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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th. Dec.
이상스럽고 괴상망칙한 꿈들이 많다. 눈만 감으면 뭣인가 어른거리고 수많은 글자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무엇을 읽고 있듯이 -.
기분이 얺잖기도 하다. 영국 출항이후부터 선체에 이상한 소리가 가끔 난다. 아무리 조사해도 그 원인과 장소를 모른다. 일정한 시간도, 배의 흔들림과도 관계없이 ‘쿵’하고 한 번씩 울린다. 며칠째 그랬어도 별 이상이 없으니 지장은 없으나 정신적인 부담이 커진다. 여늬 때보다 Draft(흘수)가 깊어진 것 그리고 Hatch안에 좀 많은 양의 화물을 실었다는 것 이외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는데-. 계속 그 시간을 측정해보기로 하다. 슬슬 더워져 온다. 한동안 꺼 두었던 선풍기도 다시 손질하고 침구도 좀 말리고 뭔가 다시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부 Africa연안에 가끔 해적행위가 있다고 엄중히 경계를 촉구하는 전문이 본사로부터 두어 번 있었다. 공동뉴스에도 났었다. 같은 한 건의 사고를 여러 군데서 들은 셈이다. 심지어 총기를 마련하자는 의논도 있었다. 각 곳에 빈병을 모아두는 상자를 마련, 유사시엔 그거나마 갖고 올라오지 못하게 대항토록 조치도 해본다. 스스로 지키는 수뿐이다. 개 값을 면하기 위해서는-. 더구나 입항 때가 X-mas와 연말연시다. 주의뿐이다. ‘Seven Sea'라는 비타민제를 먹기 시작하다. 보낼 수만 있다면 집에도 보내고 싶은데, 기회 있으면 사가도록 하자.
21st. Dec.(수)
밤이 두렵기까지한다. 세상모르고 골아 떨어지던 그 잠! 마누가라가 신경질을 내고 샘을 하던 그 깊숙한 잠이 어디 갔을까? 실내 Painting, 선풍기소제와 색칠 등 새로 정리를 하다. 한결 깨끗해졌고 기분도 맑아진다. 한 여름 사용하던 선풍기를 털어 넣고, 겨울을 위한 석유스토브 손질 등 아내가 손수 했을 것이다. 무척 원망을 보내면서. 정오경 Senegal의 Dakar앞을 지나다. 갑자기 수백마리의 흰 나비떼가 배를 휩싼다. 기이한 현상이기도 하다. 없던 벌레도 슬슬 생긴다. 선내 소독을 3/0에게 지시, 각자의 침실은 각자가 정결히 하도록 했다. 4일째의 안항이다. 더없이 좋은 날씨가 고마울 뿐이다. ‘파우스트’ 읽을수록 아리숭하고 모르겠다. 이게 어쩨 유명하게 됬을까? 차라리 일본소설 비록 3류 작가가 쓴것이지만 ‘熱い風’ ‘乾いた戀’ 가 훨씬 흥미진진하다. 역시 내게는 배삼용의 문자처럼 ‘황금송아지와 마귀할멈’ 같은 고전(?)이 어울리는 모양이다. 문 국장이 1년 더 하자고 슬쩍 의중을 떠 본다.
22nd. Dec.(목)
동짓날이다. 이제 차츰 낮이 길어져 가겠지. 일광욕을 다시 계속하다. 저녁 밤참에 동지팥죽이 아닌 단팥죽이 나왔다. 새알심 대신에 굵직한 국수가락이 젖가락 끝에 매달려 온다. 콩낱만한 팥에다 굵고 작은 수제비 알을 비벼넣어 나이대로 헤며 먹던 그 옛 맛을 되새기기에는 너무나 미흡했지만 모처럼 달콤한 단팟죽이 동지땜을 해준 셈이다. 더위에 따라 시원한 맥주, 음료수가 당겨진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또 마련해 주는 이 여건이 지금은 좋으나 결국 내 자신에게는 하나의 습관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한 번 높아지고 많아진 욕심과 고약한 버릇을 고치기에는 많은 애로가 뒤따라야 함을 안다. 불과 며칠 안 돼지만 전보다 안정된 마음의 상태가 유지되어 간다. 우선 해상이 좋고 이제야 어느 정도 이 배의 운항에 관한 제반 상황이 익숙해져 온 느낌이다. 神德丸가 Sapale항 입항 예정이나 Register Certification Number(등록번호)가 없어 Escravas 앞 해상에서 표박중인데 식수가 부족하다고 타전해오다 20톤 정도 줄 수 없느냐고 -. 역시 같은 토쿠마루 소속이고 지난 8월 중순 대아에서 선원들이 나왔다고 들었으나 실상은 사관급은 일본인이고 하급선원들만 한국사람이라고 한다. 일단 본선의 예정이 대략이나마 밝혀지지 않는 이상 무턱데고 줄 수는 없으나 20여톤 같으면 별 지장은 없으리라. 27일 입항 후 Agent와 연락해보고 대강의 입항 Schedule이라도 알면 다시 연락토록 통신장에게 지시하다.
