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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적 전개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성 금요일부터 이틀간 애도의 단식이 있었고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였다.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편지75)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완전한 단식이 아니더라도 성주간 전체로 확대되었다. 제 1 차 니케아 공의회는 이미 파스카 40일(quadragesima paschae)에 대해, 즉 40일간의 준비시기에 대해 말한다.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다음 40일간 단식을 하였던 예수를 닮고자 하였다.76) 교부들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단식하였고77) 예언자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여행하였던78) 40일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헤맨 여행 등도 자주 언급하였다.
사순 시기는 근본적으로 파스카 이전 제 6 주일에 시작하였고 성 목요일까지 확장되었다. 성 목요일에 로마에서는 참회자들의 성대한 화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주님의 날인 주일에는 단식을 하지 않았기에, 5세기에는 단식의 실제적인 날들의 숫자를 40으로 정하고자 하였다. 이는 두 가지 상황을 이르는데, 첫째, 성삼일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을 떼어놓으면서 36이라는 숫자에 이르게 되었다. 일부 교부들은 한 해의 365일 가운데 10일 정도를 어느 정도 만족하였다. 그러나 일찍이 단식의 시기에 사순 제 1 주일 앞 4일간의 평일을 덧붙이면서 사순시기의 시작으로서 현행 재의 수요일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교회는, 6세기에 50일(Quinquagesima), 조금 더 나아가 60일(Sessagesima), 70일(Settuagesima)이라고 부르던 세 개의 주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대체로 이러한 세 개 주일의 강조는 그 전례가 로마의 주보 성인들(라우렌티우스, 베드로와 바오로)의 성당들에서 거행되었다는 사실과도 연관되며, 고트족과 롬바르드족의 잦은 침입은 그 시기에 기도와 참회의 보완적인 실천행위에 대한 특별한 규정을 만들었다.
그러한 사순 이전의 규정은 이미 파스카 이전 제 8 주일로 사순시기를 시작하도록 하는 비잔틴 교회의 전례 관습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곳에서 토요일과 주일에 단식하지 않을 때부터 40일의 실제적인 단식을 위해 8주간이 필요하였다. 로마에서 형성된 사순 이전 규정에는 참되고 고유한 단식이 요구되지 않았다. 단지 뒤늦은 시기에 전례 예복의 자색과 ‘알렐루야’,79) ‘대영광송’80) 과 ‘테 데움’(Te Deum)81) 의 생략으로 특징을 이루었다. 1969년 전례주년의 개혁에서 이런 사순시기 이전 규정은 사라지게 되었다.
사순시기의 단식에 관하여 옛 관습에 보면 저녁에 먹던 하루 한 끼니의 식사로 만족하였다. 이 외에도 금육과 절주를 하였고, 중세 말까지 몇몇 나라와 그 이후에도 유제품(우유, 버터, 치즈, 계란도)도 금식하였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고대 교회에서 행한 단식의 엄격함에 회의적일 수도 있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식에서 성 닐로가 단식의 비유를 통한 기도82) 를 보면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단식은 성령을 받을 준비, 사악한 영들에 맞서는 실질적인 무기, 세례와 성체성사를 받는 것과 같은 종교 활동에 적합한 준비, 자신의 비용의 절약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도와줄 때 능동적인 신속함 등으로 확장시키기도 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너희는 다른 이를 위하여 죽을 정도로 준비되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바라보라”는 언급을 통해, 가난한 이를 돕기 위해 단식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이타적인 행위였다. 히브리인들과 이방 종교(예를 들면 밀교(密敎)의 단식)들을 보더라도, 고대 교회에서 단식이 권장되었다. 이러한 단식에 관하여, 홀로 잘못된 단식의 실천에 맞선 이사야 예언자83) 의 질책을 이해할 수 있고, 산상설교에 따른 권고84) 에서 단식을 잘못 실천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주님의 끊임없는 질책이 나오기도 한다.
초대 교회의 사순 시기는 그 형성에서 본질적으로 참회자들의 화해와 파스카의 밤에 입문성사를 받으려는 예비자들의 준비 요건들로 특징을 이룬다. 두 가지 모두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는 근본적인 호소를 하였다. 교회가 신자들에게 금욕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신자들의 몸과 마음이 실제로 참회를 이행하면서 공동체 모두를 위한 일치와 봉사가 되도록 가르쳤다.
76)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마태 4,2) ;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루카 4,1이하).
77) 모세는 그 곳에서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 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탈출 34,28).
7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1열왕 19,8).
