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
뉴턴의 모교이자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큰 규모 단과대학(College). 헨리 8세에 의해서 1546년에 설립된 트리니티 칼리지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과 대학이다. 트리니티 칼리지가 유명한 이유는 이 학교 졸업생들 중에 유명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인데, 아이작 뉴턴과 천재 시인 바이런, 찰스 다윈,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고 E.H.Carr가 바로 이곳 트리니티 칼리지 출신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전체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졸업생이 60명인데 이 중에서 트리니티 칼리지 졸업생이 31명이나 된다고 한다.
<E.H.Carr 평전> 48p
이러한 사정 덕분에 전시 기간에 외무부도 국무장관의 추천서가 있어야 들어올 수 있던 배타적 기관에서 재능 있는 이들이라며 누구에게나 개방된 기관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기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뽑지 않은 직원한테서는 그 어떤 좋은 성과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부 노회한 관리들도 있었다”고 틸리는 회상하였다. 실제로 1914년 한 중견 외교관은 외무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재산 자격 어느 정도 갖추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왕립위원회에 보고했다.
The clash between Acton and Sir George Clark
액튼경과 클라크 경의 충돌은
is a reflection of the change in our total outlook on society
우리의 사회에 대한 전망에 있어서의 변화의 반영이다.
over the interval between these two pronouncements.
이 두 선언사이의 간격 동안에 변화된
Acton speaks out of the positive belief, the clear-eyed self-confidence, of the later Victorian age;
액튼은 빅토리아 후반기 시대의 긍정적인 믿음, 분명한 자신감을 갖고 얘기한다.
Sir George Clark echoes the bewilderment sad distracted scepticism of the beat generation.
클라크 경은 비트 레너레이션의 당황스러움과 혼란스러운 회의감을 ehco한다.
When we attempt to answer the question 'What is history?’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우리가 답하려는 시도를 할 때,
our answer,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reflects our own position in time, and
우리의 대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시대에 속해 있는 우리의 위치를 반영한다.
forms part of our answer to the broader question
그리고 더 포괄적인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분이 된다.
what view we take of the society in which we live.
더 큰 질문이란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에 대해 어떤 태도, 견해를 갖는가’의 관점.
I have no fear that my subject may, on closer inspection, seem trivial.
나는 내 주제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 당연하고 하찮은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하지 않는다.
I am afraid only that I may seem presumptuous to have broached a question so vast and so important.
오히려 나는 단지 두렵다. 내가 너무 광범위하고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 뛰어들어 주제넘게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고
The nineteenth century was a great age for facts.’
19세기는 사실들에 대한 위대한 시대였다.
What I want', said Mr. Gradgrind in Ward Times, 'is Facts.... Facts alone are wanted in life.
그래드그라인더는 ‘Ward Times’에서 말하기를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들이다. 나는 사실만이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원하는 것이다.’
액튼과 클라크의 충돌은 두 선언 사이의 기간에 우리 사회에서 변화된 전망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액튼은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긍정적인 믿음, 분명한 자신감을 말하고 있고, 클라크 경은 비트 제트레이션의 집중되지 않는 회의론의 당황스러움을 반영한다.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으려 시도할 때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는가 라는 더 광범위한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주제가 너무 가볍고 당연할까라는 두려움이 없다. 오히려 나는 약간 걱정이 된다. 내가 오히려 건방지게도 그렇게 방대하고 너무 중요한 주제를 시작했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된다. 19세기는 사실들에 대한 위대한 시대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들이다’라고 그래드그라인드는 ward 타임즈에서 말했다. 인생에서 오직 사실들만 원하는 것이 되었다.
첫댓글 카는 말한다. 역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느냐는 좀더 광범위한 질문의 일부분이라고. 사회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은 다시 관점을 바꿔보면 다음과 두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현 우리 사회가 지금 그런대로 괜찮고 지금 이대로 가도 된다는 입장(보수)과 아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빈부격차등 문제가 많은 사회니 바뀌어야 된다고 하는(진보) 입장이다.
어제와 오늘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 가 영화 '변호인'에서도 논란이 되었듯이 어떤 내용때문에 금서 목록에 올랐을까?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생각 정리가 안 되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듯.....ㅎ
Carr가 유신 정권으로부터 감시의 대상이 된 이유 중의 하나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냉전시대 Carr가 구소련 전문가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카가 저술한 책 중 가장 유명하고 방대한 책이 '소비에트 러시아사(14권)'라이니. 참고로 이 책은 서구서는 고전이라는 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번역이 안된 듯. 내가 번역에 도전할까...^^
내가 다 못하면 자식세대, 손자 세대에서라도.ㅎ 어쨋든 냉전 시대였던 시절 러시아 전문가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정권의 감시망 아래 있기 쉬웠을 듯. 하긴 역사란 무엇인가 책에서 레닌, 마르크스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곳이 많다. 마르크스라면 경기를 일으키던 시절에 이 책이 불편했을 것같다는 정권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