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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수중탐색 동영상), 오래된 도시가 있다. 기원전 5세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다. 그 도시에 목이 잘린 여자가 있었다. 이 다리가 우리를 고대로 데려다 줄 것이다. 사실 물에 잠긴 이 도시에는 훨씬 더 옛날 초원에서 시작된다. (광야초원 동영상), 흑해 북쪽에서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를 가로질러 만리장성 북방까지 5000킬로미터를 초원길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은 이 초원길을 통해 유럽원정을 했고 돌궐과 흉노도 이 길로 유럽까지 갔다. 그리고 이 길을 통해 우리나라에 청동검이 들어온다. 양날이 살아있는 날카로운 물건, 돌과 철 사이의 시간을 건너 검이 온다. 시기, 질투, 탐욕, 분노, 검 때문에 알게 된 진짜 인간의 모습, 이것은 수천 년에 걸쳐 초원길을 통과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이곳은 늘 전운이 감돌았다. 여기는 춘추전국 시대 월 나라의 수도, (샤오싱시/중국 저장성), 중국의 대표 미인 서씨와 아Q 정전의 작가 루쉰이 태어난 도시, 오월동주라는 고사성어에서 월 나라가 바로 여기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싫어하지만 한 배를 타서 강을 건너는데 풍우를 만나게 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돕게 된다-손자구지- 이 도시는 예로부터 명검산지로 유명하다. 명검은 맑은 물과 강인한 흙이 만든다. 양자강 유역의 월나라는 무덥고 숲이 많다. 월나라 주조기술은 천하제일이다. 월나라의 명검은 마치 흙을 깎은 듯이 예리하다-월절서-
월 나라 사람들은 검을 자기 분신처럼 가지고 다녔다. 두터운 숲에서는 보병 중심의 검으로 육박전을 벌이는 전술이 필요하다. 월 나라 왕 구천은, 오 나라와의 전쟁에 패해 해마다 조공을 바쳐야 하는 분한 세월을 보냈다. (후베이성박물관/중국 우한),
1965년 초 나라 귀족 무덤에서 구천의 검이 나왔다. 2500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검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월왕 구천검/BC 5세기), 길이 55.7센치미터의 청동검, 긴 세월에도 녹이 슬지 않고 날이 살아 있었다.
진진유/월왕 구천검 발굴자: 검이 전혀 부식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출토 당시 광택이 눈부실 정도였습니다. 부식되지 않은 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고고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대부분의 검은 직선으로 곧게 만들지만 월왕 검은 일종의 곡선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몸체의 가운데 부분이 아치형을 이루면서 아름다운 곡선미가 돋보이도록 만들어졌죠. 월왕 구천이 만든 검. 땔 나무에 누워 자고 쓸개 맛을 보면서 원수를 잊지 않는다. 와신상담에서 상담, 쓸게 맛을 본 자다. 검에는 주인의 성정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는 군주의 몸으로 친히 밭을 갈았고 현인을 대할 때는 자세를 낮추어 예로써 대하여 그 사람이 모든 재능을 발휘하도록 했다-사기월왕 구천세기-
주이요는 명검 장인이다. 월 나라의 검이 중국의 검 이든 월 나라의 장인은 곧 중국의 장인이다. 거의 10년 동안 월 나라 구천의 검에 매달렸다. 무엇 보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문제였다.
주이요: 청동 분야에서는 주석 함량 비율이 10% 이상일 때와 이하일 때의 비율 조정 난이도가 천지 차이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석 함유량이 14% 이상이 되면 비율 맞추기가 정말 어려워지는데 청동검을 만들려면 17%~19%까지 함량을 높여야 하죠. 그래서 청동검을 만들 때 조금만 비율을 못 맞춰도 성공률은 매우 낮아집니다.
내레이션: 주석이 너무 많으면 강도가 부족하다. 구리가 너무 많으면 경도가 부족하다. 명검의 비율은 그 중간 어디에 있다. 청동검을 거푸집에 꽉 차게 붓는 데만 아는데 일년이 걸렸다.
주이요: 청동검 제작 성공률이 낮은 또 다른 이유는 주물의 전도가 높아서 주물을 붓는 과정에서 이미 응고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60센치미터의 검을 만드는데 주물을 거푸집에 10센치미터 정도 부어 넣은 시점에서 응고가 시작되기 때문에 주물을 끝까지 부어 넣을 수가 없어요. 그럼 결국 60센치미터의 검은 가질 수 없게 되는 거죠.
내레이션: 동을 3톤 정도 버리고 나서야 월 나라식 검이 세상에 나왔다.