Sapale가 Wari하고 거의 같은 상황이라면 꽤나 고생들 하겠군. Lagos에 온 후 일본 선장들이 서넛이 나한테 많은 덕을 본 셈이다. Toko maru, Hoko maru 선장 그리고 이 Shintoku Maru 등등이다. 불충분한 영어지만 통역도 해주었고 Life Boat도 급유도 협조했었다. 대부분 늙은 사람들이다 특히 한국사람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으리라, 그러기에 무척 얕보아 온 것만은 사실이지만 여기서야 별수 없지 않은가? 모르고 모자라고 없는 데야 어쩔건가. 내 스스로도 그러한 사실을 일부러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활 수단으로서 일본국적선을 타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또한 같은 Seamen으로서 그 입장을 국적을 초월하여 이해하고 협조를 하는 것이다. 단 게 중에는 먼저 그런 사실을 너무도 강하게 의식해 오는 자들이 있기도 하다. 그런 경우엔 나도 부득이하다. 지난날의 역사적 사실을 잊을 수는 없다. 비록 용납하고 이해를 할 망정-. 신토쿠마루는 같은 선주, 같은 대아의 선원인 이상 우리들 스스로가 절수해서라도 우선은 급한 사정을 들어줘야 한다. 3-4일 더 두고 보자.
24th. Dec.(토)
X-mas eve. 그러나 모든 축복과 환희와 축제의 물결은 오직 땅위에만 있다. 그저 자신의 마음속으로 맞고 보내고 그리고 생각할 뿐인 여기 바다위의 X-mas eve. 그림의 떡이다. 지금쯤 부산의 남포동과 서면의 온 거리는 사람들의 물결로 충만되어 있을 것이다. 27명의 선원들 중 아무리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식당에 색종이가 걸린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요상스럽다. Las 출발시 받은 Spain산 Wine 한 상자. 전 선원에게 나누기는 부족하고 싸롱크라스와 직장들에게 한 병씩을 내렸다. 성탄절과 새해의 인사를 겸해서 -. 저녁엔 그런되로 전 선원을 모아 간단히 맥주라도 한 컵 나누다. 그저 잠시나마 시름을 잊어보자고 한 것이 오히려 더욱 간절한 마음을 갖도록 한 결과가 되어 버린 것도 같다. 모두 정중한 인사말이 되어 되돌아 온다. 한배에서 먹고 자고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만 어느 정도 개인의 Privacy는 존중해야 한다는 내 방침이 주효해간 셈이다. C/O(Chief Office: 1등항해사)는 즉흥시를 답례로 보냈다. 무척 마음에 흡족했고 감동(?)이 컸던가 보다.
‘航者여/시작은 없어도 종말이 있는 길을/여망가지고 항자는 가고 있네
시간위에 세월을 휘날리며/ 억겁의 여로위에 항자는 가고 있네
영원 속에 찰라를 적분하고/무한 속에 소망을 미분하며/항자는 숙명의 술에 취 해 표표히 나부낀다.
사랑하는 마음 천은을 빌어도/가는 세월은 가고 그리움은 남아 있네
이윽고 낭떠러지 깊은 세월의 골짜기에 서면/ 현란한 바램은 노을져 흐르고
애틋한 정 억겁을 헤는 마음 부질없어라
영근일 오롯이 잠재워 두고/창전에 깉은 소망 혼을 날리며/구름처럼 묘연한 길
항자는 가고 있네-.’
오늘을 위해 집에 조그만 트리라도 만들었을 거다. Santa할아버지를 믿고 양말들을 머리맡에 두고 잤을 것이고 대신 아내가 양말 속을 채워 주었을 것이다. 동심의 세계는 무한하지 않은가?
정오 Liberia의 수도 Monrovia 앞을 지나다. 과연 ‘구름처럼 묘연한 길’일까?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위한 길인지는 분명히 하고 있다. 우선 내 마음속에서부터-. 얼마만큼 시간에 허락을 하고 또 걸릴지는 미지수지만 지금의 이 숱한 갈등과 텅빈 마음의 구멍을 메워 줄 수 있는 날이 어서 이루어져야한다. 진정 하느님이 계시고 신이 있다면 대지 위에 충만이 뿌려지는 은총이 이 한 조각 바다 위를 떠가는 우리의 배 위에도 베풀어 지기를 간절히 그리고 열심히 빌고 싶은 X-Mas eve.이다.
26th. Dec(월)
신토쿠마루와 교신 있었다. SSB와 무선전신이 상호 어려움이 있었고 서툰 菅原군이라 내 진정한 뜻을 충분히 전했는지는 모르나 상호 협조와 인사는 잊지 않았다. 예의 청수는 일단. 보류, 좀 더 추이를 보고 해달란다. 아직 Sapale쪽이나 Wari쪽의 사정을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일단 확보를 해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일러줬다. 부연 안개가 바다 위를 덮는다. 시계가 3 mile정도까지 제한된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날아오는 황사현상 같기도 하다. 온 책상에 앉은 먼지가 그걸 말해준다. 머리가 서걱서걱하고 눈이 아프다. 근간 책을 마주하는 시간이 잦아서인가 시력에 현저한 이상을 느낀다. 많은 주의를 하고는 있지만 눈이 찝찝하고 영 기분이 언잖다. 적당한 안약이 없다. 해수로 두어번 씻어 내다. 일본 소설 다시 바꾸다.
