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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스겔 16장1~14절
제목 :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나님은 핏덩이 채 버려진 갓난아기와 같은 예루살렘을 구하시고 양육하셨을 뿐 아니라, 영화로운 신부로 삼아주셨습니다.
1. 버림받은 이스라엘(1~5절)
1) 말씀의 계시(1절)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
본절에서 부터는 예루살렘을 음란한 음부(淫婦)로 비유하여 그 음란한 죄악성, 즉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가증한 죄악을 드러내 책망하며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비유의 형식만 달라졌을 뿐 기본적인 기조는 이전의 것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이처럼 비유의 형식을 달리하면서도 같은 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2)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2절)
“[2]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
가증한 일. - 이 말은 히브리어로 '토아보테하'로서 일반적으로 우상 숭배 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으며(5:9 참조) 본절에서 이 말은 특히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예루살렘 거민들이 바알과 몰록 우상을 섬기는 것에 적용된 것으로 보입니다(15-22절, Wycliffe, Cooke).
왜냐하면 당시 유다 왕국 내에서 에스겔과 같은 시기에 사역하였던 예레미야 선지자도 유다 백성들이 바알과 몰렉 우상을 섬긴 것에 대하여 크게 책망했기 때문입니다(렘 32:30-35).
3) 청자와 이방 출신 예루살렘(3절)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 이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의 실제적인 혈통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그들이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짐으로 이방인과 같이 되었음을 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모리'는 '고지대인(高地帶人)들'이란 뜻으로 아카드어로는 '아무루'(Amurru)로 불리 웁니다.
이들은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 중 한 무리들로서 일찍부터 가나안에 거주했던 많은 토착민들 중 하나입니다(창 10:16).
이들은 또한 소아시아에서 그들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으며 일부가 남동쪽으로 내려가 바벨론의 제1왕조를 수립한 것으로 알려집니다(Mendenhall).
본절에서도 이들은 가나안 땅의 여러 원주민 가운데서 '헷 사람'들과 함께 가나안 원주민 전체를 대표하는 족속으로서 언급되었습니다(Calvin).
'헷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그 근원이 다른 비셈족 계통의 사람들(non-semitic people)입니다.
이들은 한때 동쪽 메소포타미아에서 서쪽 서머나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문화적 영향을 미친 자들로서 철기 문화를 사용한 자들로 유명합니다.
또한 이들은 족장 시대 때부터 솔로몬 시대에 이르기까지 가나안 땅과도 연관을 맺으면서 살았던 자들입니다(창 23:10-20;26:34;수 1:4;삼상 26:6;왕상 11:1, Wycliffe).
본절에서도 이들이 예루살렘의 '어미'로 언급된 것은 아모리 족속과 함께 가나안 원주민들의 대표였기 때문입니다(Calvin).
4) 들에 버려진 아이(4~5절)
(1) 원치 아니했던 어린 아이들이 출생했들 때 취해졌던 풍습입니다(4절)
“[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
본절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원치 아니했던 어린 아이, 특히 여자 아이들이 출생했을 때 취해졌던 풍습을 예루살렘에 적용하여 언급한 말입니다.
아마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고센 땅에 살았던 기간으로서(창 46:34-47:12)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의 수중에 있었던 때일 수도 있습니다(Plumtre).
당시 이방인들은 원치 아니한 아이 특히 여자 아이들이 출생했을 때에는 그 아이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행해야 할 일들 조차 해주지 않고 그대로 문밖에 방치해 두었으며, 심지어 고대 아랍인들은 산 채로 매장했다고 합니다(Cooke, Carley).
그러나 마스터맨(Masterman)에 의하면 고대 근동 지역에서 출생한 아이에게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관습이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태줄을 끊자마자 산파가 그 아이 위에 소금과 물과 기름을 뿌려 문지르고 칠일 동안 강포로 단단하게 쌉니다.
그리고 칠일이 지난 후 그 더러운 강포를 어린 아이에게서 벗기고, 씻은 다음 다시 기름을 바르고 칠일 동안 강포로 쌉니다.
이런 정결 의식에 대해 혹자는 어린 아이를 악한 영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행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Carley).
본절에서 예루살렘이 이런 성결 의식도 받아 보지 못한 것으로 비유된 것은 그 성읍이 당시 버림받아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되어 있었음을 암시해줍니다.
(2)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들에 버려졌다고 합니다(5절)
“[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 '들'의 히브리어 원형은 '파님'(트인)과 '솨데'(들판)의 합성어로서 '확 트인 들판' 또는 '넓은 벌판'을 뜻합니다.