79) 히브리어로 ‘야훼를 찬송합니다’라는 뜻이다. 유다교 전례에서 유래한, 어린 양을 바빌론의 승리자로서 칭송하는(묵시 19,1-7) 천상의 예루살렘에 대한 이 찬양 환호는, 늘 번역되지 않고 전승되고 있다. 이 환호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교의 전례에서 승리의 기쁜 소식인 복음 전에 한다. 스페인 전례예식만이 복음 후에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부활 승리의 노래로서 이는 여러 전례 안에서 모든 미사, 위령 미사 때에도 노래한다. 이 알렐루야는 부활시기에 특별한 자리를 잡고 있다. 로마 전례에서는 일반적으로 미사와 시간전례에 이를 후렴으로 삼으며, 또한 시간전례의 초대송과 응답송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사순시기에 로마 전례는 알렐루야를 완전히 배제시키고 있다. 바빌론 유배생활 중에 구약의 하느님 백성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부활에 승리자로 돌아오는 왕을 이 찬송의 환호로 칭송할 수 있을 때까지 고향의 노래를 이국에서 노래하기를 원치 않았다(시편 137,2-4). 그 대신에 연송이나 혹은 복음 전 구절이 대치되고 있다. 중세기에는 사순시기 시작 전에 ‘알렐루야와 이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관습이 이루어졌다. 그 관습 중에는 시간전례의 쇄신 전까지 칠순 주일 전날 저녁의 저녁기도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의 부활 환호로 끝맺으라는 규정만 남아 있었다. 1970년 미사 전례서는 알렐루야에 예속된 구절들을 주로 구약성경에서 발췌하고 있다. 그 구절들은 “독서집, 창미사 예식서, 로마 화답송집, 단순 화답송집이나 성가집에서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알렐루야는 구절 없이도 노래할 수 있다. 즉 곡조를 풍부하게 작곡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미사 중에서 복음 이외에 단 하나의 독서를 취한다면 응답 시편과 알렐루야를 취하거나 이러한 화답송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복음 전 환호로서 알렐루야의 역할은 그 날에 알렐루야 전에 부속가와 함께 이 화답송을 노래하라는 규정을 고려하고 있다. 고전 시대에는 미사 외에도 노동을 할 때에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알렐루야를 노래하였다. 특히 가사 없이 마지막 음에 환호하는 것을 매우 선호하였다.
80) 대영광송은 초대 그리스도교의 찬미가들 중의 하나이다. 대영광송은 오늘날 비잔틴 교회의 아침 찬미와 같이 아침기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영광송은 라오디체아 공의회의 결정 이전에(341년과 380년 사이) 초대교회에서는 높은 명망을 지녔다. 로마에서는 대영광송을 미사를 위한 성대한 입당식에 받아들였다. 교황 미사에서는 주일과 순교자의 축일에 대영광송을 하고, 사제의 미사에는 부활대축일과 첫 미사에서만 하였다. 사제에 대한 이러한 제한은 로마에서는 12세기까지 유지된 반면에 북부에서는 이미 카롤링 왕조 시대에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는 모든 미사의 확고한 구성부분이 되었다. 미사전례서 일반 규범(2002년 53항)에 대영광송은 대림시기와 사순시기를 제외하고 대축일과 축일, 특수한 축제 그리고 모든 주일에 하도록 지시한다. 대영광송은 모든 이가 공동으로 부르거나 성가대와 번갈아 부르거나 성가대가 홀로 부를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교송으로 바칠 수 있다. 또한 미사전례서는 대영광송을 노래로 할 수 있으나 다른 노래로 대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차적인 성경 도입구절인 루카 2,14 뒤에 두 소절이 나오는데, 첫 번째 소절은 성부와 성자를 찬미한다. 그리스와 고대 라틴 전통은 성령을 삽입시킨다. 삼위일체적인 소절 뒤에 그리스도 호칭기도가 나오며, 현재 로마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양식에서는 삼위일체로 끝을 맺는다. 형식적으로 대영광송은 경의를 표하는 여러 환호를 묶은 것이며, 승리한 총사령관이 개선 행진을 할 때에 생겨난 찬미가의 한 유형이다. 그에 상응하여 대영광송에서는 그리스도 승리자에게 환호를 드리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아침에 부활하셔서 주님으로서 당신 백성을 감사제로 모이게 하신다. 그래서 대영광송은 미사 안에서 자비송의 집약으로 이해할 수 있다.
81) 떼 데움은 성부와 성자를 찬양하는 라틴어 찬미가이며 사은 찬미가이다. 장단이 잘 맞는 산문시로, 9세기부터 이 찬미가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세례를 기념하여 성 암브로시오와 성 아우구스티노가 지었다고 전해졌으나 현재는 이 가설은 폐기되었다. 어떤 수사본에 ‘Nicet’주교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들어 그 찬미가의 저자를 Remesiana의 Niceta라고 주장했다. Te Deum의 전례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이 찬미가는 부활 전야 예식의 전례문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2절 이하는 전달 기도로서 원시 가사에 첨가된 부분이다. 이 찬미가가 공동체 기도에 삽입된 것은 Arles의 Caesarius의 수도 규칙과 성 베네딕또의 수도 규칙에 발견되며, 현재까지 성무일도서 매 주일과 대축일에 독서의 기도(Matutinum)를 끝맺는 기도로 바친다. 이 찬미가는 또한 감사의 기도를 바치는 큰 행사에 노래로 불렀다.
82) 단식하는 사람의 기도는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원기 왕성한 독수리와 같다. 하지만 무절제하게 폭식하여 뚱뚱해진 독수리는 날아오르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진다.
83)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 너는 이것을 단식이라고, 주님이 반기는 날이라고 말하느냐?”(58,5 이하).
84)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 …(마태 6,16이하).
2. 사순 시기의 개혁, “파스카 참회 시기”
파스카 참회시기를 살펴보는데 있어 미사 경본에 나타난 “사순 감사송 1”이 도움이 된다. 이 감사송은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에 관하여 기도하고 있다. 또한 파스카 준비시기에 대한 참된 목적을 올바르게 성찰하고 파스카 사건을 위해서, 사순 시기가 맡고 있는 임무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본질적으로 사순 시기 전례의 특징을 이루었던 두 가지 교회 제도, 즉 공적 참회와 세례 후보자의 교리교육 준비는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많은 이들이 이 기간의 전례를 점차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기간의 전례에 대한 원천적인 의미의 중요성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제공하였다.