‘특수첩보헌병’, 실화소설이라 했지만 그 진위는 고사하고 두어장 읽다가 빠져들었다. 우선 해독이 쉬운 것이 첫째요. 대전 종말에 한국의 첩자도 나와 있어 이해가 쉽다. 김구 선생의 지도하에 지하활동을 했다는 김정균, 남의방의 얘기가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Las출항 일주일째다. 순조로운 安航이 무엇보다 다행스럽다. 이상스러운 소리는 아직 그 원인을 찾지 못했으나 별 이상은 없다. 연일 규칙적인 생활이 된다. 이런 하루하루 자체만으로 월급받긴 좀 뭣한 느낌도 든다. 삶의 터전을 벗어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인간생활의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출항시 부상한 선원3명을 불렀다. 다행이 상처는 다 아물었고 큰 상흔도 없다. 모두 제정신이 돌아왔는가 자신들의 과오도 깊이 뉘우친다. 그 원인, 동기 여하는 덮어두고 이제 2-3개월만 있으면 귀국할 터인데 나이가 그만한 사람들이 얼굴에 상처를 내어 간다면 그걸 보는 가족, 특히 아내나 자식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주의, 그것뿐이다. 자신의 주위환경, 그리고 여건을 고려해서 쥐꼬리 같은, 개똥같은 기분, 자만 그것을 버려라. 결국 터지고 째지고 상처 입는 놈만 억울하고 손해 보는 것뿐이다. 왜 같이 말리고 했는데 너희들 셋만 그리 큰 상처를 입었나? 그만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자도 있다. 진짜 다행이다. 가벼운 운동. 일광욕 계속하다.
27th. Dec(화)
종일 눈이 따가워 고역을 치른 하루다. 간밤 기관실 화재라는 소리에 밤새 잠을 날렸다. 새벽 1시. “선장님 기관실 불났답니다” 하는 Mid-Watch 2/O의 다급한 소리에 튀듯이 일어난 것이다. 가나 앞을 통과중이였다. 다행이 큰 사고가 아니고 Dynamo Eng.(발전기) 연돌의 방열 Cover가 삭아서 다소 발연된 것을 부릿지 당직자등이 보고 놀라 알린 것이었다. 확인 후 곧 조치가 됐지만. 놀란 가슴이 쉬이 가라앉질 않았다. 선상의 화재! 그것은 치명적이다.
1970년 1월 26일 북태평양에서 301 화영호 김광수 선장의 싸늘한 시체를 손수 건져올리게 했던 그 당시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 요란하던 황천속에서 두 번 당한 선장실의 조그만 화재 사건도 잊혀지질 않고 있기에 실제의 경험으로 유의해 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신형우형으로부터 들었던 한성호 화재 당시의 모습이 실상 많은 도움이 되었고, 막상 그 한성호에서 그 사고를 경험한 두 사람(신형우. 김양길)이 301 화양호에 있었기에 그만큼이나마 배와 선원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침착하게 냉정하게 현황을 파악하고 판단해야 함은 너무도 잘 알면서 막상 행동하기가 그처럼 어려울 수가 없다. 선박에서 경력을 중요시하는 가장 큰 원인도 여기에 있다. ‘경험이 곧 제2의 현실’이라해도 좋다. 비상시에 침착하게 가장 적절하게 대처 할 수 있는 것은 노련한 경험에서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각 Part별로 다시금 모든 면에서 점검 정비토록 지시하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자는 우리 자신뿐이다. 하루 두서번씩 들리는 이상한 폭팔음이 새삼 불안을 안겨준다. 어느 한 순간도 안심, 방심 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이 더욱 눈과 마음을 아프고 피로하게 한다. 오전중 Lome 앞을 항과. 느닷없이 강풍이 지나갔다.
