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 책방마을의 세시풍속
책방마을은 예전에 달동네라 했는데, 참 인심이 좋았다
이00(72세) 2020.6.1.
세월은 참 무던히도 간다. 발한도서관 앞을 지나 해군산을 넘어가던 이00(72세) 씨가 힘든 발걸음을 옮기다가 잠시 쉬었다. 길가로 난 나무 밑에는 마침 나무판자를 깔아놓은 길이었다. 그늘이 좋고 날도 따뜻해서 앉아 쉬기가 맞춤이었다. 늦봄까지 활짝 피었던 꽃들이 지고, 어느 덧 나뭇잎이 무성해졌다. 그 옛날 동네의 풍경을 떠올렸다. 이젠 꿈만 같은 그 시절 그 풍경이 이00 씨의 기억에서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월 보름이면 집집이 다니면서 밥 얻어먹곤 했지.”
오곡밥을 얻어먹고 다니던 풍속이었다. 이때는 모두 각설이 분장을 했다. 남자들이 여자처럼 분장을 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배를 불룩하게 꾸몄다. 아기엄마 분장이었다. 그렇게 마을을 다니면서 깡통을 두드리며 각설이타령을 불렀다. 오곡밥을 얻어서 같이 먹으며 그날 밤 같이 놓았다. 책방마을은 예전에 달동네라 했는데, 참 인심이 좋았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다녀도 아무 탈이 없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오늘은 어느 집 가서 점심해 먹자 그러면서 함께 살았다. 그런 시절이라 밥을 얻어먹고 노는 풍속이 있어서 집집이 밥을 듬뿍 줬다.
“쌀 있고 연탄 있으면 부자였어요.”
인심 좋은 동네라 아이들도 같이 잘 놀았다. 대보름이 되면 아이들이 해군산 위에 올라 망우리를 돌렸다. 깡통에 숯과 나뭇조각을 넣어 달처럼 둥글게 돌리면서 놀았다. 훨훨~. 정말 신나는 놀이였다.
“여긴 귀신날은 뭐 안 했던 거 같아요.”
귀신날은 정월 16일이다. 다른 지방에 가면, 이날은 일 년 동안 모아둔 머리카락을 태우든가, 엄나무를 처마에 걸면서 액막이를 했다. 신발을 집안에 들여놓고 체를 바깥에 걸어놓는 풍속이 있었다. 그런데 동호동에서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단오놀이는 강릉 남대천으로 갔어요. 여긴 따로 안 했어요.”
단오가 되면 다들 남대천으로 단오놀이를 갔다. 열차와 버스가 모두 빽빽하게 사람들로 붐볐다. 단오는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었다.
“안택고사는 지내는 사람만 지내요.”
가을이나 봄철에 주로 하는 가정의 의식 중 하나다. 집안에 아무 탈 없기를 바라면서 고사를 지냈는데, 안택고사(安宅告祀)라 한다. 동호동과 발한동에서는 지내는 사람은 지내고, 안 지내는 사람은 안 지냈다.
“동지는 팥죽을 쑤었지요.”
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는 풍속은 오래되었다. 팥죽도 노동지나 중동지에는 쑤어 먹었으나 애동지에는 쑤지 않았다. 동지가 지나면 일 년이 간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빨리 세월이 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지 않는 이유다. 팥죽을 쑤면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시어머니는 양밥 한다면서 집안 곳곳에 뿌리기도 했다. 귀신이 붉은 팥죽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00 씨는 옛날 덕장하고 집집이 음식 나눠 먹던 때가 참 좋았다고 했다.
“없이 살아도 그때가 행복했던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