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폭포>
월이산 자락의 봉우리 꼭대기에서 아래로 직하하는 폭포가 주상절리같은 산세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요즘 가물었던가. 물이 줄어 물줄기도 가늘어졌고, 아래 소도 얕아져 위세가 줄었다. 그래도 어디선가 박연이 부는 피리소리는 들리는 듯하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폭포도 좋고, 물줄기를 품고 있는 절벽도 좋아 예술가들이 탐할 만하다. 인근의 난계 기념지를 함께 둘러보면 더 좋다.
1. 방문지대강
명칭 : 옥계폭포
위치 :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산 75-1
입장료 : 없음
방문일 : 2024.8.13.
2. 둘러보기
2-1 소개
박연폭포라고도 불리는 옥계폭포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무려 20여 미터에 이르며 수려한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예부터 난계 박연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이 모여 옥계폭포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글을 많이 남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악의 거성 난계가 즐겨 찾았고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옥계폭포는 영동군 심천면 옥계리로 진입하여 천모산 골짜기로 들어서서 산길을 따라 약 1km 전방에 위치한다. 폭포에서 떨어진 옥수가 천모산 계곡을 따라 흐르다 잠시 머무는 산중(山中) 저수지의 풍경과 뒤이어 나타나는 오솔길은 쾌적함을 느끼게 해 준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2-2 박연 소개
박연(朴堧)은 1378년(고려 우왕 4년) 8월 20일 충북 영동에서 삼사좌윤 박천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 어린 시절의 이름은 연(然), 자는 탄부(坦夫), 호는 난계(蘭溪)이다. 어머니는 경주 김씨로 통례문부사 김오의 딸이었는데, 박연이 11세 때인 1388년에 사망했다. 부인은 여산 송씨로 판서를 지낸 송빈의 딸이다.
박연은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맹우(孟愚)와 둘째 아들 중우(仲愚)는 각각 현령과 군수 등의 지방관을 지냈고, 막내아들 계우(朴季愚)는 집현전 학사로서 아버지와 함께 세종을 보위했다.
어린 시절 영동향교에서 학문을 닦았던 박연은 거문고와 비파 등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는데 특히 피리의 명수로 이름을 날렸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그가 젊은 날 과거 응시를 위해 한양에 갔을 때 장악원의 악사에게 피리 연주를 배운 일화가 실려 있다.
당시 그의 연주를 들은 악사는 “소리와 가락이 상스럽고 절주(節奏)에 맞지 않다. 옛 버릇이 굳어져 고치기가 어렵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박연은 좌절하지 않고 그의 문하에서 열심히 수련한 끝에 “규범이 이루어졌으니 장차 대성할 수 있겠다.”라는 호평을 듣기에 이르렀다.
박연은 1405년(태종 5년) 생원시에 급제했고, 6년 후인 1411년(태종 11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34세의 나이로 관직에 진출했다. 그때부터 박연은 집현전 교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등 청요직을 두루 거치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태종 말년에 그는 세자시강원 문학 직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역량을 알아주는 주군을 만났다. 당시 세자 이제가 낙마하면서 그 자리를 물려받은 충녕대군 이도가 그의 음악적 재능에 호기심을 보였던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2-3.
옥계폭포는 난계 박연(朴堧·1378~1458) 선생이 낙향해 피리를 자주 불던 곳이라 하여 일명 '박연폭포'로도 불린다. 박연의 호 蘭溪도 이곳에 와서 피리를 자주 불다가 발견한 난초와 옥계의 계를 합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문고 비파 등에도 뛰어났고, 특히 피리를 잘 불었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악성으로 불린다. 3인중 가장 가까운 시기의 인물이고 제도권 안에서 활동하여 그의 생애와 치적이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세종에게 중용되어 종묘제례악을 완성하였다. 종묘 제례악(宗廟祭禮樂)은 조선왕조 역대 임금 및 왕후의 신위(神位)를 모신 종묘에서 올리는 제사인 종묘제례(宗廟祭禮) 때 사용하는 기악·노래·무용의 총칭이다. 귀명창인 세종의 천부적인 음악적 기량은 박연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중책을 맡겨 국가의 음악적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옥계폭포는 2001년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로 지정되었다. 인근 심천면 고당리에 세계 최대의 북 '천고(天鼓)'를 비롯해 영동국악체험촌, 난계국악기제작촌, 난계사, 난계국악박물관 등 국악 관련 시설도 들어서 있다.영동 난계사(永同 蘭溪祠)는 박연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이 위치한 밀양박씨 복야공파 문중의 선산(先山) 일대에는 박연을 비롯한 6인의 위패를 봉안한 세덕사, 그의 사촌형인 국당, 박흥생의 묘비, 박연의 묘소, 쌍효각 등이 있다.
2) 세덕사
사당이 위치한 밀양박씨 복야공파 문중의 선산(先山) 일대에는 박연을 비롯한 6인의 위패를 봉안한 세덕사, 그의 사촌형인 국당, 박흥생의 묘비, 박연의 묘소, 쌍효각 등이 있다. 세덕사 소개를 보니 13위를 모신 것으로 되어 있다.
세덕사
박연 동상
영동 난계사
(永同 蘭溪祠)
조선 전기 문신이자 악성인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세종을 도와 음악을 정비하는 데 많은 공을 세운 박연은 악률에 정통하여 세종 7년(1425) 아악의 율조와 악기의 그림, 악보를 같이 실은 <악서>를 편찬하였고, 1427에는 편경 12매를 만들어 자작한 12 율관을 따라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다. 사당 일대에는 박연을 비롯한 6인의 위패를 봉안한 세덕사와 박연의 묘소, 그의 사촌형인 국당 박흥생(朴興生)의 묘비, 쌍효각(雙孝閣)등이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난계사 蘭溪祠’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다. 난계의 동상과 비가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당 입구부터 외삼문까지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나무도 많아 휴식하기도 좋다.
난계국악박물관. 마침 방문일이 휴관일이라 전시를 둘러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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