주이요: 윗부분은 잘 나왔는데 아랫부분은 사용할 수 없어요. 산화 찌꺼기 때문에 기공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내레이션: 고대 기술을 다시 재현하는 것은 그때의 마음을 다시 재현하는 일이다. 검 하나에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다 걸었던 시절의 마음, 춘추전국시대의 청동검은 곧 철로 대체된다. 청동검을 만들었던 장인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국립전주박물관/전라북도 전주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중국의 동주식 동검, (완주 상림리 출토 동주식 동검), 월왕의 검보다는 매무새도 품질도 떨어진다, 한 마디로 장인의 기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날이 동편으로 향한 채 26점이 한데 묶여 나왔다.
강인욱 교수/경희대학교 사학과: 그 동주식 동검을 만드는 기술은 그냥 어깨 너머로 보고 흉내 낼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이 아닙니다. 상당히 높은 기술력인데요. 그건 중국의 장인이 건너 왔기 때문에 펼칠 수 있는 기술이죠. 아마도 동주식 동검 장인들이 한반도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당시에 동아시아 전 지역에서 청동검을 쓰고 있는 지역은 한반도와 중국 남쪽 밖에 없었거든요. 그렇다면 중국의 청동검 장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이주지로서 한반도가 유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내레이션: 청동검은 초원의 길을 통해 중국, 몽골, 우리나라에 까지 전해진다. 흑해 연안에서 만리장성 북쪽까지 5000킬로미터 초원의 청동기 혁명은 국가에서 국가로 전파된 것이 아니다. 소수의 장인집단 이들이 초원에서 청동기를 전파한 주역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던 이 행렬은 기원전 10세기 무렵 중국 변방에 도착한다. (오르도스시/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초원에서 3000년 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곳을 대라면 여기, 오르도스다. 빌딩 숲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 입주민이 다 차지않은 일명 유령의 도시, 옛날엔 중국 밖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이 지역을 차지한 이 민족들은 늘 중국의 위협이었다. 유적지는 도시 안에 묻혀 버렸다. 3000년을 말해 줄 수 있는 건 유물뿐이다. (오르도스 청동기박물관/중국 네이멍구자치구), Orodos Bronze Museum, 단검이다 길이는 대개 30센치미터 내외, 자루 끝에 장식이 눈에 띤다. 고리가 달려있다. 그리고 동물장식, 동물장식은 초원 전사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냥 봐도 중국식 동검과는 다르다.
강인욱: 오르도스식 동검은 전체를 한 번에 주조한 합주식 동검인데요. 그래서 칼을 차면 칼이 검집에 다 들어가고 밖에는 검의 끝 부분만 드러납니다. 그래서 검 끝에 다양한 장식들을 붙이는데 그 장식들은 전사의 집단이나 신분을 상징합니다. 동그라미처럼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아예 원형으로 구슬 장식이 부착된 검도 있죠. 각각의 다양한 형태의 동물장식을 붙여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상징을 강조했습니다.
내레이션: 이 단검을 허벅지에 차고 중국의 농경민을 위협한다. 삼대 이래로 흉노는 항상 중국에 해를 끼치는 대상이었다.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쓰는 무기는 활과 화살이고 가까이 떨어져 있을 때 쓰는 무기는 칼과 창이었다-사기흉노열전, 청동 장인들,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만리장성 북쪽을 지나 동쪽이다. 러시아 시베리아 남쪽에는 지구의 푸른 눈,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큰 호수가 있다.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큰 섬 알혼 섬은 땅의 기온이 가장 센 곳으로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샤먼 바위는 전 세계 샤먼들의 성지다. 청동장인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검의 수여자는 단순히 전사가 아니었다. 샤먼만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영감을 얻는 능력자, 인간계와 영계, 인간과 동물 사이를 매개한 자, 이들이 검을 필요로 한다. 옛날의 샤먼은 국가행사에서 제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팔주령을 흔들거나 손에는 동검을 들었고 가슴에는 동경을 찼다.
발렌틴 하가다예프/샤먼: 이건 우리 샤먼의 거울입니다. 예전엔 이런 원형에 적을 무찔러줬죠. 지금은 나쁜 생각을 무찔러 줍니다. 세계가 형성된 이후로 사람들은 늘 자연과 조상에게 절을 했죠.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신과 조상을 숭배합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셨고 하늘의 신은 영혼을 선물했죠. 그렇게 된 거예요.
내레이션: 배가 어름 위에 떴다. 여름에 그렇게 풍성했던 호수가 얼어 붙으면 또 이렇게 혹독하다. 족히 50센치미터는 얼어붙었다.
데니스 바쿠로프/어부: (과자를 얼음 구멍 강물 속에 넣으면서), 안녕 강물아, 우리 사이에 문제를 만들게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너에게 운이 있기를 바랄게 나와 우리 가족을 떠나지 말고 나의 보호자가 되어줘.