사순 시기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특히 세례의 기억이나 준비를 통하여 또 참회를 통하여 신자들이 더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며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게 함으로써, 전례에서나 전례 교리교육에서 이 두 가지 성격이 더욱더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 사순 시기 전례의 고유한 세례 요소들이 더욱 풍부히 활용되고, 옛 전통에 따라 적절하다면 어떤 요소들을 복구시켜야 한다.
나) 참회의 요소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교리교육에서는 죄의 사회적 결과와 함께, 죄는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므로 이를 멀리하여야 한다는 참회의 저 고유한 본질을 신자들의 마음에 박아 주어야 한다. 또한 참회 행위에서 교회의 역할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고, 죄인들을 위한 기도를 촉구하여야 한다.85)
1969년의 개혁87) 은 이런 지침을 구체화하면서 “전례에 기품 있는 단순함을 다시 부여하고 신자들의 이해 능력에 이를 적합하도록” 의도하였다. 따라서 “주요한 부분이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덜 중요한 부분들이 사용하지 않는 것”88) 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순시기의 근본적인 시작을 제 1 주일로 돌아가도록 결정할 수 없었다. 제 1 주일부터 파스카 성삼일의 시작에 이르기 위해 40일을 갖는다. 그 근거의 제시로서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하면서, 재의 수요일이 사순시기의 출발임을 알렸다. 이리하여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미사에 이르기까지”89) 흐르는 파스카 참회 시기는 주일들을 포함하여 44일, 주일을 포함하지 않으면 38일이 된다.
사순시기 전례에 있어, 특히 성찬례에서 참회, 세례와 그리스도의 수난의 주제 이외에도 자색 전례 복장의 관습과 대영광송과 알렐루야와 같은 기쁨의 요소들은 생략하게 되었다. 대영광송은 근원적으로 미사의 전례에 속하지 않는다. 대영광송은 전례용 성가 문학의 고귀한 유물인 옛 교회에서 부른 찬미가중의 하나이다. 전례용 성가 문학은 일찍이 매우 풍부하였지만 이제는 거의 소실되었으며 성경의 노래들, 특히 시편들을 본보기로 삼아 초기 교회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로마에서는 교황 미사에서, 이후 주교집전 장엄 미사에서 특별한 축일의 경우에만 대영광송을 불렀다. 11세기 말경에만 사제도 축제의 특징을 지닌 미사들에서 대영광송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순 시기에는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제 2독서 후에 후렴을 수반한 복음 환호송인 알렐루야는 이미 고대 교회에서 풍부한 멜로디를 통하여 로마 미사의 특별한 요소였다. 4세기 말에 로마에서는 장례 예식에서도 불렀던 반면에 5-6세기에 사순 시기의 미사에서는 배제되었다. 사순 시기에 이를 보존하였던 그리스인들은 대분열의 시기(1054년)에, 나중에도 로마 교회를 고발하는 요소로 삼았다.
알렐루야 대신에 복음 환호송으로써 이전에는 영송(Tractus)이라고 부른 본문이 사용되었다. 이 영송은 시편 구절의 연속으로 이루어졌고, 대체로 그 멜로디는 아주 오래된 시대에서 기원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단순하였기에, 사순 시기에 특별히 적합하다고 여겼다. 1970년 미사 경본에서부터 복음 환호송은 복음을 준비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였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에 대한 환호송의 형태라는 사실을 고려하였다. 이 때문에 영송의 본문은 주로 신약성경의 구절에서 발췌하여 선택하였다.
85) 「전례헌장」 109항.
86) 「전례헌장」 110항.
87)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27-31항.
88)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57-59 참조.
89)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28항.
3. 사순 시기 전례
3.1. 재의 수요일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죄인들을 위한 공적 참회의 시작은 이미 초대교회부터 사순 시기의 처음, 원천적으로 사순 제 1주일 후 화요일로, 나중에 재의 수요일로 고정되었다. 참회자들은 참회복을 입고 재를 끼얹었다. 특히 갈리아 지역에서 상당히 드라마적으로 이루어졌던 교회로부터 추방 예식이 뒤따르기도 하였다. 애도와 참회적 의미를 표현하는 특별한 참회복의 관습과 재를 끼얹음은 구약성경과 고대 이방인 세계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예수도 갈릴레아의 도시들, 코라진과 베싸이다에서 그들의 완고함을 질책하였을 때에 참회의 상징을 언급한다.90)
고대 교회에서도 이런 관행은 테르툴리아누스, 키프리아누스와 다른 교부들에 의해 잘 알려져 있다. 교회의 공적 참회 제도가 제 1천년 말경에 사라진 반면에 재를 얹는 예식은 보존되었고, 모든 신자들에게 재를 얹어주기 시작하였다. 베네벤토 시노드(1091년)에서 우르바누스 2세 교황은 이런 관습을 교회 전체에 권장하였다. 성직자들과 남자 신자들은 머리에 재를 얹고 여성 신자들은 이마에 재로 십자 표시를 하였다. 재의 특별한 축복 기도는 11세기에, 재를 얻으려고 전년도 성지를 태우는 규정은 12세기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재로 긋는 십자 표시는 “죽음에 대한 회상일 뿐만 아니라 부활에 대한 약속이며, 온전한 의미에서 파스카 예식”이라는 견해이다. 예로부터, 구약성경에서 교회의 최근 문서에 이르기까지 재로 긋는 십자 표시는 짧은 생명과 애도와 참회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은 재의 수요일에 단식과 재를 얹는 보편적인 관행을 보존한다.
