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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12월 4일은 레위기 희년법의 실무적 연구로 공간의 불변법칙인 토지의 물리적 성질을 발견했습니다.
** 2022년 12월 4일은 레위기 희년법의 실무적 연구로 시간의 불변법칙인 서수(序數)에 대한 기간계산의 원칙을 발견했습니다.
** 내용이 좀 길고 어려워도 읽고 이해하면, 2,000년 덮혀 있는 성경 족보의 수수께끼가 풀리며, 성경에 대한 '십년 공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 부디 읽어 주시고, 양심이 허용하시면, 퍼나르기도 부탁을 드려봅니다. 희년법의 실체는 마음의 빗장을 풀어야 보입니다.
누가복음 족보, 3가지 쟁점과 스룹바벨에 대한 신분 재확인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의 족보는 거의 대부분 마태복음 족보를 위주로 연구되거나 이해되어 왔습니다. 누가복음 족보에서 나단 계보로 분리되어 이름이 오른 자들은 성경 어디에도 행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족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회 현장에서 관심이 없으며, 관심이 없기는 일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족보가 가진 의문점이 있어도 논쟁만 하거나 그 쟁점이 잘 드러나지 않고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누가복음 족보에서 이런 쟁점이 3가지입니다. (1)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누구의 아들이냐는 것, (2) 누가복음 족보에 등장하는 아르박삿의 후사 가이난이 창세기 족보에서 이름이 없는 것, 그리고 (3) 가장 큰 의문점일 수 있는 누가복음 스룹바벨이 마태복음 스룹바벨과 같은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이 3가지 의문점에 대하여 한 번 더 검토하고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요셉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마태복음 5:16에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라고 밝혀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의문과 논쟁이 계속되는 것은 누가복음 3:23에 “ᆢ요셉의 위는 헬리요”라고 하는 구절 때문입니다.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인데 왜 누가복음 족보는 시작부터 헬리라고 소개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 의문을 풀어줄 열쇠는 레위기 희년법과 민수기 기업 상속법에 있었습니다. 헬리가 아들이 없어서 민수기의 여성 상속법을 따라 기업의 상속권이 딸인 마리아에게 넘어갔고,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함으로써 그 상속권을 승계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가진 기업의 상속권은 윗대에 헬리에게 있었으므로 누가 3:23은 “(요셉의) 위는 헬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탈무드는 “마리아가 헬리의 딸”이라고 기록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요세푸스는 야곱이 아들이 없어서 헬리가 야곱의 아내와 계대결혼으로 요셉을 낳았으므로, 요셉은 혈통상의 부친이 헬리라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이것을 역사가 요세푸스가 혈통을 이어주는 계대결혼법은 알고 있으나, 기업을 이어주는 여성 상속법은 몰라서 그렇게 본 것입니다. 그리고 후속 연구자들도 기업 상속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이 요세푸스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만 하고 있습니다. 모두 희년법과 기업 상속법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빚어진 오해들입니다.
누가복음 족보에 들어있는 가이난의 이해
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 세 곧 홍수 후 이 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창 11:10~12)
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벨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위는 살라요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눅 3:35,36)
<창세기 족보> : 노아 – 셈 – 아르박삿 – 셀라
<누가복음 족보> : 노아 – 셈 – 이박삿(아르박삿) - 가이난 - 살라(셀라)
창세기 11장 셈의 족보에는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가이난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족보에는 아박삿(아르박삿)과 살라(셀라) 사이에 가이난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간혹 언급해도 누가복음 족보가 말하는 가이난은 사본 필사자의 필사 오류로 봅니다. 성경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헤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을 필사하여 후대에 전해 내려오는데 이때 누가복음 필사자가 착오로 잘못 기재하여 가이난이란 이름이 족보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그러나 성경 필사에는 엄정한 수칙과 수 차례 확인 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구약시대 서기관들은 필사 과정에서 한 글자라도 잘못 쓰면 1주일 금식할 만큼 확인이 철저합니다. 신약시대에 누가복음의 필사에도 사정은 비슷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갑돌이’라는 이름을 ‘을돌이’라는 이름으로 잘못 쓴 실수는 있을지 몰라도, 없는 이름을 집어넣은 실수는 드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의 족보 연구가 박윤식 목사는 가이난과 셀라가 쌍둥이였고, 가이난이 장자인데 장자권이 셀라로 옮겨진 것으로 봅니다. 그는 외경인 요벨서 8장에 “가이난이 도시로 나가서 점성술사의 가르침을 받고 점을 쳐서 죄를 범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삼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이난과 셀라는 쌍둥이보다 적자와 서자의 관계일 수도 있고, 가이난이 아르박삿의 적자이지만, 장자와 차자의 관계일 수도 있겠습니다.