내레이션: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굳이 찾자면 말 대신 오토바이 정도다. 사내는 영하 28도의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다.
피디: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죠?
데니스: 우리 피와 가정을 이어가는 거죠. 피와 가정을 이어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모두가 그럴 거예요.
내레이션: 하루에 6마리에서 8마리, 그 정도면 온 가족이 먹고 산다.
피디: 자연에서 사는 건 어떤 점이 좋나요?
데니스: 이곳은 균형있는 평화로운 삶이 있죠. 도시는 모든 게 끊임없이 움직여요. 그리고 도시는 돈이 많이 필요해요. 여기도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도시보단 덜 필요하죠. 여긴 텃밭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편안한 장소가 있죠. 열매가 있고 숲이 있고 모든 걸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그런 환경 말에요.
내레이션: 그 옛날 샤먼은 이들에게 주술가이자 점술가, 그리고 의사, 과학자였다. 자연과 나 사이에 샤먼이 있다. 훨씬 오래 전부터 시베리아에는 샤먼이 있었다. (알타이 타라콜 벽화/BC 20세기), 짐승을 의인화 하여 의식을 거행하는 샤먼들, 사자의 얼굴, 머리에는 광채, 초현실적인 모습이다. 자연의 비밀을 전하는 존재, 이들이 살상무기 검에 위력을 빌린다. 검은 샤머니즘과 결합한다. 그들은 빛나는 거울을 목에 걸었다. 하늘의 태양을 가슴에 단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청동검을 들었다. 요녕 일대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요녕식형 동검, 우리나라에선 중국 악기 비파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 동검이라고 부른다. (강 한 복판에서 한 소녀가 악기연주), 검은 기본적으로 공포와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비파 모양에 곡선이 들어간 청동검, 동쪽 땅에 이르러 검은 살상 보다는 의례에 더 큰 의미를 띠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서울특별시 용산구),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 접촉하면서 특별한 이적을 일으키는 자, 미래를 점치고 내일의 날씨를 알아야 했던 자, 검은 그들의 상징이 된다. 초원에서 검은 몸과 거의 붙어 있는 물건이다. 늘 무리와 함께 하지만 남과는 다르고 싶은 마음, 검은 그런 마음을 드러내기에 좋았다. (크로토보 문화동검/BC 20세기 전후), 일단 작고 휴대하기 좋다. (티가르 문화동검/BC 8~3세기),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장식을 넣을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과 신분을 드러낸다. (비파형 동검/BC 9~5세기), 그리고 정신 혹은 종교와 결합하기도 한다.
알렉산드르: 옛날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사회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영역이고 너희는 우리와 다르며, 이곳과 저곳은 다르다는 식으로 구별했죠. 자기 것은 좋고 다른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다양한 검이 생산된 첫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죠.
내레이션: 지금은 개성이 흔해져버린 시대, 다른 색 다른 디자인 다른 가격,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남과 구분 짓는다. 그런 마음이 청동기 시대에 싹텄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검 때문에 인간 내면의 깊은 곳까지 알았다. 청동검은 유라시아 초원을 지나 동쪽으로 마침내 한반도까지 간다. 단단하고 빛나는 청동검은 처음 본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진주 대평면 사무소), 20년 전만 해도 여기엔 사람이 살았다. 댐 공사를 위해 토지공사를 하던 중에 고대 도시 하나가 정체를 드러냈다.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수천 년을 이어온 거대 도시, 마을이 사라지면서 그 도시도 사라졌다. (남강/경상남도 진주시), 이 마을이 온전히 물에 잠긴 건 1999년 12월이다. (잠수부들 강입수), 사람이 살던 도시는 자취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었다는 다리다. 우리가 찾는 흔적은 더 먼 날의 도시다. 그 도시에 어떤 여자가 있었다. (진주 대평리 마을/BC 5세기), 고대 도시, 사람들, 집들, 작업장, 가마터 그리고 저기 여자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이 여자는 목이 잘렸다. 여인의 시신은 다른 무덤들과는 떨어진 강가에서 나왔다. 현재 뼈는 산화되어 모두 사라졌다. 어깨 부분에서 위까지 12센치미터 목에 있는 뼈에서 위까지 6센치미터, 애초부터 목이 없거나 아니면 목을 구부려 넣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자세다.
김재현 박사/진주대 평리유적 인골분석담당: 시신에서 최후까지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치아입니다. 고개를 심하게 구부려서 시신을 넣었다면 여기 가슴, 흉부 쪽에서 치아가 떨어진 흔적이라도 확인되어야 하죠. 그러나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치아의 흔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목을 자른 후 매장하지 않고서는 현재와 같이 인골이 남아 있기 어렵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내레이션: 기원전 5세기 청동기 시대, 이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늘날로 말하면 산업공단 정도 되겠다. 경작지며 집들이 아주 반듯하게 잘 정리된 도시다. 집터는 모두 400동 이상 석기와 옥을 제작하는 공방이 있다. 그런데 청동검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자 동영상), 이 여자는 어떻게 죽었을까?