로마 미사 경본에 따르면 재의 축복은 복음과 강론 뒤에 행한다. 기도에 대한 권고 이후 사제는 지시된 두 개 기도 중의 하나를 바친다. 두 기도는 “사순시기의 영적 여정”을 언급한다. 두 기도에서 이미 사순 시기의 참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저희가 주님의 은총으로 사순 시기의 재계를 충실히 지키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성자의 파스카 축제를 잘 준비하게 하소서.
저희가 … 사순 시기의 열심한 수련으로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어, 부활하시는 성자의 모습을 닮을 수 있게 하소서.
사제는 재에 성수를 뿌린다. 재는 전년도 성지 주일에 축복하였던 것으로 개별 신자들에게 이를 얹어준다. 지상 낙원에서 쫓겨남을 상기하는 전통적인 문구91) 이외에도 마르코 1장 15절에서 예수의 계획적인 호소도 사용될 수 있다.92) 재를 얹는 예식 동안에 후렴(참회 시편 51편), 화답송이나 그에 적합한 다른 성가를 부른다.
재의 예식은 미사 밖에서 말씀 전례로도 거행할 수 있다. 참회는 생략하고 본기도에서 “참회의 무기로 악한 영과 싸워 물리칠 수 있도록” 청한다. 재의 예식에서 “그리스도인이 싸울 수 있는 힘”을 청하는 이 기도문은 고대 교회와 중세기에 매우 사랑을 받았고 이미 욥기93)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편안한 삶으로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원수인 모든 세력들과 끝으로 자신의 이기주의와 맞서 싸우라고 불리었음을 의식하도록 만든다.
이날 들려주는 두 독서94) 는 참회와 회개에 대한 절박한 호소이다. 파스카 전야의 미사에 이르기까지 알렐루야는 생략하고 그 대신에 복음 환호송을 바친다. 산상설교에서 뽑은 복음95) 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올바른 행위를 멸시하는 것, 즉 자기중심적인 이유로 이를 이행하는 것을 경계한다. 물질적인 단식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는 감사송에서는 고전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더 높은 목적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90)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
91) “너는 흙에서 생겨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창세 3,19 참조) ;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92)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93)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욥 7,1)
94) 요엘 2,12-18 ; 2코린 5,20-6,2.
95) 마태 6,1-6. 16-18.
3.2. 사순 시기의 주일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침96)
가) 사순 시기 전례의 고유한 세례 요소들이 더욱 풍부히 활동되고, 옛 전통에 따라 적절하다면 어떤 요소들을 복구시켜야 한다.
나) 참회의 요소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교리교육에서는 죄의 사회적 결과와 함께, 죄는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므로 이를 멀리하여야 한다는 참회의 저 고유한 본질을 신자들의 마음에 박아 주어야 한다. 또한 참회 행위에서 교회의 역할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고, 죄인들을 위한 기도를 촉구하여야 한다 : 「전례헌장」 109항 이하.
에 따르면, 전례개혁은 사순 전례에 세례적인 차원들을 더욱 잘 활용하도록, 또한 필요에 따라 그 요소들을 옛 전통에서 새롭게 끄집어내어 사용하였다. 이는 회개와 참회로 권고하고 이끌어주는 요소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노력은 특히 사순시기의 주일들에 집중되었다. 사순 시기의 각 주일들은 다른 주일들과 마찬가지로 공통된 요소들이 있으면서, 특별히 고유하고 명백한 특징을 지니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주일에 다른 독서들과 기도와 성가들로 강화된 특별한 주제를 제공하는 복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아가 제 주일, 제 2주일과 제 6주일은 복음과 관련된 고유 감사송이 있다. 제 3-5 주일의 경우, 독서 주기의 가해와 연관성을 갖는다. 그러나 사목적인 이유로 나해와 다해에서도 복음과 일치하는 감사송과 이와 관련된 가해의 복음을 취할 수도 있다.
사순 제 1주일은 3년 주기와 일치하는 마태오, 마르코와 루카에 따라 광야에서 받은 예수의 유혹에 대한 복음을 읽는다. 관련된 감사송은 예수의 40일 단식을 분명히 하고 이로써 “참회 시기”를 거룩하게 찬미하였다. 나아가 감사송은 “옛 유혹자(사탄)의 시기에 거둔” 그분의 승리를 찬양하고 다음과 같은 사실에 감사드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시며, 사순 시기 재계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시어, 저희도 악의 세력을 물리치도록 가르치셨나이다. 이제 저희는 새로운 마음으로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며, 마침내 영원한 파스카 잔치에 들어가리이다.97)
3년 주기에서 나머지 두 독서는 복음의 주제와 쉽게 연결시켜 준다. 사순시기를 우리 회개의 성사적 표지로서 나타내는 본기도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 잘 알고 합당한 품행으로 이를 증거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 이렇게 제 1주일은 그리스도의 싸움(광야, 단식, 배고픔, 유혹)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맞서는 악한 영에 거둔 그분의 승리에 대한 메시지와 그분 영광에 대한 예감(천사들이 내려와 그분을 받들었다)도 포함한다. 파스카 신비에 대한 전조이다.