어린 아이를 이런 곳에 내버려 둔다는 것은 곧 들짐승이나 폭풍우 같은 것에 드러내 놓는 것을 암시합니다(33:27, Cooke).
이는 어린 아이로 비유된 예루살렘이 당시 그곳 이방인들에게 하찮은 존재로 비춰졌음을 뜻합니다.
2. 선택과 보호와 양육(6~7절)
1)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생명을 허락하십니다(6절)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 본절에서 이 말이 두 번 반복되어 그 뜻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적인 은혜로 사람들에게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어진 자를 살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은혜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당신의 주권적인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곧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심을 엿보게 하며(출 34:6;시 86:15) 한편으로는 그분의 은혜와 긍휼을 받은 자로 하여금 후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스스로 교만하여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뜻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편 본절에서 '살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형은 '하야'로서 여기에서는 명령형으로 쓰였습니다.
이 말에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언급된 것처럼 명령되어진 것을 가능하게 하는, 즉 살도록 명령되어진 존재에게 생명을 공급해준다는 뜻도 함축되어있습니다(창 1:22, 28;9:1, 7;17:20;28:3;35:11, Brownlee, Carley).
2) 여호와께서 아이를 들의 풀처럼 자라게 하셨더니, 아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자라 유방아 뚜렷해지고 머리털도 다 자랐지만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었습니다 (7절)
“[7]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심히 아름다우며(타보이 바아디 아다임) - 이는 문자적으로 '네가 보석들 중의 보석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특히 여기에서 '보석들 중의 보석'이란 최고의 장식품을 표현할 때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던 관용적인 어구입니다(전 1:2).
이렇게 비유된 예루살렘이 하찮은 여자 아이처럼 취급받다가(4, 5절) 이제는 자라서 극도로 아름답게 되었음을 뜻합니다(Calvin).
유방이 뚜렷하고. - '뚜렷하고'의 히브리어 원형은 '쿤'으로서 '세우다', '확실하게 하다'의 뜻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으로 비유된 어린 여자 아이가 이제는 자라서 결혼해도 될 만큼 성숙했음을 뜻합니다.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 어린 여자 아이가 결혼해도 될 만큼 성숙했으나 아직도 자신을 가릴 옷을 입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여전히 수치와 부끄러움 가운데 처해 있음을 보여줍니다(Calvin).
예루살렘이 한 성읍이긴 하나 여부스 족속이 거하는 요새지로서 아직도 번영한 도시로서의 제 모습을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Cooke).
그러나 이 수치는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읍을 자기 것으로 취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3. 신부 이스라엘(8~14절)
1) 아이를 아내 삼은 여호와(8절)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랑을 할 만한 때라. - 문자적으로는 '아트도딤'으로서 '사랑에 빠질 때'(the time of loves) 또는 '사랑할 만한 나이'(the age of love making)로 해석됩니다.
즉 본 구절은 그녀가 내적으로 성숙하여 그의 신랑 될 자와 사랑할 수 있는 때가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애굽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을 취할 때가 이르렀음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결혼해서 신랑의 사랑을 받을 만한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 플럼트르(Plumtre)의 견해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 이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 행해지는 결혼 풍습에 대하여 언급한 말입니다.
즉 본 구절의 '옷으로 너를 덮어'란 결혼한 신랑이 신부를 취하여 그의 옷으로 덮어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됨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말입니다(룻 3:9).
그리고 '언약하여'란 신랑과 신부가 서로 약조하여 결혼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잠 2:17;말 2:14, Cooke, Brownlee, Wycliffe).
혹자는 본 구절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들을 애굽의 압박 속에서 구원하여 내사 더러움과 수치를 덮으시고 후에 시내 산에서 율법 언약을 맺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Calvin).
한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결혼 관계를 맺으셨다는 것은 언약에 의해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이르렀음을 가리킵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사 54:5)고 언급하셨습니다.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뜻합니다(출 19:6;신 4:7).
2) 남편 여호와(9~14절)
(1)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물로 깨끗이 씻어주시고 몸에 묻은 피를 닦아주시고 기름을 발라 주십니다(9절)
“[9]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비유된 처녀로 하여금 결혼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시키는 의식을 가리킵니다(룻 3:3;에 2:12, Wycliffe).
피 - 이에 대해 혹자는 레 15:19-24에 언급된 바와 같이 여자의 월경 기간 중 흐르는 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Plumtre).