가이난은 장자가 맞지만, 아들이 없이 죽어서 가이난의 상속권이 셀라에게로 넘어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겠습니다. 물론 이런 가정이나 추정들은 모두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註) 아르박삿은 35세에 셀라를 낳고, 403년을 살며 자녀를 낳았다(창 11:11,12). 셀라도 30세에 에벨을 낳고 403년을 살며 자녀를 낳았다. 가이난이 셀라와 쌍둥이이거나 셀라의 형이면 지금까지 유대력에서 계산한 연대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누가복음 족보에서 가이난과 셀라가 부자관계라면, 창세기 5장 족보에서 아르박삿과 셀라를 직계아들로 보는 지금 유대력이나 보수적 관점에서 계산해 왔던 전통적인 연대기 계산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아버지 데라가 죽은 해(205세)에 가나안에 도착하여 75세이었다면(창 11:32, 12:4, 행 7:4), 여기에도 전통적 연대기 계산은 다시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이난이 아들 없이 죽었다면, 셀라가 433년을 살았으므로 이 기간 동안 가이난의 상속권이나 가계 대표권은 (요시아의 세 아들이 왕이 된 것처럼) 권리의 수평 이동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장자권이나 상속권이 수평(형제, 방계혈통) 이전 되면 연대가 계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필자는 성경의 족보를 희년법과 상속법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족보는 마태복음의 족보처럼 공동체에서 쓰임을 받을 지도자의 계보를 기록한 것이고, 누가복음 족보는 가족의 생존권을 이어가는 가계와 기업의 상속권자에 초점(쓰임을 받은)을 두고, 그 계보를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창세기 족보는 지도자의 계보, 누가복음 족보는 가계대표자의 계보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은 결격사유가 있어서 창세기의 아담의 족보(장세기 5장)와 셈의 족보(창세기 11장)에서 장자권을 잃었습니다. 여기서 창세기 족보의 결격사유란 지도자 계보를 이을 만한 기준에 미달하거나, 아들이 없이 죽어서 상속권이 끊어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래서 한 대에 한 명씩 선택하여 기록한 창세기 족보는 가이난이 제외되었습니다. 곧 창세기 5장과 11장 전체의 족보는 많은 아들이 있지만, 노아의 세 아들 외에는 한 대에 1명만 선택한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족보는 장남이 있어도 장남보다는 장자권자를 선택하여 기록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마태복음에서 선택된 이름만 계보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가이난은 창세기 족보에서 결격사유가 있어도 자기의 가족과 기업을 잃을(끊길) 만한 경제적 과오는 범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필자의 생각대로 가이난은 장자권과 상속권을 가지고 있었고, 아들이 없어서 그 권리가 아우인 셀라에게 이전되었습니다. 따라서 가이난도 인간으로서 생존권을 보장받는 기업이 있어야 하고, 이에 초점을 두는 누가복음 족보는 그 이름을 제외하지 않고 계보에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이난에게 기업을 주고, 가족 대표권을 인정하신 것은 그만큼 은혜를 베푸신 결과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족보에 가이난처럼 이름이 없는 것은 미래에 있을 에서와 야곱의 경우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에서가 장자이지만 장자권을 소홀하게 생각하여, 권한이 야곱에게 넘어갔습니다. 이 계보를 절차대로 기록한다면 이삭과 야곱 사이에 에서가 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천년간 흘러오는 족보를 이런 절차까지 다 기록하게되면 아주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에서와 같이 장자권을 소홀히 한 사람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구속사 계보에 별 의미가 없으므로 굳이 넣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한 대에 한 명씩만 선택하여 기록한 아담의 족보와 셋의 족보에는 제외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열 한번째 아들이지만, 아들이 두 지파로 나누어져서 두 몫의 기업을 분배받기 때문에 사실상 장자권은 요셉에게 돌아갔습니다(대상 5:2). 그래서 유다지파는 혈통적 장자권은 유다에게 있었고, 경제적 장자권은 요셉에게 있습니다. 야곱의 장자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범했고, 유다지파의 장자 유다는 닥쳐오는 기근도 대비하지 못하고, 이를 미리 알고 준비한 요셉에게 구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430년 종살이를 하게되는 계기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가이난은 공동체에서 필요한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대표자로서의 창세기 5장 족보에서 장자권은 잇지를 않지만, 한 가정을 지키는 가계와 기업의 경제적 상속권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가복음 족보에 이름이 들어갑니다.
어떻게 보면 인류의 원역사가 들어있는 창세기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면, 첫 아들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마지막 후손 요셉까지 장자권을 다투고 있는 역사입니다. 창세기가 소개하는 장자권은 차자들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이 구속사를 그렇게 이끌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생존권을 보장하는 정의와 자비가 함께 합니다.
신명기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가 있어 미운 아들이 장자이면, 그 장자에게 반드시 두 몫의 상속권을 주라(신 21:15~17)”고 합니다. 이것은 장자권과 그에 따른 상속권은 사람의 주관적 판단에 따르지 않도록 장치를 해 둔 조항입니다.
희년법에서 기업의 유지와 상속은 신앙과 윤리 도덕의 준수 여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희년법은 도로에서 교통신호등을 지키듯이 지키면 복이 오고(사고가 적거나 없고), 어기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비를 내려 주시듯이(마 5:45) 희년법의 원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도 가죽옷을 입히시고, 토지를 경작하여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하셨습니다(창 3:21,23).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상속권의 혜택은 우리가 신앙과 윤리 도덕은 좀 부족하더라도, 그 속량의 법을 따르기만 하면(믿고 순종하면), 십자가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과 원리가 같습니다. 이처럼 희년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은총이 가득한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내가 스스로 지키지 않고, 바알 제도를 따라가면 기업을 스스로 잃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지도자나 대표자를 중시하는 창세기 족보에는 결격사유를 가진 가이난이 계보에 들지 못하고, 인간의 생명과 권리의 보장에 초점이 있는 누가복음 족보에는 이름이 들어간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허랑방탕하게 살아도 기업의 상속권이 저절로 돌아온다는 뜻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족보를 보면 자기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삶을 살아온 6명의 왕들이 족보에서 생략되며, 포로기 이후의 지도자들도 약 7~9명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족보에 오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탕자라 할지라도 철저한 회개로 아버지께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는 그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눅 15:18~24), 희년법대로 속량의 은혜를 베풀어 아들의 가계와 기업을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자비의 희년법은 탕자의 경우에도 팔아먹은(잡혀먹은) 기업은 무르기로 되찾을 수가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두 몫을 상속 받게되는 장남은 이때 기업 무르기의 의무가 생깁니다(레 25:24). 그래서 큰 아들은 돌아온 아우에게 불평이 많습니다(눅 15:28~30).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는 기업 무르기로 기업을 다시 찾으면 누가복음 족보에 들어가는 가이난과 비슷하고, 장남은 기업 무르기를 하여 주는 책임을 다한다면, 창세기 5장 족보에 이름이 들어가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족보와 마태복음 족보는 이렇게 계보로 이름을 올리는 자의 선택기준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족보로 본 창세기 족보의 보충 이해
창세기 족보에는 한 대에 아들 이름 하나만 소개하고 있으며, 대부분 고령에 낳은 아들 이름 하나만 올립니다.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았고(창 5:3), 셋이 105세에 에노스를 낳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창 5:26), 노아는 500세에 가서 낳은 아들을 낳습니다(창 5:31). 창세기 족보는 왜 고령이 되어서야 아들은 낳게 되고, 그 아들 하나를 소개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이 의문은 누가복음 족보에 들어간 가이난을 보면서 풀리게 됩니다.