더욱 분명한 것은 사순 제 2주일 복음에서 파스카 신비에 대한 소개를 하며,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다룬다.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알려주었고 그들을 크게 당황하도록 만들었다.98) 이런 점에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뒤를 따르라는 말이 계속된다. 그때 들려주는 산 위에서 거룩한 변모는 십자가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광으로 건너가는 것임에 대한 확인이다. 감사송도 이런 깊은 생각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그 거룩한 산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시어,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을 밝혀 주셨나이다.99)
구약성경의 독서들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느님의 약속과 그와 맺은 계약을 언급한다. 신약성경의 독서들은 낙관적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언급한다.100) 복음이 그리스도를 이야기할 때 수난과 영광에서 당신의 파스카에 참여를 통하여 우리에게도 전해져야 한다. 이 세상의 어둠속에서 이런 파스카의 소식을 보호할 수 있도록 본기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청하도록 해준다.
하느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따르라고 명하셨으니, 하느님의 말씀으로 저희 믿음을 북돋아 주시고 영혼의 눈을 맑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게 하소서.101)
이렇게 사순 제 1, 2주일은 파스카 신비에 대한 강한 방향을 이룬다. 우리 지상 여정의 길과 목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그리스도를 따라 이 길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의 그 다음 세 주일(사순 제 3–5주일)에서 복음은 세례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례 예식 전체를 지배한다.
사순 제 3주일은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만남102) 에 대한 본문을 제한다. 예수는 이 사마리아 여인과 많은 동네 사람들을 당신께서 메시아이심을 인정받고 신앙으로 이끌어준다.103) 감사송은 예수께서 “거룩한 사랑의 불을 놓으시려고” 신앙의 선물을 주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구약성경의 독서104) 도 세례수의 신비로 이끈다. 세례수는 어떻게 모세가 하느님의 명에 따라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도록 하였는지를 언급한다. “그리스도가 그 바위였습니다.”105)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바오로는 이 구약성경의 사건을 세례의 그리스도교 사건과 연결시킨다. 이는 신약성경의 독서가 보여주는 것처럼106) 예수의 희생제사적인 죽음에 근거를 둔다.107)
입당송과 복음 환호송 그리고 영성체송도 구원해주는 세례수의 주제를 다룬다. 반면에 본기도는 죄에 짓눌려 있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통해 우리에게 용서를 청하도록 한다. 예물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형제들을 용서하는” 힘을 주시라는 청원을 덧붙인다.
이런 방식에서 “가해”의 사순 제 3주일이 본질적으로 세례의 주제로 특징을 이루었고,108) 반면에 “나해” 복음은 성전 정화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성전 정화의 이야기에서 예수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109)
“다해”의 복음에서 예수는 두 가지 역사적인 소식에서 실마리를 찾고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말로 이를 설명하신다. “너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나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와 연결된 비유110) 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해의 주일도 근본적으로 구원의 회개를 주제로 다룬다.
사순 제 4주일 “가해”도 세례의 주제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예수는 먼지와 침을 개어 만든 약간의 진흙을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면서, 태어날 때부터 눈먼 이를 낫게 해주신다. 이렇게 “사람의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 그를 인도하신다.111) 초대 교회에서는 세례를 “조명”이라고 규정지음으로서, 세례받는 이들을 “조명 받은 이들”이라고 가리켰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 복문의 세례적인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감사송은 다음과 같은 말과 이런 관계를 찬양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강생의 신비를 통하여 어둠 속에서 살던 인류에게 신앙의 빛을 주시고, 옛 죄의 종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재생의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나이다.112)
구약성경의 독서에서 언급된 이스라엘 왕으로 목동 다윗의 축성113) 도 세례의 전망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하느님의 자유로운 부르심이고 성령의 선물이며, 그리스도의 왕다운 사제직에 대한 참여이다. 더욱 분명하게 이렇게 시작하는 신약성경의 독서114) 는 복음을 언급한다. 그 독서는 고대 교회의 그리스도론적 찬미가의 구절, 즉 “동방의 상상력이 풍부한 언어로 나타내는 세례 찬미가”115) 로 끝난다.
이러한 빛의 주제는 다시 한 번, 복음 환호송116) 과 영성체후 기도117) 에서 나타난다. 입당송118) 은 기쁨으로 초대한다.119) 본기도120) 와 예물 준비기도121) 는 파스카를 위해 앞당겨진 기쁨을 특징으로 이루고 있다. 이 주일의 특징은 다음 수요일에 “귀의 열림”(에파타)122) 에 대한 예비자 세례 예식의 준비단계와 연관이 있다.
16세기에 맨 처음으로 언급하는 자주색의 절제된 색상 대신에 이 주일에 사용하는 장미색의 전례 복장은 이 날이 “황금 장미”를 축복하는 교황 관습에 그 기원을 둘 수 있다.123)
“나해”의 복음124) 에서도 파스카 신비 곁에 빛의 상징이 폭넓게 나타난다. 신약성경의 독서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우리의 참여를 선포할 때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면을 다룬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125)
“다해”는 복음에서 돌아온 아들의 비유, 즉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의 선하신 부성애에 대한 찬미가를 전해준다.126) 주제는 복음 환호송에서 이미 강조되었고 그 다음 영성체송에서 반복된다. 신약성경 독서127) 는 믿는 이들과 세례받는 이들에게 새로운 창조를 의미하는 하느님과 화해에 관하여 말하고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라는 절박한 호소로 끝맺는다.
