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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기봉이 2
씬 51. 서산 관광지/높은 계단/낮.
아〜 소리를 지르며 록키처럼 계단 아래에서 위로 뛰어오르는 기봉.
백 이장은 위에서 느긋하게 초시계로 재고 있다.
백 이장: 좋다, 그려, 좋아……. 더 빨리……. 더……. 더……. 빨리…….
높은 계단을 죽도록 달려 올라오는 기봉.
정말 쏜살 같이 오른다.
무지 잘 달리는 기봉이를 보곤 경악을 금치 못하는 백 이장.
백 이장: (초시계를 보고 심각하게 고민) 음……. 이참에 100m로 확 바꿔?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온 기봉.
록키처럼 기봉의 양손을 올리곤 계단 주의를 도는 흐뭇한 백 이장.
그때 멀리 계단 아래 철가방이 나타난다.
백 이장: (아래를 보며 큰소리로) 임마! 여기여, 여기…….
숨을 헐떡이며 자장면을 꺼내는 철가방.
철가방: 아니, 이장님, 내가 평소에 뭐 잘못한 거 있대유?
백 이장: (퉁명스럽게) 왜?
철가방: 참말로, 물러서 그류? 여기서 배달시키는 사람이 워딨대유? 그러구, 많이 먹을 거면 곱빼기 시키지, 보통으로 다섯 개를 시킨대유…….
백 이장: 그러니께 담배 끊어 이 자식아. 고거 쪼끔 기어 올라왔다구 뒤질라구그랴…….
한 입에 불어터진 자장면발이 다 올라와 입에 들어가는 기봉.
철가방: (귀에 대고 속삭이며) 이장님……. 기봉이 졔 넘 무리하는 거 아니래유? 저러다 죽으먼 빼도 박도 못할 텐디…….
백 이장: 쟤가 뭐여, 쟤가? 엉? 니 성님 헌티……. 그러구 너 배달 안가냐. 확〜 재수 없구먼…….
철가방: (퉁명스럽게) 그릇 갖다 줄꺼쥬?
아무 소리 않고, 짜장면을 먹는 백 이장.
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백 이장을 찍는 기봉.
백 이장: (기봉보며) 뭐 헐러구 사진은 찍는 겨?
기봉: 헤……. 그, 그냥……. 여기저기…….
백 이장: 그게 다 돈이여……. 니 엄마 알먼 클난다, 클나…….
기봉: 헤.
다시 세 번째 짜장면을 집어 들고 먹기 시작할 즈음, 철가방, 스톱워치를 들고 기봉의 먹는 속도를 재고 있다.
철가방: 빨리 먹네……. 진짜로…….
그런 철가방을 보고 피식 웃다가 기봉의 물집 잡힌 맨발을 바라보는 백 이장.
씬 52. 도로/주유소.
한적한 읍내 주유소로 들어오는 백 이장의 오토바이.
멀리 사무실에서 늙은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걸어 나온다.
백 이장: (큰소리로 자랑스럽게) 만땅.
다시 백 이장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랭이 마을 쪽으로 가는 두 사람.
백 이장: 오늘은 훈련이 너무 잘댜서 태워주는 겨. 오늘 하루만 특별하게…….
기봉: (고개 끄덕이며 웃기만 한다) …….
읍내에서 돌아오는 듯 터덕터덕 걸어가는 여창이 저 앞에 보이지만, 백 이장 눈 길 한번 안주고 그냥 휙 지나쳐 간다.
여창, 역시 그런 두 사람을 노려보는데, 기봉 휙 뒤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여창: 어휴~ 저 바보 같은 새끼가…….
여전히 여창에게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져 가는 기봉.
씬 53. 다랭이 마을/바닷가.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과자를 먹는 기봉과 정원.
기봉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간다.
파도에 쓸려 왔다 갔다 하는 과자 쓰레기를 주워오는 기봉.
기봉: (웃으며) 쓰레기는 휴지통에……. 헤…….
정원: (기봉이 가리킨 곳을 보곤) 나보다 낫네……. 오빠가…….
기봉, 품속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꺼내자, 그 카메라를 보는 정원.
정원: 이젠 사진 잘 찍겠네…….
갑자기 정원을 끌고 어디론가 달리는 기봉.
황당하지만 끌려서 달려가는 정원.
씬 54. 몽타주.
키 높이 표시 나무 앞에서 정원을 찍는 기봉.
다랭이 논이 뒤에 쫙 펼쳐진 길 위에서 정원을 찍는 기봉.
기봉의 집, 독특한 빨래 벽 앞에서 V자를 그린 정원을 찍는 기봉.
쑥스러운 표정으로 어느 바위 앞에 서 있는 정원.
그런 정원을 향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찍고 있는 기봉.
정원, 살짝 고개를 돌려 뒤 쪽 바위를 올려다보면, 남성의 성기를 닮은 커다란 바위가 보이고, 표정이 영 이상한 정원을 보며 신난 기봉.
씬 55. 춘화네 가게/앞/밤.
오토바이를 몰고 다가오는 백 이장.
가게 앞 평상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백 이장: (웃으며) 아니 먼일루 여기 다 멨는겨?
다들 백 이장을 보는 눈치가 좀 이상하다.
백 이장: (여창을 보곤) 기봉이 혹시 못 봤남?
여창: 뭐 기봉이 맡겨 놨대유? 왜 자꾸 찾는대유…….
춘화: 이장님, 막말로 기봉 삼춘이 이장님 아들도 아니구, 배고프면 빵 하나 사주고, 워디 아프면 약 발라 주믄 될 걸…….
백 이장: 그건 또 먼 소리여…….
연선댁: 허구헌 날 되지도 않는 마라톤만 시켜서 불쌍허다니께유?
영삼: 백가야, 너 진짜루 기봉이가 일등 할 수 있다고 생각허는겨?
백 이장: 그거야 당연하지……. 전부 기봉이 뜀박질 허는 거 못 봤남?
춘화: 지금 이장님만 신나서 기봉이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래유?
백 이장: 흥~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니들 속 모를까봐……. 돈 멧푼 집어주구 기봉이 머슴처럼 부려 먹으며, 편하게 살았는 디, 마라톤 땜에 인제 그만 그걸 못허니 께, 승질 나는 거 아닌감……. 이게 뭔지 아남? (사진을 확 푸리며) 기봉이가 사진 한 번 잘 찍더구먼……. 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나은 겨…….
사진을 각자 주워들어 보고는 동시에 놀라는 사람들.
엄밀히 말하면, 기봉은 나무, 꽃, 길 등을 찍었는데, 공교롭게도 뒤 백에 걸린 동네 사람들.
춘화의 사진.
어떤 남자와 모텔에서 나오는 사진.
화들짝 놀라는 춘화.
연선댁 사진.
관광지에서 한 남자와 데이트하는 연선댁 사진.
화들짝 놀라는 연선댁.
영삼의 사진.
야한 잡지를 보며 히히덕 거리는 영삼의 사진, 화들짝 놀라는 영삼.
각자 자기 사진을 감추기에 정신없다.
백 이장을 보며 웃음을 짓는 사람들.
영삼: 기봉이 달리는 거 하나는 끝내주는 구먼……. (돌아보며) 그렇지 아뉴?
춘화: (동의하며) 이장님, 뭐 가게에서 협찬 받고 싶은 거 없대유?
연선댁: 이장님, 운동할 땐 잘 메겨야 허는디, 게기 함 궈 먹지유…….
백 이장: (오토바이 시동을 걸곤) 이러니께 우리가 월드컵 4강 밖에 못 들구 통일이 안 되는 겨……. 알어?
그러면서 시원스레 오토바이를 몰고 사라지는 백 이장.
벙찐 표정을 하면서도 각자의 사진을 가지고 일어서는 마을 사람들.
옆에서 이들을 보며 한심한 듯 쳐다보는 여창.
씬 56. 창선 대교 위.
열심히 달리는 기봉 뒤로 백 이장의 오토바이가 따라 붙는다.
백 이장: 너무 빨리 뛰지는 말구……. 그려. 힘내여…….
힘에 겨워 발걸음이 무뎌지는 기봉.
