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은 장마, 열대야, 폭염 등으로 묘사된다. 매년 맞이하는 여름이지만,
지나온 세월의 더위 때 겪었던 고통의 생각만 남을 뿐 새로운 여름을 맞이한다.
매년 사계절을 맞이하지만, 새롭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여름을 겪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망각 증세로 나타난 것인지 몰라도 2026년 여름도 새롭다. 기대가 된다.
여름이면 추운 겨울이 그립고, 겨울이면 무더운 여름이 그립다. 무덥고 짜증 나는 동시에
숱한 과일들이 무르익어서 입맛 없는 우리를 돕곤 한다. 한편으론 좋지만,
다른 편으론 괴롭다. 이게 인생인가보다.
이 세상의 자연 추이를 인간이 어떻게 하지 못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일시적 안정과 평정을 찾을 뿐
순응하고 동화되며 살아야 한다. 거슬러 가려면 대가를 치른다.
그릇된 것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옳은 것에 대한 도전은 대가를 톡톡하게 받게 된다.
인간사나 개인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자신이 주도하는 것이 없지만 맡은 바 책임과 직무에 관해서는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이것은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 사례를 받지만
그것에 따른 책임이 따르고 얽매인다.
자영업을 하는 자는 자유가 있지만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
어느 것이든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스스로 정리하며 살아야 하는 동시에 무엇이든 무엇이든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힘듦을 겪는다. 옳지만 힘들고, 좋지만 괴롭고, 바르지만 지겹다.
신앙, 특히 개혁 신앙은 옳은 것이고, 좋고, 바르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겐 힘들고, 괴롭고 지겨운 것만 남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옳고 좋고 바른 것에 대한 개념 설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사사건건 걸려 넘어질 것이다.
또 이 모든 것이 내 뜻이나 의지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주 적음에 불과하고,
크고 대부분은 타의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진리, 즉 구원의 진리에 관해 깨닫고자 할 때 인간의 노력과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노력과 은혜 간의 관계는 의지와 예정 간의 관계, 시간과 영원 간의 관계이다.
이것은 충돌도 아니고 평행선도 아니다. 이해도 아니지만 무지도 아니다.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려 할 때,
그것에 따라 삶의 지표를 삼고자 할 때, 이 관계를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먼저 깨달음에 관해 말해보고자 한다. 신앙에 있어 첫 출발은 깨달음(realization)이다.
이것은 모르던 사실이나 숨겨진 진실을 "아! 그렇구나!" 하고 머릿속으로 번뜩 스쳐 가는 순간과 과정에 방점이다.
우리는 이것을 인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느끼면서 인지된 상태에서 향하는 방향은 인식(awareness) 또는 자각이다.
지속적인 인지를 통해 인간은 인식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자기 지식의 보고에 채워지지 않은 상태로 있다.
이와 유사하게 계몽(enlightenment)이란 단어가 있다. 이것도 깨달음을 말하지만
단순한 사실이나 주변 상황을 아는 수준을 넘어, 인간과 우주의 근본적인 진리를 깨달아
무지(어둠)에서 완전히 벗어난 최상위 단계의 깨달음이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할 때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깨달음보다
계몽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데도 이 때문이다.
삶의 이치를 깨닫기에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계몽이라 한다.
계몽은 이해(understanding)와 다른 성격을 지니는데 이해는 인간의 마음 중 이성의 영역이고,
계몽은 계시의 영역, 즉 초월적 영역이다.
진리의 깨달음은 인간이 자신의 영의 기능으로 도달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