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이치다 / 조미숙
길을 나섰다. 같은 시간대에 얼마 전까지 환하던 거리가 어둑어둑하다.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찬바람이 마냥 기쁘다. 가벼운 옷이라도 하나 더 걸치고 나올 걸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본다. 공원에는 저녁의 여유로움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원 한쪽에는 이미 운동이 한창이다. 목포시장기 체조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다. 평소보다 좀 이른 시간에 나갔는데 연습 때문에 본 수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대회에 참여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고 또 강사의 처지가 십분 이해가 되기도 해 잠자코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적당히 했으면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해서 수업하기를 바랐는데 20여분이 더 지체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글쓰기 수업이나 들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코로나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공원에서 하는 생활체육 운동을 하러 다녔다. 라인댄스나 에어로빅으로 신나게 춤을 추다 보면 살도 빠지고 스트레스도 풀려 여러 모로 즐거웠다. 하지만 코로나로 몇 년을 쉬면서 한때 유행하던 확찐자가 되다 보니 운동이 절실했다. 예전 그곳은 근처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와 아예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근처 공원으로 나가 보기로 용기를 냈다. 처음에는 영 어색했다. 이미 판이 짜인 느낌이랄까 왠지 초대받지 않은 사람처럼 쭈볏쭈볏하고 불편했다. 개방된 곳이라 누구하나 관심 보이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랬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 몇하고는 인사를 하며 지낸다.
다행히도 몇몇 곡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목포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사들은 아마도 새로운 곡의 안무를 같이 익혀서 가르치고 있나 보다. 쉬운 동작으로 이루어진 곡은 금방 따라가기도 하고 조금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곡은 지금도 잘 못한다. 유난히 남들보다 습득하는 속도가 느리다.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들도 새로운 곡을 금방 익혀서 잘 하는데 난 정말 늦다. 그런데다 전주만 듣고는 무슨 노래인지 몰라 다른 동작을 하다가 한 마디가 지나가면 그때서야 생각나는 것들이 많았다.
그들의 체력도 정말 부럽다. 젊은 사람들도 가끔 중간중간 밖으로 나가 쉬다 들어오는데 제일 앞줄 회장을 비롯한 그 주위의 지정석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들은 한 번도 쉬지를 않는다. 난 한 곡을 끝내면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두 손을 허벅지에 얹고 고개를 숙이며 가쁜 숨을 토해낸다. 그대로 주저앉고 싶다.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넘기도 바쁜데 곧바로 다음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끔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난다. 그래도 악착같이 따라한다.
요 며칠 계속해서 운동을 쉬었다. 날씨와 개인 사정으로 빠지다 보니 5일이나 되었다. 모레에 또 일이 있고 그 다음은 추석 연휴이니 오늘 불참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하필 글쓰기 첫 시간부터 빠져야 할 것 같아 하루종일 고민했다. 핑계를 대자면 몇 년 듣다 보니 풍월을 읊을 경지까지 된 마당에 굳이 수업을 들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는 유혹이 앞섰다. 다만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아는데 글을 쓸 때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탈이지만 말이다. 9시 전에 집에 오니 늦게라도 들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나왔는데 일이 뜻대로 안 되니 괜한 짓을 했다고 더 화가 치밀었다.
운동은 늦게 시작했는데 거의 제 시간에 끝났다. 잠시 일었던 짜증도 사라지고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은 오늘도 열심히 운동한 값을 보여주는 것 같아 뿌듯했다. 집에 오니 좋아하는 프로야구가 팽팽한 경기로 재미를 더해 가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옷 때문에 소파에 엉덩이만 간신히 걸친 채 두 눈과 귀는 텔레비전에 꽂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오늘은 땡땡이다.
모처럼 전 학기에는 개근했다. 나는 글 쓰는 여자라고 자랑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글쓰기 수업 첫날부터 땡땡이라니 완전 빛 좋은 개살구다. 그동안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이야기들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다. 글쓰기 실력도 정체되어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어쩌나! 땡땡이 유혹은 앞으로도 쭈욱 계속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역시 난 모범생은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첫댓글 하하. 개강 날 땡땡이쳐서 안보였군요? 분명히 수강생에는 있었는데 궁금했어요.
저도 안 보이시길래 궁금했답니다. 이번 학기도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문우님 글은 읽는 재미가 있어요. 풀어내는 감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근처에서도 하는데 몸 쓰는 건 꽝이라 눈으로 보기만 했어요. 땀 흘릴 정도라니 음악도 듣고 운동도 되고 재미있겠네요.
선생님 멋지십니다!!
글을 재치있게 잘 쓰셨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하. 그래서 안 보이셨군요.
궁금했습니다.
순천 동천이나 호수공원을 돌다 보면 에어로빅하는 곳이 있습니다.
몸치인 저는 그냥 보기만 해도 신나고 즐겁더라고요.
그런 취미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워지네요.
언제 한 번 시범? 하하하하.
며칠 전 저녁 오랫만에 집 가까운 공원에 나갔어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여남은 명의 여인네를 부러워하며 한참을 바라보다 왔어요. '나도 한번 해 볼까, 아니야 못 할 것 같아.' 이러면서요. 선생님, 저 개인 지도 좀 해 주실래요?
선생님 저도 티비에서 중국 어르신들이 아침에 공원에 나와서 함께 체조하는 걸 보았어요. 너무 재밌고 좋을 것 같았어요. 저도 음치, 몸치, 박치이긴 하지만 가서 재밌게 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보면 너무 신날 것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