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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가정생활 / 시 68:19-27, 골 3:18-21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우리 교회 성도들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인간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제도가 두가지가 있다. 그것은 가정과 교회이다. 교회와 가정과의 관계를 표현한 말도 있다. ‘축소시켜 놓은 교회가 가정이요, 확대시켜 놓은 가정이 교회이다.’ 그만큼 가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정이 좋은 가정이 될 때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다. 여러분의 가정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교회의 모습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세상을 지으시면서 매일 지으신 세계를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감격해 하셨다. 그러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딱 한가지 있었는데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와를 지어 친히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극단적인 예로 사람은 국가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가정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우리는 가정에서 삶의 출발과 근거지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성도들의 가정을 작은 천국이라고 한다. 천국은 소망이 있고 사랑이 넘친다. 또한 질서가 있다. 이 질서를 잘 지켜야 아름다운 가정을 이룩할 수가 있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가 있다.
우리는 지금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도 벅찬 이런 시대를 살아간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귀중한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해가 수천만 번을 떴다가 졌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떠오르니 얼마나 다행인가?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싫증나고 짜증나는 일이다. 그러나 반복하는 것이 싫다고 그만두면 안된다. 숨을 쉬는 것을 하루에 몇 천번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 일을 평생 반복해서 한다. 숨쉬는 일이 귀찮으니 좀 쉬었다 숨을 쉬자 했다가는 그 시간으로 숨지고 말 것이다.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일수록 공짜구요 변하지를 않는다.
오늘 본문 28절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도리가, 19절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20절은 보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가, 21절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양육에 대한 가르침이 나온다. 먼저 18절을 보면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성경이 전하는 진리입니다.’라고 말하면 ‘아니 목사님,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런 구닥다리같은 말씀을 하세요.여권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했다가는 뺨맞는다구요.’ 사실 그렇다. 결혼식 때 주례사에서 성경에 나오는 말씀대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더니 신부 친구들끼리 하는 소리가 ‘웃기는 목사’라고 ‘요즘에 이런 말이 통할 것 같으냐? 누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살아가는 여자가 있느냐?’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요즘이 이런 세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가정제도는 하나님께서 세상 창조를 마치시고 사람을 만드시자마자 그 자리에서 세우신 제도이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교회를 세우시기 전에 먼저 만드신 제도가 가정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성서적인 가정을 바꿀 수는 없다.
신앙 좋은 아내가 남편에게 반드시 취하여야 할 자세는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입니다.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라고 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을 했다고 그것이 자랑거리도 아니고 칭찬거리도 아니다. 마땅한 일을 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벧전 3:5절에 보면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가 가장 잘 단장하는 것은 얼굴에 분을 바르고 비싼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귀걸이 목걸이를 하고 머리를 지지고 볶는 일이 아니라 그것도 조금은 해야겠지만,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으로 단장하라고 권하고 있다.
19절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이 말씀은 적극적으로는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고, 소극적으로는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편들이 아내에 대한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에베소서에서는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명하고 있다.
6세기경에 페르시아에 큐로스라는 왕이 있었다. 전쟁에서 적군의 가족을 포로로 사로잡아 왔다. 왕은 포로로 잡혀온 장군에게 물었다. ‘만일 내가 너를 풀어준다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는가?’ ‘내 재산의 절반을 주겠소.’ ‘그렇다면 너의 자식을 풀어준다면 무엇을 주겠느냐?’ ‘나머지 내 재산의 절반을 모두 주겠소.’ ‘그래, 그렇다면 장군의 아내를 풀어준다면 무엇을 내게 주겠소?’ 이때 이미 자신과 아들을 위해 줄 것을 다 주겠다고 말해버린 남편이 더 내놓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장군의 아내는 참으로 야심하다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장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내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윽고 대답하기를 ‘내 목숨을 내 놓겠소.’ 가정과 아내 사랑에 감동한 왕은 장군의 가족을 모두 살려서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남편들은 아내를 무조건 지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의 사전에 보면 ‘처’는 아내를 말하고, ‘아내’라는 말은 ‘안해 - 안에 있는 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집에 있는 태양이라는 뜻이다. 가정의 부인은 그 가정의 태양이다. 들판에 자라는 모든 식물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자라는가? 온 가족들이 어머니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마찬가지로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태양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태양은 빛이 없어지고, 그 가정에 어둠이 깃들게 된다. 문제가 생긴다. 아내를 태양처럼 바라보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 3장에서 남편들이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소홀히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남편들의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처럼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안들어 주신다고 생각해 보라. 그 믿음은 모두 헛것이 된다. 남편들이 자기의 아내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아내의 마음에 괴로움을 끼치면 그가 아무리 교회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그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아내를 사랑할 때, 곧 남자들이 아내를 사랑할 때 좀더 깊이 있게, 또 인내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20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조지 워싱턴은 소년 시절 뱃사람으로 일생을 살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갔다. 그러나 떠나겠다는 아들을 붙잡고 옷자락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는 뜻을 돌이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어머니를 슬프게 하면서까지 이룰 꿈은 없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기특한 마음을 보고 ‘성경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네게 축복을 주실 것이다’ 하며 축복하였다고 한다. 그는 성경의 말씀대로 복을 받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후일에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그의 어머니의 철저한 성경적인 가르침과 어머니의 말씀을 순종한 아들의 효성이 어우러져 그를 대통령 감으로 만든 것이라고 미국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부모를 효도한 자식이 망하는 법이 없다. 훌륭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효자였다는 사실이다.