백 이장: 스먼 안뎌! 계속 뗘……. 계속…….
그 말에 다시 속력을 내다가 얼마 못가서 지쳐 그 자리에 서서 헉헉거리며 가슴을 치는 기봉.
뒤에 따라와 오토바이를 세운 후, 기봉을 향해 다가가는 백 이장.
백 이장: (면장갑을 낀 손으로 기봉의 얼굴 땀을 닦아 주며) 전에 내가 함 말했지……. 내가 스라면 스고 계속 뛰라면 뛰는 겨……. 알았지?
헉헉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기봉.
다시 기봉의 가슴을 문질러 주는 백 이장.
백 이장: 자……. 코치 말 명심하고 다시 뛰자……. 뛸 수 있겄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기봉과 백 이장의 오토바이.
저 멀리 정원과 교회 목사가 걸어가고 있다.
정원, 기봉을 보면서 손을 흔들면, 기봉 좋아서 갑자기 전속력으로 달린다.
이에 영문을 모르는 백 이장.
주위를 둘러보면 멀리 정원이가 기봉을 향해 손 흔드는 것이 보인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기봉을 향해, 액셀레이터를 당기는 백 이장의 핸들 손.
씬 57. 교회/밤.
크리스마스 준비에 여념이 없는 교회.
목사, 정원, 그리고 기봉이 동네 아이들과 트리 장식과 교회 장식에 여념이 없다.
정원이 사다리에 올라가 트리 위에 별을 달고, 밑에서 집어주며 헤~ 하며 즐거워하는 기봉.
씬 58. 백 이장 집 안/밤.
마라톤에 관계된 스포츠 뉴스를 유심히 보고 있는 백 이장.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면, 술에 잔뜩 취해 있는 여창.
손에 백 이장이 좋아하는 양주 한 병이 들려 있다.
여창: (혀가 약간 꼬인) 이거 함 잡숴보유. 이 아들래미가 사온건디유?
백 이장: 괜찮여…….
여창: (술병을 내려놓으며) 아버지, 아버진 자식 보다 그 바보가 더 좋으유?
백 이장: (TV에 눈길을 준 채) 술 쳐머겄으면 곱게 잠이나 쳐자…….
여창: 허, 우리 아버지……. 기봉이 바보 놈을 마라톤 시켜서 금메달 따느라, 하나밖에 없는 아들래미 효도 헐라구 가져온 비싼 술도 마다허구…….
백 이장: (그제야 돌아보며) 바보? 기봉이가 바보여? 동네 사람들한테 다 물어보랴? 누가 더 바본지…….
아무 말도 안하고 아부지를 쳐다보는 여창.
백 이장: 뭐여? 효도 한다구? (혀를 차며) 츠츠……. 너는 효도를 머리로 허냐? 기봉이는 가슴으로 한다. 바로 그게 기봉이가 너랑 다른 점이구먼…….
그렇게 말하고 나가는 백 이장.
뒤에 덩그러니 남아서 멍하게 앉아 있는 여창.
씬 59. 다랭이 버스 정류장.
오후 햇살을 받으며 가로수 길을 달리는 기봉과 백 이장의 오토바이.
그런 두 사람을 앞 서 지나가는 서산 버스.
저 앞 정류장에 서고 누군가 내리는 것이 기봉의 시점으로 보인다.
두리번거리는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가는 기봉과 백 이장의 오토바이.
다가가면서 보면, 너무나 미끈하게 잘생긴 꽃미남과의 젊은 남자 대학생.
그렇게 기봉이 먼저 지나치자, 뒤에 오는 백 이장에게.
꽃미남: (공손하게) 저, 말씀 좀 여쭐게요…….
백 이장의 오토바이가 선다.
아래 위를 훑어보는 백 이장의 눈길에도,
꽃미남: 여기 최정원이라는 아니, 교회가 어디에 있어요?
백 이장, 그새 눈치를 챘다.
앞서 달려가는 기봉을 한번 쳐다보곤.
백 이장: 물르겄는디……. 그런 얘는 여기 안 사는디…….
하고는 다시 기봉을 향해 달려가는 백 이장.
굳게 다문 입을 한 채 기봉을 따라가는 백 이장.
씬 60. 바닷가 바위 위.
기봉이와 나란히 앉아 땀을 식히며 바다를 바라보는 백 이장.
기봉에게 물을 담아 온 사이다 병을 건네면, 기봉 벌컥벌컥 마신다.
그런 기봉을 쳐다보다가 다시 바다를 보는 백 이장.
백 이장: (바다에 시선 고정) 기봉아. 저 바다 함 봐봐라.
기봉, 백 이장 말대로 수평선을 바라본다.
백 이장: 나두 어릴 때부터 뱃놈은 못되서 넓은 디를 못 가봤지만……. 그래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헌다.
기봉, 여전히 웃음 띤 표정.
백 이장: (그런 기봉을 보며 미소 띠다가 다시 바다를 향해 보면서) 내가 니 마라톤 왜 시키는 지 아냐?
기봉: 트……. 틀니…….
백 이장: 그려, 맞구먼. 그거도 맞구 또 이유가 있다니께.
기봉, 백 이장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주위가 산만하다.
백 이장: (그렇게 주위가 산만한 기봉을 함 보곤 웃으며 다시 바다를 보면서) 기봉아, 잘 들어라. 니 옴마……. 너랑 영원히 같이 못 사는겨. 니 옴마 가시고 나먼 너 혼저 살어야 허는 겨……. (잠시 침묵) 내가 첨에는 이런저런 생각도 했지만, 이젠 아니라니께. 니가 절대로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겨…….
기봉, 자신의 옆에 다가온 벌레를 잡는다.
씬 61. 교회.
저 멀리서 막 달려오는 기봉 앞에 교회가 보인다.
어느덧 교회 문 앞에 서서 안으로 들어가는 기봉.
기봉 눈에 보이는 꽃미남과 정원이의 모습.
약간의 실랑이하는 모습이지만, 기봉은 전혀 그런 눈치를 챌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다가오는 기봉을 보며 두 사람 말다툼을 멈춘다.
기봉: (다가와) 공부……. 공부…….
정원: (여전히 웃으며 하지만 상기된) 어……. 오빠……. 오늘은 쉬고 내일하자……. 응?
기봉: (여전히 웃으며) 헤……. 엉…….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서 교회 밖으로 나가는 기봉.
그런 기봉을 한참 본 후, 다시 꽃미남에게 말하는 정원.
정원: 나 더 이상 너랑 할 말 없어. 그만 돌아가.
꽃미남: 잘못했다고 했잖아……. 무릎이라도 꿇을까? 휴~ 정원아, 그러지 말고 그만 올라가자…….
정원: 안 돼. 난 못가. 여기 삼촌 교회 일도 도와 드려야하고, 크리스마스 준비도 해야 되고, 기봉 오빠 글도 가르쳐야 돼.
꽃미남: 뭐? 기봉오빠? 그게 누구야? (생각난 듯) 아, 방금 왔던 그 바보?
정원: (소리 지르며) 누가 바보야? 누가 누구한테 바보래?
그렇게 버럭 소리 지르는 정원에게.
꽃미남: (벙찐 표정으로) 정원아…….
씬 62. 춘화네 가게 앞/밤.
여창과 시골 어설픈 백수들 몇몇이 모여서 술판을 벌이고 있다.
그때 마침 교회에서 돌아오는 뛰어오는 기봉이 저 멀리서 보인다.
여창, 소줏잔을 붓다가 기봉을 불러 세운다.
여창: (다가오는 기봉을 향해 웃으며) 어이, 밤에도 연습 허냐? 그만 뛰구 여기 앉어서 한 잔혀…….
기봉, 술보단 안주에 더 욕심이 있는 듯, 헤하고 쳐다본다.
백수1: (안주를 가리키며) 이거 먹고 싶냐? 그러먼 한 잔허구…….
여창: 기봉아……. 한잔해라. 니두 인제 어른 이자녀.
그렇게 기봉에게 소주잔을 건네고 따라준다.
기봉, 소주잔을 들어 냄새를 맡으며 인상을 쓰지만, 표정은 웃고 있다.
