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18ㅡ
다시 안도 다다오 (건축여행1) (사소)
9년 전, 미술관 함께 가는 카페에서 만난 조네를 따라 안도 다다오 건축 여행을 갔던 기억이 간혹 났다. 조네는 일본에서 유학하다 본인을 위로하기 위해 미술관에 자주 갔다고 했고 그러다가 가이드가 되었다 했다. 그녀는 혈액암을 갖 극복한 후였고, 나는 점이라도 찾아 뚫어 문을 만들고 싶었던 시절, 매주 화요일 미술관 여행으로 탈출을 감행 했었고 조네와 나는 서로를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미술관에 갈 때 마다 늘 작품 감상도 좋았지만 공간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엔 미술관이 그 대상이었다. 부암동 김종영 미술관, 과천 현대 미술관 , 양구 박수근 미술관 장욱진 미술관 등 화요일이면 늘 어느 미술관에서 그림자 찾기를 했고 그래서 ' 화요사소' 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강원도에 있는 '뮤지엄 산' 을 방문했을 때는 건축물이 바람과 하늘과 소리 . 물과 고요히 조응하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미술관 전체가 안도의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평전을 읽고 다른 건축가 건축물도 책으로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국내 건축물을 혼자 답사 다니면서 그 동네에가서 몇 시간이고 놀고 오곤했다. 점점 문과 졸업생으로서 건축대학원에 들어갈 방법을 찾으며 생각을 굳혀가고 있었다. 그때 조네는 순전히 한 개인을 위해 숙박비와 비행기 값 등 체류비용 외에 한 푼도 더 받지 않고 5박 6일 일본 다다오 건축 여행을 기획해주고 기꺼이 함께 해줬다.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건물은 '스미요시 나가야'였다. 그의 출세 작이면서 폭이 4미터도 안 되는 오늘날 협소 주택의 모델로 짐작되고 중정 공간이랑 방을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눈 비 맞는 그 주택의 느낌을 꼭 눈으로 보고 알고 싶었다. 하지만 소재지에 대한 정보만 있을 뿐 정확한 주소를 알 수 없었고 조네가 다다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개인 주택이기에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했다. 나는 조네에게 동네가 있는 전철역만이라도 알아내 달라고 했다. 역에 내려 가까운 부동산에라도 들어가 사정을 말하면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축가의 주택을 보겠다고 하는데 안 알려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예측은 적중했다. 여름 낮, 파리를 쫓던 일본인 할아버지는 알려주는 건 일도 아니라며 앞장서 골목까지 직접 데려다주셨다. 그 집을 시작으로 버스와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그의 작품을 만났다.
스미요시 나가야는 비록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팔을 벌려 재거나 걸음으로 너비를 가늠해보고 벽의 질감을 만지기도 하며 한나절을 동네 골목을 오며 가며 머물렀다. 이후 빛의 교회. 혼 푸쿠지. 베넷세 하우스 등 오사카 일대와 고베. 효고현. 나오시마 가고시마 등 세토우치 축제도 참여하면서 세계 예술 작품도 직관하며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몇 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방향을 다시 잡기 위해, 지지난주 제주로 건축여행을 갔다. 따스하게 익어가는 가을 공기와 햇살 아래 본태박물관 글라스하우스 등 안도 다다오 작품을 만났다. 이타미 준이 설계한 방주교회. 홍재승 건축가의 김창열 미술관. 추사 유배지를 경유해 주로 서귀포 서에서 동으로 움직였는데 그중 '유민 미술관'은 특별한 감응으로 남는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 소재는 빛. 공기. 바람. 물. 노출 콘크리이트이다. 사유. 명상 등의 공간으로 알려진 그의 건축 방식은 세기를 흔들 만큼 독특했다. 국내에서도 파주 예술인 마을 입주민 모두에게 노출 콘크리트를 쓸 것이라는 조건을 내세울 정도로 그 반응도 강인하고 열렬했다.
