜻도 있다. 근거는 무엇인가? 나선형 그 황금각을 이루며 이어 오르는(우러나는)[양] 뿔이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美)는 된사람이 되게[대(大)] 미나는(<옛>내밀려나오는/드러나는) 상서로움[양(羊)]을 뜻한다. 즉, 아름다움은 황금각 그 나선형의 아름으로 다다라 우러나는 마음이고, 고움은 고아(고부려) 우러나는 마음의 준말로서, 한마디로 된사람이 되게 하는 상서로움이다. 그러면 갱(羹)은 어린 양의 희생 그 상서로움이[고(羔)] 아름답도록(된사람이 되도록)[미(美)] 개운하게 우려낸[갱] 것을 뜻한다.
우리말 ‘국’의 어원은 무엇인가? 갱(羹)과 견주면 ‘구슬려 개운하게 우려낸 것’또는 ‘구슬려 (희생이 지녔던 그 된사람이 되려는, 아름다움을 이루려는 얼을) 개오어(<옛>게워)낸 것’의 준말이다. 더불어 ‘국’의 다른 말로 탕(湯/국을 달리 이르는 말, 탕국, 제사에 쓰는 찬(饌)의 한 가지, 건더기가 많고 국물이 적은 것)도 있다. 그러나 탕(湯)은 국[갱(羹)]과 엄연히 다르고 한자어이다. 탕(湯)의 우리말은 없는가?
탕(湯)은 금문에서 나타난다. 수(水)와 양(昜)의 회의자이고, 양(昜)의 갑골문은 일(日)과 시(示)의 회의자이다. 즉, ‘태양이[일(日)] 이어 오르며[양] 비추는/ 알리는[시(示)]’얼개로, ‘볕, 밝은, 빛나는, 영예로운, 눈부시게 아름다운’등의 뜻이다. 그러면 탕(湯)은 ‘그런 양(昜)이 타오르는[탕] 물[수(水)]’의 얼개로, 태양이 동해의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고 부글부글 끓이며 떠오르는 현상을 나타냈다. 탕국의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바로 ‘부상(扶桑) 신화’의 탕곡(湯谷)을 낳은 글이다.
탕곡(湯谷)은 열 개의 태양이 목욕하는 곳이며, 그 가운데에는 부상(扶桑)이란 나무가 있다.<산해경(山海經)·해외동경> 부상(扶桑)은 신수(神樹) 뽕나무이고, 그 가지에 열 마리의 금오(金烏)가 등에 태양 하나씩을 지고 서식하는데, 매일 여명이 되면 금오 한 마리가 태양을 지고 이 나무 꼭대기에서 날아오른다. 바로 태양이 지구를 한 바퀴 회전하는 현상을 뽕나무에 서식하는 누에의 오령잠(五齡蠶) 곧 오행(五行)과 십간(十干)의 원리로 나타낸 신화임을 알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제사상의 진설방향 그 동서(東西)의 원리이기도 하다.
태양이 목욕하는 곳이란 얼을 씻고 거듭남 그 세례의 상징으로 통한다. 탕(湯)이 탕국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국[갱(羹)]과 같으면서도 다른 까닭이기도 하다. 즉, 국은 밥과 떨어져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수동적인 것이라면, 탕은 밥이 없어도 홀로 독립될 수도 있는 적극적인 것이다. 그러면 ‘희생의 빛나는 아름다운 얼[양(昜)]이 타올타올(목적한 바를 이루려고 바득바득 애를 쓰는 모양)대며 또는 타령(어떤 사물이나 욕구에 관하여 자꾸 이야기하거나 뇌까리는 일)하며 우려낸[탕] 물[수(水)]’의 얼개이다.
탕(湯)의 우리말은 무엇인가? 흔히 개장국은 개고기를 고아 끓인 국으로 줄여서 ‘개장’이라고도 하지만, 육개장이 있듯, ‘개장’이 탕(湯)의 우리말이다. 개장의 어원을 몰라 흔히 ‘개醬’으로 나타내지만, 장(醬)은 끓여서 고아낸 것이 아닌 담가서 고아 우려낸 된장, 간장 등을 나타낸 글이다. 우리말 ‘장’은 열[십(十)]이며 열매 그 결실의 상징이다. 그래서 장은 또한 장을 우려낸 것의 준말로도 볼 수 있다. 장(醬) 역시 희생의 얼을 우려내어 장차 장 그 결실을 이루어내는 음식의 다름 아니다. 따라서 ‘개장’은 ‘(희생의 얼이 또는 희생의 댓가로) 개오어 낸 장’의 준말이다. 탕(湯)의 얼개와 결코 다르지 않다. 우리의 개고기 습속(習俗)에 따라 본래의 ‘개장[탕(湯)]’이 개장국(보신탕)에 밀려 사라진 것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육개장에 그 잔재의 일단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음식은 다른 생명의 희생물이다. 그 희생물의 댓가는 오직 자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나님의 소명 그 천명을 실현하는 된사람이 되는 일에 일익이 되는 것이다. 그 희생의 극락왕생을 빌며 제사 드리는 메가 식(食)이고, 그 식(食)을 헛되지 않게 나의 아름다움(된사람되기)으로 되돌리는 밥이 반(飯)이며, 그 반(飯)이 목이 메지 않게 감사드리며 개운하게 되도록 마시는 국이 갱(羹)이다. 따라서 우리의 식단은 반(飯)과 갱(羹)이 짝으로 항상 같이 하는 이유이고, 좌반우갱(左飯右羹)이 그 의미이다. 즉, 희생 그 상서로움의 좌 뜨인 얼을 발판으로 나의 얼을 우뚝 우려내어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과 그 희생을 내려주신 하늘과 조상에게 밝혀 아뢰며 감사하는 상징이다. 식사 전에 기도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식사가 곧 일반화된 제사이다. 식사 전 기도는 결코 기독교인만의 특허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