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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문헌
경암집(絅菴集) /신완(申琓)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신완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신완(申琓)의 시문집. 8권 4책. 고활자본. 1766년(영조 42) 그의 손자 경(暻)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편자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권1에 부(賦)·사(辭) 각 1편, 시 120여 수, 권2에 시 100여 수, 권3·4에 소(疏)·차(箚) 15편, 권5에 소·차 8편, 계(啓) 6편, 의(議) 1편, 권6에 가장(家狀), 권7에 시장(諡狀)·묘지·묘갈명 등 4편, 권8에 제문 11편, 애사 1편, 잡저 10편, 서(書) 9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이학(理學)보다 문사(文詞)에 관한 내용이 더 많으며, 시는 율격이 아려(雅麗)하고 화평하다. 한편, 소·차·계·의 등 시무(時務)에 관한 것이 많은데, 특히 권4의 〈팔조만언봉사 八條萬言封事〉는 2만 6000여 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당시의 사회·경제 문제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보면 ① 치국의 근본을 세울 것, ②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할 것, ③ 당파싸움을 없앨 것, ④ 백성의 어려움을 구제할 것, ⑤ 군제를 개선할 것, ⑥ 귀천을 막론하고 부역을 균등하게 할 것, ⑦ 성을 쌓고 못을 파서 국방을 튼튼히 할 것, ⑧ 국경선을 확실하게 정할 것 등을 말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군제의 개선책에 관한 것은 설군(設軍)의 연혁과 각종 통계숫자까지 열거하고 있어, 당시의 형편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경암집(鏡巖集) /고승 관식(慣拭)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고승 관식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고승 관식(慣拭)의 시문집. 3권 1책. 목판본. 1804년경에 간행되었다. 권두에는 목만중(睦萬中)과 유숙지(柳肅之)의 서(序)와 목만중의 경암대사영찬(鏡巖大師影贊)이 있고, 권말에는 제자 팔관(八關)의 행장과 이재기(李在璣)의 발문이 있다.
권상에는 오언절구·칠언절구·고시 등의 시가 수록되어 있고, 권중에는 서(書), 권하에는 기가 있다. 잡저·소·한화록(閑話錄)·문답이 권하에 수록되어 있지만, 일단 경암록 종(終)이라고 명시하고 다시 잡저부터 시작되고 있으므로 부록형식으로 편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상에 수록된 시는 명산·고찰을 소재로 한 저자의 심경을 읊거나 법려(法侶)와 후학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법어 및 석별의 정을 나타낸 것이며, 특히 고시 〈선거탄 禪居嘆〉과 〈강사행 講師行〉은 당시 선교(禪敎) 수행인의 마음을 밝힐 것을 강조한 교훈적인 작품이다.
권중의 서에는 채상국번암공(蔡相國樊巖公) 등 승속 23인에게 보내는 서신이 수록되어 있어 저자의 친교를 알 수 있다. 권하에는 4편의 서와 〈해인사백련암중창기 海印寺白蓮庵重創記〉·〈칠불암기 七佛庵記〉 등 중요사찰사료인 24편의 기가 수록되어 있다.
잡저에 수록된 〈논한자설 論韓子說〉·〈논무학사적설 論無學史蹟說〉·〈오효자전 吳孝子傳〉·〈박열부전 朴烈婦傳〉·〈논삼교동이 論三敎同異〉 등은 당시 종교사회에서 불교적 관심과 저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오효자전〉과 〈박열부전〉은 당시 유교적 사회윤리의 한 단면을 승려인 자신이 기술함으로써 유불의 갈등을 조화시키고자 한 점을 살필 수 있다.
〈논한자설〉과 〈논삼교동이〉 등은 불교와 유교, 불교와 도교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천명한 것으로, 불교를 알면 유교·도교가 서로 다르지 않고 불교의 인천승(人天乘) 가운데 인승은 유교요, 천승은 도교임을 주장하였으며, 불교는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제일 바라밀로 삼고 있음을 밝혀 종교간의 논란을 삼가할 것을 논하고 있다.
