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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8장12~21절
제목 :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솔로몬은 외부 공사에 이어 내부 장식을 소개합니다.
솔로몬은 그 설계와 식양대로 하였습니다.
성막 내부는 기본적으로 백향목 널판을 사용하였고, 바닥은 잔나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내소 전체를 금으로 덮었습니다.
성전 건축 이야기(6장, 7:13~51절)사이에 왕궁 건축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솔로몬이 왕궁을 십삼 년동안 건축하여 준공합니다.
이때에 “바로의 딸을 위해”집을 지었습니다.
솔로몬이 두로 사람 히람에게 성전 기물들을 제작하는 일을 맡깁니다.
히람은 출31:2~5절에 나오는 브사렐과 비견될 수 있는 인물로 놋뿐만 아니라 금은동철 및 돌과 나무, 천을 다루는 일에도 탁월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던 희대의 장인 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붙드시고, 보존하시고, 순결하게 하십니다.
교회는 순종의 모습이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의로서만 봉사해야 합니다.
놋 받침 수레 10대와 물두멍 10개를 만듭니다.
물두멍은 성전 좌우에 배치하여 성전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을 경험하고 경외하게 하려 한 것입니다.
바다가 제사장들의 손과 발을 씻는 용도인 반면에,
물두멍은 제사 드리는 자들과 제물을 정결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배 조건이 정결입니다.
그리고 히람이 놋으로 만든 기구들의 모양과 수량을 소개합니다.
솔로몬 성전 내부에서 사용될 각종 기구들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전을 완공되자 솔로몬은 언약궤를 다윗 성에서 성전으로 옮김니다.
온 이스라엘이 언약궤 운반에 참여했고 지성소에 안치되자 구름이 성전에 가득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을 건축한 후, 솔로몬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자신을 통해 일우신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일이고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다.
1. 성전 건축의 목적(12~14절)
1)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말씀합니다(12절)
“[12]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 언제 어디서 하나님이 그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 다른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여호와께서...계시려고 의도하셨사오나"라는 뜻으로 이해합니다(Thenius).
본절에서 '말씀하다'에 해당하는 '아마르'는 '의도하다'라는 뜻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마르'는 그 동사의 주어가 하나님이신 경우에는 대체로 계시,
즉 당신을 알게 하시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하나님은 캄캄한 데 계신 분이심을 알게해 주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구름과 흑암 속 캄캄한 곳에 거하신다가 구절은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출19:9;20:21;레16:2;신4:11;5:22;시18:11;97:2).
따라서 솔로몬은 이러한 상황을 기억하고 이처럼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구절들에서 '흑암' 또는 '캄캄함'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접근 불가능함, 또는 사고 불가능함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절의 '캄캄한 데 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결국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지존(至尊)하심을 시인하는 표현입니다.
2)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13절)
“[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 본절은 외견상 12절의 내용과 상충(相衝)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12절은 제한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지존하심을 고백한 구절인 반면, 본절은 바로 그 하나님을 성전이라는 한 장소에 제한시킬 수 있는 양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절은 솔로몬이 성전에 구름이 가득함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가 허락되었음을 확신하고 하는 말입니다(Keil).
결국 성막에서든 성전에서든 그곳을 자신의 처소로 삼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지, 인간의 자의적 결정이 하나님의 처소를 고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본절의 표현 속에는 그렇듯 지존하신 하나님을 감히 모시고자 하는 솔로몬의 겸비함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27절).
그러므로 12절과 13절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계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음과 아울러, 그렇듯 고귀하신 하나님을 감히 성전에 모시고자 함에서 연유한 솔로몬의 겸비한 심령이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 -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근거로 다음 두 가지가 제시됩니다.
(1) 광야를 유랑하던 시절의 성막이 갖는 이동성과 임시성에 대해 정착과 안정이 있는 성전의 영구성.
(2)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영구한 왕위를 세워 주시겠다는 삼하 7:14-16의 약속.
* 솔로몬의 기쁨에 찬 고백(12-13절)
(1) 사람이 만든 성전을 하나님이 열납하심을 기뻐합니다.
(2) 하나님이 위엄과 신비로 임재하심을 기뻐합니다.
(3)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심을 기뻐합니다.
3)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합니다(14절)
“[14]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얼굴을 돌이켜. - 그때까지 솔로몬은 성전에 구름이 나타나는 장면을 응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Hammond).
