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장
治人事天莫若嗇. 夫惟嗇, 是以早復. 早復, 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無不克, 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蔕, 長生久視之道.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무위를) 아낌 만한 것이 없다. 이른바, (임금이) 오로지 (무위를) 아끼게 되면, 따라서 (백성이) 바로바로 (무위를) 되돌이키게 된다. (백성이) 바로바로 (무위를) 되돌이키는 일, 그것을 일컬어 (백성이) 덕스러움德을 두텁게 하고, 쌓는 일이라고 한다. (백성이) 덕스러움德을 두텁게 하고, 쌓게 되면, (백성이 무위를 일삼기를) 잘하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백성이 무위를 일삼기를) 잘하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면, (백성이) 그 (유위의 끝점을) 다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백성이) 그 (유위의 끝점을) 다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면, (임금이 천하의) 영토와 백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천하의) 영토와 백성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어미, (나라의 근원인 영토와 백성을) 오래 갈 수 있게 하고, 오래 보여지게 할 수 있는 바, 이것이 이른바 (무위가) 깊은 뿌리, (무위가) 단단한 꼭지, 오래 살고 오래 보여지는 도(道; 無爲)이다.
嗇者, 靳惜之意, 謂不敢輕用也. 養生者, 不敢輕用其神. 爲家及國者, 不敢輕用其財. 治民者, 不敢輕用其力. 人之, 有神也, 民之, 有力也, 天下之, 有財也, 皆天之, 所生也. 不敢輕用於天之所生. 乃所以事天也.
색嗇은 (무위無爲를) 아낀다는 말로서, 감히 (유위有爲를) 가볍게 여기거나, 일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른바, 백성의) 삶(生; 性·命)을 (먹여) 기르는 임금은 그 (백성의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바(神; 性)를 가볍게 여기거나 일부러 일삼아서는 안 된다. 집안과 나라를 일삼는 임금은 그 (집안과 나라의) 재화(財; 性·命)를 가볍게 여기거나 일부러 일삼아서는 안 된다. (이른바)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은 그 (백성의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힘(力; 命)을 가볍게 여기거나 일부러 일삼아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가지는 바가 있는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바(神; 性), 백성이 가지는 바가 있는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힘(力; 命), 천하가 가지는 바가 있는 재화(財; 性·命)는 모두 하늘이 생겨나게 한 바이다. (따라서) 하늘이 생겨나게 한 (그러한) 바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일부러 일삼아서는 안 된다. 이른바, (이것이 노자가) “사천(事天; 하늘을 섬긴다)”이라고 일컬은 까닭이다. 〔홍석주는 치인治人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復, 如上篇, 靜曰復命之復. 動, 以靜爲復, 用, 以不用爲復. 輕用者, 無節, 而不能返. 不敢輕用者, 不得已, 而或用之, 則亦必惕惕然, 競競然, 僅適其, 可而止. 此, 所謂早復也.
복復은 제16장 “(유위有爲를) 조용하게 하는 일, 이른바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명命을 되돌이키는 일”이라고 할 때의 “되돌이킨다”는 말(과 더불어 뜻)을 같이한다. (이른바, 백성을) 움직이는 임금은 (유위有爲를) 조용하게 하는 바를 되돌아가는 바로 삼아야 하고, (백성을) 일삼는 임금은 (유위有爲를) 일삼지 않는 바를 되돌아가는 바로 삼아야 한다. (이른바, 백성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 유위有爲를) 가볍게 여기고 일삼는 임금은 (백성이 유위有爲를) 마디 지우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고, 따라서 (백성이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한 명命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백성을 일삼는 데 있어서) 감히 (유위有爲를) 가볍게 여기거나 일삼지 않는 임금은 (백성이) 부득이 잠깐 (유위有爲) 그것을 일삼게 되더라도, 반드시 (유위有爲를) 삼가고 삼가게 되며, (무위無爲를) 다투고 다투게 되며, 바로 (유위有爲) 그것을 만나고, 바로 (유위有爲를) 멈추게 된다. 이것이 “조복(早復; 백성이 바로바로 무위無爲를 되돌이키게 된다)”의 뜻이다.
重, 猶厚也. 克, 能也. 極, 窮也. 神, 完於內, 而財力, 足於民, 其, 蓄也, 厚矣. 故曰重積德. 蓄於中者, 厚, 則施諸外者, 無往而不成. 故曰無不克. 積之, 有本, 而用之, 不窮. 故曰莫知其極.