특히, 불교는 명심(明心), 노도(老道)는 전기(專氣), 유도(儒道)는 심기(心氣)로 보았고, 삼재(三才) 중 천재(天才)는 주양(主陽), 지재(地才)는 주음(主陰), 인재(人才)는 이의(二義)를 포함하였으므로 취하고 버릴 것이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양재집(景陽齋集) /박태고(朴太古)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박태고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박태고(朴太古)의 시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1799년(정조 23) 증손 사순(思純)이 편집, 1898년 7대손 영곤(永坤)이 부록으로 소록(疏錄)을 첨부해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병선(宋秉璿)·박중평(朴重枰)의 서문과 권말에 박치장(朴致璋)의 소록후지(疏錄後識)가 있다.
권1·2에 시 230수, 권3에 소 3편, 서(書) 3편, 서(序) 5편, 제문 7편, 녹(錄) 1편, 부록으로 만사·가장·행장 등과 〈사계김선생변무동소록 沙溪金先生卞誣同疏錄〉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이건명(李健命)에게 지어준 것이 많다. 특히 인간의 출생·활동·사멸을 내용으로 한 장편 절구인 〈한포재석상호운첩대 寒圃齋席上呼韻輒對〉와 눈에 대해 운을 붙여 50구나 소감을 읊었으면서도, ‘설(雪)’자를 한 구도 사용하지 않은 〈영설오십운배율 詠雪五十韻排律〉 등은 특기할 만하다.
소의 〈사계김선생변무소〉는 김장생(金長生)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주장한 내용이다. 그는 예로부터 군자가 소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필연의 이치라고 전제하면서, 김장생이 ≪경서변의 經書卞疑≫·≪근사록석의 近思錄釋疑≫, 특히 주희(朱熹)가 종결하지 못한 예설의 경전을 연구하며 여러 사람의 말을 종합해 시대와 절차에 적합하게 편저한 ≪상례비요 喪禮備要≫·≪의례문해 疑禮問解≫ 등은 전현(前賢)들이 못하였던 동방예학의 집대성으로서, 그 공적이 주희를 능가한다고 하였다.
서의 〈동약절목서 洞約節目序〉에서는 병자호란 이후 인륜이 점점 타락해 가는 상황에서 한 지역이라도 모범을 보이면 그 교화가 파급될 것이라고 서술하고, 빈병혼상(貧病婚喪)에 서로 협조할 것 등 14조항을 제시하였다. 〈역대전심록 歷代傳心錄〉에서는 요순시대부터 주자까지의 도학연원(道學淵源)을 상세하게 편성해놓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경연당집(景淵堂集) /이현조(李玄祚)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현조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현조(李玄祚)의 시문집. 6권 3책. 목활자본. 1784년 채제공(蔡濟恭)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채제공의 서문이 있으나 발문은 없다.
권1에 〈소우록 消憂錄〉과 〈북정록 北征錄〉의 편명으로 시 136수, 권2에 〈동유록 東遊錄〉의 편명으로 시 200수, 권3에 〈관동록 關東錄〉·〈귀전록 歸田錄〉의 편명으로 시 140수, 권4에 〈화산록 花山錄〉·〈궤성록 簣城錄〉·〈학성록 鶴城錄〉·〈귀전록〉의 편명으로 시 117수, 권5에 상소문 16편, 사직소 8편, 제문 16편이 수록되어있다.
권6에 행장 2편, 시장(諡狀)·묘지명 각 1편, 잡저 3편, 서(書) 1편, 상량문 3편, 예장(禮狀) 8편, 부록으로 치제문·연보보유·가승(家乘)·연보초절(年譜抄節)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상소문의 〈회양부사시읍폐소 淮陽府使時邑弊疏〉는 당시 지방군현의 재정이 중앙정부의 과도한 징발로 피폐하여진 실상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그 밖의 상소문도 당시 남인·소론의 당쟁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정세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시의 〈소우록〉은 자연을 읊은 것이 아니라 당시의 당쟁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상황의 배경 속에서 그의 감회를 시로 표현한 것이다.
