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1 .9 .25 .
본문 : 누가복음 19 : 1 - 10
제목 : 다시 시작 할 수 있습니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나의 가고 있는 길을 생각하게 됩니다.
첫사랑을 상실한 채로 그저 버릇처럼 교회를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차갑게 식은 채로 그렇게 습관처럼 주님을 주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이 날 만나시면 과연 뭐라고 하실까?
그리고 나는 또 그 분께 뭐라고 말씀 드릴까...? 지난 주일 말씀을 통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말씀은 지난 한 주동안 나의 처음 마음을 다시 회복하려고 열심을 다했던 사람만이 받아 들일 수 있는 말씀이 될 지도 모릅니다.
처음 마음을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오늘 말씀은 다시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그냥 하나의 연설에 불과하게 들려지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시간 다시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처음 마음을 다시 회복케 해달라고,...
오늘 본문에는 당시 같은 민족이면서 민족의 세금을 착취하여 호의호식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자기가 가졌던 것을 기꺼이 돌려주겠다던...,
물질의 기쁨을 버리고 기꺼이 주님을 모시는 가장 큰 기쁨을 만끽 히려는 삭개오를 바라보시며 그 나무 아래 서 계셨던 주님은 얼마나 마음이 설레셨을까?
아마 삭개오 보다도 더욱 가슴이 뛰셨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군대엣 첫 휴가를 나오면 첫 휴가를 나오는 아들의 마음도 설래이겠지만, 그러나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이 더욱 설래일 것입니다.
딸이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 온 후에, 처갓집으로 인사를 하러가면 엄마를 보는 딸의 설래임도 크겠지만, 그러나 딸을 시집보낸 엄마의 마음 엄마의 마음보다는 아빠의 마음이 더 설래 이지 않겠습니까?
오늘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처음마음이 회복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회복된 성도님들이 마음속으로 그래 다시 시작해 보자 하는 결단을 내리게 되는 오늘 이 순간, 여러분은 다시 흥분과 감격과 기쁨의 엔돌핀이 솟구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일이 전개 될 지 설래이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부모를 사랑하게 되고, 부모를 이해하게 된 것 보다 더 앞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부모님들께는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치고 잊고 지냈던 하나님을 향한 처음 마음을 회복하여 새롭게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새롭게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학교에서 무언가 일을 시작하기위해 설래이고 있는 여러분의 마음보다 그 마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우리 예수님의 마음이 아마 더 흥분되고, 즐거워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요한일서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그 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보다 더 많은 설래임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쥐들이 얼마나 견디는지 측정해 보았더니 캄캄한 독 안에서는 3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고 독 안에 한줄기 햇빛을 비추었더니 36 시간동안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어떠한 정신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기도 하고 쉽게 절망하기도 합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희망이 있을 때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문제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도 희망이 남아 있다면 삶의 의욕이 남아 있다면 어딘가에 문이 보일 겁니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 삶에 대한 열정이 충만한 사람에게 성공의 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 도움의 손이 뻗칠 수도 있습니다.
성공은 주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자 에게 찾아가는 열정적인 노력의 산물입니다.
성경의 수없이 많은 인물들을 우리가 살펴 보면 완벽한 사람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엑 큰 위로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신약을 구약보다 많이 읽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쉽다.,
예수님이 나와서 그런다고들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구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들은 믿음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싸움으로 보나 물질로 보다 좀 나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다윗은 외모도 출중했습니다. 싸움도 잘했지요, 여호수아도 외모와 싸움을 잘했지요.. 아브라함은 거부였습니다. 아들이삭, 약곱도 거부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와 예언자들도 출중한 믿음과 무언가 나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나오는 사람들을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 여러분 우리보다 잘 난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주위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못생겼지요.. 베드로는 어부였고 무식했지요,. 사마리아 여인은 거의 창기에 가까운 여자 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많이 배웠지만, 그는 육신에 만성질병이 있었습니다. 간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키도 작고 못생겼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우리가 좀더 쉽게 신약을 읽고 있는것 아닐까요? 예수님 참 감사하고 베려심이 깊으신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모난 사람들만 찾아 다니신 것이 말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은 처음 마음을 회복했거나, 유지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의 완벽한 공통점은 다시 일어섰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앞에 있는 표지판인데

"
좌절금지"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서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의 표현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사람"으로 보고 부정적인 사람은 "넘어져서 울고 있는 사람"으로 봅니다.
어떻게 보이십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두려워 하지않는 절대 철인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철저하게 인간 이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두려움과 좌절과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결단과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순종과 충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삭개오, 우물가의 여인, 베드로, 바울,
이들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모한 사람이며, 이들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나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들입니다.
부자청년, 가롯유다, 많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
이들은 자신의 것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또 의심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틀리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바라보고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신하였기에 담대했다는 것입니다. .[히 10 :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 16 :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감사했습니다.
불평할 것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불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자라날 틈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살전 5 :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기뻐했습니다.
슬픔이 없다 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처럼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밭에 소출이 없어도,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는 고백입니다.
믿음이 많은 선배들은 좌절하고, 낙망하였고, 그리고, 많은 죄 가운데 낙심하고 있었지만,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크신 주님의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 또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비록, 힘들고, 아프고, 좌절하고, 지치고, 나의 죄로 인해서, 경제의 어려움으로 무기력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에 있는 우리 성도님들은 처음 마음을 다시 회복하고, ,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다시 시작하므로 이루실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믿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 우리가 지금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여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여 주셨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나를 순종하게 하며, 충성된 종이 되게 합니다.,
제 성경에 써놓은 "Nothing is impassible with GOD"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눅9:23)
오늘 내가 다시 일어 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그 축복을 알게 된 성도님들.. 그 축복의 비밀을 받아들여 행하시는 여러분이 되셔서 축복이 허상으로 말로만 생각으로만 이루어 지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에게 지금도 이루어지고 , 앞으로도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