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險難하고 險難한 亡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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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균
이웃추가
| 2016. 4. 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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險難하고 險難한 亡者의 길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은 죽어서 다음 生을 받을 때까지 49일 동안 生과 死의 중간 상태인 中陰身이 되어 떠돌면서 다음 생의 因緣處를 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때 49일 동안 유가족이 영가 (靈駕)즉, 靈魂을 위해 부처님께 齋를 올리며 공덕을 빌어주면 나쁜 業을 지은 영가는 佛菩薩任 (부처님)의 加被덕분에 고통의 세상으로 가지 않으며 평범한 업을 지은 영가는 훌륭한 공덕을 이루어 보다 더 좋은 因緣處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加被 ..... 加祐, 加備, 加護라고도 부르며 부처님께서 자비의 힘을 베풀어 중생에게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49일 동안은 영가의 意識이 맑아져 있기 때문에 살아생전보다 부처님의 法文 (말씀)을 더 욱 잘 알아들을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스님들로부터 법문을 정성껏 들려주면 영가가 매 우 지혜로워져서 지난 세상에 대한 애착을 끊고 쉽게 解脫 (고통에서 벗어남)을 이루어 행 복의 나라 즉, 극락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불교에서는 영가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칠일 째 되는 날에 初齋를 올리게 되는데 그것을 7일마다 일곱 번 행한다. 그래서 칠칠재 (77齋) 혹은 사십구재 (49齋)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십구재는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매 7일째 마다 7회에 걸쳐 齋를 지낸다.
현실로 표현한다면 죄인이 훌륭한 변호사를 사서 형량을 줄여 주던가? 무죄로 석방시켜 주고자 바라는 것과 같다. 무거운 형량이 가벼워지고 또는 석방된다면 변호사를 사준 사람을 얼마나 고마워 할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7일 마다 한 번씩 재 (齋)를 지내는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사람이 죽어 중음신이 되면 보통 7일에 한 번씩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며 7 일 마다 한 번씩 여러 가지 색의 새로운 빛들이 보이고 환경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그 주기에 맞추어 제를 지내 줌으로서 영가가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좋은 빛을 따라 좋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7일마다 재를 지내 주어야 되기 때문이다.
둘째 : 冥府世界(지옥)를 관장하는 시왕 (十王)의 심판 및 형벌과 관련시켜 7일마다 재를 지내고 있다. 명부는 고통이 매우 심한 곳이고 10대왕은 고통 받는 명부의 죄인을 관장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불교와 도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10대왕의 관용을 비는 열 번의 재를 지내도록 하고 있다. 곧 제1 진광대왕부터 제10 오도전륜대왕까지 열 분의 시왕이 죽은 이를 차례로 심판하는 1/7일, 2/7, 3/7, 4/7, 5/7, 6/7, 7/7 일과 100일째 되는 날, 1주기, 2주기 때 재를 올려 죄업을 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앞의 1/7에서 7/7 까지는 사십구재라 하고 뒤의 셋은 百日齋, 小祥齋, 大祥齋라 칭한다. 즉, 재를 지내 줌으로서 부처님의 가피아래 벌을 면하고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閻羅大王으로부터 명을 받은 2명의 저승使者 (地獄使者, 기독교에선 使者魔鬼)가 亡者의 넋을 데리러 올 때 사자를 따라 十王廳 (閻魔廳, 중국에선 黃泉)으로 가야한다.
가는 길은 멀고 참으로 힘들다. 수백도의 零下의 산을 넘고~
수백도의 炎熱의 산을 넘어야 한다.
한국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저승사자는 검은 갓에 검은 道袍를 입었다. 간혹 손에는 창검을 든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서양에서 들어온 검은 상복의 영향이다.
♣저승사자가 오거든 이 말 전해주소♣
1) 환갑 (還甲) : 육십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지금 부재중 이라 하소.