그 밖의 시는 대개 함경도·강원도 지방의 방백으로 있을 때 그곳의 풍물을 읊은 것으로, 차운의 형식을 빌린 장시가 대부분이다. 규장각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경옥유집(景玉遺集) /조선 후기의 학자 이보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이보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이보(李簠)의 시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1813년(순조 13)경 저자의 후손 인강(寅綱)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굉(金㙆)의 서가 있다.
권1에 시 113수, 권2∼4에 소 1편, 잡저 3편, 서 6편, 기 10편, 발 4편, 상량문 2편, 제문 4편, 묘갈명 2편, 묘지명 1편, 행장 6편, 유사 4편, 부록에 묘갈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경광서원삼현청증소 鏡光書院三賢請贈疏〉는 안동의 경광서원에 봉안한 이종준(李宗準)·권우(權宇)·장흥효(張興孝)에 대해 학계와 국가에 끼친 공을 찬양하고, 증직(贈職: 충신, 효자, 학행이 높은 사람에게 죽은 뒤 관직, 품계 등을 수여하는 것)을 하사할 것을 청하면서, 학행이 높은 자에게 벼슬을 추증하는 것은 국가의 풍속을 바로잡고 사기를 북돋우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명분설 名分說〉은 우리 나라의 신분제도를 밝혀놓은 것으로, 유학 (幼學)·교생(校生)·허통(許通)·공생(貢生)·백성·공천(公賤)·사천·재인·백정의 9개 등급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백성에서부터 백정까지는 하천계급으로 일반적으로 상인이라 하고, 공생에서 교생까지는 과거 응시의 자격이 있는 중인(中人)이지만, 사인(士人)과의 구분이 엄격해 마음대로 교유할 수 없는 신분임을 밝힌 희귀한 자료이다.
〈서원설〉은 서원제도에도 서숙·정사·서원 등의 구분과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과 일반서원의 구분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서원제도가 해이해 지고 서원이 난립함에 따라 폐단도 심해지므로 이를 규제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 밖에도 사육신의 충절을 찬양하며 문집을 간행하게 된 동기를 밝힌 〈육선생문집서 六先生文集序〉와 김성일(金誠一)의 형인 극일(克一)의 국난에 대처한 기록을 적어놓은 〈약봉선생유사 藥峰先生遺事〉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에 있다.
경와만록(敬窩漫錄)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이헌영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이헌영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문신·학자 이헌영(李櫶永)의 시문집. 8권 7책. 필사본. 1890년 후인들에 의해 필사되었다. 권두에 자서가 있다.
권1∼3에 시 994수, 소 33편, 차(箚) 5편, 권4·5에 진면(陳勉) 3편, 계(啓) 4편, 전(箋) 48편, 강의 5편, 응제문(應製文) 49편, 서(書) 6편, 서(序) 45편, 기 23편, 발 2편, 책 2편, 상량문 3편, 묘지 5편, 묘표 1편, 갈지명(碣誌銘) 2편, 행장 5편, 권6에 제문 12편, 고문(告文) 8편, 습략(拾略) 68편, 권7에 잡저 7편, 부록으로 연보 1편, 권8에 목차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1000수에 가까운 많은 분량으로, 시의가 깨끗하고 감정이 풍부하며 기교 또한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사귀던 11명의 기녀에게 준 12수의 시는 뛰어난 시재를 발휘해 애정 표현을 해학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신촌팔경 新村八景〉은 새로운 촌락의 주위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 8개소를 가려서 지은 것으로, 경치를 묘사한 시재가 돋보인다.
〈문단발령 聞斷髮令〉 3수는 제도가 변해 옛 것을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는 우국의 정을 담고 있다.