신토쿠마루와 직접 VHF가 연결된다. 그간 불편했던 의사소통이 시원스레 이루어 진다. 아직도 입항허가 번호를 얻지 못한 데다 연안의 해적떼 소식에 불안, 그냥 표박중이란다. 이쪽은 처음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Maralia를 주의하란 얘기부터 했다. 많은 참고가 되리라.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회사소속이라는 공감대가 질기게 연결되어 있다. 많은 위로도 의지도 된단다. 사실이다. 마치 구면인 듯한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어려움 없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통로다. 꾸준히 노력해 온 보람에 가슴이 뿌듯하다. GMT 21:30 Lagos 외항 착. 투묘하고 East Mole Signal Station과의 첫 통화가 전보다 한결 명쾌하고 쉽게 된다. 분명히 영어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내일은 일찍 Boat로 나가야지 편지가 기다릴 텐데-. 눈이 따가운 데도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28th. Dec(수)
새로운 Agent Assaf을 VHF로 부르다. 10시경 나가겠다고 했더니 오후에 연락할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부득이 대신 C/O를 보내 Lansal에서 편지만 찾아오게 하다. 다섯통의 편지가 모였었다. 모두가 두툼한 양감이 우선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설사 그 속에 욕을 썼건 말든 받아든 그 순간의 기쁨, 그리고 듬직한 신뢰감은 흡족한 것이다. 뜯어서 발송한 날짜 별로 철하고 Scrape은 따로 모아두고, 차례대로 읽었다. 받아든 때의 그 기쁨을 무위로 돌리지는 않았다. 아내에게 보낸 내 편지가 다시 되돌려진 것도 이번이 두 번째로 기억이 되지만 분명히 모욕 같은 걸 느낀다. 애써 썼고 보낸 것인데-. 비록 마음에 서운한 얘기들이 있었다고 쳐도 그것들이 진정한 속 마음들이 아님은 서로가 알고 있으면서도 -. 내 것은 찢었다. 없었던 걸로 하고. 아내 것은 다시 되돌릴까 했지만 그만두다. 내까지 그렇다면 -. 그러나 긴 편지 속에서 많은 것을, 또 절실한 얘기들을 했다. 많은 도움이 된다. 한편 고맙기도 하고 한편 얄밉기도하다. 무엇보다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램은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했고 가슴깊이 울려오는 것이기도 하다. 해상에서 고생하는 만큼 노력하면 육상에서도 길이 있다는 얘기. 그리고 해상생활이 길어지면 질수록 육상에 설 수 있는 자리가 좁아져 간다는 얘기는 지금 끝 늘 잠재의식으로만 뭉쳐져 오던 것을 다시 한 번 세차게 되살려 준다. 당장에라도 귀국하고 싶은 심정이다.
1년을 더 머물다 가려던 애초의 구상을 확정짖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참인데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어진다. 부동산에 많은 유혹을 받고 있는 모양이기도 하다. 짓고 살다가 팔고 땅 사서 또 짓고-. 그것이 한 두달에 되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생활을 끌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을까? 우선은 확보해 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실상 지금까지 망미 땅, 두 번 산 집 모두가 아내 손으로 했고 나는 그냥 강건너 불 보둣 했다. 물론 그만한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내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고 또한 그만한 일을 능히 하자 없이 해낸 아내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더욱 해보라고 권하고 싶기도 하지만 실상은 무리한 일이다. 이제 그만해도 제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얘들이 셋. 역시 갖고 있는 직장, 거기다 건강마져 많은 애로를 느낀다는데 -. 그런 중에서도 무엇인가 해보려고 애쓰고 생각하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만에 하나 혹시 실수가 있을까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다도 그 자신의 무리한 생활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렇지 않아도 남성화 돼간다고 하면서 -. 3월 귀국하면 그간 장만된 자금으로 망미 집을 지을 수가 있다. 약간 욕심을 줄이면 負債없이 끝낼 수 있다고 했으니 어느 쪽이건 한쪽은 완전히 남는다. 무엇인가 시작해 봄직도 하다. 머리를 써서 벌자는 그의 얘기를 보면 분명히 지금까지는 머리가 아닌 몸뚱이로 부딪쳐 살아온 것만은 사실이다. 뱃 생활이 익숙해지면 질수록 육상의 설 곳이 없어지고 좁아지듯이 뱃밥 만큼 쉬운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젖어 가는 것이 또한 실제적인 현상이고 그래서 더욱이 쉬이 떠나지 못하는 미련으로 되어 버린다. 큰집 형님과 상의 해보란 얘기도 있었다. 아마 옆에서 보기도 딱했던가 보다 너무 말들이 없으니 -. 사실상 형님과 얘기가 없는 것은 내 자신도 인정을 한다. 그러나 굽히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형님께 미안하기도 했고 아직은 오히려 짐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어쨌든 서로 충분한 의견교환이 없었던 것만은 큰 잘못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무엇인가 여쭙고 코취도 받고 성가시지만 협조도 부탁하고 의논도 해보자. 지난번 자금건 때도 실상 서로 너무 말이 없었던 것이 의외로 오해를 산 것이다. 침묵은 금일 때도 있지만 모르는 것은 더 큰 실수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 번 띄워보자.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디가지나 내 인생이다. 지금까지가 하나의 준비기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내 삶의 영위로 옮아져 간다. 내가 내 자신을 알고 나서부터 늘 자기고 있는 또 알고 있는 스스로의 결점이 다시 한 번 시련을 겪는다. 과감한 결단성과 박력의 부족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앞으로의 내 생활에 많은 아니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1년 더 연장한다는 것은 지난 3월 출국당시, 다만 한 가지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면허장 취득과 부채정리, 그리고 다음해(78년)의 나올 준비기간으로 계산했었다. 그 다음은 무슨 일을 하더래도 또 배를 계속타는 한이 있어도 국내선을 승선할 수 있는 여건, 그렇게 해서 차츰 육상을 익혀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막상 지금끝 배를 타도 이번만큼 많은 재형적 저축이 될 수 있는 때도 없었다. 