김재현: 이 유적의 시기를 기원전 5세기 정도로 파악하기 때문에 그때는 철기시대 전이므로 철기로 목을 잘랐다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현재로서는 시대를 판단했을 때 청동기여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레이션: 비파형 동검이 과연 목을 자를 정도의 위험이 있었을까? 실험을 위해 비파형 동검을 의뢰했다. 이완규 장인은 30년 넘게 이 검의 재현에 몰두하고 있다. 돌기를 표시한다. 그리고 검의 두께 만큼 파내려간다. 단계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이완규 장인/무형문화제 주성장 경기47호: 얼마나 아름다우면 미술사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국의 악기 이름인 비파라고 이름을 지었겠습니까.
피디: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완규: 네, 검이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고 나중에 검을 만들어서 보면 무서운 검입니다. 검에 돌기가 있는 검은 그렇게 흔한 검이 아니에요. 지금 이 자리가 돌기거든요. 상처를 내는 대도 반듯한 상처가 아니고 들어갔다 나오면서 십자 모양으로 상처가 나게 할 겁니다.
내레이션: 역시 구리와 주석의 배합이 문제였다. 도검의 배합에서 구리와 주석의 비율은 3:1이다-주례고공가. 결국 옛 기록이 옳다는 걸 확인했다. 청동액을 부을 때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국 검철은 우리나라 검도 같은 부분에서 여러 번 실패했다.
이완규: 지금 검의 날이 어느 정도 서서 나왔어요.
피디: 모양이 제대로 나온 것 같아요?
이완규: 네, 제대로 나왔습니다.
내레이션: 비파형 동검은 자료를 별도로 착정하는 조립식이다. 옛날에 우리는 이렇게 개성적이었다. 휘지않고 곧게 선 날, 찌르는 데 힘을 가했을 손잡이 십자가형으로 상처를 내는 돌림, 과연 이 검이 여자의 목을 잘랐을까.
박금수/전통무예 십팔기보존회: 저도 이런 검들을 박물관 유리를 통해서 봤을 때는 글쎄, 잘 사용하겠어? 하고 지나갔는데, 실제로 잡아보니까 힘주기가 좋은 것 같아요. 손잡이는 얇으면서도 뒤에서는 손목을 받쳐주니까요. 줄기가 칼의 구조를 굉장히 튼튼하게 받쳐준다는 느낌이 오고 쳐서 뭔가를 자르는 절삭력도 상당히 클 것 같습니다.
내레이션: 비파형 동검의 위력실험,
박금수: 아무래도 검의 길이가 짧으니까 전체적으로 회전력이 부족할 거예요. 이걸 자르려면 충분한 회전력으로 검이 쭉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최대한 손목 힘을 잘 써서 해보겠습니다. 검이 손목을 사용하기엔 좋은 구조긴 해요. 딱 잡아주기 때문에요. 부족한 회전력을 최대한 몸의 힘을 이용해서 실험해보겠습니다. (실험에 사용한 동검은 성분과 제조방법이 청동기 시대 비파형 동검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박금수: 쉽지 않은데요.
내레이션: 검으로 쳤을 때 위력은 경미하다.
박금수: 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피디: 검이 치는 용도는 아닌가 보네요?
박금수: 네, 휘둘러 쳐서 충격은 주더라도 물체를 잘라 들어가는 절삭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한번만 더 해 볼게요.
내레이션: 역시 깔끔하게는 베어지지 않는다.
피디: 그거는 좀 다를까요?
박금수: (손잡이 자루가 긴 도끼모양 무기) 힘의 크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회전방향이 크니까요. 짧게 도는 게 아니라 더 멀리 칼을 던질 수 있어서 훨씬 더 나을 것 같아요. (실험에 사용한 동검은 성분과 제조방법이 청동기 시대 비파형 동검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내레이션: 치기에서 위력을 발휘할 방법을 찾아봤다.
내레이션: 여자는 목이 잘렸고 당시의 청동검은 비파형 청동검이다. 의례의 상징이전에 사람들은 이 검의 위력을 봤을 것이다. (박금수 무예사가 동검으로 몇 개의 어름 덩어리를 칼로 내리치고 파괴함), 이 정도면 살 속 깊이 들어가 뼈에 충격을 가하는 정도의 위력,
박금수: (동검을 보여주며) 부러졌어요. 검 날 앞부분이 살짝 부러졌어요. 철검도 이 정도로 얇게 만들면 부러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청동검의 경도가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검이 휘거나 하는 게 아니라 부러졌다는 점에서 보면요.