여창이 백수들에게 소주잔을 돌리며 따라주는 모습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 기봉.
소주병을 들어 남아 있는 소주를 다 따라주는데 잔이 다 안차고 모자라는 경우가 생기면, 들은 꼭 소주병 목을 두 손가락을 잡고 자위행위(딸딸이) 하듯 하며 장난치고 있다.
이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기봉.
씬 63. 마을 회관 앞.
기봉이 마을 회관 앞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백 이장이 다가와.
백 이장: (지도를 펴며) 오늘은 이리루 뛰다가 여기서 이쪽 다리로 빠질껴. 난 금방 따라 갈 테니께, 이 다리 위에서 우리가 만나는 겨. 알었냐?
고개를 끄덕이는 기봉.
몸을 다 풀었는지 출발하는 기봉.
저 멀리 뛰어가는 기봉의 뒷모습을 보다가, 백 이장 오토바이를 몰고 다른 길로 간다.
씬 64. 서산대교 위.
달리는 기봉의 시점으로 저 앞에 서산대교가 보인다.
기봉,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백 이장의 오토바이는 보이지 않는다.
기봉, 서산대교로 진입해서 달리기 시작한다.
기봉, 대교 중반쯤에 도착했을 때, 기봉 뒤에서 따라오는 백 이장의 오토바이.
백 이장: (따라오며) 기봉아~ 엄기봉이~~ 거기 서라…….
기봉 돌아보며 헤~하고 웃으며 서산대교 중간에 선다.
제자리 뛰기를 하며…….
다가오는 백 이장의 오토바이가 기봉 앞에 선다.
그때, 백 이장의 뒤편에서 짠하고 얼굴을 내밀며 웃으며 나타난 정원.
기봉,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헤~하고 웃는다.
정원: (환하게 웃으며) 아자, 아자…….
붉은 석양이 저 너머에…….
서산대교를 기봉과 백 이장과 정원이 달려가고 있다.
씬 65. 읍내 술 집 안.
백 이장과 노 이장, 그리고 최 이장 술을 마시고 있다.
모두들 취기가 제대루 올랐다.
노 이장: (비꼬는) 그래, 우리의 엄기봉 마라토너 훈련은 잘 되는감? 빽코치님…….
백 이장: (약간 취한 듯) 그럼, 우리 기봉이……. 니들 달리는 거 함 못봤는감? 바람 같다니께. 바람의 아들 같다니께…….
최 이장: 바람의 아들은 이종범인디?
백 이장: 이젠 엄 기봉이라 불러라……. 임마…….
노 이장: 아무튼 빽코치님 수고허유. 연임 헐라먼 그 정도는 해야주…….
백 이장: (술을 마시고 입을 쓰윽 닦고는) 연임? 내가 연임 땜에 이러는 줄 아남?
노 이장: 아녀 그럼? 그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같은 얘를 꼬셔서 마라톤 시키는 건 내 연임 욕심 때문 아닌감? 니네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니께. 니 아들도…….
버럭 하면서 일어나 술상을 엎어버리는 백 이장.
백 이장: 워떤 놈이 그려? 워떤 놈이……. 엉? 내 이장 안하면 될 거 아닌감? 엉? 월급도 없는 그 따위 이장직……. 내가 안하면 그만이여.
그렇게 아수라장이 되며 몸싸움이 벌어지는 술 집 안 풍경.
씬 66. 다랭이 마을 농노.
어스름한 달빛이 다랭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저 멀리 고래고래 노래 부르며 비틀거리며 오고 있는 백 이장의 오토바이.
음주 운전이다.
아슬아슬, 위태롭게 용케 카메라 앞까지 천천히 오다가, 그만 논 구석에 오토바이와 함께 쳐 박히는 백 이장.
씬 67. 백 이장 집 안.
화면 밝아지면, 얼굴은 온통 긁혔고, 팔, 다리가 멍투성인 백 이장이 누워 있다.
그 옆에 여창이 앉아서 보고 있다.
그때,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봉.
기봉: (이장의 상태를 보고 걱정스럽게) 으이구……. 이, 이런 일이…….
여창: (기가 막힌 듯) 뭐? 뭐여? 임마……. 이게 다 니 때문에 생긴 일이잖여…….
백 이장: (누워서) 여창아, 이런 싸가지 없는 놈아. 기봉이는 니보다 나이 두 살이나 많다. 어따 대고 형한테 니, 니 그러는겨……. 콱 기냥…….
여창: 어유……. 아부지. 대단허슈…….
그렇게 여창이 나가고, 기봉이 백 이장 주변에 바싹 앉는다.
백 이장: 시합이 열흘이 채 안 남은 이 마당에 내가 이러구 있구먼. 우선 니 혼자 연습 꼭 해야 혀. 쉬면 안 된다니께……. 기억 하지? 내랑 연습한 거……. 고대로 해야 혀…….
기봉: (고개 끄덕이며) 예……. 얼릉……. 얼릉……. 나아야…….
고개를 끄덕이며 웃다가 땡기는 얼굴 상처에 아파하는 백 이장.
교회 앞에 놓인 두 나무 위에 장식되어 있는 크리스마스 표식들과 반짝이는 불들.
씬 68. 교회/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타이틀과 반짝이가 트리에 걸려 크게 보이고, 카메라 내려오면, 목사님이 앞에서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주도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 모두 모여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있다.
그 속엔 정원도, 기봉도, 기봉 모도 보인다.
좀 떨어진 곳에 꽃미남도 보인다.
마을 사람이 건넨 찬송가를 읽지 못하는 기봉과 기봉 모.
두 손을 모으고 고개만 끄덕이는 기봉 모와 달리, 필 받은 기봉, 커다란 동작으로 노래 가사에 맞춰 따라 움직이고 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이를 보고 있는 정원.
그리고 무표정하게 정원과 기봉을 번갈아 보는 꽃미남.
눈을 감고 열심히 큰 동작으로 따라하고 있는 기봉.
씬 69. 다랭이 마을 길.
혼자서 외롭게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는 기봉.
이런 기봉을 춘화네 가게 앞에 모여 있는 동네 사람들 보면서 수군댄다.
마침 물건을 사러 춘화네 가게에 온 여창, 고개 돌려 기봉을 본다.
연선댁: 기봉이 삼촌, 이제 혼자 연습허네…….
영삼: 백 이장이 다쳐서 저렇게 혼저 뛴대유. 워쩐댜? 이제 코치도 움는디…….
칠복: 그래두 대단허네. 저렇게 혼저 하는 거 보먼 말이여…….
춘화: 진짜루 기봉이 삼촌, 마라톤에서 일등 할 거 같지 않유?
연선댁: 참내, 마라톤이 뉘 집 개새끼 이름도 아니구, 그게 어디 쉬운 줄 알어?
춘화: 그거는 아무도 모른다니께유? 저 봐유, 저 봐유……. 진짜 빠르잖유…….
영삼: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겄냐?
옆에 서서 그 소리를 들으며 기봉을 주시하고 있는 여창.
바람처럼 달리는 기봉의 역주.
씬 70. 몽타주.
다랭이 마을 가로수 길을 혼자 달리는 기봉.
카메라 넓게 잡으면, 그런 기봉과 함께 뛰는 영삼과 칠복.
오토바이로 따라가며 힘을 북돋아 주는 모습.
춘화와 연선댁, 춘화 가게 앞에서 마치 마라톤 식수대처럼 음료수를 놓고 기다리고 있다.
기봉이 지나가면서 식수대 음료수 가져가듯 춘화가 손에 음료수를 낚아채 간다.
춘화와 연선댁,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친다.
교회 목사와 정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가면서 응원한다.
헤벌레 한 표정으로 웃으며 속력을 내어 달리는 기봉.
노 이장과 최 이장 역시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가며 기봉을 향해 파이팅!
읍내 마담과 레지 한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기봉을 따라가며 요구르트를 흔들며 파이팅!
읍내 철가방, 역시 오토바이를 타고 기봉을 따라가며 철가방을 두드리며 파이팅!
엄청난 속력으로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바닷가를 달리는 기봉을, 온 동네 사람들 모두 뒤따라 뛰고 있다.