앞으로 2-3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각오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내에게 깊이 상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불찰이었다만 결코 이해를 해주리라는 자신만은 가졌었다. 그것이 더욱 자신을 갖게 한 것이 이쪽 사정이기도 했다. 그리 많지는 않아도 잡비 이외의 다소 저축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 정도라면 3월 귀국해서 다시 몇 개월을 쉬느니 계속 고생을 감수하는 것이 첩경이 되리라는 확신도 선 것이다. 헌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우선 아내의 편지만을 본다면 그간의 부산사회가 너무도 급격한 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 한 가지는 금년 한해도 예상외의 저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의 말대로 ‘빚도 없고 있는 것 굴려서 살면 -.’ 가능성이 있다. 단 욕심은 어느 정도 줄여야 한다는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무엇보다도 어려운 전제조건이 하에서. 막상 그렇단 판단을 내린 이 시점에서도 선뜻 결정을 짓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 이 욕심 때문이다. 먼 구름 위의 허황한 욕심만이 아닌 분명히 실현 가능한 욕심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딜렘마에 빠진다. 귀국 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자본이 현물가 및 통화가치상 너무나 작을 것만 같다. 적어도 3천 정도는 -. 과연 지나친 욕심인지 모르겠다. 또 하나가 있다. 외국어다. 지난 10개월 동안 짜증스러운 속에서도 꾸준히 한 보람을 잊을 수 없다. 1년간만 더 계속할 수 있으면 -. 영어와 스페인어는 어느 정도 달할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 집에 갔을 때는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하나의 사업(?)이기도 하다. 아내의 말대로 학부를 마치지 못한 그 여한은 그 못지않게 내 자신이 인정한다. 그가 그처럼 나를 미워하고 마음에 차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 점에서 파생되어 나왔다고 실토를 했지만 그것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일이다. 분명히 권고도 받았고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여건! 심지어 그의 양해를 얻고 4년간 희생을 바라고도 싶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4년 이후에 분명한 하나의 사실을 보증해준다 손치더래도 우선 몸뚱이로 부딪쳐 헤쳐나가지 않을 수 없는 그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19년전 청구대학 야간부에 적을 두었던 당시의 뜻을 결국 성취하지 못했던 것이 내 인생의 대 실책이었는지 모른다. 겨우 1학기를 마친 후 어머니의 발병, 작고, 그리고 입대. 그러나 거기까진 또 그렇다치고 64년 수륜에서 다시 임당으로 나왔을 때부터 67년 사직할 때까지의 내 판단이 잘못이였던가? 그때 벌써 아내를 알았었고 그래서 무엇인가 내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는 간절한 의욕이 교단을 박차고 나오게 했지만 그 방향 설정이 잘못 된 것일까? 그렇다고 만약 당시 진학의 길을 택했다 하더래도 그 후 화려한 내 자신을 상상하진 않는다. 그것이 하나의 운명! 내가 택한 운이라고 하자. 또한 후회는 않는다. 지금의 길을 -.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것이 인생의 면허장이 아니듯이 중요한 역할을 할 망정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금년에 많이 피부로 느끼지 않았는가? 4년의 효과를 40년 결려 겪어야 하는 것도 하나의 업보다. 두드려서 열릴 수 있다는 자신을 얻은 것은 귀중한 것이다. 승선을 위한 면허장보다 더 절실하고 필요한 것이 곧 외국어일 것만 같다. 여하튼 최후의 그날까지 두드려 보자.
자, 그럼 하나의 결론을 내려야 할 순서가 아닌가? ‘물질적으로 풍요한 것만이 잘 살고 행복한 것이라는 기준을 없애 버리면 일이 쉬워진다’고 했다. 사실이다. 그 기준을 없앨 수 있느냐가 문제다. 돈 그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수단임은 누구나, 어느 학자나 주장을 하면서도 사회는 물론 그 학자들마저도 목적화 하고 또 노예화돼 가고 있는 것이 눈앞의 현실임을 고려치 않을 수 없다. 목적이던 수단이던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걸 구할 수 있는 길, 방법이 절실하고 막상 실현할 수 있다면 구태여 기준을 없앨 것도 없다. 말이 욕심이지 그것을 줄이자고 하는 아내가 오히려 더 큰지도 모른다. 실상 그가 좀 줄이고 살 수 있다면 나도 어느 정도 줄여서 살아가고 싶다. 하나의 무리를 계속하지 말고 -.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반드시 물질적인 경제적인 욕심에 한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 남편인 내 자신에 대한 기대, 욕심이 많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내게 대한 미움과 원망의 진원이 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지금 그대로 내 자신이다. 생김새도 몸도 학식도 사고방식도 그거 가진 그대로 일뿐이다. 내가 갑자기 그의 이상적인 형태로 변할 수는 없다. 어쩌면 더 멋있고 요령 좋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교되어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곧 나에게는 아내에 대한 컴프렉스를 갖게 하는 수도 있고 그것을 은연중 내 자신으로 하여금 경제적인 여유를 위해 조급증을 나게 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그로 하여금 안타까움이 넘쳐 원망스럽고 무능해 보이기까지 하기도 하고 -. 내 자신은 지금끝 아내를 다른 여자에게 비교해본 적은 없다. 그것이 어쩌면 그만큼 그에 대해 내 마음같이 한 번도 해주지 못했다는 심한 자책 때문이리라. 그렇다. 이번에 가자. 떳떳이 그 앞에 나타내고 그리고 이해를 구하자. 그 욕심만 줄이고 이해를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합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처럼 평행선을 유지하는 이상 합치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29th. Dec(목)
부연 먼지가 걷히질 않는다. 전번 항차보다 기다리는 배들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대형선들이다. 해적들 때문인가 모두들 멀찍하게 묘박들을 하고 있다. 우리도 실상 다소 먼감이 있으나 그냥 두고 당직자를 강화하고 비상시를 대비케 하다.
