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생각하다
하순명
망연히 청령포 강가에 서 있다
궁을 뒤로 하고 천만리 머나먼 길
어린 왕은 물길과 산길 따라 유배지로 향했다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는 산은 말이 없고 삼면의 강물은 길을 끊었다
제 자리를 잃은 왕은 두견이가 되었다
밤마다 강물은 그의 발목을 적시고 별빛은 떨면서
곁에서 시를 읊었다
子規樓, 그 외로운 누각에 두견이 울음
장릉의 입석 아래 토끼풀 꽃잎에 얼비치는 붉은 무늬는
누가 흘린 피의 흔적인가
위리안치 시무나무는 탱자나무보다 날카롭게
심장을 겨냥했다
안개와 구름이 산과 강을 끌어 안고 아득히 눈물 짓는다
영월은 그 사람의 마음을 안다
왕과 사는 영월
그날 그를 죽인 이는 죽었지만
숨진 그 사람은 영월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여행, 내 안의 길
그동안 낭비한 언어를 가방에 담아 지퍼를 채운다
그러나 가방은 열리지 않고 시간은 짐보다 무겁다
결국 오늘도 제자리에 머문다
하지만 마음은 수시로
행방을 알 수 없는 바람과
헤아릴 수 없는 아침과 저녁나절의 모음을 찾아
무수히 발자국을 찍는다
창문 너머 먼 곳의 구름을 따라 걷는다.
가본 적 없는 낯선 마을에 다달아
햇살이 닿는 작은 벤치에 앉는다
물소리 들리는 강변에 몸을 누인다
여행은 꼭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니다
기다림도 설렘도 멈춰있지만
지금 이 시간 속에서 내 안의 길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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