산 위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여창.
씬 71. 기봉네 집/방 안.
화면 밝아지면, 기봉 예의 그 마라톤 교본을 보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거울을 보며 정원이가 준 머리띠를 정성스레 두르고 있는 기봉.
이를 여전히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기봉 모.
그때 들리는 소리.
백 이장: (소리) 기봉아! 뭐허냐? 훈련 가자…….
기봉, 백 이장의 우렁찬 소리에 좋아서 방문을 확 열면, 기봉네 집 마당 앞에서 오토바이 세워놓고 몸을 풀고 있다.
빙그레 웃는 기봉의 표정.
씬 72. 다랭이 마을.
기봉 다시 백 이장과 역주를 하는데, 길 건너 저 멀리 나무 밑에서 정원과 꽃미남이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만다.
그러나 무표정하게 다시 앞을 보며 달리다가 갑자기 기봉 전속력으로 달린다.
놀란 백 이장.
백 이장: (큰소리로) 야, 임마. 니 지금 뭐허냐? 엉?
하지만 아랑곳 않고 마구 달리는 기봉.
백 이장, 따라붙으며 제지하나 말을 듣지 않는 기봉.
갑자기 기봉이 가슴을 치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저 멀리 보이는 정원과 꽃미남의 포옹하는 모습.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 멈춰 서서 헉헉거린다.
어리둥절한 백 이장이 다가와 기봉을 살피지만, 기봉의 가쁜 숨소리 외엔.
기봉: 아……. 아퍼……. 가……. 가슴이 너무 아퍼…….
그러면서 가슴을 탕탕 치는 기봉에게 백 이장,
가슴을 막 문질러 주는 백 이장을 뿌리치고 다시 막 달리기 시작하는 기봉.
또 놀라는 백 이장.
백 이장: (따라가며) 야, 기봉아. 거기 서라……. 안서냐……. 야, 엄기봉이……. 기봉아.
얼굴은 웃음.
눈은 글썽이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 기봉, 아픈 가슴을 치며 언덕 너머 저 편으로 달려 나간다.
씬 73. 병원.
기봉 검사가 끝나고 진찰실 밖으로 나오면, 백 이장이 의사랑 상담하고 있다.
기봉을 힐끔거리고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등을 돌려서 의사와 대화 하고 있다.
의사: 폐가 좀 안 좋구먼……. 특별히 걱정할 건 없는디……. 기봉이 부친도 폐병으로 돌아가셨지 아마? 그게 다 유전인디……. 참 어려운 얘기여. 아베가 안 좋으면, 아들도 안 좋은 거 당연한 겨…….
씁쓸한 표정의 백 이장, 뒤로 간호사들과 헤~ 하며 놀고 있는 기봉이 보인다.
씬 74. 고기 집.
백 이장, 기봉을 데려다가 읍내 고기 집에서 고기를 사준다.
지글지글, 석쇠에서 삼겹살이 구워지고, 기봉 기도하고 있다.
그런 기봉을 보며 웃으며 소주잔을 비워내고 있는 백 이장.
백 이장, 고기 한 점을 집으려 하는 데 기봉, 머뭇거리자.
백 이장: 니 엄니 땜에 그러냐? 걱정 말구 많이 먹어. 엄니 껀 따로 사가먼 되니께.
그제야 마구 먹어대는 기봉.
그런 기봉을 흐뭇하게 가끔은 슬픈 표정으로 보는 백 이장.
백 이장이 사준 고기를 담은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집을 향해 달려가는 기봉.
씬 75. 기봉네 집 방안/저녁.
구운 쇠고기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 계속 씹기만 하는 기봉 모.
몇 개 남지도 않은 이빨에 고생이 심한 기봉 모의 모습.
밥 먹다 말고 장난이 치고 싶은지 쌈을 싸기 시작하는 기봉.
씬 3과 동일!
다른 건 기봉이 나이가 들었는데도 마찬가지다.
기봉: (못 먹을 정도의 쌈을 크게 싸고) 하……. 하나……. 또 하나 노……. 놓으까 마까……. 히히.
기봉 모: (놀라며) 허지말라니께…….
기봉: (웃으며) 헤……. 하나 또 오……. 올리고…….
기봉 모, 눈치를 보다가 자신의 입에 넣을까 말까 시늉을 하며 장난치는 기봉.
씬 3과는 달리 기봉 모 이젠 매를 확 치켜들자, 순식간에 입 속으로 확 쳐 넣는 기봉, 막 씹다 목에 걸린 듯 켁켁 거리기 시작한다.
기봉 모: (더욱 놀라며) 그거 봐, 내가 뭐랴? 괜찮은 겨?
기봉: (엄마를 보다 방긋 웃으며) 헤…….
기봉 모: 또 장난헐리? (때릴려는 자세로) 허지 말랬잖여.
기봉: (웃으며) 아……. 알았따…….
가슴을 쓸어내리는 기봉 모, 밥을 뜨느라 시선을 밥그릇으로 옮기면, 재빨리 다시 터질 것 같은 쌈을 싸서 입에 넣는 기봉.
씬 76. 다랭이 마을 길.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기봉과 정원이 한 우산을 쓰고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혼자 우산을 쓰고 따라오고 있는 꽃미남.
씬 77. 버스 정류장.
꽃미남과 함께 그렇게 동네를 떠나는 정원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있는 기봉.
뒤에서 꽃미남이 멀찌감치 떨어져 보는 가운데.
정원: 오빠,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거야……. 건강해야 돼…….
그리고는 가방에서 자신의 카메라, 최신 카메라를 꺼내어 기봉에게 건네준다.
정원: 이제 이 카메라를 써……. 오빠한테 줄 거라곤 이거뿐이네…….
카메라를 받아 들고 아무 말도 못하는 기봉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다가가 기봉을 안아주는 정원.
기봉, 키 작은 정원에게 어설프게 안겨서 힘들어한다.
저 멀리서 산비탈을 힘겹게 올라오는 버스가 이별의 시간을 재촉하고 있다.
정원과 꽃미남을 태운 버스 제일 뒤에서 정원 기봉에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기봉, 역시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렇게 정원을 태운 버스와 점점 간격이 벌어지며 멀어지는 기봉.
이젠 점이 되어 보이는 버스를 뒤로 하고 몸을 돌리는 기봉.
가슴을 몇 번 치는 기봉.
갑자기 우산을 버리고 빗속을 달려가는 기봉.
씬 78. 백 이장 네 집.
맑게 개인 파란 하늘.
처마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백 이장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고, 외부 화장실에선 여창이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다.
화장실에서 나무 문 틈으로 백 이장의 모습과 마당이 고스란히 보인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봉.
기봉: (꾸벅 인사하며) 후……. 훈련……. 해야 허는디…….
백 이장, 그런 기봉을 쳐다보다가.
백 이장: 이제 훈련 웁다.
이 소리에 더 놀란 건 화장실에 앉은 여창.
그만 담배꽁초에 입을 대며 화들짝 놀라는 여창.
기봉: (영문을 몰라) 예……. 예?
백 이장: 어차피 난 니가 마라톤 나가도 꼴지 할 거라 생각헌다. 망신만 당할 거라 이 말이여…….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기봉.
백 이장: 난 니를 우승시키야 뭔가 생기는 디, 그럴 자신이 없는 겨…….
기봉: 오……. 옴마……. 옴마……. 틀니…….
백 이장: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께 인제 그만허자, 기봉아…….
기봉: 그……. 그래……. 그래두…….
백 이장: (큰소리로) 몇 번을 말해야 알어 듣겄냐? 니는……. 인제 그만허자니께! 엉? 그만두자고…….
그렇게 말하면서 방 안으로 팩하고 들어가 버리는 백 이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백 이장집 대문을 열고 나가는 기봉.
이런 이야기를 화장실에서 다 듣고 보며 의아해 하는 여창.
씬 79. 춘화네 가게 앞.
동네 주민들 모여서 백 이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백 이장: 무조건 말려야 헌다니께. 알았는감?
연선댁: 아이구 불쌍해서 워쩐대유?