같은 시대의 사람이라도 창세기 족보와 누가복음 족보는 이름을 올리는 기준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창세기는 공동체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지도자의 계보이고, 누가복음은 한 가계(가문)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대표자의 계보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아담 후손의 족보도 혈통 상의 장자보다 장자권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거나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가 계보에 들어갑니다. 노아가 500세 후에 낳은 아들 셈, 함, 야벳이 족보에 들어간 것은 500세까지 아들이 없었다기보다 아들이 있었지만, 족보에 이름을 올리기에 합당한 아들이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씨를 이을 아들이 없었거나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는 범죄가 노아의 아들들에게도 관련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족보는 창세기 족보에는 이름이 오를 수 없는 사람도 가계 대표자로 인정하고, 이름을 올려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족보가 소개한 가이난으로 인하여, 우리는 창세기 5장 족보에서 많은 아들들 중에 고령에 낳은 아들 하나만을 소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註) 개역성경에서 노아의 아들 셈은 창 5:32에서 이름이 제일 먼저 소개되고, 창 10:21에서 야벳의 형이라고 하여 장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차남이다. 킹제임스성경(KJV)은 창 10:21에서 '야벳을 셈의 형'으로 번역하였고, NIV, AB 등 모두 같은 번역을 하고 있다. 이것은 족보에서 셈의 이름이 먼저 나오니 “크다(히, 하가돌)”는 수식어를 잘못 적용하여 “셈을 야벳 형”으로 번역한 오류이다. 창 11:26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니 아브라함을 장자로 보는 오해와 같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는 족보는 단순하게 혈통만 소개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행적을 기준으로 그에 합당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그렇게 주관하시며, 구속의 역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
창세기 족보에서 아담과 노아까지 10대, 그리고 셈에서 아브라함 이전까지 10대 총 20대로 구성되며, 아브라함을 넣어야 7의 배수 또는 7의 서수인 21대가 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족보에서는 창세기 족보에 없는 가이난이 들어있어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들어가지 않고도 21대가 됩니다. 7이 완전수라고 보면, 지구촌 모든 인류의 족보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는 별개로 완전수 7을 이어가야 하는 계보입니다. 그래서 지구촌 인류는 아브라함의 계보를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믿음의 혈통으로 접목이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에서 시작하여 위로는 창세기 족보를 연결하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족보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겉보기로 보면, 재미도 없고, 딱딱한 이름의 나열에 불과하지만, 그 족보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깊고 폭넓은 구속 경륜은 신비하며, 무궁무진합니다.
누가복음 족보에서 스룹바벨의 신분을 다시 한번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거의 대부분 마태복음 족보를 위주로 연구되어 왔습니다. 누가복음 족보에서 나단 계열로 분리되어 이름이 오른 자들은 성경 어디에도 행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족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회 현장에서도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듣고 있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포로기 초기 족보에 관련된 마태복음 스알디엘·스룹바벨이 누가복음 스알디엘·스룹바벨은 같은 사람(동일인)인지, 다른 사람(동명이인)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 연구가 거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연구하는 자들이면, 이 부분이 이해와 해석에서 난제인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주제를 끄집어내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누가복음 족보에서 스알디엘·스룹바벨 앞에 있는 이름 네리와 그 뒤에 있는 이름 레사에 대한 연결고리를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내지를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족보 연구의 대가이신 박윤식 목사는 두 복음서 족보에서 기록된 스알디엘·스룹바벨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다루어놓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근거를 들어 다룬 연구 사례는 이것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윤식 목사의 족보 연구에는 두 복음서 족보가 소개하는 스알디엘·스룹바벨은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로는 마태·누가복음 스알디엘·스룹바벨은 분명히 같은 사람입니다. 이에 대해 한 번 더 검토해 보겠습니다.
마태·마가복음의 스알디엘·스룹바벨은 다른 사람이라는 견해(동명이인설)
누가복음 족보의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은 마태복음 족보의 스알디엘과 동일인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족보 연구의 대가이신 박윤식 목사는 동명이인이라고 합니다. 이런 견해의 근거를 그의 저서에서 요약하면 대체로 이러합니다.
[마태복음 족보에 스룹바벨이 주전 570년경 태어났고, 솔로몬 계보에서 스룹바벨까지는 약 470년인데 이 기간의 누가복음 세대 수는 22대, 평균적 세대 간격은 대략 21년(약 470년/22대)이다. 그런데 스룹바벨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는 약 566년인데, 그 기간에 해당하는 누가복음 세대 수는 20대로 평균적 세대 간격은 28년(약 566년/20대)이다. ... 두 기간을 비교하면 세대 수 간격이 21년과 28년으로 너무 차이가 크다. 다윗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1,036년(주전 1,040-4년) 동안 세대 수는 총 42대이므로 평균적 세대 간격은 24.7년(1,036년/42년)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스룹바벨과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동일인으로 보기 어렵다(아니다).] -영원한 언약의 약속(구속사 시리즈 5), 도서출판 휘선, 2020, 229~230쪽.-
박윤식 목사는 이렇게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스룹바벨 출생은 주전 570년경인데 이때를 기준하여 그 이전 세대는 세대간 평균 간격이 21년이고, 그 이후는 28년이므로, 세대 간격의 격차가 너무 커서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마태복음 스룹바벨보다 훨씬 뒤에 출생한 것으로 봅니다. 박윤식 목사는 마태복음 스룹바벨은 주전 570년경,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주전 497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분이 계산한 방법으로는 평균 세대 수 간격, 21년과 28년은 7년 격차이므로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대 수 평균 격차로 마태복음 스룹바벨과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동명이인이라고 하면, 이 근거는 같은 기간, 같은 방식으로 마태복음 스룹바벨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스룹바벨을 박윤식 목사와 같은 시기, 같은 방법으로 기간을 비교하여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족보에서 다윗에서 스룹바벨까지 왕위에 오른 대수는 포로기 이후 출생한 스알디엘까지 포함하면 총 23대입니다. 그런데 이 대수는 왕위의 재임기간을 기준하는 대수가 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는 자연 세대 수 간격과는 좀 다릅니다. 우선 요시아의 아들 여호야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는 형제인데 3대에 걸쳐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야하스와 마지막 여고냐(여호야긴)는 재임기간이 각각 3개월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편, 왕의 재임기간이 장기인 다윗은 40년, 솔로몬 40년, 요아스 40년, 웃시아(아사라) 52년, 므낫세 55년으로, 이들 다섯 왕의 총 재임기간은 227년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평균 세대 간격 25년을 적용하면, 간격은 9대(9대=227년/25년)의 기간에 해당합니다. 이 기간은 다윗 출생에서 포로기 이후 스룹바벨 출생까지 470년 기간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3개월 단기 재임기간도 장기 재임기간을 감안하여 왕의 평균 재임기간에는 1대로 적용하여 계산합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족보에서 다윗에서 스룹바벨까지 대수 23대는 같은 기간에 누가복음에서 다윗부터 스룹바벨까지 470년간의 대수 22대와는 1대 차이로 비슷합니다.