2) 고희 (古稀) : 칠십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이르다 하소. 3) 희수 (喜壽) : 칠십칠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지금부터 여생을 즐긴다 하소. 4) 산수 (傘壽) : 팔십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이래도 아직 쓸모 있다고 하소. 5) 미수 (米壽) : 팔십팔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쌀을 좀더 축내고 간다 하소.
6) 졸수 (卒壽) : 구십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그렇게 조급하게 굴지 마라하소. 7) 백수 (白壽) : 구십구에 저승에서 데리러 오거든 때를 보아 내발로 간다고하소. *그래도 재촉하면 엄마에게 일러준다 말하소*
李白
紀수黃泉裏 還應釀老春
夜臺無李白 沽酒與何人
수=嫂-女
이백
기씨 영감을 애도함
기씨 영감님, 저승으로 가셨는데 거기서도 老春酒를 빚으시겠지요. 黃泉에는 李白이 없을 텐데 누구에게 술을 팔고 계십니까.
드디어 閻羅國에 도착한 영혼은 이승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염라대왕 앞에 나가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사바세계에서 지은 罪業에 따라 여러 지옥 중 그의 죄 값에 합당한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때 거짓말을 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염라대왕 앞에는 業鏡臺 (明鏡臺)라는 거울이 있어서 죄인이 지은 죄의 현장이 거울에 생생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업경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원하는 대로 모든 장면을 보여 주기 때문에 재판은 공정하고 준엄하며 지은 죄는 티끌만큼도 감출 수가 없다.
업경대
지은 죄 값에 따라 각자의 지옥으로 떨어지면 그곳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고통을 당한다. 형을 집행하는 餓鬼는 영혼이 죽으면 생환시켜 계속 형벌을 가한다.
刀山地獄 ..... 칼이 무수히 꽂힌 산에 던진다.
各 地獄의 門
發舌地獄 ..... 혀를 길게 늘여 소의 쟁기로 밭을 갈듯이 간다.
火湯地獄 - 끓는 물에 집어넣는다.
각 시왕이 담당하는 지옥은 아래와 같다.
1) 秦廣大王 ..... 刀山지옥 : 칼의 산위로 던지기
2) 初江大王 ..... 火湯지옥 : 끓는 물에 담그기
3) 宋帝大王 ..... 寒氷지옥 : 얼음 속에 파묻기 ☞ 邪淫을 범한 자들을 警責한다.
4) 五官大王 ..... 劍樹지옥 : 칼로 몸 베기 ☞ 중생들이 거짓말한 죄를 다스린다.
5) 閻羅大王 ..... 發舌지옥 : 집게로 혀 빼기 ☞ 업경대가 있어 망자가 생전에 지은 온갖 선악행위가 비춰져 거짓말을 할 수 없다.
6) 變成大王 ..... 毒蛇지옥 : 독사로 몸 감기 ☞ 업경에 따라 재판을 받고도 죄가 남은 사람이 있으면 지옥에 보내 벌을 받게 하고 사람들에게 악을 폐하고 선을 권장한다.
7) 泰山大王 ..... 鉅解지옥 : 톱으로 몸 자르기 ☞ 염라대왕의 서기로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여 망자가 환생할 곳을 정한다.
8) 平等大王 ..... 鐵床지옥 : 쇠판에 올리기 ☞ 이 왕은 공평하게 罪福의 業을 다스린다 해서 그 이름을 얻은 것이다.
9) 都市大王 ..... 風道지옥 : 바람 길에 앉히기 ☞ 사람들에게 법화경과 아미타불 조성의 공덕을 맡아 해준다.
10) 轉輪大王 ..... 黑暗지옥 : 암흑 속에 두기 ☞ 부모나 스승의 물건을 훔친 자를 심문하고 처벌한다.
제1진광대왕부터 제7태산대왕까지는 망자가 맞이하는 각 7일째를 관장하며 제8평등대왕은 망자의 100일을 제9도시대왕은 망자의 1주기를 제10전륜대왕은 망자의 3주기를 관장한다.
各 敎에서 주장하는 지옥은 어떠한가?
