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동반자(MTB가 wife보다 좋아?)
요즘은 MTB(Mountain Bike)가 산악자전거의 약자이며 이 또한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건강에 좋다는 것에 대한 반론은 없는 듯 하다
내가 MTB에 입문한지도 8년 차이고 대부분 매주 말 또는 공휴일에는 MTB와 시간을 같이 하다 보니 wife보다 MTB가 더 좋으냐 는 말을 집사람으로부터 수없이 들어 왔다
그러나 나의 답변은 항상 감정이 없는 하나의 생활도구가 어찌 평생을 같이 한 당신과 비교를 하느냐고 일변하고 만다
나에게 MTB는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다 보니 내가 마음먹고 가고자하는 데로 따라 와주고 또한 나의 애타는 감정까지 알아서 해결까지 해주니 나와 MTB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사의 삶과 맥을 같이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글을 쓰기로 하였다
대자연은 지상 최대의 헬스장
자연경관의 참다운 운치를 느끼는 정도는 speed에 반비례한다고 하는데 우리 내 금수강산을 그 옛날 김 삿갓 과 같이 자유스럽게 걸어서 다닐 수 있다면 더 할 나위는 없지만 걷는 것만으로는 심폐기능강화와 체력단련에는 한계가 있고 또한 하루에 등산할 수 있는 거리는 몇km 내외이고 보면은 오늘날 인간이 만든 MTB를 활용하면 자연과의 호흡은 물론 체력 향상을하면서도 하루에 60-80km의 투어는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빼어난 자연 경관을 지니고 있어 어디를 가더라도 수려한 숲 속의 계곡과 들녘은 한 폭의 그림이라고 본다
특히 강원도 대관령의 선자령에 서는 남쪽으로 발왕산, 서쪽으로 계방산 서북쪽 오대산, 북쪽의 황병산 주능선 서쪽에는 억세 풀 밭과 초원지대로 목장과 주변의 수목이 울창한 지역이다
우리 일행은 지난 6월 첫째 일요일 아침 4시30분에 밴 차량 지붕에 마련된 캐리어에 자전거를 싣고 현지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 하니 아침 8시, 여기서부터 MTB로 선자령 까지 오르는 길은 최근 인적이 다닌 흔적이 별로 없고 좁은 오솔길로서 우거진 나무와 억새풀들이 우리 내 키와 크기가 비슷하여 여기가 길인지 아니면 숲 속 풀밭인지 구분이 좀처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잘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 이다 가 일행 중 몇 사람은 자전거가 돌 뿌리에 걸리고 나무 가지에 걸리어 작은 상처가 발생하는 신고식을 하고 나니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는 틈 사이로 얼굴을 살짝 내미는 황토 빛 토양이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임을 살며시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이 길 안내에 따라 구불구불 한없이 이어지는 오솔길을 페달링 하면서 그 옛날 우리 내 조상들이 많은 사연을 가지고 오직 이 길로만 다니었을 것을 생각 하니 비록 시대차이는 있으나 잠시나마 그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햇빛이 강하게 내려 쪼이는 무더운 한 여름 깊은 숲 속에 들어서면 어쩌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살만을 볼 수 있을 뿐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또 하나의 시원한 다른 계절을 맞이하게 되는데 계곡에서 자라는 수서 식물과 야생화, 계곡 따라 여울져 흐르는 물소리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풀벌래 들의 소리, 이모든 것이 어떤 지휘자의 연출도 없이 함께 울려 퍼지는 대자연의 교향곡이 연출되는 여기야말로 지상낙원임이 아니랴
마크트웨인이 "인간이 잘못으로부터 바른 것을 분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지적으로 우월함을 증명한다. 그러나 잘못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을 할 수 없는 다른 생물보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열등함을 증명한다." 라고 한말이 떠오른다
이는 분명 우리 인간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또한 지역 사회를 개발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자연을 훼손시키었는가? 그것자체가 원죄가 아닌가? 자연계에서는 동물과 동물, 식물과 식물 아니면 식물과 동물들이 서로의 필요이익을 나누어 가지며 상호공생을 같이 하고 있어 오늘날과 같이 모두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꽃과 나비, 벌들의 관계를 보면 꽃은 수정을 위하여 제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치장하며 곤충을 불러들이고 그 대가로 꿀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오늘날 문명인임을 자부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또한 그것이 이 대자연의 지상낙원과 견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았다.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나날이 발전해 가는 IT기술은 컴퓨터 등의 개발로 모든 정보를 한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생활의 편리성을 주었고, 자동차 문명의 기술 발전은 운송수단의 신속화를 가져와 지구촌 1일 생활권에 왔으며,
기계화장치는 구조물의 거대화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도시의 빌딩 숲을 이룩하는 혁신들을 가져온 것 들 모두가 자연자원을 활용하여 얻은 것이다. 그대가로 자연현상에 도움을 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오히려 자연 파괴로 동식물의 삶의 터전을 축소시키고 생태질서의 혼란과 환경오염 등으로 오늘날 우리 삶에 많은 불편과 악영향을 주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 못하는 현실이다.
