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교양인 2022.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이주민의 값싼 노동력에 기대는 사회
이주민, 특히 미등록 이주민과 관련한 기사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이 있다. “너희 나라로 가.” 심지어 인권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사람들은 말한다. “힘들면 너희 나라로 가.”
그러나 우리는 이주민(외국인)이 선주민(내국인)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리를 메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는 식품들, 음식점에서 사 먹는 반찬들은 밭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의 손을 거쳐 온다. 한국인의 얼이 담긴 ‘김치’는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지 이미 오래다. 그들 중에는 미등록 노동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 이주민이 없다고 상상해보자. 한국인들은 더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저임금에 준하거나 그보다 못한 돈을 받고 일하려 하지 않는다. 이주민이 없다면 자연스레 인건비가 올라갈 것이고, 올라간 인건비는 우리 밥상과 온갖 필수품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다. 물가가 지금보다 두세 배 오른다면 우리는 과연 쉽게 감당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 우리 마스크가 K-방역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수출길에 올랐다고 언론들이 자화자찬을 했다. 그러나 그 마스크에는 이주노동자의 땀이 배어 있다. 마스크 공장에서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1천5백 원도 비싸 보이던 마스크에 우리는 3천~4천 원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주민들은 출입국관리법상에 등록되건 등록되지 않건 분명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코로나가 걱정되어 마스크를 구입하고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한 이주노동자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법
우리는 코로나 ‘이후’를 논의하기 전에 코로나와 ‘함께’ 오는 것들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는 공존, 곧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함께 살아가는 대상에는 미등록 이주민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잣대로 누군가를 ‘배제’한다면 우리도 그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른 국가들은 미등록 이주민을 포용하는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 바탕에는 ‘이주민도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4월, 일본 정부는 외국인을 포함해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 사람당 10만 엔(약 113만 원)의 현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몇몇 업종의 경우 이주노동자가 코로나19로 해고당하면 취업 가능한 특정 활동 비자로 변경해 1년 더 일본에 머물 수 있도록 했다. 더 나아가 2021년 11월 18일, 일본 정부는 농업, 어업, 외식업 등 노동력이 부족한 14개 업종에 취업한 외국인들은 기한 제한 없이 체류하며 취업하고 이들의 가족도 함께 일본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 정책을 빠르면 2022년 4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빗장을 걸어 잠그기보다 인력이 부족한 산업에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이주민 수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20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州) 최초로 미등록 이주민 15만 명에게 긴급재난지원금 5백 달러(약 61만 원)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지사는 캘리포니아는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성이 이곳 주민들을 더 강하게 하고, 회복력 있는 사회로 만든다고 말했다. 또한 미등록 이주민들 또한 쿠로나19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아가야 할 구성원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시기 뉴욕시는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해 모든 뉴욕 거주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한 사람당 4백 달러, 한부모 가정에게는 8백 달러, 아이가 있는 가족은 1천 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업을 잃거나 경제적 위기 상황에 놓인 약 2만 명의 미등록 이주민들이 이 지원의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되었다.
2021년 미국은 ‘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Build Back Better Act)’을 통해 미등록 이주민을 위한 더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초과 체류자 약 7백만 명에게 최대 10년간 체류 허가와 노동 허가 등을 제공하고, 이를 위해 1천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2011년 1월 1일 이전에 미국에 와서 10년 이상 장기 체류하고 있는 초과 체류자에게 2031년까지 10년간 추방 없이 미국에서 살며 일할 수 있도록 임시 체류 허가와 노동 허가, 운전면허증 취득 자격 등을 제공한다고 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시적으로 체류 기간을 연장해주고 있다. 2020년 3월, 포르투갈 정부는 모든 이주노동자와 망명자들에게 한시적 거주 허가를 내주고, 이들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5월, 에스파냐 북부의 과일생산자연합은 4만 명의 계절노동자를 당장 구하지 못한다면 이 지역의 농업이 붕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에스파냐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이 농업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허용했다.
각국의 미등록 노동자를 포용하는 움직임은 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더 나아가 공공보건 서비스, 교육, 사회보장제도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코로나 이전에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 모델은 인도주의나 노동 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논의되어 왔는데, 감염병으로 인해 그 논의가 구체화되고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2021년 1월에 부천시는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에게만 5만 원의 재난지원금을 지원했고, 안산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주민에게는 7만 원, 내국인 주민에게는 10만 원의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했다. 서울시는 세대주가 취업·영리 활동이 가능한 비자를 소지한 경우에 한해서 외국인 긴급재난생활비 30만~50만 원을 지원했다. 2021년 지급된 제5차 재난지원금에는 영주권자와 결혼이민자가 포함되었고, 대국인과 같은 건강보험 자격을 갖고 있으며 소득 기준에 부합하는 외국인도 지원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장기 체류 외국인은 배제되었고, 미등록 이주민은 언급조차 없었다.
9년 넘게 ‘지구인의 정류장’과 ‘크메르노동권협회’에서 활동하면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처우 문제를 한국 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려 온 쓰레이나 씨가 이주민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장님들은 돈만 생각해요. 한국 사회는 돈만 우선시합니다. 옆에 있는 이주노동자가 사람이라는 것을 까먹나 봐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를 많이 무시합니다. 이곳에서 이주민에 대한 차별 문제는 심각해요. 우리가 인간으로서 평등하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쓰레이나 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이주민, 특히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혐오 발언이 쏟아져 나오는 때에 이렇게 당부하기도 했다.
“미등록 노동자들도 임금 체불 문제를 많이 겪습니다. 사장님은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고, 월급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 사람이 일하기 싫어하는 곳에 미등록 노동자들이 가서 일을 합니다. 어느 누구도 불법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해 이주민과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떤 곳은 재난지원금을 통해, 일시적 노동 허가를 통해, 시민권을 주는 방식을 통해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공존을 도모한다는 원칙은 하나다. 한국에서도 이주민, 특히 미등록 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더 늦지 않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건너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236~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