일단 3월 귀국키로 작정을 하고 보니 하루가 지겹고 3월이 어느 때 보다도 아득해 보인다. 집, 형님 그리고 협성 이군에게 편지 쓰다. 일단 귀국하기로 했으면서도 아내 한테는 땅도 사두라고 했고, 이쪽은 내가 알아서 결정한다고 다시 여운을 남겼다. 왜 그랬을까? 아무래도 그놈의 욕심! 끈덕진 물욕이 쉬이 버려지지 않게 때문이리라. 형님에게는 명쾌한 해답을 바란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아무런 특별한 일도 없는데 공연히 마음만 들뜬 하루다. 당신의 편지를 여러 번 읽기도 했다. 나오기 전 경산 할마시 때문에 싸움 같잖은 투닥거림이 있었던 것이 어지간히 마음이 상했던 모양이다. 실상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닌데-. 그래서 미안해서 말도 못하고 나왔는데 -. 탈은 술이었고 화는 엄마 때문에 났다.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 일이다. 경산 영감님 얘기를 또 했다. 진짜 엄마가 살아 계신다면 이런 일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이렇게 떨어져 모시려고 하지 않을 거고 또 그러실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회한도 깊다. 정말 복도, 명도, 운도 없는 엄마다. 영감님이 자꾸 돈을, 그리고 짜증을 내는 뒤에는 할마씨의 투털거림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가장 싫다. 왜 어차피 부모자식간의 인연을 가진 이상 좀 더 정신적으로 합쳐지려고 해주지 않은가 말이다. 돈이, 매달의 생활비가 아까워서 아니다. 마땅히 해드려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저의를 안 이상은 그것이 무엇보다 불쾌하다. 첫 월급을 타다 받쳤을 때 ‘야야 첫 월급은 에미 속옷사면 좋다카드라. 내놔라’ 하시던 소리가 지금도 역역하다.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 정성, 그것이 없는 이상 있어도 해드리기가 아깝지 않을까? 우리 형제들이 조모한테 애틋한 잔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듯이 지금 우리 얘들이 진정한 할머니를 갖지 못한 것도 하나의 불운이다. 아무튼 서로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애써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운명을 감수하고 나가야 하는 데도 쉽사리 그러지 못하고 있다. 생각할수록 영감님이 불쌍해지기도 한다. 일단 형님들과 상의해서 하시는 데로 따라 하도록 하고 또 형님께도 말씀드렸으니 언젠가 한 번은 아버님과 얘기가 있었으면 싶다.
형님이 미국교포와 합작한다는 얘기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지금까지의 일본상대위주의 사업에서 미국을 상대로 변화한다는 것은 커다란 전환이다. 만약 수산 인력이 미국을 개척할 수 있다면 큰 시장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은 불확실하나 되기만 한다면 좋은 전망이 있으리라, 고선장이 나간다니 아마도 ‘고태석’이겠지. 경우에 따라선 한 번 참가해봄직도 하다. 외국에서의 생활, 그것은 근본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니다. 많은 외국을 겉으로만 돌아 다녔으나 실상 머물러 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잠시 둘러보는 정도라면-.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얘들이 문제다 옮겨 심기엔 너무나 뿌리를 내린 것이다.