1. 불교에서는 생물이 윤회하는 六道 (天, 人間, 阿修羅, 畜生, 餓鬼, 地獄)의 최하층에 지옥이 있다. 俱舍論에서는 八大地獄이라고 하여,
等活;殺生의 죄
흑승 (黑繩);살생, 도둑질의 죄
衆合;邪淫의 죄
叫喚;살생·도둑질, 사음, 음주의 죄
大叫喚;위의 4가지 죄에 더하여 妄語의 죄
초열 (焦熱);위의 5가지 죄와 邪見의 죄
大焦熱;위의 6가지와 尼僧을 범한 죄
阿鼻 또는 無間;부모를 죽이거나 부처를 손상시킨 죄, 佛法非難의 죄)가 있다.
無間地獄은 지옥중의 지옥으로 최하층에 있으며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다.
각 지옥에는 다시 16가지의 지옥이 있으므로 대소 합하면 136가지의 지옥이 있고 그 밖에 팔대지옥 옆에 八寒地獄이 있어서 衆生은 嚴寒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고대인도의 종교, 전설, 야사, 영웅담, 관습등을 총망라하여 종교경전으로 집대성한 베다 (Veda)文獻에서는 지옥에서 死者를 심판하는 것은 死者의 王 “夜摩”였다. 야마는 염마 (閻魔;閻羅)라 漢譯되어 불교와 함께 중국에 전해져서 완전히 중국적 존재가 되었다. 염마는 冥界에 있는 10명의 왕 중의 하나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지옥의 관념은 原始佛敎時代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그와 대비되는 淨土의 觀念은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이후에 생겼다.
2. 舊約聖書에서는 死者의 나라를 셰올(sheol)이라고 하고 깊은 어둠으로 덮였으며 地下의 深淵 저쪽에 있다고 하였다.
3. 또한 이슬람교에서는 이 세상의 종말에 신에 의한 심판이 있다고 하였다. 생전의 신앙과 행위가 모두 기록된 장부를 저울에 올려놓아 <저울이 무겁게 내려간 자>는 낙원으로 <저울이 가볍게 튀어 오른 자>는 지옥으로 던져져서 각기 상응한 보답을 받는다고 하였다.
험난하고 긴 길의 마지막은 왔다. 다음 생으로 갈 六道를 배정받는다. 天, 人間, 阿修羅, 畜生, 餓鬼, 地獄으로 가야한다. 이승에서 좋은 일을 가장 많이 한 사람과 佛法을 잘 닦은 스님은 곧바로 極樂世界로 직행하여 영원히 머물고 그 다음은 天上의 나라로 직행한 후 善한 일을 한 만큼만 머물다가 인간으로 還生하며 또 그 다음은 즉시 인간으로 還生한다. 기타는 罪業을 진만큼을 각기의 육도에서 생을 살다가 다시 輪廻로 다음 생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大勢至菩薩 釋迦牟尼佛 觀世音菩薩
唐나라 布袋和尙 釋迦牟尼佛 白衣觀音菩薩
그러면 성경에서는 지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성경에는 지옥에 관한 가르침이 많이 있다. 특히 그 가르침은 거의 전부가 예수님께서 친 히 일러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 진실성을 의심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이미 중요한 직분까지 맡은 사람인데도 지옥에 대하여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지옥이 있는 것일까? 지옥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대개 異端의 경우, 이 지옥을 부인한다. “여호와의 증 인”이라고 하는 이단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 지옥에 대하여 분명한 해답은 지옥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그 지옥의 모습과 두려움이 어떠하다는 것을 눈에 보이 듯 확실하게 보여 주고 누구라도 지옥에 가는 일에 대하여 핑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 다. 만약 지옥이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도록 공갈로 꾸며 놓은 가공적인 장소라면 성경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진리가 아니라 거짓말이란 증거가 될 것이다. 만약 지옥이 성경이나 예수님이 꾸며 논 이야기라면 천국도 꾸며 논 이야기가 되며 예수님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한 거짓 선 지자가 되셨을 것이다.
