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은 모두가 욕이 될 판
정진명(시인)
네이버국어사전을 보면 큰일이라는생각이듭니다. 순우리말에는거의다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토가달렸습니다. <절름발이>를 쳐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절름발이
[명사]
1.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치거나 하여 걷거나 뛸 때에 몸이 한쪽으로 자꾸 거볍게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발 달린 물건의 한쪽 발이 온전하지 못한 것.
3. 사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조화가 되지 아니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보십시오.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분명히 적었죠. <절름발이>가왜낮춤말일까요? 그러면한쪽발을절며가는사람을 뭐라고불러야할까요? 어이없습니다. 절름발이를절름발이라고하면 욕이된다는뜻입니다. 국어사전이버젓이 이런설명을해놓았습니다. 그러면서그밑에는 엉뚱한설명을해놓았습니다.
절름발이왕 (절름발이尢)
[명사] 한자 부수의 하나. ‘尤’, ‘就’ 따위에 쓰인 ‘尢(兀, 尣)’을 이른다.
<尢>의이름이 <절름발이>라는것입니다. 그러면尢를무시하는말아닌가요? 尢를낮잡아이르는건가요? 참이상합니다. 도대체왜이러는지모르겠습니다. 더어이없는건다음입니다.
합죽이
[명사] 이가 빠져서 입과 볼이 움푹 들어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합죽이라는말은 아주많이쓰이는말입니다. 그런데이게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것은 오늘처음에야알았습니다. 이런식이면 순우리말은모조리 낮춤말이될판입니다. 이를어찌하면좋을까요? 낮잡아이르는말이라면 어떻게든그것을안쓰려고할것이고 결국은한자말이나영어로 갈아치우는과정만남을것입니다.
곰보
[명사] 얼굴이 얽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곰보가<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것도 저는오늘처음알았습니다. 그러면<낮잡아 이르지>않으려면 <곰보>를 뭐라고해야할까요? 영어라도써드릴까요? 아니면한자말로써드릴까요? 이효석의소설 <메밀꽃필무렵>에나오는 <얽음뱅이>라는 말은 어떨까요? 사전을보니이렇습니다.
얼금뱅이
[명사] 얼굴이 얼금얼금 얽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여기도<낮잡아이르는말>입니다. 난장이도꺽다리도 <낮잡아이르는말>이거나 <우습게이르는>말입니다. 이지경이니 우리가써야할 우리말이없습니다. 우리말은다욕입니다.
얼뜨기
[명사] 겁이 많고 어리석으며 다부지지 못하여 어수룩하고 얼빠져 보이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여기에도<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토가붙었네요. 정말그럴까요? 그렇다면실제로얼이빠져보이는사람을 가리켜말할때는 뭐라고해야할까요? <얼뜨기>는낮잡아이르는말이아니라 실제로그런사람을가리키는말입니다. 물론당사자는그런말에대해 좋다고얘기할리는없겠지요. 그러나그것을말하는사람은 그사람이실제로그런특징을보이기때문에 그렇게말하는겁니다. 당사자들이좋아하지않는다고해서 그걸낮잡아이르는말이라고한다면 이세상의모든말은 당사자중심으로붙여야할것입니다. 이게말이나되는겁니까?
벙어리
[명사] 1.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여기도 보십시오. 낮잡아이르는말이라고 분명히 적었지요? <벙어리>를그러면 뭐라고불러야할까요? 이런식이면 그런사람을가리킬 점잖은말이 우리말에는없습니다. 우리말을스스로쓰지못하게막는짓을 국어학자들이이렇게해대고있습니다. 말못하는사람은<벙어리>라고하는게 우리나라사람들의버릇입니다. 그걸낮잡아이르는말이라고한다면 결국우리말은하나도 쓰일곳이없게됩니다. 이게말이됩니까?
귀머거리
[명사] ‘청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여기도예외없이 <낮잡아이르는말>이라는 토가달렸습니다. 우리말은모두<낮잡아이르는말>로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말이그렇게천박한말인가요? 귀가어두워못듣는분들을 수천년전부터우리는 <귀머거리>라고해왔습니다. 이게왜낮잡아부르는말일까요? 앞서본 <언어 장애인>이나<청각장애인>은 근래에만들어쓴말입니다. 근래에만든말을쓴다고해서 그전에있던말을<낮잡아이르는말>이라는건 말이안됩니다. 그러면지난몇천년간 우리는이들을낮잡아불러왔다는말입니까?
만약에이런말들을모조리 <낮잡아 이르는 말>로정의해버리면 앞으로<꾀죄죄하다, 못생겼다, 어리석다>처럼 안좋은뜻이담긴말들은 모두사라질것입니다. 이어리석은놈들을 도대체어찌해야한단말입니까?
[우리말글 나들이]순우리말은 모두가 욕이 될 판 - 충청매일 (ccd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