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사(南海忠烈祠)>
남해안에 오면 거의 모든 곳에서 이순신을 만난다. 이곳에서 만나는 이순신은 더욱 특별하다. 바로 그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유구를 처음 안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아직도 편안하지 못하니, 이순신의 지혜와 헌신이 여전히 현재형으로 요구된다. 이순신의 지혜를 빌려오는 일에는 남해 어디에나 흔적이 있는 것처럼 영호남의 구분이 없다. 한일관계를 넘어 대내 문제에서도 그의 지혜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1.유적지 대강
명칭 : 충렬사
위치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로183번길 27
입장료 : 없음
방문일 : 2023.5.16.
2. 둘러보기
1) 소개
임진왜란 때 관음포(觀音浦)에서 순국한 이순신(李舜臣)의 영(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 197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노량은 전라남도 여수를 떠나 충무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연안수로(沿岸水路)의 요충지였다. 1598년(선조 31) 이순신이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자 처음에는 이 곳에 유구(遺軀)를 안치하였다. 이순신의 유구는 이 곳에 가장(假葬)되었다가 이듬해인 1599년 2월 11일 충청남도 아산으로 이장했고, 이후 가분묘(假墳墓)만 남게 되었다.
그가 죽은 지 34년째 되던 1633년(인조 11)에 이 곳 선비들이 유지(遺址)에 작은 초사(草舍)를 지어 제향을 올리고 추모하기 시작하였다. 또 1658년(효종 9)에 초사를 헐고 비로소 사당을 건립하여 봄ㆍ가을로 제향을 지냈다.
1663년(현종 4)에 충무 충렬사와 함께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곳에 있는 4기의 비 가운데에는 이러한 중건사유를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썼다.
이 사당이 세워진 그 당시에는 사당 옆에 호충암(護忠菴)이라는 암자가 있어 화방사(花芳寺) 승려 10여 명과 승장(僧將) 1명이 교대로 수직(守直)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비각ㆍ내삼문(內三門)ㆍ외삼문ㆍ재실ㆍ강당 그리고 일각문(一閣門)ㆍ부속건물ㆍ가묘소 등이 있으며, 면적은 1,045평이다.
1965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가 ‘충렬사’와 ‘보천욕일(補天浴日)’ 현판을 다시 썼고, 1973년 6월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보수, 정화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외삼문
내삼문
보천욕일(補天浴日) : 하늘을 돕고 해를 목욕시킨다. 큰 공훈을 세운 것을 비유하는 말로 중국 신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와가 하늘을 메우다(女媧補天)’와 ‘희화가 해를 목욕시키다(羲和浴日)’에서 유래한 성어라 한다.
1965년 박정희 글씨
충렬사 비각
사당
사당 내 영정과 위패
충민공비
비각
충무공비
돌아나오며
청해루
2) 충렬사 입구 비석군
자암 김구 비. 자암김구선생적려유허비
삼도통제사 이태상비
3) 거북선
바로 앞 바다에 모형을 전시해 놓았다.
3) 남해대교와 노량대교
남해대교 :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남해대로 4216
두 개의 대교가 앞뒤로 보인다. 앞쪽이 남해대교, 뒤쪽이 노량대교이다. 50년 된 남해대교(1973년 준공) 뒤로 교통량이 증가하자 노량대교가 2018년 9월에 건설되었다. 두 다리는 하동군으로 이어진다.
올해는 남해대교 개통 50주년으로 다양한 행사가 남해대교 위에서 진행되었다.
3. 돌아보고
완도 '묘당도의 가묘' 사실과 뜻도 같이 새겼으면
아름다운 곳에 계시지 조금 위로가 되는 거 같다. 거기에 하나로도 모자라 두 개의 연육교가 세워질 만큼 남해는 번화해지고 찾는 이도 많아졌으니 이 또한 흐뭇하실 거라 생각된다.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는 남해섬에 갖는 의미도 각별하려니와 아름답기도 하여 바라보심에 편안하시기도 할 것이다.
남해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교포, 국내에서 몇 번째로 선호하는 관광지가 되어 몰려드는 국내 관광객들이 대부분 충렬사를 들러 갈 것이니 역사적으로 한일관계를 넘어 국제관계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할 것이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거것은 물론 이제는 나라를 넘어 인류를 지켜주고 지혜를 나누어 주실 듯하다.
완도군 고금면 묘당도에 가면 충무공의 가묘가 있다. 이곳 남해 노량에서 전사한 충무공은 묘당도로 옮겨 그곳에 석 달 동안 계시다가 아산으로 옮겨 가셨다. 여기서 고금도를 거쳐 갔다는 안내문은 바로 이곳을 말한다.
묘당도에는 충무사가 설립되어 있고 그 앞에 그의 가묘 터가 월송대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다. (본카페 완도편에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편에 정리하여 탑재하였다. <충무사>를 짓고 도래솔까지 그 터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곳 가묘보다 더 실감이 난다.
영호남이 합심하여 그의 유해를 모셨다. 민족문화백과사전에는 그런 사실이 누락되어 있고 이곳 안내문에는 고금도를 거쳐갔다는 말이 간단하게 언급되었다. 그런 의미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부각해서 적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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