내레이션: 끝 부분에만 날이 세워져 있다. 상단부만 사용하는 찌르기 용일 수도 있다. 장인의 눈으로 보면 분명한 무기다.
이완규: 거푸집 자체가 돌이다 보니까 돌을 두 개 합벽을 했을 때 이미 거푸집에서 칼날을 결정해 놓게 되는 거죠. 쇳물을 부은 다음에 거푸집에서 검을 떼어내 보면 칼날이 서서 나오게 되는 거죠. 날을 갈지 않아도 실제 무기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칼날이 서서 나오는 것은 제가 실험하면서 느꼈습니다.
내레이션: 최초의 청동검, 그 의미까지 재현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은 그 어떤 문화와도 다른 개성을 가졌던 시대로 이 검을 기억할 뿐이다. (진주 남강 유등축제), 모험하는 인구를 위로하듯 2500년이 흐른 뒤에 축제, 고대의 비밀은 물 속에 가라 앉았다. 구리 조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길에서 들었던 무성한 얘기 중에 우리를 사로잡는 한 가지, 그 옛날 우리에게 불의 검이 있었다. 끝. (EBS 다큐프라임 1506회 불의 검 2부 설원의 노래 에서 정리).
① 오래된 도시가 있다. 기원전 5세기, 청동기 시대의 도시다. 그 도시에 목이 잘린 여자가 있었다. 이 다리가 우리를 고대로 데려다 줄 것이다. 사실 물에 잠긴 이 도시에는 훨씬 더 옛날 초원에서 시작된다. 흑해 북쪽에서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를 가로질러 만리장성 북방까지 5000킬로미터를 초원길이라고 한다. 몽골제국은 이 초원길을 통해 유럽원정을 했고 돌궐과 흉노도 이 길로 유럽까지 갔다. 그리고 이 길을 통해 우리나라에 청동검이 들어온다. 양날이 살아있는 날카로운 물건, 돌과 철 사이의 시간을 건너 검이 온다. 시기, 질투, 탐욕, 분노, 검 때문에 알게 된 진짜 인간의 모습, 이것은 수천 년에 걸쳐 초원길을 통과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이곳은 늘 전운이 감돌았다. 여기는 춘추전국 시대 월 나라의 수도, 중국의 대표 미인 서씨와 아Q 정전의 작가 루쉰이 태어난 도시, 吳越同舟라는 고사성어에서 월 나라가 바로 여기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싫어하지만 한 배를 타서 강을 건너는데 풍우를 만나게 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돕게 된다-손자구지- 이 도시는 예로부터 명검산지로 유명하다. 명검은 맑은 물과 강인한 흙이 만든다. 양자강 유역의 월나라는 무덥고 숲이 많다. 월나라 주조기술은 천하제일이다. 월나라의 명검은 마치 흙을 깎은 듯이 예리하다.
② 월 나라 사람들은 검을 자기 분신처럼 가지고 다녔다. 두터운 숲에서는 보병 중심의 검으로 육박전을 벌이는 전술이 필요하다. 월 나라 왕 구천은, 오 나라와의 전쟁에 패해 해마다 조공을 바쳐야 하는 분한 세월을 보냈다. 1965년 초 나라 귀족 무덤에서 구천의 검이 나왔다. 2500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검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길이 55.7센치미터의 청동검, 긴 세월에도 녹이 슬지 않고 날이 살아 있었다. 검이 전혀 부식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출토 당시 광택이 눈부실 정도였다. 부식되지 않은 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고고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대부분의 검은 직선으로 곧게 만들지만 월왕 검은 일종의 곡선미를 가지고 있다. 몸체의 가운데 부분이 아치형을 이루면서 아름다운 곡선미가 돋보이도록 만들어졌다. 월왕 구천이 만든 검. 땔 나무에 누워 자고 쓸개 맛을 보면서 원수를 잊지 않는다. 臥薪嘗膽에서 嘗膽, 쓸게 맛을 본 자다. 검에는 주인의 성정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는 군주의 몸으로 친히 밭을 갈았고 현인을 대할 때는 자세를 낮추어 예로써 대하여 그 사람이 모든 재능을 발휘하도록 했다.
③ 주이요는 명검 장인이다. 월 나라의 검이 중국의 검 이든 월 나라의 장인은 곧 중국의 장인이다. 거의 10년 동안 월 나라 구천의 검에 매달렸다. 무엇 보다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문제였다.
