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교회로 ‘성장’
1973년 8월 15일. 조용기 목사의 기도와 성도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실인 여의도성전이 완공된 날이다. 3년 4개월의 시간이 걸린 성전건축은 기간만큼이나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4000여 평 대지 위에 연건평 3200평 규모의 성전은 시멘트 6만6000포대, 벽돌 165만 장, 철근 400톤, 철골 250톤이 투입되었으며, 총 공사비 8억4100만원이 소요되었다. 새 성전의 완공과 함께 조용기 목사는 8월 19일 첫 주일설교를 시작으로 여의도시대의 본격적인 막을 열었다. 당시 우리교회 성도는 약 8000여 명이었으나 성전 건립 이후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해 1979년 10월 성도수가 10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또한 2년 만인 1981년에는 20만 명을 돌파, 명실상부한 세계최대의 교회로 자리 잡았다. 1984년 1월 1일 교회명칭을 순복음중앙교회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바꾸었다. 그해 10월에는 40만 성도를 돌파했고 이듬해인 1985년 12월에는 50만, 1992년에는 70만 성도를 달성했다. 우리교회성장에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주목했다. 미국의 타임즈를 비롯한 각국 언론들은 우리교회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조용기 목사에 대해 대서특필했으며 세계 50대 교회 중 여의도순복음교회가 당당히 1위로 선정되었다. 성도수의 급증가로 인해 수도권에 지성전을 건립하였다. 지성전을 통해 지역복음화에 힘쓰는 한편 국내외 크고 많은 성회를 통해 국내복음화와 세계복음화에 앞장섰다.
우리교회는 1973년 9월에 개최된 제10차 세계오순절대회를 계기로 세계선교의 막중한 사명을 절감, 1975년 4월 1일 세계선교회를 설립하여 세계선교의 토대를 구축하게 된다. 1971년 12월 박여호수아 장로를 평신도 선교사로 첫 파송하고 해외선교와 해외지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또한 1975년 미국 나성순복음교회에서 첫 순복음세계선교대회를 시작했다. 순복음세계선교대회는 회를 거듭할수록 발전해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선교에 대한 자세를 확고히 하고 그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선교축제의 장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타교단의 공격이 가시화되면서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에 대한 이단시비가 끊이질 않았고 이로인해 교단 내적으로는 교단분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1991년 12월 교단통합선언대회를 통해 교단이 다시 통합되고 타교단들이 조용기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비난을 철회하면서 국내선교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 또한 1983년 8월 30일 목포시 복음화대성회를 시작으로 85년 대구, 86년 청주 등 전국 지방도시의 성시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한편 1987년 10월 3일 여의도광장에서 100만 이상의 성도가 운집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대성회, 1990년과 91년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통일과 민족복음화를 위한 기도대성회, 1992년 8월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세계성령화대성회까지 대규모 집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하나의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밖에도 1982년 나누어 갖기 운동 전개, 1984년 심장병 환자 무료시술, 1988년 우리교회는 복음실은 일간지 국민일보 창간, 소외된 이웃을 위한 동양 최대의 엘림복지타운 건설, 엘림전문학교 개교, 사랑의 헌혈운동 등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노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