〈서계 書啓〉는 암행어사가 되어서 경기도 일원과 동래지방 및 경상도 등을 순행하고 올린 보고서로, 당시의 지방관리의 치적, 백성들의 동향, 생활상들을 조사하고 직접 처리한 것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상부의 재가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답홍재겸 答洪在謙〉에서는 향약이 이미 고인들에 의해 시행되어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바로잡은 규정이라고 지적하면서, 향약의 시행을 권장하면 백성들이 모두 좋아서 따를 것이니 시범삼아 해볼 것을 권유하였다. 〈경와서 敬窩序〉에서는 경(敬)이 수신의 근본이념이라고 지적하면서, 공부해도 얻지 못하는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경와유고(耕窩遺稿) /조선 중기의 학자 이명원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이명원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이명원(李命源)의 시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간행연대는 미상이다. 저자의 후손 해익(海翼)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후손 항익(恒翼)의 발문이 있다. 권1∼3에 시 522수, 권4에 서(序) 2편, 기 2편, 발 5편, 설 2편, 찬(贊) 1편, 명(銘) 3편, 문(文) 3편, 제문 3편, 행장 2편, 부록으로 행장 1편, 묘갈명 1편, 제문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고에는 시가 가장 많은데, 시어가 다채롭고 시상이 청아하여 고고한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 가운데 사서삼경을 읽고 그 독후감을 칠언율시에 담은 것이 특히 빛난다. 〈대경자어 對鏡自語〉는 90세가 넘은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신도 벌써 백발이 성성하니, 앞으로 부모를 섬길 일이 걱정이라며 지성스런 효심을 읊은 것이다.
기의 〈구미설 九美說〉은 구미(龜尾)로 이사한 다음 그 고장을 찬양한 내용으로, 구미는 곧 구미(九美)로 통하는 좋은 이름이라며 여러가지 사설을 붙여 설명한 내용이다.
명 가운데 〈구절장명 九節杖銘〉은 속리산에서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절개는 무산(巫山)을 따랐는지 그 모양이 구부러지기를 마치 무이(武夷)의 구곡(九曲) 같아서 서로가 떨어지기 아쉽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산세고 伊山世稿≫ 속에 실려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와집(敬窩集) /조선 중기의 학자 김휴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김휴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김휴(金烋)의 시문집. 8권 4책. 목판본. 간행연대는 미상이다. 권1∼4에 부 5편·시 578수, 소사(小詞) 21수, 서(書) 12편, 권5·6에 잡저 59편, 권7에 잠 7편, 명 4편, 찬·서(序)·기·상량문 각 1편, 제문 4편, 행략 5편, 권8은 부록으로 저자의 행장·제문·만사·묘갈명 등이 실려 있다.
권1의 천명도부(天命圖賦)는 인간이 하늘에서 받은 천성에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이 있는데, 이 품성의 어짐과 어리석음에 따라 군자와 소인이 구별된다고 논하고 있다.
권5·6의 잡저에는 다른 문집에서 볼 수 없는 도시(圖示) 31개가 있다. 이것은 사서와 오경을 중심으로 하여 문장만 보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골라 그림으로 보이고, 그 것에 설명을 붙여 누구나 알기 쉽게 풀이한 것이다.
이러한 도시법은 다른 문집에서는 보기 드문 독창적인 것으로, 우리나라의 서지학 발달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권7의 〈물기잠 勿欺箴〉에서는 사람이란 이기주의로 남을 속이려 하지만, 남을 속이기에 앞서 자기자신부터 속이게 되므로, 우선 자기자신부터 속임이 없어야 한다고 깨우치고 있다.
지은이는 행록을 통하여 근독불기(謹獨不欺)와 천선개과(遷善改過)를 가세(家世)의 유훈으로 한다는 뜻을 남겼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旅軒集(張顯光)
<<참고문헌>>海東文獻總錄
경우유고(景尤遺稿) /조선 말기의 학자 심상룡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심상룡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심상룡(沈相龍)의 시문집. 24권 13책. 필사본. 1953년 그의 아들 의섭(儀燮)이 편집했으며, 서상춘(徐相春)이 서를 쓰고 서상봉(徐相鳳)이 발을 썼다.