전국의 도시에 효자동이 있는 곳이 더러 있다. 전주에도 남쪽에 효자동이 있다. 왜 효자동이라고 불렀는지 그 유래가 있다. 한 집에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너무 귀여워해서 자기가 데리고 잤다. 어느 날 저녁에 할아버지가 어린 아기를 데리고 잠을 자다가 어떻게 몸부림을 쳤는데 이불 속에 있는 아기가 그냥 눌려 질식해서 죽고 말았다. 그 집 며느리인 아기 엄마가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들어가보니까 시아버님은 코를 골고 있고, 자기 아기는 숨이 막혀 죽어 있었다. 그래서 며느리는 혹시 시아버지가 깰까 싶어서 그 죽은 아기를 살며시 데리고 나와서, 혹시 시아버지가 자기로 인해 아기가 깔려 죽은 것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아니할까, 마음에 괴로움을 갖지 아니할까, 걱정하지 아니할까 염려가 되어 자기 남편에개 와서 자초지종을 조용조용히 말했다. 남편도 아내의 말을 듣고 혹시 죽은 아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 상하지 아니할까 하는 걱정으로 불끈 화를 내면서 죽은 아기의 볼기짝을 때렸다. 그러면서 ‘이 불효자식아, 왜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했어?’하고 소리를 쳤는데 이 죽은 아기가 놀라서 깨어났다. 이 이야기는 주변으로 퍼져 결국 원님에게 알려졌다. 그리고 ‘효자가 사는 동네다’ 해서 효자동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부모님에게 효도할 때에 근심을 끼치지 않도록 효도해야 한다.
자식들은 자기의 보모에게 효도를 하려고 하고, 또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조금 잘못해도 감싸주고 또 잘 보려고 노력을 한다. 그런데 제일 어려운 관계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이다. 어떻게 보면 제일 가까이 지내면서도 마음으로는 거리감을 느끼는 관계이다. 이런 관계는 우리나라 뿐아니라 서양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에덴동산이 왜 그렇게 좋은 줄 알아? 에덴동산이 왜 낙원인지 알아? 이유가 있지. 그곳에는 시어머니가 없기 때문이지.’ 시어머니가 없기 때문에 에덴동산이 낙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에 충분한 대화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효도는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다. 부모님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고 흐뭇함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 돈 갖다 줄 때보다 자주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눌 때이다. 그리고 더 큰 효도는 부모님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다.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구원의 사역을 담당해야 한다. 천국의 주인공이 되게 해야 한다. 이런 자녀들이 되기를 바란다.
21절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엡 6:4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본문에 보니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다. 자녀들이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아니하고 윽박지를 때에 자녀들은 몹시 화가 나게 된다. 한 인격체로 영접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귀한 선물인줄 알아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귀한 자녀들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받아들이다가 버릇을 키워 안하무인의 사람으로 만들어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너무 엄격하게 다루거나 낙심하게 하여 열등감을 심어주어서도 안된다. 어린아이들을 바로 양육하는데는 무엇보다 그들에게 성경문화를 심어주는 것이다. 거기서 바른 인생관을 터득하게 하며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들은 주의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 또한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삶에서 좋은 본을 보여야 한다; 가장 좋은 본은 의도적으로 잘하려고 하지 말고 부모 스스로가 절도 있는 삶을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
우리 가족이 부모의 도리를 제대로 하고, 자식의 도리를 제대로 하고, 남편의 도리를 제대로 하고, 아내의 도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이런 역할이 믿음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바로 그곳이 천국이지 않겠나? 가정은 사랑과 기쁨, 행복의 보금자리이다. 또한 하늘 나라의 시민을 만들어 내는 가정학교이다. 존경과 애정으로 화목한 가정을 세우며, 부모 공경으로 복의 사람이 되고,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쳐 믿음의 가문을 일으켜야 하고, 오손도손 가정예배를 통해 가정행복을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어둔 세상에 소망을 나누며 가정천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가정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을 마음에 꼭 새겨 복된 가정, 작은 천국을 이루어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