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교직 생활로 정년을 맞이해 퇴직한 김덕용 시인이 제2의 인생길 첫발을 내딛는 시작점에 잠시 공사 현장을 다니다 새내기 경비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며 겪은 체험을 소소한 기록으로 사유한 네 번째 시집 ≪초짜 응대와 대응 하다≫이다
어설프고 서툰 보안대원으로 근무하는 과정에서 직관으로 보아 지는 대상에 대한 소회를 담아 게이트, 여기는 활력소, 넉넉한 귀감, 사정이야 어떻든, 되돌아보니, 합당한 방향 등 6부로 나누어 총 114편을 수록했다.
열심히 살아왔다 무척
그러다 정년을 맞이하였고
그럴듯한 명분으로 집사 노릇도 했다
휴식을 빌미 삼아 놀이에 빠졌으나
유배 생활로 감옥이었다
밖으로 시선 두고 나선 행보
노동의 힘듦보다 임금체불이 문제라
더는 함께할 수 없어 고심으로 선택한 길
신임교육 이수하고 일자리 신청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알선된 근무지
다섯 달의 체험을 근간 삼아
소소한 사유로 자취를 남겨 봄이다
나는 경비 초짜랍니다
2026년 3월
김덕용
게이트
양팔을 나란히 잇대어 서서는
기척에 따라 올렸다 내렸다
너울너울 춤사위 펼치어내거나
주춤거리다 번쩍 치켜들고
슬그머니 살펴 안팎으로 가름 짓는
개폐기의 손놀림이 리듬을 탄다
안녕히 다녀오라 배웅하는 듯
수고했노라 반겨 맞이하는 듯
한순간도 허투루 머뭇거림이 없이
일과의 애로를 알아주나 싶게
수인사로 다독이어 위안 건네며
차단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여타의 바람이 스며들지 않게
옥석을 가리어 선별해내느라
주야로 쉼 없이 경계하는 게이트
들락임이 잠잠한 틈새 이르러서야
안식의 보금자리 그려냄으로
가만 살포시 호흡 가다듬는다
알뜰장
여명의 빛이 잠결을 깨우는 시각
출근 행렬이 한차례 이어지고
아이들의 등교도 마무리에 이르자
탑차 무리의 거동이 부산스럽다
길가에 천막을 정연히 드리우고서
매대에 한가득 진열된 상품들
과일 채소에 제조공산품과 어패류
간식거리로 떡볶이도 푸짐하다
오늘은 단지 내 알뜰장서는 날
일주일에 한 번 화요 장터가 펼쳐져
저렴한 가격에 한 아름 듬뿍
가성비가 좋아서 눈요기도 흥겹다
흥정은 금물이라 알아서 덤으로
한 움큼 얹으니 만족도 최고치
미리 주문에 배달도 가능하기에
믿고서 주고받는 정경이 흐뭇하다
여기는 활력소
이른 아침 일터를 향해 총총히
게이트 빠져나가던 자동차
해 질 무렵이 가까워지자 서서히
지친 걸음 차단기와 마주한다
집안의 화목한 얼굴 그리면서
식탁에 둘러앉아 맛볼 구수함을
오순도순 나눌 사랑 얘기 떠올리며
처진 어깨 가벼이 추스른다
여기저기 층층으로 불이 켜지고
초인종 울림에 반겨 맞이하는
함께 있기만 해도 힘이 솟는 원기소
가족애가 정겨이 영글어 간다
고된 일과를 되돌아보아 살펴서
마음 다짐으로 새기어 보고
실천 의지를 굳건히 세우는 곳
여기는 삶의 안식을 주는 충전소
추석비
게이트에 가을비 연이어 온다
방울방울 물둘레 지어 뚝뚝
하염없이 내리고 떨어져서는
조금은 더 낮은 곳으로 흘러든다
바삐 떠나가는 자동차 뒷모습
치켜든 손에 허허로움 가득하다
저물어 가는 한가위 끝자락
살붙이 배웅하는 부모 마음 알랴
겉으론 너스레로 괜찮다면서
흔연히 미소 머금어 보이지만
아쉬운 속내는 어쩌지 못해
추우(秋雨)만이 추적추적 흐늘거린다
먼발치로 건네는 한마디 그립다
멀어져 가는 아들네 얼굴들
그려낼수록 붙들고 싶은 심정
가만 다독다독 웃음 띤 눈가엔
이미 벌써 그렁그렁 곁에 두고파
빗물이 먼저 주루룩 볼 적신다
주말 오후