권1∼8에 사(辭) 1편, 시 1055수, 권9에 소(疏) 3편, 계(啓) 2편, 헌의(獻議) 3편, 권10에 서(書) 65편, 권11∼16에 잡저 56편, 권17에 서(序) 15편, 권18에 서(序) 16편, 권19에 기(記) 17편, 권20에 발(跋) 51편, 권21에 명(銘) 11편, 잠(箴) 4편, 찬(贊) 1편, 송(頌) 3편, 표(表) 1편, 전(箋) 1편, 권21에 혼서(昏書) 2편, 상량문 6편, 축문 6편, 권22에 제문 30편, 애사(哀辭) 5편, 권23에 신도비문 1편, 비 1편, 묘갈명 1편, 묘지명 4편, 행장 7편, 전(傳) 2편, 권24는 부록으로 증시(贈詩) 60수, 서(書) 65편, 서(序) 1편, 행장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방대하고 풀, 나무, 새, 짐승 등 자연을 노래한 것이 많다. 〈청진호황제소 請進號皇帝疏〉는 갑오경장 후 고종에게 황제의 직위에 오름이 옳다는 성균관 유생의 뜻을 연명으로 올린 것이고, 〈태학과규의 太學科規議〉는 인재의 취고(取考)에 관하여 6조를 예시하면서 취사(取士)를 정히 해야 인재의 수용에 차질이 없음을 건의한 것이다.
〈삼생기사 三生紀事〉에서는 삼생설의 유래를 추궁해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허구임을 말했고, 〈여무계 女巫戒〉에서는 독발무(禿髮巫) 등의 실례를 들어 미신의 폐단이 막심함을 경계했으며, 〈척사설 斥邪說〉에서는 노불(老佛)·야소(耶蘇) 등을 이단으로 단정하고 이러한 미혹에 끌리지 말 것을 역설하였다.
〈인체설 仁體說〉에서는 인이 마음의 본체임을 강조했고, 〈광구설 狂狗說〉에서는 개를 영견(靈犬)·의견(義犬)·순견(順犬)·광견(狂犬)으로 나누고, 광견을 가장 형편없는 인간에 비유해 풍자, 질타하였다.
〈논지구대세 論地球大勢〉는 세계 대세와 동양의 정세를 서술한 우국충정의 글이요, 〈미도책 弭盜策〉은 백성들은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음을 말하고, 도둑에 대한 대처는 충분한 생필품에 있음을 역설한 논문이다.
이 밖에 〈육국합종론 六國合從論〉·〈위정론 爲政論〉·〈구황계 救荒戒〉·〈경장설 更張說〉·〈강의문답 講義問答〉·〈쇄록 瑣錄〉·〈칠분지 七分志〉·〈중용강의 中庸講義〉·〈사서총지 四書總旨〉·〈삼경총지 三經總旨〉·〈인심도심도 人心道心圖〉·〈변화기질도 變化氣質圖〉·〈시가법 詩家法〉·〈작문론 作文論〉 등 정치·경제·사회·학술 면에 유용한 많은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다.
경운궁갱재록(慶運宮賡載錄)
조선 후기 영조가 왕세손 및 여러 대신들과 경운궁에 모여서 창화한 시집
조선 후기 영조가 왕세손 및 여러 대신들과 경운궁에 모여서 창화(唱和)한 시집. 1책. 갱재는 임금의 시에 화답하여 시를 지음을 뜻한다.
1773년(영조 49) 10월 1일은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였다가 환도한 지 180년(三甲子)이 되는 날이었다. 영조는 이전에 태조가 천도한 해와 정종이 복도한 해에 연회를 베풀었던 것처럼, 이해에도 경운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친히 시를 지어 선조의 환도 180년을 기념하였으며, 왕세손 및 대신들도 어제시(御製詩)에 화운(和韻)하였다. 경운궁은 지금의 덕수궁으로 곧 선조가 환도시에 이룩한 행궁이었다.
시의 내용은 모두 중국 주대(周代)의 고사를 인용하여 주나라 문왕의 선조인 고공단보(古公亶父)가 기(岐)땅으로 환도하고, 그뒤 문왕이 성업을 이룬 사실을 끌어다가 선조의 환도에 영조의 치적을 예찬하였다.
시의 체재는 모두 ≪시경≫의 대아(大雅)·소아(小雅)를 본떠서 4언으로 하였다. 맨 앞에 영조의 어제시를 싣고 다음 왕세손(정조)의 시 및 서명응(徐命膺)이 하늘의 은혜를 읊은 천권시(天眷詩)와 서문을 싣고 뒤이어 41인의 대신들의 시를 실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