청동 분야에서는 주석 함량 비율이 10% 이상일 때와 이하일 때의 비율 조정 난이도가 천지 차이다. 주석 함유량이 14% 이상이 되면 비율 맞추기가 정말 어려워지는데 청동검을 만들려면 17%~19%까지 함량을 높여야 한다. 그래서 청동검을 만들 때 조금만 비율을 못 맞춰도 성공률은 매우 낮아진다. 주석이 너무 많으면 강도가 부족하다. 구리가 너무 많으면 경도가 부족하다. 명검의 비율은 그 중간 어디에 있다. 청동검을 거푸집에 꽉 차게 붓는 데만 아는데 일년이 걸렸다. 청동검 제작 성공률이 낮은 또 다른 이유는 주물의 전도가 높아서 주물을 붓는 과정에서 이미 응고가 시작된다. 60센치미터의 검을 만드는데 주물을 거푸집에 10센치미터 정도 부어 넣은 시점에서 응고가 시작되기 때문에 주물을 끝까지 부어 넣을 수가 없다. 그럼 결국 60센치미터의 검은 가질 수 없게 된다. 동을 3톤 정도 버리고 나서야 월 나라식 검이 세상에 나왔다. 윗부분은 잘 나왔는데 아랫부분은 사용할 수 없다. 산화 찌꺼기 때문에 기공이 너무 많이 생겼다. 고대 기술을 다시 재현하는 것은 그때의 마음을 다시 재현하는 일이다. 검 하나에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다 걸었던 시절의 마음, 춘추전국시대의 청동검은 곧 철로 대체된다. 청동검을 만들었던 장인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중국의 동주식 동검, 월왕의 검보다는 매무새도 품질도 떨어진다, 한 마디로 장인의 기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날이 동편으로 향한 채 26점이 한데 묶여 나왔다. 그 동주식 동검을 만드는 기술은 그냥 어깨 너머로 보고 흉내 낼 수 있을 정도의 기술이 아니다. 상당히 높은 기술력이다. 그건 중국의 장인이 건너 왔기 때문에 펼칠 수 있는 기술이다. 아마도 동주식 동검 장인들이 한반도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당시에 동아시아 전 지역에서 청동검을 쓰고 있는 지역은 한반도와 중국 남쪽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중국의 청동검 장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이주지로서 한반도가 유력하지 않았을까.
④ 청동검은 초원의 길을 통해 중국, 몽골, 우리나라에 까지 전해진다. 흑해 연안에서 만리장성 북쪽까지 5000킬로미터 초원의 청동기 혁명은 국가에서 국가로 전파된 것이 아니다. 소수의 장인집단 이들이 초원에서 청동기를 전파한 주역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던 이 행렬은 기원전 10세기 무렵 중국 변방에 도착한다. 초원에서 3000년 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곳을 대라면 여기, 오르도스다. 빌딩 숲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 입주민이 다 차지않은 일명 유령의 도시, 옛날엔 중국 밖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이 지역을 차지한 이 민족들은 늘 중국의 위협이었다. 유적지는 도시 안에 묻혀 버렸다. 3000년을 말해 줄 수 있는 건 유물뿐이다. Orodos Bronze Museum, 단검이다 길이는 대개 30센치미터 내외, 자루 끝에 장식이 눈에 띤다. 고리가 달려있다. 그리고 동물장식, 동물장식은 초원 전사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냥 봐도 중국식 동검과는 다르다. 오르도스식 동검은 전체를 한 번에 주조한 합주식 동검이다. 그래서 칼을 차면 칼이 검집에 다 들어가고 밖에는 검의 끝 부분만 드러난다. 그래서 검 끝에 다양한 장식들을 붙이는데 그 장식들은 전사의 집단이나 신분을 상징한다. 동그라미처럼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아예 원형으로 구슬 장식이 부착된 검도 있다. 각각의 다양한 형태의 동물장식을 붙여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상징을 강조했다.
⑤ 이 단검을 허벅지에 차고 중국의 농경민을 위협한다. 삼대 이래로 흉노는 항상 중국에 해를 끼치는 대상이었다.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쓰는 무기는 활과 화살이고 가까이 떨어져 있을 때 쓰는 무기는 칼과 창이었다, 청동 장인들,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만리장성 북쪽을 지나 동쪽이다. 러시아 시베리아 남쪽에는 지구의 푸른 눈,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큰 호수가 있다.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큰 섬 알흔 섬은 땅의 기온이 가장 센 곳으로 손꼽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샤먼 바위는 전 세계 샤먼들의 성지다. 청동장인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검의 수여자는 단순히 전사가 아니었다. 샤먼은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영감을 얻는 능력자, 인간계와 영계, 인간과 동물 사이를 매개한 자, 이들이 검을 필요로 한다. 옛날의 샤먼은 국가행사에서 제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팔주령을 흔들거나 손에는 동검을 들었고 가슴에는 동경을 찼다. 이건 우리 샤먼의 거울이다. 예전엔 이런 원형에 적을 무찔러줬다. 지금은 나쁜 생각을 무찔러 준다. 세계가 형성된 이후로 사람들은 늘 자연과 조상에게 절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신과 조상을 숭배한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삶을 주셨고 하늘의 신은 영혼을 선물했다. 그렇게 된 거다. 배가 어름 위에 떴다. 여름에 그렇게 풍성했던 호수가 얼어 붙으면 또 이렇게 혹독하다. 족히 50센치미터는 얼어붙었다.