그러나 그보다는 6절에 언급되어진 '피'와 같은 것으로서, 그 여자가 성숙해서도 갓난 아이 때의 피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 여자가 곧바로 결혼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어린 아이 시절에 가지고 있던 유치함을 벗어버리고 결혼을 위한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기름 - 이는 감람나무 열매에서 취하는 식물성 기름입니다.
이 '기름'은 당시 식용(왕상 17:12, 14), 제사용(레 2:1, 2), 약용(사 1:6), 향유(삼하 14:2;시 23:5)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여인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은 신부로서 향기를 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본격적인 결혼 준비에 들어갔음을 의미합니다.
(2)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니다(10절)
“[10]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 '수놓은'이란 표현은 출 26:36;27:16;28:39;35:35;삿 5:30;시 45:14 등에서도 유사하게 또는 같은 말로서 나타납니다.
이 옷을 입는 것은 고대 풍속에서 사랑받는 것을 암시합니다(창 37:3).
물돼지 가죽신. - '물돼지'가 무슨 동물인지는 불분명하나 일반적으로 그 가죽이 주로 샌달(sandal)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돌고래 또는 물개로 알려집니다(Wycliffe, Cooke, Plumtre).
이 말은 모세 오경에서는 그 가죽으로 성막 덮개를 만드는 '해달'(출 25:5;26:14;35:7;민 4:6, 10, 14)로 번역되어 나타납니다.
이로 볼 때 본 구절은 당시 매우 귀하게 여겨졌던 신을 신는다는 뜻을 암시합니다(Calvin).
가는 베로 두르고. - 고대 근동 지방에서 '베'는 아마(亞麻, flax)에서 빼낸 실로 짠 섬유를 말합니다.
아마를 사용한 베를 짜는 가공 기술은 고대 근동 지방 중에서도 특히 애굽에서 발달되었는데, 애굽의 제사장들이 주로 이 옷을 입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모세의 율법 시대 역시 제사장들이 이 베로 만든 옷을 입었습니다(출 25:4;26:1;39:3).
이런 점에서 볼 때 본 구절은 여자에게 귀한 옷을 입힌 것을 뜻합니다.
모시로 덧입히고. - '모시'(메쉬)란 말은 성경에서 본 구절과 13절에서만 나옵나다.
(3)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겁니다(11절)
“[1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
패물을 채우고. - '패물'이란 히브리어로 '아디'로서 17절의 '장식품'이란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결혼 풍습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신부에게 각종 장식품으로 단장해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팔 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 '팔 고리'는 23:42;창 24:22;민 31:50 등에 언급되는 바대로 팔찌를 가리킵니다.
목걸이를 목에 걸고. - 창 41:42에 언급되고 있듯이 목걸이를 가리킵니다.
(4)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습니다.
“[1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코고리를 코에 달고. - 이는 앞 절과 같이 역시 결혼하는 신부에게 장식품으로 단장해 준 것을 가리킵니다.
'코고리'는 창 24:47;잠 11:22;사 3:21 등에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귀고리 - 이것은 민 31:50에 언급됩니다.
왕관 - 이는 결혼할 때 신부가 쓰는 관을 가리킵니다(아 3:11).
(5) 머리에는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하십니다(13절)
“[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
고운 밀가루 - '밀가루'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보리와 함께 주식입니다.
그런데 보리가 주로 가난한 서민층의 사람들에게 애용된 주식이라면(삿 7:13;왕하 7:18;겔 4:9;요 6; 9, 13), 밀가루는 좀 더 나은 생활자들에게 애용되었습니다(왕상 4:22).
특히 본 구절에서 '고운'이란 수식어가 붙어 그 밀가루가 상류층에서 애용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꿀과 기름. - 이 두 가지는 팔레스틴 지방에서 귀하게 여겨진 식품에 속합니다(창 43: 11;신 32:13;삿 14:9;왕상 14:3).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풍요롭고 풍성한 생활을 한 것은 솔로몬 왕 시대일 것입니다(Wycliffe, Plumtre).
솔로몬 시대에는 나라가 평화롭고 은, 금이 풍부했으며, 왕의 식탁에 '밀가루'등 음식이 풍부하고 백성들도 풍요롭게 살았습니다(왕상 4:20-28;10:11-29).
(6)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베푸신 더할 나위 없는 화려함 때문에 그 명성이 민족들 가운데 널리 퍼집니다(14절)
“[14]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 '화려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피'는 처녀가 화려한 장식품들로 단장하고 풍요로운 음식의 섭취로 아름답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10-13절).