청년시절 복서이자 트럭 운전수였던 안도 다다오는 육체와 정신의 싸움을 하며 순간의 판단력과 극한의 결정력을 단련시킬 수 있었다. 9년전 본 책에서 그는, 신체에 활력을 주고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시키기 위해 50년간 스트레칭부터 잇몸 운동, 시력 운동, 복근 운동 등을 지속해 왔다고 했는데, 몇 달 전 EBS '위대한 수업'에서 만난 그 모습은 이후에도 그랬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이 결국 힘' 이란 그의 철학에 동의하면서도 지금, 무텨진 나를 벼리기 위한 시간이 앞에 놓여 있음을 느낀다.
그는 청년시절 헌 책방에서 우연히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 도면을 본 후 건축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안도가 끔찍이 사랑한 개 이름은 '코르 뷔' ) 그는 건축 학교를 가는 대신 모스크바, 핀란드, 마르세이유를 거쳐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는 긴 여정에서, 길 위에서 건축을 배웠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집 하나 지어주겠다는 작은 희망으로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건축은 배고픈 직업이고 정착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충고를 들었다. 수업을 한 학기도 듣지 못하고 결국 심한 워커 홀릭으로 살았던 이유이다. 매년 특별 휴학을 허용하는 교수님들께 도장을 받아가며 생업에 열중했고 급기야 정학을 당하면서도 늘 꿈꿨다.
어느 날 새벽 공기를 뚫고 롱샹 성당에 도착해서 아침 햇살이 드는 모습을 꼭 보리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도착한 설원에서 일출 보고, 갠지스강가에서 일몰을, 보는 게 아니라 안도의 말처럼 '체험하며' 길 위에서 건축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하는 사이 찾아본 국내 건축에서 안도를 흉내 낸 건축물을 마주하노라면 '건축가의 혼'을 느낄 수 없었고 은근히 맥이 풀리기도 했다.
'안도 다다오를 극복하는 건축물을 내 생에는 볼 수 없는 걸까?'
안도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그럴 때면 필생의 과제처럼 예상치 않은 예감이 스치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 유민 미술관에서 느낀 감응은 시효는 있을 테지만 안도 다다에 대한 회심의 기회가 될 것 같다.
제주의 하늘 아래 벽과 담 사이에 물. 바람. 빛. 소리를 낮게 담은 유민 미술관.
섬세하고 강하고, 돌아서고 머물게 하는 벽과 담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을 기회가 되면 쓰고 싶다.
첫댓글 안도 다다오 류의 건축물들이 많아진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
건축이란 하늘에 그리는 조각이란 생각이 들어요. 심미적인 측면에서도 인간의 정서나 감응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9년전... 첫 문장에서 주어와 동사 찾아가다 길을 잃었어요.
ㅎ쪼매 길죠? ㅎ 다시 해볼게요.
다시 수정했어요. 글을 쓸 때 뭔가 막힌 기분이어서 글이 잘 안써졌는데 풀어놓으니 조금은 편해졌네요. 감사합니다. ^^
사소님은 정말 융복합적 사고의 소유자이신 것 같습니다^^
특히 문학과 건축의 조합이라니 너무 멋져요!
언젠가 건축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특강한 적이 있는데, 그 때 archtect가 조물주로도 번역이 된다는 것, 즉
건축가는 일종의 우주의 창조자와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새삼 느낀 적이 있었어요.
ㅎ 우주의 창조자 ! 아! 좋습니다. ㅎ 언젠가는 모두가 스러져갈 일이지만 모래사장에 모래집 짓듯 머리 속에서 지었다가 부쉈다가 해보는 일은 심심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요. 제가 아쉽게도 공간 지각력이 아주 꽝! 이랍니다. 미로찾기에 참여하면 분명 갖히고 말거예요. ㅎ 골짜기 백합님께서는 건축학과 대학원생들에게 어떤 주제로 특강을 하셨을까요? 분명 사유의 근거를 주시는 내용이었을 것 같이요. 거시적 미시적 다차원의 인간 존재에 대한 접근과 인간 정의에 대한 골짜기 백합님 글이 매우 흥미로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