⑥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굳이 찾자면 말 대신 오토바이 정도다. 사내는 영하 28도의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다. 이곳은 균형있는 평화로운 삶이 있다. 도시는 모든 게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도시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 여기도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도시보단 덜 필요하다. 여긴 텃밭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우리에게 편안한 장소가 있다. 열매가 있고 숲이 있고 모든 걸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그런 환경이다. 그 옛날 샤먼은 이들에게 주술가이자 점술가, 그리고 의사, 과학자였다. 자연과 나 사이에 샤먼이 있다. 훨씬 오래 전부터 시베리아에는 샤먼이 있었다. 짐승을 의인화 하여 의식을 거행하는 샤먼들, 사자의 얼굴, 머리에는 광채, 초현실적인 모습이다. 자연의 비밀을 전하는 존재, 이들이 살상무기 검에 위력을 빌린다. 검은 샤머니즘과 결합한다. 그들은 빛나는 거울을 목에 걸었다. 하늘의 태양을 가슴에 단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청동검을 들었다. 요녕 일대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요녕식형 동검, 우리나라에선 중국 악기 비파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 동검이라고 부른다. 검은 기본적으로 공포와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비파 모양에 곡선이 들어간 청동검, 동쪽 땅에 이르러 검은 살상 보다는 의례에 더 큰 의미를 띠게 된다.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 접촉하면서 특별한 이적을 일으키는 자, 미래를 점치고 내일의 날씨를 알아야 했던 자, 검은 그들의 상징이 된다. 초원에서 검은 몸과 거의 붙어 있는 물건이다. 늘 무리와 함께 하지만 남과는 다르고 싶은 마음, 검은 그런 마음을 드러내기에 좋았다. 일단 작고 휴대하기 좋다.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장식을 넣을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과 신분을 드러낸다. 그리고 정신 혹은 종교와 결합하기도 한다.
⑦ 옛날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사회가 매우 중요했다. 이곳은 우리의 영역이고 너희는 우리와 다르며, 이곳과 저곳은 다르다는 식으로 구별했다. 자기 것은 좋고 다른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다양한 검이 생산된 첫번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개성이 흔해져버린 시대, 다른 색, 다른 디자인, 다른 가격,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남과 구분 짓는다. 그런 마음이 청동기 시대에 싹텄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검 때문에 인간 내면의 깊은 곳까지 알았다. 청동검은 유라시아 초원을 지나 동쪽으로 마침내 한반도까지 간다. 단단하고 빛나는 청동검은 처음 본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20년 전만 해도 여기엔 사람이 살았다. 댐 공사를 위해 토지공사를 하던 중에 고대 도시 하나가 정체를 드러냈다.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수천 년을 이어온 거대 도시, 마을이 사라지면서 그 도시도 사라졌다. 이 마을이 온전히 물에 잠긴 건 1999년 12월이다. 사람이 살던 도시는 자취가 없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었다는 다리다. 우리가 찾는 흔적은 더 먼 날의 도시다. 그 도시에 어떤 여자가 있었다. 고대 도시, 사람들, 집들, 작업장, 가마터 그리고 저기 여자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이 여자는 목이 잘렸다. 여인의 시신은 다른 무덤들과는 떨어진 강가에서 나왔다. 현재 뼈는 산화되어 모두 사라졌다. 어깨 부분에서 위까지 12센치미터 목에 있는 뼈에서 위까지 6센치미터, 애초부터 목이 없거나 아니면 목을 구부려 넣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자세다.