그래서 계산한 마태복음 스룹바벨의 출생까지 세대별 평균 간격은 20.4년(20.4년=470/23대)입니다. 이 기간은 스룹바벨과 세대별 평균 간격 21.4년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을 단순 비교한 마태복음 스룹바벨과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같은 시기, 같은 인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박윤식 목사의 기간 비교처럼 스룹바벨 출생 이후의 기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까지의 대수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비교하면, 세대간 평균 간격의 격차는 오히려 더 큰 차이가 납니다. 누가복음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스룹바벨 출생 이후 예수 그리스도까지는 총 20대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같은 기간에 족보에 이름이 오른 대수는 11대뿐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족보는 포로기 이후에 많은 대수가 생략되어 있음을 기간별 대수 비교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세대 간 간격 차이를 마태 누가복음 족보와 스룹바벨 출생 이전과 이후기로 나누어 비교하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스룹바벨 출생 시점을 적용한 이전·이후의 기간 비교
(스룹바벨 출생연도, 주전 570년 가정, 박윤식)
기간 구분 | 주전1040년 | 총 1,036년 = 주전 1040년 ~ 주전 4년 대수별 평균 기간 24.7년 = 1,036년/(22대+10대) | 주전4년 | ||
누가복음 족보 | 다 윗 출생 | 470년 = 주전 1040~주전 570년 | 스룹바벨 출생 | 566년 = 주전 570년-주전 4년 (566년 = 주전1,036-주전 470) | 예수 출생 |
평균 21.4년 = 470년/22대 | 평균 28.3년 = 566년/20대 | ||||
스룹바벨 이전 21.4년 | 스룹바벨 이후 28.3년 (이전·이후기간 약 7년 격차) | ||||
마태복음 족보 | 누가복음과 같은 기간 | 누가복음과 같은 기간 | |||
평균 20.4년 = 470년/23대 | 평균 51.5년 = 566년/11대 | ||||
다윗출생~스룹바벨 출생전 23대 = 족보 기록수 17대 + 족보 생략수 6대 | 11대 = 스룹바벨 ~ 예수 이전 (스룹바벨~아비훗 사이 많은 대수 생략 추정) | ||||
스룹바벨 출생이전 평균 20.4년 | 스룹바벨 출생이후 평균 51.5년 (이전·이후기간 약 31년, 큰 격차) | ||||
기간 비교 | 누가복음 : ①출생이전평균 21.4년 < ②총평균기간 24.7년 < ③출생이후평균 28.3년 마태복음 : ㉠출생이전평균 20.4년 < ㉡ 총평균기간 24.7년 < ㉢출생이후평균 51.5년 <평가>: 스룹바벨 출생전 ①과 ㉠은 비슷하지만, 그 외는 평균기간 24.7년과 격차가 크다. |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출생 이후 예수 그리스도까지 기간이 566년에 대수는 20대이므로 세대간 평균 간격 28.3년입니다. 같은 기간에 마태복음 대수는 11대뿐이므로 세대수 평균 간격은 무려 51.5년이 됩니다. 그래서 대수 차이를 족보에 생략(제외) 대수로 보고, 9대(9대=누가복음 20대-마태복음 11대)를 추가하여 계산해 보면, 마태복음 스룹바벨과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세대 간격이 28.3년으로 같습니다. 그렇게 대수를 조정하여도 마태복음 스룹바벨은 출생 이전과 이후의 평균 간격은 너무 큰 격차가 납니다. 그러면 박윤식 목사의 견해대로 해석하면, 마태복음 족보에 들어있는 스룹바벨의 출생 시기도 주전 570년경이 아니고, 70년~75년 후인 주전 497년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스룹바벨은 1차 포로 귀환자이고, 주전 516년에 스룹바벨 성전을 지어 완공한 자이이므로 이런 견해는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스룹바벨 출생 이전의 세대 평균 간격은 누가·마태복음 구분 없이 비슷한데 출생 이후 간격은 이런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마태복음 족보의 스룹바벨은 같은 시기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다시 확인을 해보아야 합니다.
기간계산과 대수 간격에 대한 보충 이해
성경 전체에서 “스룹바벨(바벨론에서 태어난)”은 한사람 이름만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마태복음 족보에서 스룹바벨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의 개념부터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시간은 때(time)와 기간(period)이 있습니다. 때는 기수(基數, cardinal number)이고, 기간은 서수(序數, ordinal nomber)입니다. 기수는 특정 시점의 시간(년, 월, 일)으로 독립된 숫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년, *월, *일은 기수입니다. 그러나 서수는 연속된 시간에서 어느 한 마디(寸)를 뜻하는 것으로 시간의 숫자가 앞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수에 대한 시간적 이해는 서수가 가진 수의 성질, 곧 서수법칙이나 이를 실무에서 적용하는 서수에 대한 기간계산의 원칙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서수(序數)법칙 : 하루는 0시부터 24시까지 25개 기수로 구성되고, 그 서수가 0~24까지 기간이 차야 하루가 완성되는 성질을 말한다. 서수에서 초기는 항상 0이 되고, 말기는 자정이 되어야 숫자 1이 완성되는 것이 시간이 갖는 기본 성질이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도 기간계산은 ‘초일 불산입의 원칙’과 ‘말일 산입(종료)의 원칙’이 있습니다. 2022년 12월 4일, 1년간 5%의 이자율로 돈을 빌려준다면, 이때 기간의 시작과 종료에 대한 판단은 기간계산원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기간계산에서 초일 불산입의 원칙은 12월 4일은 날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날짜는 12월 5일부터 적용됩니다. 그리고 말일 산입(종료)의 원칙은 기간계산에서 마지막 날은 그날 자정이 되어야 기간이 비로소 완성되게 됩니다. 2022년 12월 4일 돈을 1년간 빌려주었으면, 1년은 2023년 12월 4일 자정이 되어야 1년 기한이 도래합니다.