(1)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지옥은 반드시 있으며 그곳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의 장소임을 밝히셨다.
눅 12 : 4, 5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 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너희에게 이르노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하셨다. 죽인 후에 어디에 집어넣는다고 하 셨나요? 분명히 지옥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지옥은 죽은 후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최 종적으로 들어가는 죄인들의 영원한 처소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 성경에는 지옥의 모양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오고 있다.
첫째로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막 9 : 48절 이하에서 예 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지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며 사람마다 불 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는 말씀으로 지옥이 어떠한 곳임을 표현하셨다. 지옥의 불 길은 무섭다. 그리고 그 지옥의 불길은 영원한 불길이라고 하신 것이다. 계 14장에 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9절 - 11절".
이처럼 지옥의 불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로써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죽이지는 아니하고 그곳에서 마치 불로서 소금 치듯 하는 고통을 영원히 당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 다.
(3) 이 지옥의 존재는 원래부터 사람들이 들어갈 곳으로 만들어 놓은 곳은 아니라고 밝혀 주고 있다.
마 25 : 41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때에 악인들에게 선언하시 는 말씀으로 이처럼 선언하셨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를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지옥이 란 곳은 원래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인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마귀를 따르므로 마귀와 함께 그곳에 던져 넣는다고 하신 것이다.
(4) 한편 이 지옥이란 곳은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영영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이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본문 26절을 보면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있 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 느니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가며 지옥에 가는가? 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 씀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거지 나사로가 죽었다고 했다. 그러면 나사로가 죽자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나 사로가 죽자 즉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람이 죽으면 저승의 사자가 와서 데려간다고 합니다. 실인즉 그 사자란 천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성경에서 말씀해 주고 있다.
믿는 사람들은 그 천사에 이끌리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데 아브라함의 품이란 곧 영원 한 천국을 의미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자색 옷 입은 부자도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는 곧 음부에 갔다고 했습니다. 음부란 말할 것도 없이 지옥을 말한다. 이처럼 사람의 몸이 어떤 모양이든 일단 죽으면 그 육체가 무덤에 묻히건 화장으로 불사름이 되건 물에 빠져 고기밥이 되건 그 생명은 곧 그 즉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게 된다고 하는 사실 을 성경은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당한 본인들은 하나의 돌연한 변화를 맞은 것이다. 자신이 죽은 사실도 모르고 자신이 새로운 세계에 와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래는지 모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은 분명히 천사들에 의해 그의 영혼이 받들려 올리 운 다고 하셨다. 그러면 지옥에 갈 사람들의 영혼은 누가 데려 가는 것일까? 옛날부터 내려오 는 전설적인 말에는 성경적인 말이 간혹 있다. 사람이 죽으면 사자에게 끌려간다고 하면서 소위 사자 밥을 차려 놓는 풍습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려오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 는 사자란 저승의 사자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어가는 악한 천사들의 존재를 의 미하는 말이다.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
우리는 여기서 지옥에 들어가 있는 사람 중에 몇 사람을 간추려 그들이 겪고 있을 지옥의 생활상을 알아보려고 한다.
(1) 본문 말씀을 보면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자색 옷을 입고 아주 부요하게 살았지만 죽은 후에 지옥에 가서 불붙는 지옥의 한편 구석에서 가련하게 외치는 한 불쌍한 영혼을 바라 보게 된다.
그의 울부짖는 소리는 지금도 우리의 귀에까지 들려오는 듯 싶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여러분, 이 부자의 신음 소리는 예수님이 계셨던 당시부터 지옥에서 들려 온 소리였지만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들려오는 소리이며 영원토록 들려오는 가련한 울부짖음이 될 것다.