또한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인간은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 존재인가를 우리의 입장이 아닌 호주의 한 원주민 추장이 문명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말한 내용에 동감하면서 말로모건의 "무탄트"의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첫째로, 문명인은 더 이상 개방된 환경에서 살지 못한다 .대부분의 문명인은 들판에 발가벗고 서서 비를 맞는 게 어떤 기분인지도 모른 체 세상을 떠난다. 저들은 인공냉난방이 완비된 건물을 짓느라 평생시간을 낭비하고 정상적인 기온에서는 일사병에 걸릴 정도로 매우 미약하다.
둘째로 문명인은 원주민과 같은 소화기관을 갖추고 있지 않다, 저들은 식량을 가루로 빻고, 죽으로 만들어 가공하고, 보존해야 한다, 저 들은 자연에 따른 음식보다 자연에 어긋나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 심지어는 기본음식과 공중에 떠다니는 꽃가루에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아기들 중에는 어머니 젖조차도 받아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로 그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시간을 측정하기 때문에 이해력이 한정되어 있다 저들은 오늘말고는 어떤 시간도 인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내일을 생각지 않고 파괴를 일 삼는다.
따라서 그들은 두려움의 싹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저들은 자식들 마저 위협한다 그래서 법률과 감옥을 필요로 하고있다.
두려움은 동물의 감정이다. 동물계에서는 두려움이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신을 알고 우주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서서히 전개되고 있는 계획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두려움을 느낄 이유가 없다.
사람은 신념을 갖거나 두려움을 가질 수 는 있지만 신념과 두려움을 둘 다 가질 수 는 없다.
물질은 두려움을 낳는다.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런 사람은 물질확보를 위한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우리는 인간이 만물의 연장이라고 하면서 문명생활의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자기생애 다할 때까지 생의 경쟁이라도 하듯이 오직 자기 앞에 전개되는 미지의 이상만을 찾고 확보하려고 모든 것을 여기에만 투자하다 보니 결국은 어느 한 순간이라도 삶의 목적도 없이, 진정한 가치판단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한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끝내야 만 하는 불쌍한 존재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일행은 잠시나마 이런 대자연에 참여되었음을 무한히 감사 드리며 이 순간 모든 것이 영원히 정지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였으나, 호주의 원주민이 이야기하듯이 우리 또한 문명생활을 하는 인간으로 내일의 짜여진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할 운명이기에 아쉬움을 갖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오르막은 바퀴에 길을 감아놓는 것
해발 1000m가 넘는 강원도 해안 펀치 볼의 대암산과 ,두술산 내린천 계곡 줄기의 방태산, 월정사, 상원사의 오대산
특히 봄, 가을 들꽃들의 낙원인 곰배령 줄기의 점봉산등 을 오를 때는 비록 가파른 언덕길이지만 계곡 따라 계속 이어지는 작고 큰 폭포소리와 고도 및 지형 조건에 따라 자생하는 식물군집과 들꽃에서 품어내는 향기에 취하고 또한 박새 ,뻐꾸기, 꿩, 산비둘기 그밖에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져 귀는 소리는, 힘든 페달링을 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원기를 솟아나게 해주어 그 높은 오르막을 언제 오르는지 모를 정도로 쉽게 오르게 하기도 한다.
처음 접하는 낯선 코스인 경우는 산봉우리 하나 하나 오르고 나면 이제는 최정상이겠지 하며 있는 힘을 다하여 페달링 과 핸들조정에 몸을 실어 그 고개 마루에 이르면 새로이 나타나는 제2, 제3등의 고갯길을 몇 번이고 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내가 왜 지금까지 이렇게 힘들게 가파른 숨을 몰아가며 땀도 닦아낼 시간여유도 없이 서둘러 올라가야만 하는?