기수(때)는 시점 시간이므로 365일 어느 시간이나 1년이지만, 서수는 기간이므로 반드시 365일이 꽉 들어차야 1년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왕의 재임기간이나 활동(사역)기간, 또는 누가복음 족보에서 대수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보이는 기업 상속권의 존속기간은 모두 서수에 해당합니다. 서수는 때가 차야 숫자 1이 완성됩니다. 곧 성경에서 족보에 든 대수는 시간의 지나야 비로소 1대가 성립(완성)합니다.
이것은 7의 주기로 돌아오는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기간계산 방법도 같습니다. 하루는 0시부터 자정까지입니다. 기간계산에서 0시는 있기는 하지만, 기간에 산입하지 않아야 하며, 자정은 기간계산에서 반드시 넣어주어야 하루가 됩니다. 왕의 재임기간은 서수이므로 이를 연(年)을 계산하려면, 취임 연도는 0이 아니지만 0으로 계산하고, 퇴임 연도는 1년이 되지 않아도 마지막 날 자정까지 시간을 포함하여 1년으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서수의 기간이 가진 시간의 중복 계산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왕의 재임기간, 활동기간, 상속권의 보유기간은 출생 시기와는 별개입니다. 이 기간은 맡은 직무에 대한 활동, 권리나 의무의 존속기간을 뜻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주전 1040년에 출생하여 왕이 되고, 70세가 된 주전 970년에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섭정기간 1년 제외)를 넘겨주었다면, 다윗의 1대는 주전 1040년이 아니고, 왕위를 물려준 주전 970년을 1대의 완성기로 보아야 합니다. 족보가 말하는 다윗은 출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때 출생한 다윗이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였으며, 언제 그 직책을 아들 솔로몬에게 넘겨주었는지가 관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14대의 이름과 대수는 “낳다”, “낳다”로 연속되지만, 초점은 맡겨진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였는지에 초점을 두고 이름을 선택하여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족보는 6명의 왕이 족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합니다. 이때 기준시점은 출생기가 아니고, 퇴임기입니다.
마태복음 족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시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출생 시기를 기점으로 대수와 기간계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누가복음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 직무를 시작하는 30세부터 위로(반대방향으로) 거슬러올라가는 대수를 게수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기록 시점이 출생기가 아니고, 직무를 시작하는 시기이고, 그것도 대수를 뒤로 잇는 계보의 기록입니다.
그러므로 스룹바벨에 대한 신분의 확인은 출생연도보다 직무의 재임기간 또는 활동(사역)기간에 맞추어 시점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활동시기를 적용한 누가·마태복음 족보의 스룹바벨
누가복음 스룹바벨과 마태복음 스룹바벨이 같은 시기의 사람인지에 대한 규명은 시점을 출생 시기에서 활동의 종료 시기로 바꾸어 비교하여 보면, 같은 시기의 인물이라는 것이 곧바로 확인(증명)됩니다.
스룹바벨은 주전 537년 30세에 바벨론에서 귀환을 했고, 50세에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 후는 말씀으로 백성들을 지도하는 직무는 퇴임을 할 수도 있고(민 4:3,23, 대상 23:3), 총독의 직책을 더 수행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기록은 없어서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스룹바벨이 은퇴를 했다면, 사무엘이 은퇴하고 고향 라마로 가듯이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서 가계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스룹바벨은 공직 은퇴를 하든 계속하든 그가 소속된 가계에 대하여 필요한 사적 직무를 수행했으며, 70세에 기업과 가계에 대한 직무의 권한을 후계자에게 넘겨주었다고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제2기 족보의 대표적 인물인 다윗은 70세를 살았으므로, 제3기 족보의 대표적 인물인 스룹바벨도 70세까지 사역을 했다고 보겠습니다. 여기서 직무는 성전 건축, 총독 업무 등 공적 직무는 물론이고, 자기 가정에서 필요한 가계와 기업의 후계자를 선정하고, 상속자를 세우고, 집행하는 사적 직무를 모두 포함합니다.
스룹바벨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기에게 합쳐져 있는 솔로몬 계보의 왕가와 나단 계보의 사가(私家), 그리고 자기의 친자녀 8남매에게도 가계와 기업을 상속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렵게 얽혀있는 사적 업무가 남아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가족 친지들이 모두 국내외로 흩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포로생활에서 귀환을 했지만, 다윗의 족속들에게 생업의 터전이 될 베들레헴 기업은 아직 상속자가 모호하거나 경작자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스룹바벨은 다윗 족속에 속해 있는 베들레헴 기업을 다시 찾고, 분배하며, 친족들 중에도 룻의 가정처럼 몰락 위기에 처한 가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적인 직무까지 감안하면 70세가 되어야 마칠 수 있다고 봅니다. 원래 족보가 말하는 세대별 평균 간격은 출생 시기에 대한 평균 기간이 아니고, 왕은 재임기간, 일반 직무 수행자는 활동(사역)기간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전 건축이 주전 516년 완공되었으므로 스룹바벨의 출생 시기는 주전 566년경이고, 50세는 성전 완공 연도인 주전 516경이며, 가계에 필요한 사적 직무가 완료된 시기는 주전 496경이 됩니다.