중重은 두텁게 한다는 말과 (뜻이) 같다. 극克은 (무위無爲를 일삼기를) 잘한다는 말이다. 극極은 (유위有爲의 끝점에 이르기를) 다한다는 말이다. (이른바, 임금이 바로바로 무위無爲를 되돌이키게 되면, 백성의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바(神; 性·命)가 (그) 안(內; 心·志)에서 일을 끝마치게 되고, 따라서 백성에게서 (그) 재화(財; 性)와 힘(力; 命)이 충족되게 되며, 그것들이 쌓이게 되고, 두터워지게 된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중적덕(重積德; 덕스러움德·無爲·性·命을 두텁게 하게 되고, 쌓게 된다).” (이른바, 백성이 무위無爲를 그) 가운데(中; 內)에 쌓게 되면, (무위無爲가) 두터워지게 되고, 따라서 (백성은 무위無爲를) 밖으로 펼치게 되며, (따라서 백성이 유위有爲에게) 나아가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되고, 따라서 (백성이 유위有爲를) 이루지 않게 된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무불극(無不克; 백성이 무위無爲를 일삼기를 잘하지 못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이른바, 백성이 무위無爲) 그것을 쌓고, (무위無爲가) 근본인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되면, (백성이 무위無爲) 그것을 일삼게 되고, 따라서 (백성이 유위有爲의 끝점을) 다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막지기극(莫知其極; 백성이 그 유위有爲의 끝점에 이르기를 다하는 바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有國者, 得其土與民. 身, 有國之母. 則幷與其, 所以爲國之本, 而得之.
유국有國은 그 (천하의) 영토와 백성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른바, 무위無爲를 아끼는 임금) 자신이 (바로) 천하의 영토와 백성을 얻는 어미(母; 근원)이다. 따라서 (임금은 무위無爲를 아끼는 바) 그것을 함께 하고, 같이 해야 하며, (무위無爲를 아끼는 임금은) 따라서 (자기) 나라의 근원(인 영토와 백성)을 일삼게 되고, 따라서 (천하의 영토와 백성) 그것을 얻게 된다.
下文, 所謂根蔕者. 蓋是也. 以此爲國, 則迓天命, 固人心, 百世而不替. 以此養生, 則形不敝, 神不竭, 可以與天地, 比久矣.
이어지는 문장이 일컫는 “뿌리와 꼭지”는 (무위無爲) 이것을 뜻한다. (이른바, 임금이 무위無爲) 이것으로써 나라를 일삼게 되면, (본래 저절로 그러한) 하늘의 명(命; 無爲·自然·道·德·性)을 맞이하게 되고, 백성의 마음을 (하늘의 명命에 대해) 단단해지게 하게 되며, (따라서 맞이한 하늘의 명命과 단단해지게 한 백성의 마음이) 백세百世가 지나도록 (일부러 일삼아) 어그러지지 않게 된다. (이른바, 임금이 무위無爲) 이것으로써 (백성의) 삶을 (먹여) 기르게 되면, (백성의) 형상이 (일부러 일삼아) 망가지지 않게 되고, (백성의 본래 저절로 그러하게 무위無爲가) 신령스러운 바(神; 性·命)가 (일부러 일삼아) 마르지 않게 되며, (따라서 백성의 형상과 신령스러운 바가) 가히 (저절로 그러하게) 하늘이나 땅과 더불어 하게 되고, (백성의 형상과 신령스러운 바가 저절로 그러하게 오래 보여짐이 하늘이나 땅의) 오래 보여짐과 (더불어) 비교되게 된다.
吳幼淸曰, 氣者, 身形之母也. 氣之, 生於下, 如木有根. 氣之, 榮於上, 如果有蔕. 根不拔, 則木不枯. 蔕不脫, 則果不隕. 此, 身, 所以長生, 目, 所以久視也.
(덧붙여, 중국 원元나라 때) 오징(吳澄, 1249~1333)은 (『도덕진경주道德眞經註』 제50장 주註에서) 일컬었다. “(무위한 음陰·양陽의) 기氣는 몸의 형상의 어미이다. (무위한 음陰·양陽의) 기氣는 (줄기의) 아래 (끝)를 생겨나게 하는데, 따라서 줄기는 뿌리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무위한 음陰·양陽의) 기氣는 (줄기의) 위 (끝)를 꽃 피게 하는데, 따라서 (줄기의 끝에 달린) 열매는 (아래 끝에) 꼭지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이른바, 나무의) 뿌리가 (일부러 일삼아) 뽑히지 않으면, 줄기가 (일부러 일삼아) 마르지 않고, 꼭지가 (일부러 일삼아) 벗겨지지 않으면, 열매가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몸(의 형상)이 오래 살게 되는 까닭이고, (몸의) 눈이 오래 보게 되는 까닭이다.”
蔕, 一本, 作柢, 亦根也.
체蔕는 어떤 책에는 저柢로 쓰여 있는데, 또한 뿌리라는 뜻이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