중앙광장이 인적으로 활기차다
한적히 거닐며 담소 나누거나
가볍게 몸을 풀며 달리고
아이들은 자전거 타느라 즐겁다
아빠와 두 아들이 삼각으로 서서
투구 자세를 취해 보이거나
글러브 잡는 요령을 일러주며
훈훈한 정을 살뜰히 주고받는다
배드민턴을 치는 모녀의 동작이
나비가 나는 듯이 가볍다
높이 멀리 강약 조율로 건네면
화답으로 스매싱이 힘차다
가족의 발길이 사뭇 흥겹다
외식이라도 하러 가는 모양으로
화기롭게 건네는 먹거리 상상
입안에 가득 군침이 도나 보다
현직이 중요해
전직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
사장이었으면 어떻고
선생이거나 감리사였으면 대수랴
현직이 뭐냐일 따름이지
과거는 일장춘몽과 같거늘
자존심 다 내려놓아야지
알량하게 내세운들 알아나 줄까
지금은 누구와 함께 호흡하지
보안대원은 경비일 뿐이다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통로이니
그나마 다행으로 감사히
최선을 다하면 만사형통이지
일은 그다지 어려움 없지만
사람 관계가 얽히고 꼬여 대어서
처신키 수월치 않음이라
최소한의 응대는 해내야겠지
시간의 경계
이미 주어진 우리네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정해진 속도로 밤낮을 오간다
일 년 열두 달 사계절을 두고
이십사절기로 세분하여
춘분과 추분점을 넘나들거나
하지와 동지로 펼쳐내면서
일정한 세기로 연이어 흐른다
누구에게나 공정히 똑같으련만
누구는 순식간이라 하고
누구는 더디어 답답하다고
누구의 말이 합당한지
누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바삐 움직이면 금세 가고
일없이 지내면 마냥 지루한데
나는 어느 경계에서 머물까
넉넉한 귀감(龜鑑)
대하는 면면이 다름은 어인 연유일까?
그냥 그저 그러하려니 여기고서
일상의 인사로 가벼이 마주했는데
가까이 소통할수록 절로 숙연해진다
흠잡아 구설을 펼칠 틈이 없음이다
이치를 따져 시비로 가리지 않고
이미 저만치 실행으로 앞서가기에
뒤돌아보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본받아 함께 어우러지고 싶음에서
좇을수록 겸손의 미더움이 새록새록
살아갈 도리를 살피기에 넉넉한
이상의 거울로 닮고픈 성품 그대로다
맞닥뜨리는 일마다 선뜻 헤아리어
쉬이 풀어낼 방도를 넌지시 건네는
미덕 지닌 이와 의기상투하니 행이라
이 또한 만복으로 벗 삼아 족함이다
문주등(門柱燈)
이른 새벽 일터로 나선 임
깊은 밤에 이르러도 기별이 없어
언제 오려나 애타는 마음
혹여나 어둠에 길 잃을까 봐서
등불 밝혀 기둥에 걸어두고
눈길 건네어 애절히 기다린다
이제나저제나 모습 보이려니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고
올 거라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서
지성스레 서성여도 보지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음이라
간절은 이내 애틋함이 된다
간간이 들이치는 차량의 불빛
주시해도 알아볼 수가 없어
더 늦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이 밤을 새우기 전에는 오겠거니
졸다 문득 밝아지는 문주등
저만치서 임의 기척 있나 보다
응대와 대응
안녕하세요 보안실입니다
춤가락으로 재촉해서 울어대면
가장 먼저 건네는 인사법이다
용건에 따라 어찌해야 할지
형평을 전제하여 고른 분간으로
공동현관의 개문을 실행한다
차단기 열어달라 호출할 때도
역시나 응대로 하는 말이다