궁극적으로는 이 비유의 실체인 예루살렘이 번영하고 풍요롭게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혹자는 이를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 솔로몬 왕 시대의 번영과 일치하는 것으로 봅니다(왕상 10:1-10, 23-25, Brownlee, Wycliffe).
하나님은 우리를 좋은 것으로 입히시고 귀한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아들까지 주시는 온전한 사랑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우리로 그 자녀답게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음녀의 길을 갔던 이스라엘처럼 행하지 말고, 사랑에 감사하고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자.
버려진 아이 같던 우리를 택하여 정성으로 기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지 말자.
묵상 Point
1) 은혜로 시작한 인생
하나님이 주목하고 부르시기 전 이스라엘은 이방인과 다름 없었습니다.
그 혈통적인 뿌리가 이방인일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었습니다.
마치 신생아가 탯줄이 붙어 있는 채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하고 태양 아래 넓은 들판에 노출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처럼 소망도 없었고, 미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관심과 관대함이 아니었다면 살아남지도 못했고 살아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요 오래 참으심의 결과입니다.
그들이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2) 은혜로 살아온 인생
피투성이가 되어 겨우 발짓을 하는 핏덩이 아기 이스라엘을 보시고 ‘살아 있으라’는 말씀으로 새롭게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들을 성장시키셨고 성숙시키셨습니다.
그것만도 엄청난 은혜인데, 결혼 언약을 맺어 온 땅의 왕이신 여호와의 신부로 말아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이유를 그들 안에서는 조금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스스로 우러난 사랑과 열국을 복 주시려는 당신의 목저그 그리고 은혜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3) 은혜로 존귀해진 인생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신부인 왕비로 삼으셨을뿐 아니라, 여인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주심으로 그 명성과 영화가 이방인 중에 퍼지게 하십니다.
특히 의복과 음식에 대한 묘사는 성마과 제사장에게서 볼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영광스런 신부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명성을 드높이는 제사장으로도 부르셨음을 보여줍니다.
자격없는 자에게 베푸신 과분한 은혜입니다.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3-7절 천한 태생과 연약함을 아시고도 예루살렘을 택하여 양육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처음부터 거룩한 성읍이 아니라, 전에는 ‘아모리’나 ‘헷’과 다를 바 없는 음란한 가나안 성읍이었습니다(수 18장 28절).
그때 예루살렘은 사랑과 돌봄도 받지 못하고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갓난아기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피투성이로 발짓하는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를 거두어 아름답게 양육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없었다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버려진 예루살렘과 다르지 않습니다.
악하고 보잘것없던 우리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특별해서 택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특별해진 것입니다.
6,7절 살아갈 소망과 힘을 주십니다.
그를 낳은 이들에게 버림받고, 돌봐줄 이도 없어 핏덩이로 꺼져가는 생명을 붙들고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제발 살아만 달라’고 간절히 외치며 구하셨습니다.
‘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며 동시에 애끓는 당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죽음’이 아니라 항상 ‘생명’입니다.
세상은 ‘살려면 죽이라’고 선동하며 경쟁을 부추기지만, 하나님은 살게 하시려 창조하셨고 살리시려고 구원하셨습니다.
이 간절한 외침은 갓 태어난 예루살렘뿐 아니라 지금 심판에 직면하여 죽어가는 예루살렘을 향한 말씀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단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이들에게, 인생의 밑바닥에서 삶의 의지를 잃은 이들에게 찾아오셔서 ‘살아만 있으라’고 힘을 불어넣으십니다.
8-14절 적신(赤身)이던 예루살렘의 몸을 그분의 옷으로 덮으셨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자기 옷으로 덮은 것처럼(룻 3장 9절), 예루살렘을 신부로 택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신부에게 기름으로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며, 가죽신을 신기고 온갖 패물로 단장하여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피투성이 예루살렘이 곱고 아름다운 왕비가 되었습니다.
왕비가 된 예루살렘의 명성과 화려함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반영합니다. 이처럼 교회도 그리스도의 빛을 반영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기도]
공동체-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으신 은혜를 잊지 않고 늘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게 하소서.
열방-유럽의 2,600만 무슬림은 유럽 인구의 5%에 이르며 유럽인들보다 훨씬 젊은 편이다.
유럽 각국의 교회가 늘어나는 무슬림 이주민을 향한 복음 전파에 더욱 힘을 쏟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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