⑧ 시신에서 최후까지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치아다. 고개를 심하게 구부려서 시신을 넣었다면 여기 가슴, 흉부 쪽에서 치아가 떨어진 흔적이라도 확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사한 바에 의하면 치아의 흔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목을 자른 후 매장하지 않고서는 현재와 같이 인골이 남아 있기 어렵다고 분명하다. 기원전 5세기 청동기 시대, 이 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늘날로 말하면 산업공단 정도 되겠다. 경작지며 집들이 아주 반듯하게 잘 정리된 도시다. 집터는 모두 400동 이상 석기와 옥을 제작하는 공방이 있다. 그런데 청동검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여자는 어떻게 죽었을까. 이 유적의 시기를 기원전 5세기 정도로 파악하기 때문에 그때는 철기시대 전이므로 철기로 목을 잘랐다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현재로서는 시대를 판단했을 때 청동기여야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파형 동검이 과연 목을 자를 정도의 위험이 있었을까. 실험을 위해 비파형 동검을 의뢰했다. 이완규 장인은 30년 넘게 이 검의 재현에 몰두하고 있다. 돌기를 표시한다. 그리고 검의 두께 만큼 파내려간다. 단계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미술사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국의 악기 이름인 비파라고 이름을 지었겠습니까. 검이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고 나중에 검을 만들어서 보면 무서운 검이다. 검에 돌기가 있는 검은 그렇게 흔한 검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가 돌기다. 상처를 내는 대도 반듯한 상처가 아니고 들어갔다 나오면서 십자 모양으로 상처를 나게 한다.
⑨ 역시 구리와 주석의 배합이 문제였다. 도검의 배합에서 구리와 주석의 비율은 3:1이다. 결국 옛 기록이 옳다는 걸 확인했다. 청동액을 부을 때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중국 검철은 우리나라 검도 같은 부분에서 여러 번 실패했다. 지금 검의 날이 어느 정도 서서 나왔다. 비파형 동검은 자료를 별도로 착정하는 조립식이다. 옛날에 우리는 이렇게 개성적이었다. 휘지않고 곧게 선 날, 찌르는 데 힘을 가했을 손잡이 십자가형으로 상처를 내는 돌림, 과연 이 검이 여자의 목을 잘랐을까. 이런 검들을 박물관 유리를 통해서 봤을 때는 글쎄, 잘 사용하겠어 하고 지나갔는데, 실제로 잡아보니까 힘주기가 좋은 것 같다. 손잡이는 얇으면서도 뒤에서는 손목을 받쳐주니까. 줄기가 칼의 구조를 굉장히 튼튼하게 받쳐준다는 느낌이 오고 쳐서 뭔가를 자르는 절삭력도 상당히 클 것 같다. 비파형 동검의 위력실험, 아무래도 검의 길이가 짧으니까 전체적으로 회전력이 부족하다. 이걸 자르려면 충분한 회전력으로 검이 쭉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최대한 손목 힘을 잘 써서 해보겠다. 검이 손목을 사용하기엔 좋은 구조다. 딱 잡아주기 때문이다. 부족한 회전력을 최대한 몸의 힘을 이용해서 실험해보겠다. 실험에 사용한 동검은 성분과 제조방법이 청동기 시대 비파형 동검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음을 밝힌다, 검으로 쳤을 때 위력은 경미하다. 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휘둘러 쳐서 충격은 주더라도 물체를 잘라 들어가는 절삭력에는 한계가 있다 한번만 더 해 본다. 역시 깔끔하게는 베어지지 않는다. 힘의 크기도 있지만 아무래도 회전방향이 크니까. 짧게 도는 게 아니라 더 멀리 칼을 던질 수 있어서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실험에 사용한 동검은 성분과 제조방법이 청동기 시대 비파형 동검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음을 밝힌다, 치기에서 위력을 발휘할 방법을 찾아봤다.
⑩ 여자는 목이 잘렸고 당시의 청동검은 비파형 청동검이다. 의례의 상징 이전에 사람들은 이 검의 위력을 봤을 것이다. 무예사가 동검으로 몇 개의 어름 덩어리를 칼로 내리치고 파괴했다, 이 정도면 살 속 깊이 들어가 뼈에 충격을 가하는 정도의 위력, 검 날 앞부분이 살짝 부러졌다. 철검도 이 정도로 얇게 만들면 부러지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청동검의 경도가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검이 휘거나 하는 게 아니라 부러졌다는 점에서 보면. 끝 부분에만 날이 세워져 있다. 상단부만 사용하는 찌르기 용일 수도 있다. 장인의 눈으로 보면 분명한 무기다. 거푸집 자체가 돌이다 보니까 돌을 두 개 합벽을 했을 때 이미 거푸집에서 칼날을 결정해 놓게 돈다. 쇳물을 부은 다음에 거푸집에서 검을 떼어내 보면 칼날이 서서 나오게 된다. 날을 갈지 않아도 실제 무기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칼날이 서서 나오는 것은 실험하면서 느꼈다.
⑪ 최초의 청동검, 그 의미까지 재현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은 그 어떤 문화와도 다른 개성을 가졌던 시대로 이 검을 기억할 뿐이다. 2500년이 흐른 뒤에 축제, 고대의 비밀은 물 속에 가라 앉았다. 구리 조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길에서 들었던 무성한 얘기 중에 우리를 사로잡는 한 가지, 그 옛날 우리에게 불의 검이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