註) 여고냐(여호야긴)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주전 598년에 18세이므로(왕하 24:8,12, 대하 36:9,10), 그의 출생연도는 주전 616년이다. 3대손 스룹바벨이 주전 566년 태어났다면 50년 동안 여고냐, 스알디엘, 스룹바벨 3대가 출생하여 스알디엘은 단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대수 간격은 서수이므로 스룹바벨 직무의 종료기인 주전 496년으로 적용 시점을 바꾸어 기간을 비교합니다. 이렇게 하면 스룹바벨에 적용할 기간은 출생기 기준 470년 기간보다 훨씬 긴 544년(544년=주전 1,040년-주전 496년) 간이 되고, 이 기간에 해당하는 대수는 출생 시점보다 1대가 늘어나서 23대가 됩니다. 그리고 스룹바벨 직무 종료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연도까지는 종전의 566년 기간보다 줄어들어 492년 간이 되고, 이 기간 해당 대수는 1대가 줄어들어 19대가 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기간과 대수도 서로 맞비교를 해야하므로 마태복음 족보에서 는 누가복음 조건에 따라 직무의 종료기 이전과 이후에 맞추어 대수를 가감했습니다. 다만, 마태복음 족보에서 직무의 종료 이전기가 왕들의 재임기간이 되는데 대수는 두 사람이 3개월만 재임을 하였으므로, 이 대수가 평균 간격 계산에 큰 영향을 주므로 이를 감안하여 1대를 차감했습니다(서수벅칙을 따라 3개월은 1년이 안되기 때문에 하나의 3개월은 임기 말기로 보고 1년으로 가산하고, 다른 하나의 3개월은 임기 초기로 보아 0년을 적용해야 함). 그리고 마태복음 족보가 스룹바벨 이후는 누가복음 족보와 대수 격차가 너무 큰 차이가 나므로 이를 그대로 적용한 평균 격차는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기와 같은 방법으로 누가복음 족보에 맞추어 제외된 대수 9대(누가복음 19대-마태복음 10대)를 추가하여 평균 간격을 계산했습니다. 아래는 이렇게 기간과 대수를 조정하여 표로 비교한 것입니다.
스룹바벨 퇴임 시점을 적용한 이전·이후의 기간 비교
(스룹바벨 출생 주전 566년, 스룹바벨 활동 종료 주전 496년 가정, 이대환)
기간 구분 | 주전1040년 | 총 1,036년 = 주전 1040년 ~ 주전 4년 대수별 평균 기간 24.7년 = 1,036년/(22대+10대) | 주전4년 | ||
누가복음 족보 | 다 윗 출생 | 544년 = 주전 1040~주전 496년 | 스룹바벨 활동종 료 | 492년 = 주전 496년-주전 4년 (492 = 주전 1,036-주전 544) | 예수 출생 · 요셉활동중 |
평균 23.7년 = 544년/23대 (23대 = 22대 + 스룹바벨 1대) | 평균 25.9년 = 492/19대 (19대 = 20대–스룹바벨 1대) | ||||
스룹바벨 이전 평균 23.7년 | 스룹바벨 이후 평균 25.9년 (이전·이후기간 1.2년 격차) | ||||
마태복음 족보 | 누가복음과 같은 기간 | 누가복음과 같은 기간 | |||
평균 23.7년 = 544년/22대 | 평균 25.9 = 492년/19대 | ||||
다윗출생~스룹바벨 퇴임 23대 = 족보 기록수 18대 + 족보 생략수 6대 – 조정대수 1 | 19대 = 스룹바벨 퇴임~ 예수이전 19대 = 족보 기록수 10+누가복음 비교 제외 대수 9대 추정 | ||||
스룹바벨 이전 23.7년 | 스룹바벨 퇴임 이후 25.9년 (이전·이후기간 약 2.2년 격차) | ||||
기간 비교 | 누가복음 : ①퇴임이전평균 23.7년 ≒ ②총평균기간 24.7년 ≒ ③퇴임이후평균 25.9년 마태복음 : ㉠퇴임이전평균 23.7년 ≒ ㉡총평균기간 24.7년 ≒ ㉢퇴임이후평균 25.9년 <평가> : ①과 ㉠, ②와 ㉡, ③과 ㉢, 모두 총평균기간 24.7년과 비슷하다. |
** 서수적용원칙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공생애 말기를 기준하면, 총기간은 1,070년, 43대수 평균 간격은 24.9년이다.
이렇게 적용 시점을 직무의 종료기로 바꾼 후 사역 종료 이전기와 이후기로 나눈 기간 비교는 대수별 평균 간격이 모두가 비슷합니다. 다윗 출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까지 총 1,036년(1,036년=주전 1040년-주전 4년)이고, 이에 따른 세대별 평균 간격은 박윤식 목사의 계산과 같이 24.7년입니다. 그리고 적용 시점은 바꾼 누가복음의 족보의 평균 간격은 종료기 이전이 23.7년(23.7년=555년/22대)이 되고, 종료기 이후기의 평균 간격은 25.9년입니다.
누가복음 : ①퇴임이전평균 23.7년 ≒ ②총평균기간 24.7년 ≒ ③퇴임이후평균 25.9년
마태복음 : ㉠퇴임이전평균 23.7년 ≒ ㉡총평균기간 24.7년 ≒ ㉢퇴임이후평균 25.9년
<평가> : ①과 ㉠, ②와 ㉡, ③과 ㉢, 모두 총평균기간 24.7년과 비슷하다.