이 또한 동료와의 경쟁 의식 , 아니면 나의 기록갱신에 대한 욕구 때문에 무리를 하고 있지 아니한가? 분명히 이 길은 자연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황금과 같이 값진 길이니 더욱 보람되게 차분차분 아끼고 음미하며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고갯길을 오르고 나니
그 동안 내가 올라온 길은 뒷바퀴에 태엽을 감아온 것과 다름없는 길이니
이는 멋진 라이딩을 위해 저축해놓은 것이기에 언덕을 오르며 땀방울이 눈앞을 가리고 페달링을 하면서 허벅지에 온힘을 다 쏟아 한바퀴 한바퀴씩 체인에 전달된 뒷바퀴를 돌릴 때마다 가슴 뿌듯하게 느끼어 지는 것이다.
이러한 현재, 과거, 미래의 관계는 나의 MTB를 기준으로 내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앞바퀴로는 미래의 지향적 탐색 역할을 하는 것이며 뒷바퀴는 지나온 과거를 태엽에 감아 놓은 상태이니 MTB에 의하여 미래와 과거가 동시에 연출된다. MTB는 과거의 지나온 길을 분명 바퀴에 감아 놓은 것이니 분명 타임머신의 기능을 할 것이다 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과거 자신이 걸어온 인생사의 평가는 쉽게 잊어버리고, 남은 여생에 대하여는 자신의 능력 이상의 무리수를 두고 모든 일을 여기에만 집념 하여 몰두하다보니 항상 부족한 삶을 지내고 있는 불쌍한 존재가 아닌가?
다운 힐의 스릴, 서스펜스는 죽음과도 바꾸고싶다
자전거로 힘겹게 오른 오르막길은 그 길이 얼마나 길고 험하였느냐 에 따라 내리막길의 다운 힐은 그와 정 반대의 현상으로 라이딩의 새로운 맛을 우리에게 보상해 주기에 우리는 가급적이면 자연 그대로 보존된 비포장의 오지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내리막의 싱글트랙에서는 나무와 나무사이, 바위와 바위사이를 돌고 돌며 아무렇게나 놓인 돌과, 지면위로 솟아난 나무 뿌리들을 빠른 속도로 통과 할 때마다 바퀴에 전달된 충격은 페달을 통하여 온몸을 좌우, 상하로 흔들어 주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그 어떤 장치로도 해낼 수 없는 풍부한 삼림욕 속에서 자연의 교향곡을 들으며 전신 마사지를 해주어 뼈마디마디와 작은 근육까지 진동을 일으켜준다. 이때의 스릴과 서스펜스야 말로 혹자는 섹스시 사정의 순간이 연속적으로 연출되는 기분과 비유하고 있으니 이는 죽음과도 맞바꾸고 싶은 마음으로 이 순간을 위하여 그 무엇인들 아까울 것이며 못 하겠는가?
또한 빠른 속도로 물웅덩이를 지날 때는 앞바퀴가 물을 갈라 주고 나면 이어 뒷바퀴에 채인 물은 땀에 흠뻑 젖은 우리 몸을 등뒤에서 마치 샤워 기를 틀어 주는 듯 시원스럽게 물을 뿌려주는 아량까지 해 주는 MTB인데
자전거를 누가 감히 생활의 운송수단의 도구라고만 치부하는가 나의 애 타는 심정을 알고
이에 걸맞게 모든 것을 알아서 충족시켜줌은 때로는 가까운 내 주변의 사람보다도 나를 아끼어주니 MTB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임을 다시 한번 인식 시켜준다.
이렇게 자전거 투어를 즐기다 보면 깊은 산중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라는 걱정은 생각할 여건도 아니고 이 근방에서 어떤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하여야 하는 입장이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은 순식간에 각자의 뱃속으로 채워지는데 그때의 음식 맛은 먹을 때마다 맛의 정도 가 요리재료와 솜씨에 무관하게 굶주림의 정도에 비례하여 극치에 점수를 주게된다 이때 음식물은 분명 우리 뱃속으로 들어와 채워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한 MTB에 연료를 가득 채운다는 기분이 드는 현상은 분명 MTB가 우리 육신의 하나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다. MTB는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언제나 같이 하고픈 애인 같은 존재이다.
(참고자료 여기에 들어가면 보다 많은 MTB의 투어일기와 앨범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http://home.freechal.com/ilsanmt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