(2) 눅 12장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죽음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주검을 당한 한 사람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은 지옥의 끝없는 불길 속에서 고통을 참아 가며 그의 입에서 원망의 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어리석었도다 나의 탐심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 왔구나, 내 욕심이 나를 지옥으로 이끌어 왔도다” 누군가가 같은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곳에 왜? 오게 되었습니까?” 이 어리석은 부자는 말하기를 “나는 눅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나는 세상에 있을 동안에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등한히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에 얼마나 풍년이 들었는데 우리 집 쌀 창고에 쌀을 쌓을 곳이 없도록 가득 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련한 나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몰랐고 11조도 몰랐습니다. 다만 내 작은 쌀 곡간을 헐고 보다 큰 창고를 만들어 그 쌀을 쌓아 두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인 모르게 갑자기 심장마비가 생겨 깨어나 보니 이곳 지옥에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참 어리석었습니다. 내가 지금 다시 밖 앗 세상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내 평생 하나님만을 위해 살아가는 생애를 살아갈 것인데 나는 지금 이곳에서 영원토록 이 같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아, 나는 어리석었도다. 내 욕심이 나를 이곳으로 끌어 왔도다”하면서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어리석은 부자를 보여 주시면서 우리들에게 이처럼 말씀해 주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3)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 중에 가룟 유다란 사람을 빼놓을 수는 없다.
성경에서 증거해 주는 말씀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일에도 자기가 한 악한 행위를 따라 차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은 가장 중한 죄를 범한 악인들이 더욱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그곳에 보니 어디서 본 듯한 한 사나이가 터진 자신의 배창자를 부둥켜안고 불 속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서 “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도다. 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도다” 이 말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두 손을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자가 바로 가룟 유다이다. 이 자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하나였고 그는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귀신도 쫓아내고 병자도 고치는 큰 권능도 행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 무죄한 스승을 銀30에 팔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도록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었다. 그 후에 이 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는 했지만 하나님 앞에 진실한 회개를 못했다. 그는 양심의 고통을 받았지만 회개를 못했다. 돈으로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이처럼 회개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천당과 지옥을 양극화로 설명하고 있다.
지옥에 떨어지면 영구적으로 지옥에 갇히고 천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자라도 悔改만 하면 즉시 천당에 간다는 것이다. “무고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여러 기독교인에게 물었어도 대답하는 자가 없어 어떤 기독교 연구회에 문의하니 겨우 답을 얻었다. “평소 주님을 찬양한 자는 천당에 가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살았을 때의 행적에 따른다”는 거였다.
“회개하라! 심판의 날은 가까워 졌다”라고 기독교인들은 툭하면 말한다.
심판은 맑은 날 흰 뭉게구름 위에 주님이 흰 백말을 타고 수백의 천사를 거느린 하에서 지구로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수백 배가 되는 불벼락을 내린다. 그야말로 벌레까지 일대 학살극을 벌린다. 학살극을 벌리기 직전 주님을 찬양하든 자들이 묻힌 모든 무덤은 쫙~ 갈라지며 유골들이 일어나 생생한 몸뚱아리로 환생되면서 나체로 둥실둥실 떠올라 승천한다는 것이다. 이때 병신들은 주님의 배려로 완전한 몸매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살어 있는 자들이 전부 나체로 둥실 떠올라 승천한다고 한다고 한다. 에~이 숫처녀들은 팬티만이라도 입히지~ 너무 했어.
불벼락 속에서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부르면 제2차로 구원의 손길을 뻗친다고 卦變을 늘어놓는다. 불벼락이 끝나면 地上天國을 세운다고 하는데 천당은 滿員이라 그런가? 과거“서울은 만원인가?”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아마도 全知全能한 하나님도 한계가 있는가 보다.
다음은 어느 여성의 경험,
우리 딸이 전철을 타고 가다가 찍은 사진인데 사진 찍을 땐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딸이 만화과 학생이라 만화배경으로 쓰려고 이것저것 사진을 찍는데 전철 창을 배경으로 쓰려고 찍었대요.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없을 때 찍었겠죠.
나중에 확인해보곤 자신도 놀랐다는데 .....
잘못 찍혔거나 사람이 움직이면서 찍혔을 거라 추측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해 봤는 데 99% 저승사자임에 틀림이 없답니다.