이런 기간의 차이는 마태복음 족보에도 대수를 누가복음 족보에 맞추어 계산했으므로 동일한 결과를 얻습니다. 다윗에서 예수 그리스도 출생까지 총 1,036년의 평균 재임기간은 24.7년인데 이전기 평균 직무기간은 23.7년이고, 이후기 기간은 25.9년입니다. 그리고 총 평균 기간 1,036년 동안 세대별 격차 1년, 2년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박윤식 목사가 말하는 기간의 큰 격차 7년(7년=이후기 28년-이전기 21년)은 계산이 잘못된 것이라기보다 스룹바벨에 대한 대수와 기간의 적용 시점을 달리해서 그런 수치가 나왔습니다. 대수의 평균 간격을 종료기가 아닌 출생기에 맞추어서 대수별 평균 간격에서 큰 오차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A반과 B반의 성적 비교를 할 때, 평균 점수는 같아도 그 학급의 학생들 개개인의 실제 점수는 평균 점수와 오차가 클 경우에 생깁니다. 이때 그 오차가 큰 학생이 A반에서 B반으로 옮길 경우, 옮긴 후의 A반과 B반의 평균 점수는 격차가 커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비교에서 마지막 종착 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시기에 맞춘 것도 사실상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정확하게 적용하려면 그 시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값 치르기가 종결되어 공생애 기간을 모두 마친 34년(33.5년) 후로 잡아야 합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는 직무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거주할 살림집을 마련하고, 헤롯의 유아학살 명령으로 애굽으로 피했다가 나사렛으로 가서 목수업을 수행하고 있는 기간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출생 당시인 주전 4년에서 30세까지는 요셉이 활동한 기간에 해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면, 그 직무가 요셉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전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족보는 30세가 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기부터 기록이 시작합니다. 여기서 시작된 족보는 최초의 사역자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전 26년에 30세가 된 예수 그리스도가 누가복음 족보를 따라 52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주전 496년경이 되며, 이때는 스루바벨이 퇴임연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에 사역기간에 사람의 사역기간을 포함하면, 기간 비교는 정확합니다. 그러나 그런 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이 사람들 사역기간에 섞여서 의미를 잃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출생기까지만 넣고 계산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 종료기까지 포함하면, 총 평균 간격은 24.9년(24.9년 = 다윗~예수, 1,070년/43대)이고, 스룹바벨 직무 종료 이후 기간 평균 간격은 24.8년(24.8년=1,070년/20대)이므로 역시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누가·마태복음 족보 스룹바벨은 같은 기간, 같은 사람이 맞다(동일인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학 2:23)
위에서 비교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대수 평균 간격은 기간계산의 적용의 원칙을 따라 스룹바벨 활동 종료기(퇴임기)를 기준으로 전후기를 비교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므로 마태복음 스룹바벨과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같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스룹바벨 종료기 이후 같은 기간에 마태복음 대수 10대인 것을 누가복음 대수 19대와 동일하게 조정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조정하지 않고 실제 대수로 계산한 평균 간격은 스룹바벨 출생기 기준으로 51.5년(51.5년=566년/11대)이고, 사역 종료기 이후에도 49.2년(49,2년=492년/10대)으로 너무 큰 격차가 나기 때문에 이 큰 간격 격차를 해결할(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대수를 같은 기간의 누가복음 대수와 같도록 조정하여 맞비교를 해보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족보에 오른 이름이 누가복음 족보에 비하면 9대(스룹바벨 직후 5,6대, 중세 암흑기 3,4대) 가량 생략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정 계산한 같은 기간, 대수별 평균 간격을 다시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 ①퇴임이전평균 23.7년 ≒ ②총평균기간 24.7년 ≒ ③퇴임이후평균 25.9년
마태복음 : ㉠퇴임이전평균 23.7년 ≒ ㉡총평균기간 24.7년 ≒ ㉢퇴임이후평균 25.9년
<평가> : ①과 ㉠, ②와 ㉡, ③과 ㉢, 모두 총평균기간 24.7년과 비슷하다.
위에서 기간 비교를 통하여 얻은 결과는 누가·마태복음 족보가 소개한 스룹바벨은 같은 시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연대기 비교(대수별 평균 간격 비교)로 확인(증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관련 내용을 추가하여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① 성경에 이름이 같으나 사람은 다른 ‘동명이인’이 많지만,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동명이인이 되는 경우는 극히 어렵습니다. 물론 창세기에서 애굽의 총리 요셉과 그 아버지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과 그 아버지 야곱과 부자간에 이름이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적으로 약 1,800년이나 기간에서 차이가 나는 이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요셉과 야곱이 경우를 제외하면, 스알디엘·스룹바벨처럼 동시대에 부자가 동명이인이 되는 경우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요셉과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온전한 장자권을 이을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예표로서 하나님이 특별하게 지어주신 부자간의 이름입니다.
② “스룹바벨”은 ‘바벨론에서 태어났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름이 가진 뜻 자체가 지역적 한계와 시간적 한계를 가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포로 귀환시 총독 스룹바벨 아닌 다른 사람이 바벨론에서 태어나서 동명이인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③ 성경의 인명사전에도 스룹바벨이라는 이름은 1명 뿐입니다. 성경에는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14명,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도 11명이나 되지만, 스룹바벨만은 단 1명뿐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스룹바벨이라는 이름은 실제로 1명 뿐이라는 사실을 인명사전 집필 과정에서 확인하고 기록했으며, 이런 집필 과정은 학계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된 사례"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다윗은 왕조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스룹바벨은 포로기 이후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염원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대상 22:7,8), 스룹바벨은 솔로몬 성전보다는 작아도 다윗이 짓지 못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직함으로서도 다윗은 왕으로,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그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최고의 실권자이고, 종교, 정치, 행정을 맡은 시대적 책임자였습니다. 사적인 가계의 역할도 다윗욍국이 탄생하여 유다지파의 가계가 하나로 응집되었고, 다윗에서 다시 솔로몬 계보와 나단 계보로 분리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습니다.
스룹바벨 역시 솔로몬(여고냐) 계열과 나단(네리) 계보로 갈라져서 내려온 족보가 아버지 스알디엘 대에서 합쳐지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도 없이 일찍 죽어서 합쳐진 가계의 기둥 역할은 사실상 스룹바벨이 하게 됩니다. 하나로 합쳐진 가계와 기업은 스룹바벨에서 다시 계보가 가지를 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독자적으로 잇거나 이어주고 있습니다. 스룹바벨에서 하나로 합쳐진 가계와 기업이 다시 가지를 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를 잇습니다. 스룹바벨에게 응집된 여고냐의 왕통은 아비훗 계보로 네리에게로 이어져 내려온 나단 계보는 그의 사위 레사로, 그리고 친아들 일곱은 또 다른 하나의 계보를 이어오며, 스룹바벨 이후 7대~9대 손 가깝게 단절되고 있는 마태복음 족보의 혈통(씨)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연대기 세대간 간격 비교에서 마태복음 스룹바벨과 누가복음 스룹바벨은 같은 시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스룹바벨 출생기까지만 보는 숫자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⑥ 스룹바벨 출생기 이후는 세대간 간격 격차가 크지만, 이것도 재임기간과 사역기간을 활동 종료 시점으로 하여, 1대가 성립하는 서수법칙(기간계산의 원칙)을 따라 적용 시점을 활동의 종료시로 잡으면 거의 모두 일치(비슷)합니다.