이것은 13절의 솔로몬의 말이, 성전에 가득한 구름이 내리 임함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여 발언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 줍니다.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 축복은 제사장만의 고유 권한이라는 데 근거해서(민 6:22-27), 혹자는 본절의 솔로몬의 축복을 "권한은 없지만 그저 축하로서 했을 뿐"이라고 해석했고(Hammond), 혹자는 "제사장의 축도를 대신 수해한 것"이라고 각기 해석했습니다(Stanley). 그러나
(1) '축복하다'에 해당되는 '바라크'의 용법은 실로 다양한데, 때로는 백성이 왕을 축복하는 경우에도 사용되었고(66절),
(2) 그리고 축도가 아닌 광범위한 의미의 '축복'은 제사장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창 14:19;신 7:12-16).
결국 문맥으로 보아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확신한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경축사와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다윗의 계획과 하나님의 선택(15~19절)
1)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의 손으로 이루셨습니다(15절)
“[15]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 -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와위'(王位)와 '성전 건축'등에 대한 '다윗 계약'을 가리킵니다(삼하 7:2-17;대상 22:6-12;28:1-10).
그의 손으로. - 성경에서 '손'(야드)이란 말의 사용 용법이 여러 가지이므로, 그 의미 또한 다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과 같은 형태로 사용되게 되면 보통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또는 능력을 의미하게 됩니다. 좀 더 살펴보면 '손'은
(1)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책임 및 권한을 나타내며,
(2)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 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바를 이루실 능력도 가지고 계신 분이심을 본절의 솔로몬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루셨도다. -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말씀하신 바대로
(1) 아들 솔로몬을 세워 다윗의 위(位)에 앉도록 하사 나라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삼하 7:12).
(2) 또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대로 솔로몬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삼하 7:13).
2)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다윗을 택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16절)
“[16]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 - 이 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오랜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날로서,
선민 이스라엘이 신정 국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날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국면, 주요 사건 등에서 이 출애굽 사건은 끊임없이 상기되고 회고됩니다.
내 이름을 둘 만한 집. - 이름은 그 이름의 소유자가 갖고 있는 총체적이고도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냅니다(창 27:36;32:28;삼상 25:25등).
즉 이름은 바로 그 이름을 가진 존재 그 자체입니다.
"이름이 있는 곳에 그 이름의 주인공이 있습니다"(Schmidt).
그러므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둔다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를 그곳에 계시하시고,
또한 당신의 권위와 영광을 그곳에 두시겠다는 의미입니다(신 12:5).
*신12: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그런고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에 관심을 갖고 거룩히 지키시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십니다(겔 20:9;39:7).
*겔20:9,39:7 “[20:9]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 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39:7]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하라”
결국 이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30절)이 땅의 백성들 사이에 있을 수 있도록 하는 통로요 매개체(媒介體)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둔 집,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사이에 임재하신 처소로서 하나님께 '허락 받은' 곳이 됩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름을 두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이든 성물이든 그 자체가 하나님을 속박해 둘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후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신앙에서 돌아섰을 때
성전은 무의미한 건물로 전락되었고 결국 파괴되고 말았습니다(사 1:10-17).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6:5, 6을 참고하건대, 이 말은 '다른 지파의 어느 성읍도 뽑히지 않고 오직 유다 지파의 예루살렘이 뽑혔다'는 의미를 보충해야 뜻이 분명해집니다.
다만 다윗을 택하여. - 본절은 수많은 나라들 중 유독 이스라엘을 택하사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고(출 19:6), 또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유독 다윗을 택하사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시 78:70).
한편 본절을 통해 솔로몬은
(1) 자신을 비롯한 전백성들이 자고함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였으며 (2) 하나님의 크신 위엄과 주권 앞에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다짐하였고 (3)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고자 하였습니다.
3) 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습니다(17절)
“[17]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마음이 있었더니. - '마음'으로 번역되는 '레브' 또는 '레바브'는 '심장'(heart)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렘 11:20;17:10).
따라서 본절의 '마음'은 단지 의도, 사고, 기억 같은 개별적인 심리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을 비롯하여 감정, 의지 등을 통틀어 열렬히 희망함을 의미합니다.
한편, 삼하 7:2;대상 17:1 등을 보면,
다윗은 성전을 건축 하고픈 마음을 강렬히 시사했었습니다.
4)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가진 것은 좋다고 하였습니다(18절)
“[18]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 다윗이 품은 성전 건축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일단 그 자체는 기쁘게 생각하심을 표현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절을 "네게 있는 것은 좋도다"로 이해하면 문맥상의 뉘앙스가 보다 잘 전달됩니다.
공동 번역은 "...생각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다"로 번영하고 있습니다.