가장 간단하게 딸이 시험해본 방법은 사진을 포토샵에서 밝기를 조절해 보는 거 였는데
사람이 잘못 찍혔거나 움직이면서 찍혔으면 밝게 조절하면 형체가 나온다는군요.
그런데 밝게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저승사자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으흐흐~~~
참, 그리고 저승사자는 꼭 둘이 함께 다닌대요. 저 뒷모습이 그림자가 아니고 두 명이 찍 힌 거래요.
改新敎에서 말하는 天國의 모습
啓示錄 21장 ~ 22장에는 천국 (새 예루살렘)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새 예루살렘은 正四角形으로 가로와 세로가 12,000 스타디온 (2,200km)이다. 높이 역시12,000 스타디온 (2,200km)이므로 正六面體의 모양을 하고 있고 城郭의 폭은 144 규빗(65m)으로서 城郭은 碧玉으로 쌓였고 城郭의 基礎石은 各種寶石으로 꾸몄으며 內部의 城은 琉璃같이 맑은 正金으로 되어 있다.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3개씩 12 珍珠門이 있고 12使徒의 이름을 붙인 12성곽이 있다.
스타디온 (Stadion) .....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길이의 단위로서 1스타디온은 185m이다.
규빗 (Cubit) .....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폭의 단위로서 1규빗은 0.452m (두뼘)이다.
聖殿 안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셔서 빛을 발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해와 달이 필요가 없다. 그 곳에는 밤이 없으므로 온종일 성문을 열어 놓고 사람들이 榮光과 敬意를 가지고 들어온다. 俗된 것이나 可憎한 일이나 거짓말 하는 자는 들어올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의 生命冊에 기록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寶座로부터 나온 生命水의 江이 길 가운데로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나무의 實果가 있어 달마다 12가지 실과를 맺는다. 생명수와 생명나무 실과는 靈的인 몸의 飮料와 飮食으로 이를 먹으면 永遠히 늙거나 죽지 않는다.그 곳은 더 이상 슬픔과 주림과 고통과 외로움이 없는 사랑과 기쁨과 영광이 충만한 영원한 세계이다.
하나님의 寶座(審判의 總司令部)는 흔히 거룩함을 상징하는 碧玉(金剛石 또는 透明水晶)과 심판을 상징하는 紅寶石(생산지역을 따라 이름이 붙여진 핏빛 붉은 보석) 외에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에메랄드(녹보석)빛의 무지개가 드리워 있다. 하나님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이 세 가지 보석들은 다가갈 수 없는 빛으로 옷 입으신 하나님의 영화로우심과 嚴威로우심을 상징하고 있다.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이에서 네 생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의 고유한 형상을 띠고 있는데,
사자의 형상을 가진 자
소의 형상을 가진 자
사람의 얼굴을 가진 자
날아가는 독수리의 형상을 가진 자이다.
아 ~ 니 ~ ? 사람의 형상을 가진 자가 왜 ? 세 번 째 일까? 거 ~ 어 ~ 참 !!!
개신교에서 확실히 믿는 천당과 正金으로 된 천국의 계단
左右之間 罪지으면 잘 아시겠지?
惡魔의 눈동자
罪지은 人間의 눈동자
그의 저승사자 (紳士이지~요?) 韓國의 도깨비
韓國의 女子鬼神
居室에 나타난 幽靈
그래도 天國은 있다 !!!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勸善懲惡을 極大化한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하는 바입니다.
- 義 海 - 김영선 씀. 2004.5
** 이 글의 원문에는 화보가 많이 있다. 글만 취하여 여기에 실었다. 나의 친구 의해는 3년전에 저승에 갔다. 아까운 사람이요 유능한 분이었다. 그가 살아 생전에 이멜로 내게 보내온 글을 정리해본다. 그의 코너도 만들었다. 낙금** 20016. 4. 3.
김종균
김종균
樂琹書室
“나는 거문고와 글을 즐기며 육십여 년을 그렇게 살았다.” 김종균 박사 회갑 년에 淵民 李家源 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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