사순 제 5주일 “가해”는 라자로의 부활에 대한 복음이라는 이유128) 로 그 특별한 강조를 지닌다. 예수는 “부활과 생명”으로서 소개하신다.129) 이것이 실제적으로 세례 후보자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죽음의 운명이 새겨진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새롭고 혁명적인 메시지이다. 이전 두 독서130) 도 무덤을 열고 약속된 땅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생명력을 주는 성령에 대해 말한다.
이 주일의 전례도 고유 감사송에서 바친 것처럼 이미 파스카 선포인 구원의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내적인 핵심으로 이끌어준다.
오늘 인류를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거룩한 신비를 통하여 새 생명으로 이끌어 주셨나이다.
사순시기는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며, 또한 신자들은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보속을 통하여 열정적이고 거룩한 신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여 파스카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 가운데 사순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주간’이라고 하며, 성지주일 미사에서는 주님 수난사가 봉독된다. 성주간은 사순 제 6주일인 ‘성지주일’136) 부터 시작하여 부활 성야 전 ‘성토요일’까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간이다. 아울러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부활 성야 미사에 이르는 파스카 삼일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성주간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장 깊게 묵상하고 체험하는 시기로서 주님 수난과 부활을 성대한 예식을 통하여 기념하고 재현하는 전례주년의 중심이자 절정인 것이다.
성주간은 예수의 역사적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는 전례가 거행된다. 그 기원은 예루살렘 전례에 있으며 예수의 역사와 일치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성주간의 틀은 이미 5-6세기경에 완성되었다. 역사적으로 성주간은 교회력에 있어서 1년 중 가장 의미 깊은 주간으로 기념되어 왔으며,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려왔으며137) , 그 명칭들을 통해 성주간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 할 수 있다. 결국 성주간은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중요한 기간으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부활하신 주님께 더 가까기 나아가고,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 합당한 감사를 드리는 거룩한 주간이다. 성주간 기간의 각 날에는 고유한 전례의 의미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파스카 사건을 재현하는 의미에 중심을 두고 있다.
96) 사순 시기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특히 세례의 기억이나 준비를 통하여 또 참회를 통하여 신자들이 더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며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게 함으로써, 전례에서나 전례 교리교육에서 이 두 가지 성격이 더욱 더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97) 사순 제 1주일 감사송.
98)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1-23).
99) 사순 제 2주일 감사송.
100)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20).
101) 사순 제 2주일 본기도.
102) 요한 4,5-42
103)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그분은 사람들에게 “물”을 내어준다. 그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고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04) 탈출 17,3-7.
105) 1코린 10,4.
106) 로마 5,1-2. 5-8.
107)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108) 전례주년 가해의 사순 시기는 특별하게 공동체 전체가 세례준비와 세례의 기억과 갱신으로서 사용하기에 적합한 독서로 이루어져 있다. 가해의 전례적인 특징을 세례로 보는 견해가 전반적이다.
109) 요한 2,13-25.
110) 루카 13,1-9.
111) 요한 9,1-41.
112) 사순 제 4주일 감사송.
113) 1사무 16장.
114)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 ; 에페 5,8-14 참조.
115) “잠든 그대여, 눈을 뜨라, 죽은 이들 가운데서 깨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춰주실 것이다.”
116)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17)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비추시니, 은총의 빛으로 저희 마음도 밝혀 주시어,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생각하며,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118)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는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119) 레따레 주일(Laetare)은 사순 제 4 주일을 가리키는 이 말은 “예루살렘아, 기뻐하라!”하고 외치는 라틴어 입당송의 첫 단어에서 유래한다. 사순 시기 중간에 회중은 부활의 서광을 앞두고 마지막 승리를 기뻐하며 휴식한다. 꽃을 사용할 수 있고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으며 장미색 전례복을 입을 수 있다. 장미색 제의를 사용하는 관습이 개발된 것은 이 색깔이 황금색 전례복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이날 교황은 교회의 성대한 전례를 생각하며 황금색 제의를 입고 축복한다.
120) 하느님, 말씀이신 성자를 통하여 오묘하게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이 다가오는 파스카 축제를 열렬한 믿음과 정성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121) 주님, 기쁜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올바른 마음으로 천상 영약인 성체를 기리며,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 제사를 정성껏 드리게 하소서.
122) 에파타 예식은 정화와 조명의 기간 끝에 거행하는 예식이다. 곧 받게 될 입문 성사들을 준비하면서 일반적으로 성 토요일에 에파타 예식을 거행한다. 예수께서 귀먹은 반벙어리를 낫게 하시는 것(마르 7,31-37)처럼 이 행위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 표지로 보여 준다. 주례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선발된 예비신자의 오른쪽 귀와 왼쪽 귀 그리고 다문 두 입술을 만지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 이 귀와 입을 열어 주시어(에파타 Ephphetha) 이들로 하여금 귀로 들은 신앙을 입으로 고백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123) 세례 준비와 관련은 없으나, 대중의 관습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대중 관습을 통해서 로마에서는 이미 10세기에 겨울을 이겨낸 봄의 승리를 축제로 지냈고, 특별한 경우에 종종 꽃을 바치곤 하였다. 11세기부터 교황은 자연의 꽃들 대신에 비싼 조화를 사용하였다. 처음부터 몇몇 고위 관직에게 그다음에 로마 외곽의 유지들에게 조화를 주었다.
124) 요한 3,14-21 : 니코데모와 나눈 대화.
125) 에페 2,4-6.
126) 루카 15,1-3. 11-32.