춘화: 저렇게 달리는 걸 좋아하는 삼촌, 인제 워째유?
영삼: 뭘 어쪄? 마라톤도 달리기도 다 좋지만도…….
칠복: 그려, 유전이라는디 모……. 방법 있남?
백 이장: 아무튼 다들 내 말 알어 들었지?
그때, 머리띠를 두른 채 그 들 앞을 휙 지나가며 혼자 연습하는 기봉.
사람들, 백 이장이 한참 얘기하는데, 그 뒤를 지나가는 기봉을 쫒아, 목이 다 휙 돌아간다.
백 이장, 사람들 시선을 쫒아, 역시 돌아보면, 기봉이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연선댁: 저 봐유, 저기……. 저렇게 평생 뛰어온 사람을 어째 그만 두라구 헌대유?
백 이장: 상관웁다. 기봉이 잘못되면 기봉모친 워쩔라구 그려?
사람들 모두 기봉이 불쌍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웅성거리는 데, 다시 그 들 앞을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휙 지나가는 기봉.
사람들 다시 목을 쭉 빼서 기봉이 달려간 방향을 쳐다본다.
씬 80. 읍내 초원 다실 안.
노 이장과 최 이장, 그리고 마담이 기봉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백 이장, 들어선다.
백 이장이 다가오자, 얼른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는 세 사람.
마담, 인사하며 차가지러 간다.
그들 옆에 힘없는 모습으로 털썩 앉는 백 이장.
노 이장과 최 이장, 백 이장의 눈치만 살핀다.
그때, 마담이 커피를 가지고 와 앉는다.
노 이장: (백 이장 눈치를 보며) 괜찮여. 아마 기봉이두 이해할껴.
최 이장: (거들며) 그류.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 아니래유?
마담: 그게 먼소리여? 딴소리허기는……. 내말은 기봉이 삼촌, 엄마랑 평생 함께 살 수 없지만, 최소한 오랫동안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 아닌감유. 참말로,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 먹는댜? 근데 기봉이 삼촌 뛸 때가 젤루 보기 좋던디…….
최 이장: (마담을 보며) 제 정신이 아니라니께.
이렇게 두 사람 언쟁을 벌이는데.
백 이장: (손사래 치며) 됐구먼 그만 혀. 내가 답답한 건……. 아녀, 됐구먼…….
노 이장: 다 알어, 우리가……. 그걸 왜 물르겄남?
마담: (딴소리) 마라톤 혼자 참가하는 거 아닌가 모르겄네…….
최 이장: 어허……. 또 샌다, 딴 길로……. 기봉이 혼자선 절대 못한다니께. 참가 신청도, 어디서 시합하는 지도…….
마담, 그제야……. 아 참……. 맞지……. 하는 표정과 입모양을 하고…….
백 이장, 커피를 원 샷하고 일어선다.
노 이장: 왜? 벌써 갈라구?
대꾸 없이 그렇게 다방을 나서는 백 이장.
분위기 파악 못하고 나가는 백 이장 등에 대고 커피 값을 말하려다 제지당하는 마담.
씬 81. 읍내 거리.
백 이장, 오토바이를 타고 천천히 읍내 거리를 다니는데, 좁은 동네라서 서로들 인사하고, 목례하며 지나가는 흔한 시골 풍경이다.
그때, 저 멀리서 기봉과 기봉모친이 체육용품 파는 가게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백 이장, 그 쪽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간다.
씬 82. 읍내/서산 체육사 안.
체육사 안으로 들어온 기봉 母子.
주인: 어서 오세요.
기봉 모: (기봉을 향해) 사라. 그 옷이 워디 있는디?
여러 벌의 유니폼이 보이고…….
두리번거리며 신나서 옷들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기봉.
그제야 하나를 골랐다.
기봉 모에게 보여주자.
기봉 모: 흰 거는 안뎌……. 때 타. 시꺼먼 거 사라…….
기봉 모의 말에 그만 시무룩해서 제자리에 도로 놓아두는 기봉.
이번엔 노랑 런닝셔츠와 팬츠 세트를 보여주자.
기봉 모: 안 댜. 그것도 금방 때 탄다니께.
기봉: 이거……. 이거…….
기봉 모: 아〜 고 놈……. 참……. (포기한 듯 주인을 보며) 얼마래유?
주인: 예. 만 오천원 유…….
몸빼이 바지 주머니에서 구겨진 만 원권 지폐를 꺼내고 다른 주머니에서 천 원권을 꺼내어 침 발라가며 다섯 장을 세어 주인에게 건네며.
기봉 모: (무뚝뚝하게) 맞쥬?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주인.
노란 체육복을 검은 비닐봉지에 넣으며 너무 좋아 입이 벌어진 기봉.
이 모습을 커다란 쇼윈도우 유리창 너머로 쳐다보는 백 이장.
씬 83. 버스 터미널 안.
다랭이 마을이라고 보이는 표찰을 앞에 건 버스가 부르릉 거리고…….
기봉은 터미널 내의 여자 화장실 앞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며 버스와 화장실 안을 번갈아 보고 있다.
기봉: (화장실 안에 대고) 차 가. 차……. 아유……. 참……. 어허.
그러다가 하는 수 없이 기봉 여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어떤 칸에 대고.
기봉: 차 가……. 얼릉……. 아유……. 참…….
여자1: 아저씨, 여기 들어오면 안되는디……. 얼른 나가유……. 밖에서 기다리야지…….
그렇게 쫒기 듯 다시 화장실 밖으로 나오는 기봉.
마침 기봉 모, 느릿느릿 옷을 추스르며 나오는 모습이 보이자, 기봉, 몸을 돌려 버스를 향해 후다닥 뛰어가고…….
그 뒤를 바삐 따라가는 기봉 모.
씬 84. 버스 안.
멀리 서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읍내 나올 때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앉아 있는 기봉 모와 그 앞에 앉은 기봉.
기봉, 갑자기 멀미를 하는 듯 욱욱 거리며, 가슴을 두 손으로 친다.
씬 85. 어느 마을 앞거리.
부르릉거리며 떠나는 버스가 간 자리에 남겨진 두 母子.
나란히 보이는 똑같은 털신을 신은 두 모자의 발에서 카메라 천천히 빠지면, 엄청 큰 시멘트 축대 벽 한쪽 구석에 나란히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기봉과 기봉 모.
그렇게 앉아서 아무 말 없이 겨울 풍경을 구경하는 두 母子의 정겨운 모습.
씬 86. 다랭이 마을/암수 바위 앞.
파아란 달빛이 암수 바위를 비쳐 묘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길 가.
저 멀리서 여창이 터벅터벅 돌아오고 있다.
바위를 지나치는 여창 앞에 무언가 불쑥 튀어나오자, 기겁하며 뒤로 자빠지는 여창.
여창 자세히 보면, 기봉이다.
여창: 아이, 진짜……. 씨……. 사람 간 떨어지게…….
기봉: (예의 그 웃음을 띤 채) 도와……. 도와줘…….
여창: (일어나서 옷을 털며) 뭐? 뭘 도와줘?
기봉: 나……. 나……. 달리기……. 시합…….
여창: 으휴……. 안된다잖여, 달리기 허면…….
기봉: 그……. 그냥……. 어디서 하는 지……. 그 거라도……. 알면…….
여창: 어휴……. 이 바……. (바보란 말을 하려다가 바꿔서) 니……. 폐가 션찮아서 뛰다가 죽을 수도 있다 안허냐?
그렇게 말하고 휙 돌아서 가는 여창의 등에 대고.
기봉: (무표정 단호하게 하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주……. 죽어도 좋다…….
그 소리에 뒤를 돌아 기봉을 바라보는 진지한 표정의 여창.
씬 87. 백 이장 집/오후.
마루에 걸터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여창.
백수들 집으로 들어서며 여창에게 말을 건넨다.
백수: 성님, 술 한잔 빨러 가쥬.
묵묵부답인 여창.
백수: 성님, 뭐헌대유?
여창: 확~ 절루 안가냐……. 니미……. 니들끼리 가서 처먹고 뒤지던지 말던지 허라구…….