내일 모래로 이 한해도 저문다. 세모래서 그런 것은 아닌데, 두툼한 편지 때문일 게다. 거기다 차츰 기울어져 가고 굳어져 가는 3월 귀국의 작심. 또 새로운 방향을 위한 꿈들이 겹쳐서 일게다. 막상 10여개월 동안 다져오던 마음을 일시에 허물어 버리기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30th. Dec(금)
편지 모아서 대리점에 가다. 간밤 라디오에서 오늘부터 휴일이란 소리를 듣긴 했으나 VHF에서 각 대리점들이 호출하기에 혹시나 해서 갔는데 역시 휴무다. 1월 1일까지는 -. Mr. Kishinani집에 들렸다. 휴일이라 쉰다고 하면서 잠옷바람이다. 1월 2일경 입항예정으로 잡고 있단다. 바로 부근의 Agent Assaf에 가보란다. 휴무라 한 녀석만 있다. 명함을 보냈더니 들어오란다. 명함에 Assaf라고 새긴 것을 보니 사장인 모양인데 흰둥이에다 매부리코다. 첫마디가 ‘왜 아침에 VHF로 불렀는데 응답이 없냐?’한다. 괘심한 새끼! 새로 선정한 대리점으로 첫 대면에 인사도 없이 짜식이-. ‘보소. 나도 몇번이나 부르다 응답이 없어 이렇게 직접 나왔오’ ‘N/R(확인서)이나 주소.’ 별반 얘기하기가 싫다. 역시 1월2일 Tinkan부두에 접안예정이란다. N/R은 벌써 Mr. Ashok가 만들어 Sign을 받아 놨다. 이상한 일이다. N/R을 Trans-Con에서 만들어 Agent의 Sign을 받다니? 반대가 아닌가. 저네들끼리 무슨 약정이 있겠지. 아무튼 조심해야 할 일이다. C/P와 B/L을 달란다. “당신이 Agent아니요? 와서 가져가시오”
처음 인사가 미안했던지 곱살거리며 사과를 한다. 어쩌면 이번에는 선원들이 작업에 끼어들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Mr. Kishinani에게 부탁은 했고 그러겠다고 약속은 했다만-. 비록 고되긴 해도 유일한 잡비벌이의 수단이었고 실상 많은 혜택도 봤다. 심지어 견습 크라스들에겐 급료의 배가 넘은 경우도 있었다. 매달 할 수 있다면 진짜 1년 더 할 사람이 거의 전부가 될게다. 전 Agent Lansal에 들렀으나 역시 아무도 없다. 엊그제 이후의 편지도 없다. 전번 London에서 찍은 사진의 Slide Filim현상을 영국에 맡겨두고 Lansal주소로 보내도록 했는데 안 왔다. 이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텐데? 아마도 중간에 없어졌거나 우송료가 규정을 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영국 여행의 기록들을 못 찾으면 서운한 일이다. Filim값도 값이지만 -. C/E가 편지 그리고 사진을 들고 올라왔다. 새로 집을 샀는데 빚이 있으니 1년 더 있다 오라한다나. 아마 더 있을 모양이다. 집을 보니 반갑고 더 있을 생각하니 아득한 모양이다. 같이 있어 보잔다. 글세? 잘 될까? 여태까지 집도 한 칸 없으면서 그런 개지랄을 했었던가?
그제께 함께 받은 1타수 유용부 군의 편지도 충격적이다. 재승선하기가 극히 힘이드니 왠만하면 보통선원들은 1년 더 있다 오라는 것이다. 그나마 2년을 계속하고 있는 갑판장, 조기장 영감님과 1갑 박 군 등에게는 -. 치료중이던 맹장염 수술 자리도 재치료를 받아 완치했고 금년에 새집을 쌌다고, 재선시 여러 가지 지도를 해주어 감사하다고도 했다. 2기원 우 군, 1갑원 정 군, 유 군 3명이 같이 간 6명중에 소식을 전해왔다. 꼭 믿었던 2기사 김용석의 편지는 없다. 그의 소식을 받고 싶었는데-. 그러나 아무도 답신을 띄우지 못했다. 그들에게 지불해야할 수당도 조금씩 남았는데-. 어차피 늦어졌으니 귀국하면 함께하자.
신토쿠마루와 다시 교신. 본사로부터 새해 전보, 그리고 사선(社船)중 어떤 배에서 Derrick가 추락, 하역시 한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으니 충분히 주의하란 전보도 전해 왔다. 어떤 사고든 선상에서의 사고는 더욱 위험하고 상처가 깊다 C/O와 갑판장에게 전달하다. 이번 항차 마치면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가 의문이다. 어쩌면 일본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맞아 떨어질는지? 항해 중 양하 일정 및 어제 Hatch 높이를 묻는 전보 등이 무엇인가 낌새를 내는 듯도 했다만. Las에서 Mr.Tikam도 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기도 했었다. 여기서 일본까지의 항해도 한 번쯤 해봄직한 일이다. 항해사라면 -.
영국에서 산 Blue Film을 상영해 보다. 의외로 Project와 Film의 질이 좋지 못해 후회스럽다. 지루한 정박에 다소 도움이 될 것도 같다만 막상 영사기는 집에 가져갈까 했더니 취급해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Movie Camera가 있어야겠고 그러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 되버린다. 적당히 넘기고 가야겠다. 좋은 Blue Film은 좋은 Hormone 약만큼이나 효과가 있다는 Scrape을 오려 보냈다만 내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신경이 둔해진 탓인가 오직 아내이외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으려는지? 아니면 그나마도 영영 녹쓸어 퇴화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년 겨울 어디서 솟아나는지 모를 만큼 강한 힘이 다시 소생하려는가?
