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으로 시작해야 웃음으로 끝난다
“어제는 뭘 하고 놀았니? 무얼 하고 놀 때 친구들이 제일 많이 웃니?”
중학생 딸이 등교하기 전에 내가 늘 물어보는 말이다.
“엄마, 우리는 개그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라고요. 하지만 지금 엄마가 웃음거리가 궁하신 듯하니 하나 알려드리죠.
어제 친구들이랑 만들어낸 새로운 놀이가 있거든요. 하지만 어른들이 하기엔 아주 쪽 팔리는 일인데.”
‘쪽 팔린다‘는 말에 오히려 구미가 당겼다.
“놀이 제목은 ‘아이 쪽 팔려‘. 누가 더 창피한 행동을 해서 남을 웃기나 겨루는 게임이에요”
딸아이는 자기들이 계발한 놀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세한 예를 들어 주었다. 매일 타고 다니는 109번 혹은 151번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저씨, 이 버스 뉴욕 가는 버스 맞아요?”
이때 기사 아저씨의 반응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난다. 길을 걸어오는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묻기도 한다.
“아저씨, 우리 아빠 아니세요?”
이번에도 아저씨의 반응이 얼마나 우스운지가 관건이다.
딸아이의 설명을 듣고 나니 잘한다고 해야 할지 당장 그만두라고 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엄마, 걱정마세요. 이 놀이는 시험 기간에는 하지도 않고, 안 하면 또 잊어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공부하면서 놀고, 놀면서 배우는 게 취미예요.
사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훨씬 잘 놀고 잘 웃는다고요. 적어도 학교에서 잘 웃는 애들은 존재감이 있어요. 존재감 없는 친구들이 가끔 사고를 친답니다. 엄마 안녕!”
딸을 보내고 출근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아이들의 유치한 놀이를 웃음치료에 적용해 봐도 좋겠다 싶었다.
근무 시작 전 아침에, 의료진과 함께하는 ‘건강 증진을 위한 웃음치료’가 그 첫 번째 대상, 내가 생각해 낸 유치한 놀이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웃는 형식을 명령하는 것이다.
가위 바위 보에서 승리한 간호사, 곰같이 생긴 의사에게 여우처럼 웃으라고 명령했더니 여우 흉내를 내며 잘도 웃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웃음이 폭발했다.
누군가는 매미처럼 웃어 보라고 명령하고, 상대방은 기발하게도 산부인과 과장 등 뒤에 매달려 30초간 왕매미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한쪽 발로 토끼처럼 깡충 깡충 뛰면서 박장대소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은 3초도 채 못하고 넘어져서 또 웃음바다가 되었다.
웃음이 웃음을 만들어내는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서로에게 어떻게 웃을지 먼저 지시하고 난 뒤 가위 바위 보를 하도록 했다. 진 사람은 자신이 사전에 지시한 그대로 해야 한다.
다들 포복절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60킬로그램의 마른 체구에 사람 좋고 환자 잘 보기로 유명한 전임의 한 명은 상대방에게 110킬로그램의 거구인 의사 Y를 업어야 했다.
Y를 업으려고 애를 쓰는데 그 순간 Y는 오히려 그를 번쩍 들어버렸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책상을 치고 발을 구르며 웃어댔다.
몇 명은 밖으로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얼마나 그렇게 웃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배를 움켜쥐고 엎드려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옆사람 손을 잡고 이렇게 외쳤다.
“친구야, 오늘 아침 내 옆에 앉아주어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그러니까 오늘 점심은 네가 사라. 아하하하하!”
의사들이 참 유치하게 논다고 할지 몰라도, 어쩔 수 없다. 유치함이야말로 가장 천진난만한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건강증진을 위한 웃음치료가 있는 날 오후쯤 되면 어김없이 한 마디씩 한다.
“오늘은 환자 보기가 힘들지 않네요. 매일 아침 웃고 진료를 시작하면 좋겠어요”
환자들은 알고 있다. 의사들의 미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병세를 읽어낸다. 때로는 의사의 표정 때문에 잘못 판단하기도 한다.
아무리 검사 결과가 좋다고 말해도 의사 얼굴이 굳어 있으면 자신을 속인다고 행각한다.
그래서 다시 한방이나 용하다는 병원을 수소문하게 되고, 믿을 수 없는 숱한 기능 식품을 구입하는데 돈을 쓴다.
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방사선치료와 약물치료가 끝나고 병세가 호전되었는데도 의사의 표정이 처음 병세를 말할 때와 똑같았기 때문에 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환자와 보호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심각한 병을 앓는 환자를 보면서 웃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의사가 웃는다고 해서 환자에게 나쁠 일은 없다.
병원이라는 환경의 특성상 웃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웃음이 가득한 곳이라야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이제는 의료진을 위한 웃음치료가 여러 병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환자들과 함께 만드는 ‘펭귄 웃음’은 인기 만점, 효과도 만점이다.
“웃음, 나를 치유하는 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