⑦ 스룹바벨 동명이인설 주창자들은 마태복음에서 스룹바벨 출생 시기는 주전 570년경이지만, 누가복음 스루바벨은 주전 497년경이라고 합니다. 필자는 누가복음 스룹바벨이 활동을 종료한 시기를 주전 496년경으로 계산했습니다. 기간의 1년 차(주전 497년과 주전 496년)를 무시하면 같은 시기인데, 동명이인설은 이 시기를 스룹바벨 출생기라고 하고, 필자는 스룹바벨의 활동 종료기라고 하여 기간의 해석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족보가 말하는 한 대수는 서수법칙을 따르면 재임기간이나 사역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성립하므로, 사역의 종료기간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①~⑦의 내용을 종합하면 누가·마태복음 족보가 소개한 스룹바벨은 틀림이 없이 같은 사람입니다. 틀림이 없다는 말은 다른 이유를 댈 수 있는 성경적 근거 또는 합리적 근거를 더 이상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아래는 누가·마태복음 족보에서 스룹바벨이 같은 사람(동일인설)이냐, 다른 사람(동명이인설)이냐에 대한 논쟁에 대하여 스룹바벨을 전체 기간에서 별도로 구분하여 평균 간격을 계산하여 표로 정리했습니다. 이 표에서 스룹바벨에 대한 동일인설과 동명이인설은 두 설이 모두 스룹바벨은 같은 기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마태복음 족보 스룹바벨은 같은 시기, 같은 사람
(스룹바벨 활동 종료기간을 70세로 가정함)
기간 구분 | 다윗 | 이전 기간 : 544년(540년) 주전 1,040~주전474(470년) | 스룹바벨 | 이후 기간 : 492년 주전 496(492)~주전 4년 | 예수 |
기간구분 | 주전 1,040년 | 이전기간 : 474년(470년) | 70년 | 이후기간 : 492년(496년) | 주전 4년 |
누가복음 족보 | 이전 22대, 21.5=474/22대 (박윤식, 21.4년 = 470/22대) | 1대 | 이후 19대, 25.9=492/19대 (박윤식, 26.1년 = 496/19대) | ||
마태복음 족보 | 이전 22대 = 23대-1대 21.5년 = 474/22대 | 1대 | 19대 = 10대+9대 25.9=492/19대 | ||
총기간 | 총기간 1,036년, 총대수 42대 총평균 세대 간격 24.7년 = 1,036/42대 총대수 42대 = 스룹바벨 이전 22대+스룹바벨 1대+이후19대 | ||||
<스룹바벨제외> 이전 간격 21.5년 < 평균 세대 간격 24.7 < 이후 간격 25.9년 <스룹바벨퇴임> 퇴임전평균 23.7년 ≒ 총평균간격 24.7년 ≒ 퇴임후평균 25.9년 | |||||
참고 | 마태복음 1대 차감은 3개월 재임기간 2대를 서수법칙에 따라 1대 차감 | 스룹바벨 1대 | 마태복음 9대 가산은 누가복음과 격차 대수 9대를 가산 했음 |
** 필자 : 스룹바벨 출생연도를 주전 566년으로 보고 계산함(성전 완공 주전 516년 50세 가정)
** 박윤식 : 스룹바벨 출생연도 주전 570년에 따른 계산, ( ) 안은 박윤식 계산법과 연도
이런 계산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30세인 주후 26년부터 520년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스룹바벨이 은퇴를 하는 주전 496년이 되고, 다윗이 출생한 주전 1040년부터 474년간을 거슬러 내려오면 스룹바벨이 태어나는 주전 566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전 566년부터 주전 496년까지는 스룹바벨이 태어나서 활동하는 기간입니다. 스룹바벨이 출생하여 70세까지 사는 동안 초기 30년간은 여고냐나 스알디엘의 활동기이고, 나머지 40년간만 스룹바벨의 활동기입니다. 스룹바벨이 태어날 때는 법적(계대) 아버지 스알디엘은 아들도 없이 일찍 죽었고, 스룹바벨은 친아버지 브다야가 스알디엘의 아내와 계대결혼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스룹바벨은 동일인설과 동명이인설 모두 스룹바벨은 같은 기간, 같은 사람이라는 결론이 납니다.
필자가 계선 착오가 없다면, 이것이 스룹바벨 출생기와 퇴임기에 대한 기간계산의 전부입니다. 단, 필자의 가정과 계산에서 스룹바벨 출생은 성전 완공 해인 주전 616년보다 50년 전인 주전 566년이고, 동명이인설을 주장한 박윤식목사는 주전 570년을 가정했기 때문에 기간 표기상 매년 4년(570년-466년) 차이가 나는 것뿐입니다.
제가 기간계산에서 착오가 없다면 이것이 기간계산의 전부입니다.
이제 누가·마태복음 족보가 소개한 스룹바벨은 한 사람이란느 것이 분명하게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누가복음 족보에서 스룹바벨은 한 몸통에서 ‘머리는 둘이고, 꼬리는 셋’이 되는 수수께끼, 또 하나의 난제를 풀어내야 합니다. 바로 누가복음 족보에서 스룹바벨의 직계 조부로 여겨지는 네리와 후계자인 레사의 연결고리를 찾는 주제입니다. 그 연결고리는 생존의 기업과 가계를 지키거나 잇고 있는 희년법, 상속법, 그리고 계대결혼법과 여성들의 역할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앞글에서 충분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스룹바벨은 그에게 합쳐진 가계와 기업에 대한 상속문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면, 스룹바벨 가계는 친아들 계보만 남게 되고, 솔로몬 계보와 나단 계보는 끊어지게 됩니다. 공적인 왕통을 기록한 마태복음 족보와 사적인 가계를 잇는 누가복음 족보도 대가 끊기게 됩니다. 그런데 스룹바벨은 성전을 지은 이후 은퇴하여 끊어질 위기에 처한 두 계보를 자신들의 직계자손에게는 넘겨주지 않고, 별도의 독자적인 계보를 세워서 독립적인 족보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스룹바벨은 포로 귀환에서 대표자가 되어 포로들을 인솔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성전을 지으며, 백성들은 통치한 공적 직무 못지않게, 끊길 위기에 처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잇는 사적인 직무에도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그렇게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불러세워 나라를 잃은 포로기 역사를 다시 세우며, 끊어져 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와 기업을 이을 아들이 그 족보를 따라 태어나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족보에서 30세가 된 예수 그리스도는 그해에 베들레헴 기업에 참 주인이심을 선언하는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눅 4:18,19). 예수님은 3년 후, 십자가 희생사건이 발생하기 3일 전에 자신의 기업인 베들레헴 포도원과 참 상속자를 예로 들면서 "포도원 경작자(소작인)의 비유"를 가르쳐 주십니다(눅 20:9~18).
이처럼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있는 내용은 인간을 구원하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고, 부족함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참으로 요묘하고, 신비로운 섭리가 담겨있습니다. 능히 인류를 구원하고도 남을 구속의 역사가 진하게 녹아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