127) 2코린 5,17-21.
128) 요한 11,1-45.
129)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130) 탈출 37,12ㄴ-14 ;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8-11)
131) 요한 12,20-33.
132)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브 5,7-9)
133)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제 1독서 : 예레 31,31-34).
134)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135)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필리 3,8-14).
136) 참고, I.H 달매-P.쥬넬, 김인영 옮김, 『전례주년』,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83, 80-81: 빨마와 수난주일, ‘위대한 주간이라 불리는 파스카 주간으로 들어가는 주일’에 4세기 말 예루살렘에서는 주님과 제자들이 행렬을 재현하면서 예수께서 거룩한 도읍으로 개선하심을 기념하였다. 성 레오 대교황 때 사순 6주가 수난주일이 되었다.
137) 참고, 수난주간: 초세기에 그리스도의 수난 사건을 기념한데서 기인하는 명칭, 파스카 주간: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수난은 항상 부활과 연결되기에 생겨난 명칭, 권위 있는(진정한) 주간: 이 기간에 기념되는 사건의 중대성을 암시하기 위해 생긴 명칭, 사면주간: 전통적으로 몇몇 교회에서 성 목요일에 속죄자들을 사면해 주었기 때문에 생긴 명칭, 구원의 주간: 동방교회에서는 이 주간에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대속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붙인 명칭.
3.3. 성주간
출처 | 백슬기 기자. 복음으로 예수 수난 묵상하는 ‘성주간’. 2014, 평화신문.
사순시기는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며, 또한 신자들은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보속을 통하여 열정적이고 거룩한 신심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여 파스카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 가운데 사순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주간’이라고 하며, 성지주일 미사에서는 주님 수난사가 봉독된다. 성주간은 사순 제 6주일인 ‘성지주일’부터 시작하여 부활 성야 전 ‘성토요일’까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간이다. 아울러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부활 성야 미사에 이르는 파스카 삼일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성주간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장 깊게 묵상하고 체험하는 시기로서 주님 수난과 부활을 성대한 예식을 통하여 기념하고 재현하는 전례주년의 중심이자 절정인 것이다.
성주간은 예수의 역사적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는 전례가 거행된다. 그 기원은 예루살렘 전례에 있으며 예수의 역사와 일치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성주간의 틀은 이미 5-6세기경에 완성되었다. 역사적으로 성주간은 교회력에 있어서 1년 중 가장 의미 깊은 주간으로 기념되어 왔으며,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려왔으며, 그 명칭들을 통해 성주간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 할 수 있다. 결국 성주간은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중요한 기간으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부활하신 주님께 더 가까기 나아가고,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 합당한 감사를 드리는 거룩한 주간이다. 성주간 기간의 각 날에는 고유한 전례의 의미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파스카 사건을 재현하는 의미에 중심을 두고 있다.
3.4.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성주간이 시작되는 날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 전례는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입성행렬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는 수난 미사로 이루어진다. 즉 성지주일은 행렬에 앞서 성지가지(종려나무, 올리브 및 사철 푸른 나뭇가지를 사용할 수 있다)를 축성하고, 성당에 들어가는 장엄한 행렬예식을 거행하며, 부활절을 준비하는 마지막 주일이라 “빨마주일” 혹은 “수난에 버금가는 주일”이라고도 하였다. 성주주일의 행렬은 4세기경부터 예수 부활 한 주 전 주일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렬”을 재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도읍으로 개선하심을 기념하였다. 서방교회(로마를 중심으로)는 5세기경 이 마지막 준비주일을 “수난주일”이라고 하여 “수난 복음”을 봉독하였다. 그리고 9세기 와서 이 두 가지 전통이 합쳐져서 빨마가지를 들고 행렬을 하고 수난복음을 듣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정착이 된다. 사제는 사순시기에 사용하는 자색(보라색)제의를 벗고 붉은 색 제의를 입으며 수난 복음을 장엄하게 봉독한다.
신자들은 행렬시 그리스도의 승리를 노래하며(시편 24편과 47편) 그리스도에 의한 인간구원의 신비를 경축한다. 이 때 성지를 축성하고 이를 흔들며 입성하시는 그리스도를 환호하게 된다. 종려나무가지는 승리(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하며, 올리브 가지는 평화(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켜 주는 기능)를 상징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였던 환영을 의미한다. 미사 중에는 수난 복음을 봉독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앞서 알리는 예고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체포되시어 수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내용의 긴 수난복음이 낭독된다. 수난복음은 이미 초세기 이후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노래로(수난극 형식) 불려졌다.
예루살렘 입성 기념138) 은 명칭대로, 주님께서 이날 군중의 환호 속에 수난과 영광의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음을 기념하는 것이 목적이다.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행사가 아니라, 그 내면적 의미, 곧 주님과 함께 수난의 길로 들어가고, 수난을 통해 부활한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고 따르는 데 있다. 즉 미사 전 입당예식은 수난 시기에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주교좌성당과 수도원의 전례서에 의하면 전례에서 사용되는 성지가지는 성 밖에서 축성을 하게 되고, 축성을 끝내고 나면 회중은 복음을 듣고 난 후에 성지가지를 들고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행렬139) 을 하는 전례를 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식은 회중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나 로마 교황청 전례에는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하고, 단순하게 라테란성당 내 관저 한 경당에서 강복한 성지가지를 나누어 주어 대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짧은 행렬을 택하여 전례를 시작하였다.