31st. Dec. 1977 (토)
마지막 남은 달력을 떼는 날이다. 1977년! 영원한 역사 속에 잠들어 간다. 다시 한해를 보내는 마음이 어느 때 보다도 특별한 느낌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뭣인가 보람과 기대를 갖게 한 듯 하다. 거의 전부를 No.3 TungHo와 함께 보낸 76년도에 이어 히로시마마루와 함께 보낸 이 한해. 그러나 처음으로 가장 멀리 집을 떠났고 낯선 곳을 더듬었던, 모험도 많은 해이기도 하다. 또 어느 때 보다도 책과 많이 씨름했고 아내한테서 비록 글로서나마 가장 많이 얻어맞고 긁힌 해다. 뭍을 그리며 간절한 바램이 더욱 짙어가는 속에서도 그런대로 후회 없이 보낸 해로 기억해두자.
67년 교단을 떠난 지 꼭 10년을 보낸다. 애초의 뜻 같이 이루어 진 10년은 분명 아니었다. 처음 배를 타기를 원했을 때 반대했던 형님이 10년을 각오하란 한마디를 들었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그 10년이 간다. 과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간 내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결혼, 세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결코 순탄하게 이어졌다고는 볼 수 없는 승선기간. 그것뿐이다. 실질적인 기반을 가졌으면서도 정신적으로 디딜 곳을 잃고 그냥 이어져 오고 있는 지금까지이다. 훈련소 생활 1년3개월, 가장 비참했던 한일호의 1년 7개월. 동방 51호와 53호 73호. 대아의 8개월 대기. 신안호. 최초의 수출선 Eastern Prosperity와 협성해운의 육상 1년, No. 3 TunhgHo. 그리고 지금의 宏島丸가 그간 내 생활의 장이었다. 동남아의 방콕, 쟈칼타. 대만의 기륭과 카오슝. Borneo의 구석진 촌락. 필립핀의 여러 항구. 북태평양의 거친 양상, 일본의 크고 작은 항구들을 거쳤다. 금년에 거친 영국. 이태리와 스페인과 서부 Africa의 Lagos, Lome, Wari, Dakar들도 새로운 눈을 틔게 했다. 작년 대만 기륭항 앞 해상에서 일으킨 충돌사고는 가장 큰 오점이 됨과 동시에 무엇보다 귀중한 경험을 쌓아줬다. 숱한 위험도 자질구레한 사고도 겪었으나 대과없이 지나온 것만은 분명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겨우 승선 경력 5년 정도의 병아리 선장을 지켜가고 있을 뿐이다. 누가 봐도 인정 될 수 없는 현재의 직책이다. 무엇 때문일까? 수치로 표시할 수 없는 무거운 책임감, 팽팽한 긴장, 끈질긴 인내 등이 요구되었다. 고달프고 외로운 항로이고 인생의 항로였다. 학연도 지연도 너무나 엉뚱한 길이다. 이 10년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몸부림을 필요로 하는 절실한 78년을 맞게 된다.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갖지 말자. 지나간 37년의 시간보담 남은 미지수의 세월이 더 없이 중요하고 어려운 것이다.
망년회라기 보다 그냥 모여 역시 한잔 나누는 걸로 이 한해를 마감한다. 모든 우리들 자신과 우리들의 가정으로부터 한 해 동안의 번잡스럽고 액된 일들이 말끔히 사라져 가는 이 한해 속에 묻혀 가버리길 기원하면서 -.
자정 수많은 정박선들이 긴 기적을 울리면서 한해를 보내고 맞는다. 어떤 선박에서는 조난신호탄으로 불꽃놀이를 하는 곳도 있다.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1시가 넘은 이 시간까지 공연히 서성거리는 선원들이 대분분이다.
이번 편지에도 Scrap해 보냈다. 우선 그 숨은 뜻이 갸륵하고 고마운 일이다. 반드시 새로운 정보나 뉴스, 토막지식 등만이 아니고 콩뜨, 건강교실, 웃음거리 등 다양한데 더욱 의의가 깊다. 이번의 오유권씨의 ‘송아지’도 내게는 명문이다. 불과 몇자 돼지도 않으면서 그 속에 표현한 뜻이 무릎을 탁 치고 싶도록 시원스럽다. 오유권씨의 작품은 특히 농촌을 소제로 한 것이라 무엇이건 읽고 싶은 것이다. 동백나무집 순바우와 그 아내. 어쩌면 내가 그 순바우 같은 인상을 주었을까? 과연 글을 쓰는 사람들의 재주는 감탄할 만하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의 한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지만 붓이 칼보다 무섭고 힘이 세다는 격언을 낳게 한 위대함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가끔 신문에 투고하는 아내의 재주에도 많은 부러움을 느낀다. 분명히 다방면으로 나보다 낫다. 지금의 애들이 모두 제 엄마를 닮았으면 -. 내 스스로가 생각해도 싫증이 나고 버릴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은 내 성격과 결점을 얘들에게까지 물려준다는 것은 너무 싫다. 진짜로 -.
아마 지금쯤 세배를 끝내고 제사를 모시는 시간일게다. 여긴 막 자정을 넘었지만. 한해! 시작 할 때의 기대만큼 알차지 못한 것은 언제나의 일. 365일을 그저 무사히 보냈음을 기쁨으로 여기고 보내자. 잘 가거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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