벙찐 표정으로 돌아가며 힐끔거리는 양아들.
여창의 방 안.
인터넷에서 자료 받아 프린터 한 용지들이 보이고, 백 이장이 보던 마라톤 교본도 보인다.
그 교본을 보고 있는 여창.
그때, 방문을 열어젖히는 백 이장.
화들짝 놀라며, 마라톤 교본 책을 감추는 여창.
백 이장: 뭐허냐?
여창: 아, 아무 것도 안 하는 디유…….
백 이장: 내일 모레 할매 제산 거 아는 겨 모르는 겨?
여창: 알지유…….
백 이장: 미리 미리 제사 음식 사 놓고 준비 해 놓던지혀.
여창: 예.
그렇게 다시 문을 닫고 돌아서는 백 이장.
여창, 휴~ 하며 감춘 교본을 다시 보는데, 다시 문이 확 열리면, 또 놀라 기겁하는 여창.
백 이장이 노려보고 있다.
백 이장: 허지마라. 기봉이 가만 냅둬…….
그 말만 툭 던지고, 문을 닫아버리는 백 이장.
멍하니 자신의 방문을 보고, 다시 교본 책을 번갈아 보는 여창.
백 이장 방 안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백 이장과 여창 두 사람.
여창: 그러니까 지 말은 참가만 시켰다가 포기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감유?
백 이장: 얘가, 얘가, 진짜로 왜 이런댜? 니 갑자기 왜 나서는디…….
여창: 아니, 제 말은 그동안 훈련한 거도 아깝구, 아버지 내년 이장 연임 문제도 있구, 우리 다랭이 마을 우수마을 지정해서 포상도 받구, 그러구 젤루 중요한 건 기봉이 성 엄마 틀니 해 준다구 저러는디…….
백 이장: 우선 난 이장 연임엔 관심 없구……. 그러구 틀니? 그건 니가 노가다 해서라도 사주믄 될 꺼 아녀?
여창: 아버지 그게 말이 된대유? 지금…….
백 이장: (돌아누우며) 아무튼 절대 안뎌……. 넌 나서지 말고 가만 있으라니께……. 기봉이 마라톤 하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니께…….
여창: (소리 팍 지르며) 죽어도 좋다구 허잖유?
그렇게 말하고 백 이장 방문을 확 열고 나가는 여창.
백 이장 돌아누운 채 아무 말이 없다.
씬 88. 다랭이 마을 길.
화면 밝아지면, 기봉, 열심히 달리고 있는 모습.
카메라 벌리면, 같이 뛰고 있는 사람, 바로 여창이다.
기봉을 따라가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여창.
그런 여창을 향해 웃으며 열심히 달리고 있는 기봉.
백 이장, 역시 산 위에서 그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씬 89. 춘화네 가게 앞/석양.
동네 사람들(연선댁, 영삼, 칠복 등) 가게 앞 평상 마루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저 멀리 달려오는 기봉과 여창의 오토바이.
여창이 춘화에게 콜라를 시키고, 기봉의 땀을 닦아주고 있다.
그런 모습을 동네 사람들 모두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춘화, 컵과 병 콜라를 가지고 나와 여창에게 건네면, 여창, 컵을 기봉에게 건네고 따라 준다.
그리곤 자신은 그냥 병째 들고 마시는데 다 마시고 몇 방울 떨어진다.
이때, 기봉, 다가가서 콜라 병 목을 두 손가락으로 잡고 자위행위를 하듯 상하로 움직이면, 자신의 입 앞에서 벌어지는 콜라병과 기봉의 모습에 벙찐 표정의 여창.
눈알을 돌려 주위를 보면, 춘화와 연선댁, 영삼, 칠복.
모두 뻥진 표정.
씬 90. 몽타주.
기봉네 집 방 안에 달력 위 날짜들이 X 가 되어 있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워 보는 기봉.
이제 삼일 남았다.
그런 기봉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기봉 모.
모레 들 통을 등에 지고 열심히 노가다 하는 여창.
땀을 닦고 있는 여창에게 지불 되는 일당.
봉투를 열어보고 웃는 여창.
백 이장, 동네 회관에 모여서 주민들과 반상회를 열고 있다.
안건: 엄기봉군의 마라톤 대회 참가에 관해…….
사람들, 삼삼오오 서로들 수군거리며 탁상공론을 하고 있는 모습.
여창, 일당을 받은 봉투를 들고, 2층에 의료기기 전문점이란 간판이 보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카메라, 트릭을 써서 내려오면 1층에 나이키 매장이 보인다.
씬 91. 기봉네 집 방 안.
마라톤 대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음을 가리키는 달력의 X 표시.
기봉 들뜬 표정으로 머리띠를 두르며 결전의 의지를 다지는데, 밖에서 들리는 백 이장의 목소리.
백 이장: (소리) 기봉아~ 안에 있냐?
방 안.
백 이장 품속에서 참가 번호표를 꺼내 놓는다.
백 이장 그러면서 꺼내 놓은 건 참가 번호표.
백 이장: (기봉 모에게) 아주메가 이거 좀 달아주유……. 기봉이 유니폼 샀지유? 거기다 이거 달유…….
기봉 모: 그냥 거기 달면 되는 겨?
고개를 끄덕이는 백 이장.
기봉, 번호표를 받아 들고 해맑게 웃는 표정.
백 이장: (기봉을 보며) 그리 좋은 겨?
기봉, 고개를 끄덕인다.
백 이장: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한다. 알었냐? 오늘 밤 푹자고 낼 보자…….
기봉: 예…….
기봉이 보고 있는 가운데, 힘들게 번호표를 기봉의 런닝셔츠에 달고 있는 기봉 모.
옆에서 좋아서 헤하고 웃고 있는 기봉.
기봉 모: (마지막 한 땀을 끝내고 물어뜯어 실을 끊으며) 됐다……. 자…….
하면서, 런닝 셔츠를 기봉에게 내밀면, 기봉 받아들고 너무 좋아한다.
거울 앞에 서서 옷을 대어 이리저리 살핀다.
그러더니, 입은 옷에 덧입는다.
런닝 셔츠도, 팬츠도.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선 기봉의 모습.
기봉 모: 돌아봐라.
기봉, 돌아서면, 기봉 모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첨이다.
기봉 모: 얘들이구먼……. 얘들이여.
기봉 모가 웃는 게 좋은지 따라서 웃는 기봉.
달빛을 받아 파란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가…….
씬 92. 기봉네 집 방 안.
아침 해가 밝았다.
분주히 준비하는 기봉.
가방에 물건을 넣고 있는 기봉.
이런 기봉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기봉 모.
이때, 밖에서 들리는 여창의 목소리.
여창: (소리) 성, 기봉 성……. 있나?
기봉, 문을 열면 밖에 서 있는 예비군 복장의 여창.
손에 무언가 들려있다.
기봉, 마루로 나와 웃으며 반기면, 여창, 역시 마루에 걸터앉으며.
여창: 아, 나 진짜……. 하필이면 오늘부터 동원훈련이냐? 참…….
기봉: 구……. 군인……. 가나?
여창: 엉. 나도 꼭 같이 서울 가고 싶었는디, 워떠켜? 조국이 나를 부르는디…….
그러면서 여창 손에든 박스를 열어 보이면, 런닝화(나이키가 아닌 나이스)가 보인다.
기봉, 헤 하면 웃으며 런닝 화를 집어 들면,
여창: 그려, 그거 신고 뛰어. 성, 나이키……. 좋챠? 성! 파이팅! 앗싸! 파이팅
기봉, 역시 어설프게 주먹 쥐고 웃는다.
여창, 시계를 보면서 일어난다.
여창: 뭔 놈의 조국이 새벽부터 불러 쌓는지……. 참말로……. 성! (주먹) 빠샤!
그렇게 여창은 가고, 뒤이어 백 이장과 영삼이 나타난다.
기봉의 귀 뒤편에 키미테를 붙여주는 백 이장.
기봉, 기봉 모에게 절한다.
기봉 모: 열심히 허구 와야 혀……. 조심해서 일등가고…….
기봉 모의 소리에 미소 짓는 백 이장과 달리 킥킥대는 영삼씨.
