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은혜의 세계 체험훈련 1.
1/25수(水)마 11:28-30 /눅 9:23-24/골 1:27-28
성도는 은혜에 눈을 떠야 은혜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보다 어둠의 문을 더 많이 열게 되면 어둠의 환경이 들어옵니다. 요나는 인정받은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어둠의 상자를 열게 된 것입니다.
요나의 인생이 요동을 칩니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이 일어나 요나는 바다에 던져집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니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성도는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어둠의 문을 닫고 은혜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보다 인간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때 어둠의 문을 열게 됩니다.
흑암의 세계는 율법과 저주와 심판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사단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율법 자체는 선한 것이지만 율법을 추구하는 신앙은 나쁜 것입니다. 율법은 내가 주체가 되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할 수 없는데 스스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힘이 듭니다.
은혜의 세계는 하나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 사는 것이 축복이고,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은혜는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은혜는 예수입니다. 예수가 강권적으로 내 인생에 들어오셨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믿을 때 은혜에 눈이 떠지고 체험됩니다. 그분이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100% 주권적 의지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인간은 흑암의 세계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아 죽음을 체험한 후 은혜의 세계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주권의지가 꺾여야 은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은혜의 세계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면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하게 됩니다. 자유 하니 일체의 비결을 깨닫습니다. 은혜의 세계는 창세부터 있었지만 율법에 가려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은혜가 있으면 예수를 위해 자기 목숨도 버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체험하면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게 됩니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8-9)
자아가 죽었다 살아나게 될 때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은혜가 없으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예수를 이용하게 됩니다.
자아(self)의 개념이 중요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거짓 자아’(false self)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진짜 나 인줄 알기 때문에 은혜를 채우지 못합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잘못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부부, 자식, 부모, 이웃과의 관계에서 항상 고립되게 됩니다.
후회한다는 것은 속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알 수 있는가? 마음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은 것입니다. 컴퓨터가 있고,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컴퓨터는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이 컴퓨터의 주인은 아닙니다. 컴퓨터의 주인은 컴퓨터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진짜 나의 주인은? 내 마음은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이 움직이면 하나님의 것, 사단이 움직이면 사단의 것입니다. ‘거짓 나’는 내가 주인이고, 내 뜻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가장 속은 것은 내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절대 주인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혹은 사단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릇은 주인이 아닙니다. 그 안에 무엇이 채워졌느냐에 따라 주인이 바뀝니다. 내 안에 주님으로 채워지면 주님이 주인입니다. 이것이 참 자아의 삶입니다. 내 안에 사단으로 채워지면 사단이 주인입니다. 사단의 지배를 받으면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사는 거짓 자아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예수가 역사할 공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주님이 주인으로 계시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판 것은 거짓 자아에 속았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마음이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거짓 자아에 붙들리게 되면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와 내가 연합될 때 ‘참 자아’로 은혜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마귀와 내가 연합할 때 ‘거짓 자아’로 ‘참 자아’가 ‘거짓 자아’에 밀리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로 주님을 찾으면 ‘거짓 자아’가 ‘참 자아’에 밀리게 됩니다. 날마다 내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 자아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
어떤 은혜를 체험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참 자아의 삶은 안식을 체험하게 됩니다.
참 자아의 삶은 주님이 주인인 삶입니다. 주님과 연합할 때 주님이 일하시므로 쉼을 얻게 됩니다. 환경은 그대로 이지만 마음은 평안합니다. 주님이 주인으로 내 삶을 대신 사시기 때문에 나는 안식할 수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내가 일하고 그 일의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안식할 때 질병이 떠나갑니다. 거짓 자아의 삶은 내가 주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가 지니 삶이 무겁습니다.
은혜의 삶은 자아의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아의식은 내게 있는 못된 성질머리입니다. 그 핵심은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책임감이 큽니다. 자아의식은 그리스도의식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식은 주님이 그 일을 직접 행하셨다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식은 사랑, 용서, 화해, 감사의 삶입니다. 자아의식의 삶은 시기, 원망, 분쟁, 시비의 삶입니다.