동호와 내용물이 무엇인지 묻고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하여
연락할 번호도 꼼꼼히 챙기며
유연한 소통이 되도록 한다
가끔은 민원 사안이 발생하여
세대와 통화를 한다거나
배송 차량 진입에 따른 확인으로
알리어 대비하는 차원에서
아주 사소한 나들이 경우에도
두루 살펴 대응에 나섬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겉으론 아닌 듯이 태연하지만
관심을 조금만 기울여 보면
빼곡히 들어찬 속사정이 눈물겨워
은연중에 먹먹함이 스멀거린다
가장이라는 어깨에 얹히어진
가볍지 않은 부양의 의무
힘에 부친 현장으로 내몰리어지고
선택한 일이 수월치만은 않다
어떻게든 이겨내야 할 터인데
접해보지 못한 업무처리에
응대해야만 하는 민원 앞에서
뼈저린 진땀이 송알송알 우러난다
누구는 쉼이 지옥같이 답답해서
운동 삼아 소일로 한다지만
뭐든 해야 살아가는 처지에서 보면
시선이 고울 수만은 없음이다
말로는 전직이 무엇이었다면서
은연중에 과시로 내세우지만
정작 드러내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다 부질없는 과거사일 뿐인데
여유롭다고 한들 얼마나 일지
들추어낼수록 흠결만 보태어질 뿐
연유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이다
달리 변명의 여지도 없음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경비라는 사실
누가 보아도 그냥 보안원으로
보태고 뺀들 달라질 리 만무하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른 만큼
합치어 하나로 의기투합해 나가면
못해 낼 그 무엇도 없음이라
각자의 경륜이 녹아드니 꽃이다
되돌아보니
아파트 경비로 보안대원이 되어
근무한 지도 어느새 다섯 달
잠깐인 듯한데 훌쩍 지나갔다
다사다난하다는 말이 실감으로
파도처럼 심신을 덮쳐 대어
지탱이 힘들 정도로 어수선했다
수장의 말 한마디에 따라서
따르는 이들의 사기가 다르건만
오직 기분의 기복으로 대했다
바라보다 시선을 돌릴 수밖에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할 뿐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낼 뿐이다
아첨배만 살아남는 독을 퍼트려
순한 양은 견디어 내지 못해
희망 찾아서 점점이 떠나갔다
합당한 방향
생각으로는 뭔가 해야지 하면서
막상 움직이려니 마땅치 않아
이대로는 안 되는데 할 뿐으로
망설임에 주저도 여러 몫을 한다
전직에 연관한 일을 해보라지만
섣불리 덤벼들다 낭패 볼까 봐
동업도 위험 부담이 따른다며
주변이 더 빨강 경고장을 보낸다
대뜸 일 벌여 사장 소리 듣기보다
막노동하더라도 실상에 맞게
소소함부터 차근히 접해 나가면서
자연스레 적응해 내고자 한다
기웃거림 없이 지내 온 한철
아하 그래도 살짝 주시는 할걸
조금 더 가려니 환승이 쉽지 않아
어찌하면 합당한 방향이 잡힐까
의지대로
주춤하지도 않았는데 훌쩍
한 해가 가고도 봄의 문턱이다
새싹은 시나브로 눈뜨는데
잠든 나는 기지개 켤 줄 모른다
상념은 꼬리 물어 질주할 뿐
지향점 찾아 한없이 헤매다가
주저로 머무는 데조차 잃어
하루도 아닌 여러 날이 똑같다
오늘은 또 무엇을 붙들고서
주저리 넉살을 풀어낼는지
용케 궁합이 맞으면 행이련만
그런 복이 찾아들기는 할까
마음이 추슬러지기라도 하면
의연히 좇아 나서보련다
그간의 실천 의지를 믿음이니
딱히 어그러짐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