기봉: 어…….
기봉 모: 편안하게 조심해서 일등 가라……. 일등 가면 좋으니께…….
기봉: (고개 끄덕이며) 옴마……. 나 일등하고 오께…….
씬 93. 기봉네 집 동구 밖.
저 멀리 떠나는 기봉 일행.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배웅하는 기봉 모.
가다 돌아보고 가다 돌아보고 들어가라고 손짓하는 기봉이 저 멀리 보인다.
기봉 모,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씬 94. 마을 회관 앞.
기봉이 하늘을 향해 오른다.
다름 아닌 동네 사람들이 기봉을 헹가레 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 번의 헹가레 후에 다시 땅에 내려서는 기봉, 어질어질 하다.
플랭카드에 ‘필승! 다랭이 마을의 희망. 맨발의 마라토나 엄기봉!’도 보인다.
연선댁: (보자기에 싼 그릇을 내어주며) 갈비찜 좀 해놨는디…….
백 이장: 고맙구먼.
춘화: (게토레이 상자를 내어주며) 이건 우리 가게에 없는 건디, 읍내에서 따로 주문해 가 받아 왔어유……. 협찬이유…….
백 이장: 자네두 고맙구먼…….
동네 주민들, 모두 기봉에게 격려의 한마디씩 하느라 정신이 없고, 파출소 소장도 와서 격려한다.
백 이장: (주민들에게) 오늘 모두 이렇게 아침 일찍 모여 주셔서 감사허구유, 여러분의 지원과 격려가 더할 나위 없이 힘이 되는 구먼유……. 자, 우리는 반드시 이기고 돌아올꺼유. (큰소리로) 여러분도 믿쮸?
일동: (큰소리로 답한다) 그럼유~ 하하하.
저 멀리서 노 이장과 최 이장이 달려온다.
백 이장: 니들이 여긴 뭔 일이여?
노 이장: 우리도 같이 갈라구 그려. 다랭이의 자랑이 아니지, 스산의 자랑 아닌감?
최 이장: 글게유……. 백 이장 성님, 이 대목에서 마을 구분 할 껴……. 우리도 끼워줘 봐……. (둘러보며) 내말이 맞지 않여?
일동: 그류.
봉고차에 오르면서 다시 악수와 인사를 하는 백 이장과 기봉 일행.
그렇게 마을 회관 앞을 출발하는 봉고.
그 봉고를 따라 함께 뛰어 달려주는 주민들과 꼬마 아이들.
그렇게 결전의 장소 서울을 향해 떠나는 봉고차 뒤로 다랭이 마을 전경이 보이고, 저 너머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씬 95. 봉고차 안.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봉고차 안.
사람들이 많이 타서 비좁다.
겨울 파커 옷차림이 더욱 비좁게 느껴진다.
백 이장: (기봉을 보며) 괜찮은겨?
기봉, 멀미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의사 표시를 한다.
백 이장, 다시 앞을 보다가 뒤를 보면 노 이장과 최 이장이 꼭 끼여 타고 있다.
백 이장: (혼잣말로) 꼭 이런 때 쓸때없이 낑겨가는 놈들이 있다니께, 보먼…….
노 이장: 아이, 진짜……. 씨…….
사람들, 모두 웃는다.
그렇게 서울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지나 달려가는 봉고차.
씬 96. 서울 시내/거리/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시골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기봉.
높은 빌딩과 수많은 차량들, 인파에 기가 질린다.
화려한 서울의 네온사인이 차 창밖으로 보인다.
씬 97. 전국 아마추어 하프 마라톤 대회장/낮.
화면 밝아지면, 전국 아마추어 하프 마라톤 대회라는 간판이 보이고 마라톤 선수들이 집결한 가운데…….
멀리서 다가와 서는 봉고차.
차 옆으로 ‘필승! 다랭이 마을의 희망. 맨발의 마라토너 엄기봉!’ 현수막이 보이고, 은 봉고차에서 내리는 수많은 마을 사람들.
보던 사람들도 놀라고…….
기봉도 귀에 붙은 멀미약을 붙인 채 내린다.
스트레칭을 하며 긴장한 표정의 기봉,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덩치도 좋고 프로다운 선수들이 보인다.
주눅 드는 왜소한 기봉.
기봉, 여창이 준 런닝 화를 신고 끈을 묶지만 잘 못하자, 기봉의 신발 끈을 대신 묶어주는 백 이장.
자세히 보면, 나이키가 아니라 나이스다.
백 이장: 으유……. 여창이 이눔의 자식. 나이스가 뭐여? 나이스가……. (기봉을 보며) 기봉아, 너무 당황하지 말고……. 잉?
기봉: 그류…….
영삼: 그려……. 니 뒤에는 우리 다랭이 마을이 있으니께…….
칠복: 기봉아, 우리만 믿으라니께…….
노 이장: 스산의 자랑 엄기봉……. 파이팅!
최 이장: (덩달아) 앗싸~ 엄기봉……. 파이팅!
그런 사람들을 향해 웃어 보이는 기봉.
최 이장: (청심환 하나를 주며) 기봉아, 이거 우선 하나 먹어두라니께…….
백 이장: (그 약을 보며) 어……. 참말로……. 미쳤는가……. 도핑테스트 할지도 모르는디…….
노 이장: 뭐? 뭐라구? 도핑……. 그게 뭔디?
백 이장: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나이 그려, 무식헌놈, 으이구…….
휙 돌려서 기봉을 보는 백 이장.
백 이장: 기봉아, 너는 세상에서 누가 젤로 좋으냐?
기봉: 오……. 옴마…….
백 이장: 그려! (기봉의 어깨를 치며) 지금부터 그것만 생각하는겨……. 알었냐?
기봉: (웃으며 고개 끄덕) …….
이때 큰 환호 소리.
마을 사람들 보면 환호를 받으며 나타난 마라토너 이봉주, 백 이장이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안내방송: (소리) 오늘 수상과 참가자들의 스트레칭 교육을 위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도착했습니다.
환호하는 사람들.
점점 백 이장 옆으로 다가오는 이봉주, 신기해하는 백 이장.
기봉: (기봉도 이봉주를 알아보고) 어? 나……. 랑 같……. 이 뛰……. 뛰던…….
백 이장: 아녀, 기봉아……. 쟈는 이봉주구, 그때 갸는 이봉조여…….
이봉주와 같이 스트레칭을 하는 선수들.
이봉주: (마이크 잡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첨에 한 10분정도는 아주 천천히 뛰다가,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여러분 자연스럽게 스피드가 올라갈 겁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이런 소리가 들리고 백 이장과 마을 사람들도 기봉과 같이 이봉주가 하는 스트레칭을 따라하고…….
안내방송: 마라톤 선수들은 출발선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곧 마라톤 대회가 시작되오니 속히 출발선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마라톤 대회가 선포되고, 속속 출발선에 서는 선수들.
현수막을 들고 응원하는 마을 사람들.
초조한 표정의 백 이장.
긴장한 선수들 사이에 섞여 있는 기봉 역시 길게 출발선에 모여 있고.
기봉, 깊게 심호흡 한 번 한다.
선수들: (다같이) 셋, 둘, 하나…….
“탕!”
하는 출발 총성이 울리자, 그 옆에서 깜짝 놀라는 기봉.
그러나 다른 선수들은 우르르 달려 나간다.
백 이장과 마을 사람들, 빨리 출발하라는 손짓을 기봉을 향해 보내고, 그제야 달려 나가는 기봉.
지나쳐 가는 기봉의 뒷모습을 향해 응원의 소리를 지르는 마을 사람들과 백 이장의 모습.
씬 98. 마라톤 대회/몽타주.
천천히 달려 나가는 많은 수의 참가자들이 하늘에서 보인다.
전광판 시계를 단 차량.
맨 선두 그룹과 함께 힘차게 달리는 기봉.
발걸음이 가볍다.
맨 선두에 서서 이 그룹을 이끄는 독특한 주법의 기봉.
사람들, 이런 마라톤 주법이 신기한 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선두인 기봉을 따라간다.
급수대 앞.