은혜의 삶은 헛된 허무의 삶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세월을 돌이켜 보니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살았나? 허무함과 후회가 밀려온다면 잘못 산 인생입니다. 내 삶을 어디에 내 놓을 것이 없다면 거짓에 붙들린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붙들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실체의 삶입니다. 오직 주님만 실체입니다. 세상은 다 그림자입니다. 주님과 연결된 시간만 허무에서 벗어납니다. 세월은 참 빠릅니다. 세상의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은혜의 세계에 들어갈 때 허무를 극복하게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실체라고 느껴진다면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와 떨어진 허상에서 예수를 붙잡으면 실상이 됩니다. 주님만 실체이십니다. 주님과 함께 한 것만 영원히 기록됩니다.
은혜로 살면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게 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란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고 뜻을 묻고 있다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할 때 내 뜻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타인중심의 삶입니다.
은혜로 살면 기도 응답의 확신이 옵니다.
기도 응답은 yes, no, 기다리라의 형태로 옵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필요한 모든 것을 응답하십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응답의 시기가 빨리 오도록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은혜로 살면 천국의 확신이 옵니다.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면 여기에 온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길 되신 주님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육신이 깨어지면 자동적으로 천국으로 옮겨집니다. 은혜를 체험하면 사나 죽으나 하나님 나라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려고 다투지 않아도 됩니다. 육신이 깨어지면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 있습니다ㅣ.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는 길(참 자아를 발견하는 길)-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부인할 때 나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예수가 내 주인이 될 때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이 주인 된 삶이 참 자아의 삶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나의 십자가 틀입니다. 그 환경 속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환경은 나의 자아를 죽이는 곳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를 좇으라 주님은 늘 나보다 앞서 가시는 분입니다. 내게 일을 시키셨다면 나보다 앞서 가시고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일을 시키고 떠나지 않으십니다. 내가 일을 못하고 쓰러지면 주님은 나를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And...
60~70년대 최고의 스타 최 은희씨가 자신의 장례식에 김도향씨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장송곡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미모와 연기력으로 한 시대를 주름 잡았고 많은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북한 최고위원 김정일이 탐내어 납치까지 할 정도인 미모의 여배우가 늙음과 죽음 앞에서 자신의 화려했던 삶이 무색할 정도로 비참하게 경기도 한 요양병원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떠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입양해서 키워준 자식들도 함께 사는 것을 거부하고 양로원에 맡겼다고 합니다. 참으로 허무한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예수가 없는 인생은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그 마지막은 비참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둠에 속아 영생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준비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 거짓자아에 속은 삶입니다.
미국 보스턴 고든 칼리지 음대에 26세의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이은혜 교수의 간증입니다. “저는 개척교회 목사의 딸로 교회에서 반주자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음감을 주셔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서 가난한 집 아이라고 친구들에게 완전히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왕따를 주도해서 학교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에 아버지가 미국 LA선교교회에서 사역하시게 되어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가서 온가족이 교회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큰 쇳덩어리가 날아와서 대형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척추골절상을 입고, 저는 갈비뼈를 다쳐서 숨쉬기가 힘든 상태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더욱이 가해자를 찾지 못해서 치료비를 다 물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쳐서 사역을 못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 가족들은 주님을 바라보며 부르짖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셔서 음악 콩쿠르 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승을 했습니다. 무려 10번을 우승하고 받은 상금으로 모든 교통사고 치료비를 다 갚았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많은 대학에서 입학 허가가 나왔는데, 아버지 사역을 돕기 위해서 LA의 UCLA를 선택했습니다. 수석 입학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피아노와 작곡을 복수전공해서 3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존스 홉킨스 피바디 음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이스트만 음대에서 전액 장학금으로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하려면 신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고든 코넬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고든 칼리지에서 음악 강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1년 만에 음대교수 공채에서 뽑혔습니다. 음대 교수직은 워낙 채용이 적어서 저 같은 어린 나이에 채용되는 일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게 해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채용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수없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저를 세속에 물들지 않고 믿음의 훈련시키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기도하면 살 길을 열어주시고, 지켜주시고, 갑절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라는 두터운 포장지는 행복을 견고하게 포장하고 있습니다. 고난 만 보고 있으면 그 속에 감추어져있는 행복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세월을 이겨낸 후에 뒤돌아보니 그 고난이 웃고 있습니다. 예수가 주인 된 삶의 나중은 축복입니다.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입니다. 날마다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여 우리 모두 주님을 나타내는 멋진 그릇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