이날 전례의 핵심은 축성된 나뭇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가 고대하던, 죽음을 물리칠 왕이자 메시아라는 신앙140) 을 기념하는데 있다. 성지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부활 대축일 전까지다. 성지주일의 의미는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된 메시아이신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예수 부활 대축일 전까지의 한 주간을 오로지 주님의 수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1년 중 가장 뜻 깊은 주간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 성지주일의 전례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파스카를 준비하는 성삼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성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사건과 부활사건141) 을 기념하는 가장 거룩한 기간이다.
무엇보다도 성지 주간 내에 성 목요일 오전에는, 4세기 말 이후 재의 수요일에 공적 참회를 시작한 이들을 위해 화해 예식을 하는 날로 정해져 있었지만, 이날의 참회 예식은 19세기 중반 이후 성목요일 전례에서 사라졌다. 또한 성목요일은 성유를 축성하는 날142) 이었다. 성유를 축성하는 관행은 이미 3세기 초의 문헌인 사도전승 제5장143) 에 수록되어 있으며, 성목요일에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 사용할 기름을 축성하는 관행이 확립된 것은 8세기경이었다.
138)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예수의 입성을 통해서 그들이 바라는 해방의 시간이 다가 온 것 같이 기뻐하며 환호하며 반긴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으며,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타니아라는 곳에서 죽은 나자로를 살리신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그들에게 자유와 구원을 가져다 줄 분이라는 희망에서 환영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완수하기 위하여 입성을 하신 것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맞이하는 성지 주일의 의미와 유대인과 차이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외적인 특징만을 강조하기보다 내적으로 담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완성하는 것에 강조를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39) 『성주간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0. 1) 긴 행렬시: 적당한 시간에 교우들은 축복할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입당할 성당 밖의 작은 경당이나 적합한 장소에 모인다. 행렬이 시작되면 미사를 거행할 성당으로 행렬을 시작한다. 향을 사용하면 선두에 향을 피워 들고, 그 뒤에 아름답게 장식한 십자가가 서고 그 양 옆에 촛불을 켠 든 봉사자가 선다. 그 다음에 사제가 봉사자들과 함께 서고 그 뒤에 나뭇가지를 든 교우들이 따른다. 2) 성대한 입당식: 성당 밖에서 행렬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성당 안에서 교중 미사 전에 성대한 입당식으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한다. 복음 봉독이 끝나면 사제는 봉사자들과 대표 교우들과 성당 중앙을 통해서 주례석으로 성대하게 행렬한다. 이때 사제는 후미에 위치한다. 3) 간단한 입당식: 사제가 제단으로 나올 때에 아래 입당송과 시편을 노래한다.
140) 참고, 『한국가톨릭대사전6권』 복자-상황윤리, 성주간, 4783.
141) 참고, I.H 달매-P.쥬넬, 김인영 옮김, 『전례주년』, 가톨릭대학교출판부,1983, 50: 성 아우구스티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묻히셨으며 부활하신 지극히 거룩한 삼일”을 말하였다. 암브로시오는 수난의 날과 부활의 날을 고통의 날과 환희의 날로 비교하였다.
142) 참고, 주교에 의해 축성된 기름으로 교회 전례에 사용된다. 성유는 정신적 자양분과 은총의 빛을 상징한다. 성유에는 축성 성유 O.S (Oleum Sacrum, Sanctum Chrisma O.S 혹 S.C)와 병자의 성유 O.I (Oleum Infirmorum), 성세 성유 O.C (Oleum Catechumenorum) 등의 세 가지가 있다. 축성 성유는 올리브기름에 향유를 섞은 것으로 영세식과 견진성사, 사제와 주교서품, 성당축성 등에 사용된다. 병자 성유는 순수한 올리브기름으로 병자성사에 사용되고, 성세 성유는 역시 순수한 올리브기름으로 영세식의 예비 신자에게 도유하기 위해 사용된다. 원칙적으로 성유는 성 목요일 오전미사 때, 주교좌성당에서 집전되는 성유축성미사에서 주교가 축성하여 각 본당으로 분배한다. 그러나 1970년 교황청의 예부성성(禮部聖省)은 꼭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날에도 주교 혹은 주교좌로부터 이를 축성할 권리를 받은 사제가 성유를 축성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또한 성유 역시 올리브기름이 아닌 다른 식물성 기름의 사용을 허가하였다.
143) 이형우 역주, 『사도전승』, 분도출판사, 1992, 91: “하느님, 이 기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이 기름을) 사용하고 받는 이들에게 건강을 주소서. 당신이 왕들과 사제들과 예언자들을 기름 바르셨듯이, (이 기름을) 맛보는 모든 이에게 용기를 주시며, (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건강을 허락해 주소서”
3.5. 성주간 평일
1) 성주간 월요일
이날 미사 중에 베타니아에서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었으며, 예수께서 그 일을 당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임을 설명하는 복음(요한 12,1-11)이 낭독된다.
2) 성주간 화요일
이날에는 예수께서 유다에게 배반당하실 내용과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는 내용의 복음(요한 13,21-33. 36-38)이 낭독된다.
3) 성주간 수요일
예수께서 파스카 축제를 지키신 내용의 복음(마태 26,14-25)이 낭독된다. 성주간 월요일부터 수요일 까지는 특별한 전례예식이 없다.
원본출처: 대전교구 사목국 홈페이지 http://samok.djcatholic.or.kr/pastoral/precedentedu/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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