정오의 태양이 머리 위에서 내리쬐고, 길게 한 줄로 늘어선 마라토너들.
급수코너를 거치며 물을 마신다.
급수 코너의 물을 한 잔 마시고 힘껏 달리는 기봉.
몇몇 그룹과 같이 5km 지점 표지판을 통과하는 기봉.
여전히 선두에서 달리지만, 조금씩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웃는 표정이기는 하지만 조금씩 일그러지는 기봉의 표정, 속력을 낼 수가 없다.
골인지점.
초조한 듯 담배를 꺼내 피워 무는 백 이장의 모습과 동네 사람들.
반환점/10km.
반환점을 돌아 다시 오던 길을 뛰어가는 선두 그룹.
반환점을 돌면서 선두가 바뀌었다.
기봉은 선두 그룹 후미로 쳐졌다.
속력을 내려고 하지만 따라 잡기가 쉽지 않다.
점점 더 무리들과 멀어지는 기봉.
기봉: (속상한 마음으로) 헉, 헉……. 오……. 옴마…….
이젠 긴 도로 위를 몇몇의 사람들과 뛰는 기봉.
더더욱 발이 무겁다.
골인지점.
담배를 피다가 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백 이장.
백 이장 발아래 땅바닥에 수북한 꽁초들.
급수대 앞.
너무 지쳐 급수대 앞에 서서 물 컵을 쭈욱 들이키자마자, 전부 토해내는 기봉.
가슴을 탕탕 치며 헉헉거리며 앞서 달리는 사람들 뒤꽁무니를 쳐다본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기봉.
그러나 걷는 듯 한 발걸음이 너무 느려 보인다.
또다시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기봉.
그러나 점점 지쳐가는 기봉의 발.
그 위로 점점 거칠어진 기봉의 숨소리가 들린다.
“헉, 헉…….”
골인지점.
추위에 검은 쓰레기봉투를 외투로 만들어 입은 노 이장과 최 이장, 몇몇 사람들.
사람들 속속 골인하고 있다.
그러나 기봉은 보이지 않는다.
백 이장과 동네 사람들, 아니 이젠 참가자들과 행사 진행요원.
초조한 백 이장의 표정과 달리 기대에 찬 참가자들과 진행요원들.
도로 위.
여전히 달리다 서다를 반복하며 때론 가슴을 치며 힘겨워 하는 기봉에게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기봉 모: (소리) 꼴찌는 소용웁써. 일등 가야 헌다.
기봉: (혼잣말) 오, 오, 옴마, 부, 불쌍한 우리 옴마…….
여기서 화면, 화이트가 팍 먹으며, 자신과 엄마의 고단했던 삶의 단편들이 보여 진다.
국어, 산수 100점 맞은 시험지가 보이고 카메라 옆으로 이동하면, 열심히 짜장면을 먹고 있는 어린 기봉.
맞은편 김치를 물에 씻어 주는 기봉 모.
전기가 안 들어오는 듯, 남포불 아래 심하게 열병을 앓고 있는, 어린 기봉의 머리를 감싸 쥐며 울고 있는 젊은 기봉 모.
주위에 누나와 여동생이 보인다.
열병을 앓은 후, 살짝 맛탱이 간 어린 기봉을 안고 시장 좌판에서 나물을 파는 기봉 모.
무릎을 꿇은 채 걸레질을 하며 방바닥을 닦고 있는 기봉 모 등 위에 말 타듯 올라타서, 헤~ 거리는 어린 기봉.
대학생 나이로 보이는 누나와 여동생이 기봉 모 몰래 장롱을 열고 돈을 훔쳐 가방 들고 도망치는 모습을, 기둥 뒤에서 숨어 지켜보며 아무 말도 않고 돌아서는 기봉 모.
이런 기봉 모를 지켜보는 고등학생 나이의 기봉.
이젠 젓가락질이 불편해 입가에 짜장을 묻히며 어렵게 먹는 성인 기봉에게 자신의 면을 덜어주는 기봉 모.
화면, 화이트가 팍 먹으며, 현실로 돌아오면, 고개를 가로 젓는 기봉.
다시 웃는 듯 우는 듯 달리기 시작하는 기봉.
기다리다 지친 참가자들도 하나 둘 돌아가고, 이젠 행사진행 요원 한 둘과 백 이장, 그리고 동네 사람들.
백 이장 안 되겠다 싶어, 주변에 있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기봉에게로 달려간다.
이젠 정신조차 흐릿한 기봉.
겨울 밤 찬바람 역시 기봉의 셔츠 안을 후벼 파고, 길 가의 행인들, 기봉을 힐끔거리며 웃는다.
여전히 걷는 듯, 달리는 기봉의 일그러진 표정.
저 멀리서 무엇인가 달려오는 듯 하다.
백 이장,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다가 저 멀리 고독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기봉이 시야에 들어오자, 백 이장의 시야가 흐려지며 눈가가 젖는다.
드디어 만난 두 사람…….
백 이장: (기봉 옆으로 붙어서) 기봉아. 그만혀. 인제……. 됐구먼. 충분허다.
그런 백 이장을 보며 히 웃으며 여전히 달리고 있는 기봉.
백 이장: (소리 지르며) 그만혀! 인제……. 기봉아. 멈추라니께?
기봉: (말없이 앞만 보고 걷는 듯 달리는 듯) …….
백 이장: 넌 내가 스라면 스고 달리라면 달리라는 말 잊었냐? 그만 인제 서두 된다니께……. 지발…….
그래도 달리는 기봉.
그제야 자신이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백 이장.
백 이장: (눈물을 글썽이며 혼잣말로) 그려. 달려라. 달려……. 기봉아…….
골인지점에 초조하게 모여 있는 사람들.
저 멀리서 누군가 걷는 듯 들어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로 누군가가 타고 오는 자전거가 보인다.
사람들 목을 쭉 빼고 눈을 가늘게 떠서 확인해 보면, 기봉과 백 이장의 자전거다!
“우와~~~~”
터지는 함성소리와 박수 소리.
눈물을 글썽이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행사 진행 요원.
드디어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기봉의 모습.
뒤이어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기봉에게 달려가는 백 이장.
자신의 외투를 벗어 기봉을 감싸 안은 채 울고 있는 백 이장과 동네 사람들.
백 이장: (울먹이며) 힘들쟈? 힘들쟈? 소감이 어뗘? 또 뛸 수 있겄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기봉을 다시금 안아주는 백 이장.
그렇게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히 하며 웃고 있는 기봉.
씬 99. 다랭이 마을 어귀/오후.
화면 밝아지면, 엄마를 향해 벌써 저 만치 달려가는 기봉과, 뒤로 걸어서 얘기하면서 오는 백 이장과 마을 사람들.
씬 100. 기봉의 집 마당/석양.
개밥을 주고 있는 기봉 모.
그때, 저 멀리서 달려오는 기봉,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뒤에 보인다.
기봉: 오, 옴마……. 나……. 나 왔어.
기봉 모: (나오며) 그려. 조심해서 일등 헌겨? 지쳐서 못 간겨?
기봉: (망설이며) 어…….
기봉 모: 헌겨? 일등 헌겨?
백 이장: (나서며) 했시유, 기봉이 일등 했시유……. 참말루…….
백 이장을 보는 기봉, 백 이장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봉 모: 아이구~ 기봉이 장허다, 일등 했으먼 하나님께 감사헌다. 꼴등 했으먼 소용웁써. (다시 기봉을 보며) 일등 헌겨?
백 이장, 마라톤의 모든 완주자에게 주는 메달을 꺼내 들며.
백 이장: 이거 봐유, 일등 메달…….
기봉 모: (메달을 보면서) 우와……. 이게 일등허먼 주는 메달인감?
백 이장: 기봉아, 엄니한테 걸어 드려라…….
기봉, 쭈삣쭈삣 메달을 엄마 목에 걸자.
기봉 모: (웃으며) 엄마 주는겨? 오늘 너랑 같이 모두 갔는 디 꼴등허먼 기분 나뻐……. (사람들에게) 난 꼴찌 가는 줄 알았는디…….
웃는 이장, 마을 사람들, 기봉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