5) 그러나 너는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아들이 성전을 건축하리라고 합니다(19절)
“[19]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를 우리는 다음의 두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삼하 7:5-7: 여기서 하나님은 백향목 집(성전)을 별로 필요없는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2) 대상 22:8: 여기서 하나님은 다윗이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라는 이유로 성전 건축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무관한 이유들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1)에서 하나님이 성전을 원치 않으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천막을 치고 옮겨 다녀야 하는 불안정한 처지 때문이었고,
(2)는 다윗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했던 인물임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은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성전을 지으리만치 안정된 시대에 속한 인물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정의 이유'로 인해 평화 중에 건축되어야 할 성전은 차기 세대로 미루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 여호와를 향한 다윗의 열심은 성전 건축을 위한 소원으로 불타올랐으며,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다윗은 건축 자재를 마련하는 등
다 각도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대상 22:2-1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성전 양식까지 소상히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성전 건축 사업만큼은 솔로몬에게 위임하셨습니다(대상 28:12-20).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 개념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그러한 하나님의 뜻 앞에 흔쾌히 순복한 다윗의 신앙 자세 또한 후세의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습니다.
3. 솔로몬의 성전 건축(20~21절)
1)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20절).
“[20]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 본절에서 '이루다'로 번역된 동사 '쿰'은 원래 '일어나다' 또는 '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말씀하신 대로 세우셨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쿰'이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문맥에 사용될 때면 '확립하다' 또는
'확정짓다'란 의미를 띠게 됩니다.
즉 체결된 언약을 확실하게 하는 순간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솔로몬이, 이전에 부친 다윗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삼하 7:13)이 눈 앞에서 실현됨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 '이름'은 그것에 의해 호칭되는 사물이나 사람의 '존재'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곧 그분의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16절).
이런 점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지상 임재의 상징적이고 가견적인 처소인 것입니다.
2) 언약을 넣을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습니다(21절)
“[21] 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 이처럼 '출애굽'사건과
'성전 건축' 사건을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1) 성전의 핵심, 즉 성전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체는 그 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장소라는 데 있습니다.
(2) 그런데 이 임재를 보증 또는 표징하는 것은 바로 '언약궤'입니다.
(3) 그리고 이 언약궤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출애굽 당시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사실에 기인합니다.
(4) 고로 성전 건축의 의의 및 가치는 출애굽을 기점으로 해서만 설
명될 수 있습니다(6:1).
세우신. - 여기서 '세우다'는 '쿰'이 아니라 '카라트'입니다.
그런데 '카라트'는 언약과 관련된 문맥에서는 '쿰'과는 달리 '언약을 체결하다' 또는 '언약을 개시(開始)하다'라는 의미를 띠게 됩니다(20절;5:12).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 - 즉 '법궤' 또는 '증거궤'로도 불리는 '언약궤'를 가리키는데, 이 언약궤 속에는 여호와 언약의 핵심이자 요체(要諦)인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출 25:16;40:20;신 10:5).
그리고 이 언약궤는 성전의 가장 깊숙한 내소, 곧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6절).
3) 성전건축의 경륜
(1) 하나님이 약속에 따라 건축하셨습니다(행7:17, 히9:15, 벧후3:13).
(2) 하나님의 거룩한 지도자를 통해 건축하셨습니다(삼상 9:16, 마 23:10, 행 8:31).
(3)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 건축하셨습니다(마6:10,롬1:10,엡 1:5).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성전에 구름이 가득한 것을 본 솔로몬은, 자신이 만든 성전에 하나님이 임하시고 영광을 나타내신 것에 감격하며 감사합니다(12,13절).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다가갈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분이 이 성전을 처소로 삼아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은혜를 주셨지만,
여전히 두려워 떨며 반응할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과 교제하도록 말씀을 들려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2) 솔로몬은 이스라엘은 온 백성을 축복하며, 이 성전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14~16절).
성전 건축을 작정하신 분도, 건축할 사람을 택하신 분도, 건축의 전 과정을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합니다.
자기가 이룬 것이라고 자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선한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이 보입니까?
사람은 칭송하고 경배하는 데 몰두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나를 통해 온전히, 철저히 영광받으십니까?
3) 솔로몬은 성전 건축이 하나님께서 애굽 땅이 있을 때부터 작정하시고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 일이라고 선언합니다(16,20,21절).
더불어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신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되었고,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성전을 건축했으며, 하나님과의 언약이 담긴 궤를 지성소에 두어 성전을 완공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솔로몬의 성전을 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입니다(요14장).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솔로몬처럼, 언약에 신실하게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고, 하시고 하실 것인지를 깨닫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뿐입니다.
4)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다윗의 진심을 받으셨지만,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고 아들 솔로몬에게 맡기셨습니다(17~19절).
다윗이 할 일과 솔로몬이 할 일은 달랐습니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다윗은 건축을 준비하여 사명을 감당했고 솔로몬은 실제로 건축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내게 허락된 것과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리을 진심 어린 기도와 마음으로 가늠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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