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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던 길이 지도를 보다가 그만 천천히 가도 되겠네로 바뀌었고,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뒷동산 오르는 기분으로 쉬엄쉬엄 올라가야지 하는 편안한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쩐지 오르지 않았음에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자주 가본 듯한 친근함이 들었다. 바로 어제 올라 야호~ 하는 메아리라도 듣고 온 것 같은...
여수 MBC 앞의 길 쪽으로 오르기로 한다. 시내 한 가운데서 시작해 오르는 등산길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다는 편안함이 긴장감을 순식간에 무너트린다. 두 갈래 길이 만나는 고락산 초입. 우회전 해 주택단지가 보이는 길로 오르기로 한다. 좀 더 많이 걷기 위해서다. 정상이 0.9Km라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잘 정리된 나무 계단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오르기 쉽도록 도와준다.
주택단지 갈림 길에서 고락산성 쪽으로 향한다.
소나무 숲이 우거져가는 오솔길이다. 새로 정비하고 있는 길이니 몇 년이 지나면 금세 숲은 울창해져서 이미 유명해진 다른 어느 곳 못지않은 둘레 길로 거듭날 것이다. 나무 사이로 유난히 하늘은 파랗다. 상쾌한 피톤치드가 온 몸을 감싼다.
촘촘한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산을 오르기가 한결 편하다. 나무계단에 발은 편하지만 무릎이 벌써 아파온다. 부지런히 걸어야 아픈 것이 없어질 것이다. 천천히 부지런히 많이 걸어가자 생각하며 걷는다. 고락산성을 알리는 이정표와 함께 발 아래로 호랑산과 선경APT, 전남대 여수캠퍼스가 보인다. 멀리는 미평산도 보인다.
고락산은 고락산성과 관련된 북소리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문수동과 둔덕동, 시전동 사이에 우뚝 솟은 삼각형 모양의 형상으로 곳곳에 층층 바위를 이룬 곳이 많으며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 본영을 방지하기 위해 산의 양봉우리에 쌓은 것으로 알려진 성터가 남아있다. 고락산 정상에는 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락산성의 보루임을 알리는 비석도 있다. 지금도 남아있어 발에 밟히며 보이는 고락산성의 기와들. 빗살무늬와 온갖 직선으로 이루어진 기와들은 어떤 건물의 기와로 하늘을 받치고 있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백제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고락산성의 성의 둘러쌓은 기법으로 미루어 백제 때 쌓은 것으로 보인다. 여수반도의 고대문화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 수 있으며 우리나라 산성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곳이다.
산 정상에는 체육시설이 있다. 바로 옆으로는 국궁장이 있어 사람들이 활쏘기에 여념이 없다. 웃음소리와 환호소리가 햇살과 더불어 상쾌하게 쏟아지는 오전이다. 발 아래로는 여수시가지가 빙 둘러 보인다. 망마 경기장의 타원형으로 둥근 초록과 붉은 트랙이 보이고, 멀리 소호동의 가막만과 여수시내, 근접한 바다도 보인다. 웅천 쪽 방면과 여천 시가지가 보이고, 섬들도 조막 만하게 보인다. 바로 옆에는 빨간 색으로 고락산 둘레길이 6.7Km라고 씌여 있는 고락산의 새로 개발한 둘레 길의 지도가 그려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둘레 길은 정다운 오솔 길이다. 제주도의 올레 길만한 길로 금방 여수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등산로를 개발해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필요가 없겠지만 고락산의 둘레 길은 이미 여수시민들의 사랑 속에 우뚝 서 있으니 올레 길이 결코 부럽지 않다. 길이 갈라져도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잘 표시된 이정표가 하산 길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하산 길. 음수대에서 여러 갈래의 길이 갈라져 가고 싶은 길로 가면 된다. 하산 종점에서 바로 사우나로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한다. 걸으면서 흘렸던 땀을 바로 사우나로 가서 깔끔하게 씻을 생각에서다. 더운 물에 몸 담그고 고락산 정상에 올라 본 여수시내의 풍광을 생각하면 그동안의 피로가 순간에 확 풀릴 것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최근 들어서 여수 시민의 중심 둘레 길로 떠오르고 있는 고락산. 주변에 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여수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등산길로 거듭나고 있는 휴식처이다. 다양한 코스와 어디로 오르든 정다운 느낌의 고락산. 등산객들이 발 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곳도 아니지만 고락산은 우리의 뒷 산 같은 편안함이 있다. 맘 상할 때면 올라가 쳐다보았던 하늘이 있는 뒷산. 먼저 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울컥 그리움이 치밀어 오를 때면 마음을 달래려 올라갔던 뒷산. 여수시내 중심에 우뚝 자리 잡고 있는 고락산은 여수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뒷동산 같은 아늑하고 편안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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